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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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9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
하나님 아버지, 문제 많은 저를 성도라 불러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주 안에서 평강을 누리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은혜와 평강을 누리려면 첫째, 문제 많은 나도 하나님의 교회임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부터 고린도전서 말씀이 시작됩니다. 바울은 글로에의 집 사람들에게서 고린도 교회의 여러 문제를 듣고 이 편지를 썼어요. 분쟁과 음란, 소송과 우상의 제물 문제까지 있었죠. 그런데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이지 문제가 드러난 것은 문제가 아니에요.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드러났기에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 말씀이 전해지게 된 것이죠.
1절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이라고 해요. 겸손한 바울이 왜 이렇게 사도직을 강조할까요? 권고하려면 권위가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또 바울이 사도직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고난을 감당하겠다는 뜻이기도 해요. 내가 사장이라고 말할 때 사장으로서 베풀고 섬기겠다는 의지가 담겨야 하는 것과 같죠.
하나님의 뜻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니에요.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바울 곁에는 형제 소스데네가 있었네요. 학력과 고향과 나이를 넘어 형제가 된 것이죠.
2절에서 바울은 그토록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릅니다. 책망하기 전에 먼저 인정해 준 거예요. 그런데 거룩한 자들이라는 확정된 표현을 쓰기보다 '거룩하여지고'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미 완전해서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가는 교회라는 거예요.
이어서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고 하지요. 언제든 예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몰라요. 주님이 없다면 목적지도 모른 채 불안하게 걸어가야 하니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진짜로 부르려면 내 모든 것이 꺾여야 해요.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비로소 간절히 부르게 되잖아요. 그래서 내 한계를 깨닫게 하는 고난이 오히려 축복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부르는 자에게 3절의 '은혜와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평강은 그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상태를 말하지요.
언뜻 늘 하는 인사 같지만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언제나 가슴을 울리는 인사인 것이지요. 문제 많은 내 모습이 아닌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 믿음의 뿌리를 둘 때 흔들리지 않습니다.
♱ 여러분은 어떠세요?
내 삶에 드러난 문제 때문에 '나는 성도 자격이 없어' 하며 숨고 있진 않나요?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된 나의 고난은 무엇입니까?
은혜와 평강을 누리려면 둘째, 다른 지체를 통해 나를 견고하게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4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해요.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항상 감사하나요? 내가 받은 은혜 때문에 감사하기란 쉽지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은사가 많아 말씀을 잘 깨닫고 잘 섬기는 것을 보며 감사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아요. 내가 가르친 사람이 잘하면 감사하지만 다른 사람이 잘하면 시기와 질투가 올라오는 게 우리예요. 게다가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책망할 것이 많았어요. 그런데도 먼저 감사합니다. 저도 자녀들을 책망하고 싶은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그 아이들 때문에 예수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고 주님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으니 진실로 감사하게 되었지요. 이렇듯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 나를 주께로 더 가까이 이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나의 가장 좋은 스승은 가족이에요.
5절부터 7절에 보면 고린도 교인들은 언변과 지식에 풍족하고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하지요. 하나님의 은혜가 구체적으로 내 삶에 드러나는 것이 은사예요. 그런데 모든 것이 풍족하면 다 이루었다고 착각하기 쉬워요. 나중에 또 보겠지만, 실제로 고린도 교인들은 4장 8절 말씀처럼 이미 배부르고 풍성하여 왕 노릇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주님의 영광이 완전히 나타나지 않았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8절에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해요. 우리는 책망받을 것도 많고 자기 힘으로는 끝까지 견고할 수도 없죠. 그런데 주께서 이루어 가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어떻게 이루어 가실까요? 어떻게 이루어 가실까요? 9절에 보세요.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하시잖아요.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교제는 지체와의 교제로 나타나지요. 영적 지체도 아직 온전하지 않아 서로 상처를 주고받아요. 그러나 모두 주님이 피 흘려 사신 지체이기에 그 교제 속에서 깎이고 다듬어지며 서로 거룩한 성전으로 지어져 갑니다. 가족끼리 서로의 부족함을 참아주듯 영적 가족도 서로 참아주며 함께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 적용 질문입니다.
다른 지체의 은사와 잘됨을 보며 감사합니까, 시기합니까?
책망하고 싶은 가족 때문에 오히려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된 적이 있습니까?
상처받아도 떠나지 않고 교제해야 할 나의 공동체는 어디입니까?
청력 이상으로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공동체의 기도 덕분에 수술을 잘 마친 뒤 하나님을 굳게 붙들게 되었다는 한 고등학생의 청소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어요. 일상에 큰 지장이 없어 중학교에 올라갈 때까지 병원을 찾지 않았는데 중학생 때 처음 검사를 받은 결과, 제 청력이 큰 병원에서 수술받아야 할 정도로 손상되었음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네다섯 곳의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어요. 그 과정에서 절망하며 '하나님은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하나님을 원망했어요. 그때 아버지께서 교회 공동체에 제 기도 제목을 나누자고 권유하셨어요. 이후 교회에서 몸이 아픈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할 때 제 이름도 함께 불렸고 많은 성도님과 친구들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었어요. 그 기도 덕분에 한 달 후 저를 받아주는 병원이 나타났어요. 하나님의 은혜로 두 번의 수술도 잘 마쳤지요. 병원에서 거절당할 때마다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던 제게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예비하셔서 제가 하나님을 붙잡게끔 인도하셨습니다. 또한 8절, 9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저를 교회로 이끄신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획이 항상 신실함을 믿게 해주셨지요. 이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보며 하나님께 감사한 그 마음으로 저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게요. 저의 적용은 '앞으로도 힘든 일들을 교회 공동체에 솔직히 털어놓겠습니다. 감사한 일들을 매일 큐티책에 적으며 하나님께 감사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와 평강을 누리려면 문제 많은 나도 예수 안에서 거룩해져 가는 하나님의 교회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힘이 아니라 지체와의 교제를 통해 나를 견고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해요. 내 문제를 숨기지 않고 나눌 때 교제가 시작되고 그 교제로 하나님이 우리를 견고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지체와 교제함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문제투성이인 저희를 하나님의 교회라 불러주셨음에도 내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숨기기에 바빴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에 감사하면서도 지체가 잘되는 것을 보면 또 시기가 올라오는 저희입니다. 책망하고 싶은 가족을 원망만 했지 그들이 나를 주님께로 이끄는 스승인 줄 몰랐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끝까지 견고할 수 없음을 알고 미쁘신 주님만 의지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서로 깎이고 다듬어지며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저희가 되도록 함께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