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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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댜 1:17~21 오늘 큐티본문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17절에 "시온산에서 피할자가 있으리니.." 21절 "구원받은자들이 시온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이렇게 오늘 오바댜선지자를 통해 마지막 21절에 시온산과 에서의 산이 등장한다. 왜? 시온산과 에서의 산을 비교하여 말씀하셨을까? 먼저, 시온산은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산으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회복하시는 장소를 상징한다.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유다 백성이 고통을 겪을 때, 하나님은 심판이 마지막 장면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시온을 다시 거룩하게 하시고, 흩어진 백성을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에서의 산’은 에돔의 땅과 세력을 상징하는데 에돔은 높은 산과 요새를 의지하며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 교만한 안전이 영원하지 못하다고 하신다. 여기서 심판의 주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형제의 고통을 이용한 자들의 불의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앞에 시온산에 피할자가 있다고 하시며 동시에 에서의 산은 심판하신다고 하신다. 나는 심판의 사건이 연속되고 있어 영적으로 육적으로 많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어제 주일설교에 "네가 행한대로 받는다."라는 말씀에 지금의 건강문제와 옥살이 물질고난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행한 것 때문이라고 해석이 되니 마음이 도리어 평안해졌다. 해석되지 않으면 마음이 힘들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 어제 주일설교를 통해 내가 처한 고난의 사건들이 해석이 되어 조금의 평안을 누렸다. 나는 결국 시온산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던 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도를 하고 말씀을 붙들고 가는데 이렇게 긴시간 그 응답이 없고 시온산이 아닌 지옥과 같은 시간을 갖고 있으니 나를 하나님이 외면하시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오늘 말씀으로 먼저 내 죄를 보게 하시며 그럼에도 시온산에 피할자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돌이켜 보면 난 에돔이었다. 나만 잘 살고 나만 건강하고 나만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한 이기적인 포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남동생들은 간염으로 너무 찌질하게 보였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자랑할 것도 없고 그래서 난 동생들을 가까이 하지 않고 남처럼 지냈다. 막내여동생은 남편이 암으로 죽어가며 두들겨 맞고 있어도 난 남의 일처럼 방관했다. 또 다른 여동생은 아기를 못 낳는 죄로 시댁에서 쫓겨나 혼자가 되어 다른 남자들에게 사기를 당하여도 난 방관하고 그들이 나에게 올까봐 두려웠고 고의적으로 멀리했다. 아픈 사람을 싫어하며 병원가는것도 저주 같아 난 아픈사람도 지적질하며 싫어했다. 공동체안에 아픈 사람이 있어 병원가도 억지로 가야만 했다. 그냥 병원이 싫었다. 한 목장목원이 목장도 참석하지 않는데 목자로 통화하던 중 전화가 되었는데 "제가 지금 죽을 것 같이 아파요.."하는데 그말을 듣고 난 바로 그에게 달려가 병원에 가지 않았다. 결국 그분은 그날 돌아가셨다. 난 귀찮고 병원이 싫어서 그에게 달려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런 내가 에돔이 아니고 무엇인가? 난 에돔이었다. 심판 받아야 마땅한 포악한 죄인이다. 그런 날 오바댜 말씀을 통해 보게 하신다. 내가 보이니 정말 가슴을 치며 통곡하여 회개하게 된다. 내 동생 한명은 간암으로 죽었다. 결국 그를 시온산에 있지 않고 죽는 그날 목사님을 통해 영접기도로 구원받고 천국을 갔지만 난 그가 살아있는 동안 찌질하여 방관하였다. 그와 좀더 일찍 함께 공동체에 속해 시온산에 피하여 살다가 가게 했어야 한다. 남동생의 자녀 3명은 불신자로 살고 있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내가 얼마나 교만하고 얼마나 추악하고 포악한 죄인인지 모른다. 그런 날 보고 나니 통곡하여 회개하게 된다. 난 너무 이기적으로 인색하고 사람을 차별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심판의 사건을 통해 가장 싫어하는 냄새나고 병들고 그런 사람들과 같이 동거하게 하셨다. 바로 감옥에서 훈련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멸시하던 사람 씻지도 않고 냄새나고 돈도 없어 구걸하며 내가 가장 싫어하던 사람들을 7명이나 동거하게 하신 후 그들을 섬기게 훈련하셨다. 그들을 품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나로 훈련하시며 그렇게 심판중에 날 시온산으로 피하게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 다시한번 더 나에게 남아 있는 에돔과 같은 포악함이 있을까? 하나님은 다시 이 말씀으로 날 보게 하신다. 에서의 산과 같은 나 였기 때문이다. 나만의 요새를 만들고 그것으로 난 자랑하며 대단한 것처럼 내가 대단한 요새인 것처럼 살았다. 결국 나에게는 시온산이 없었고 에서의 산만이 존재했기에 하나님은 심판하신 것이다. 억울한 것이 아니다. 판사님이 불이 되어 지푸라기인 날 불살라 심판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17절 "시온산에 피할자가 있다."고 말씀하시며 오늘 그 시온산으로 피하게 하신다. 말씀보고 기도하고 예배가운데 있음이 곧 시온산에 피하는 삶이다. 오늘은 신경외과 병원을 가서 진료도 받고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한다. 적용) 이번 11월 15일 동생을 우리들교회로 초청하고 함께 예배드릴 수 있도록 동생에게 전화하여 식사라도 하며 우리들교회로 인도하는 적용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