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시편 71:13-24
13 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들이 수치와 멸망을 당하게 하시며 나를 모해하려 하는 자들에게는 욕과 수욕이 덮이게 하소서
14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15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16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공의만 전하겠나이다
17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하였나이다
18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19 하나님이여 주의 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큰 일을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
20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
21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
2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또 비파로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을 찬양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23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24 나의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작은 소리로 읊조리오리니 나를 모해하려 하던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
♱ 고난 중에도 찬송하리라 ♱
하나님 아버지, 내 억울함을 증명하기보다 100% 옳으신 주님의 공의만을 의지하여 고난 중에도 찬송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고난 중에도 찬송하려면 첫째, 오직 주의 공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13절에 ‘내 영혼을 대적하는 자들이 수치와 멸망을 당하게 하시며’라고 해요. 그런데 나를 가장 무섭게 대적하는 자는 누구일까요? 바깥의 원수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나입니다. 그러니 이 기도는 내 안의 악이 수치를 당하고 무너지게 해달라는 기도이지요. 내가 하나님 편에 서서 주께 피하기만 하면 그 악은 하나님이 친히 처리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14절에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요. 칼빈은 이 소망이 구원의 확신에서 나온다고 했어요. 환경이 나아져서가 아니라는 거예요.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한다는 고백이 더더욱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소망을 품나요, 절망을 품나요? 소망을 품는다면 가끔입니까, 항상입니까? 소망 가운데서 주를 찬송하나요, 돈을 찬송하나요?
15절의 시인은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라고 해요. 하나님을 원망해야 할 상황에서 하나님을 종일 전하겠다고 약속하니 이것이 기적입니다.
16절의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은 무엇일까요? 시인은 늙어 백발이 된 때에 자기를 모해하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요. 그런 억울한 사건 앞에서 원망이 아니라 내 죄를 보는 평강을 누리게 된 것, 이것이 능하신 행적입니다. 내가 잘나서 된 일이 아니기에 ‘주의 공의만 전하겠나이다’라는 고백이 나오지요. 어려서부터 주를 의지해 온 신실한 사람도 사건을 계속 주시지 않으면 주의 의만 말하기 어렵지요. 하나님은 진실로 우리가 내 의를 버리기를 원하세요.
17절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을 어려서부터 교훈하신 덕분에 지금까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했다고 고백해요. 이것도 은혜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의가 나올 수 있어요. 그래서 18절에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라고 간구합니다. 아사나 웃시야 왕처럼 말년에 교만해져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먹고살 만하여 이제는 그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경계해야 해요. 죽기까지 주의 힘과 능력을 후대에 전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 여러분은 어떠세요?
억울한 상황에서 내 의를 증명하려고 애쓰나요, 백 프로 옳으신 주의 공의를 의지하나요?
살 만해졌다고 주의 능력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나요?
자녀와 후대에 무엇을 전하고 있습니까?
고난 중에도 찬송하려면 둘째, 고난이 나를 다시 살리시려는 주님의 성실하심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19절에 ‘하나님이여 주께서 큰 일을 행하셨사오니 누가 주와 같으리이까’라고 해요. 주께서 내게 주신 사건이 바로 이 큰일입니다. 감당하기 벅찬 사건은 저주가 아니라 나를 구원하시려는 주의 큰일이라는 거예요.
20절에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라고 해요. 지금까지 ‘나’라고 고백하던 시인이 ‘우리’라는 호칭을 씁니다. 개인의 구원에서 공동체의 구원으로 시각이 넓어진 것이죠. 고난이 없을 때도 감사는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심한 고난에서 건짐받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면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거예요.
21절에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라고 해요. 우리를 생각하며 살아가면 하나님은 결코 손해 보지 않게 하시고 더욱 창대하게 하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22절에서 시인은 비파와 수금으로 주의 성실을 찬양해요. 할 수 있는 찬양을 다 구체적으로 돌려드리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심지어 심한 고난을 보이신 것까지 주의 성실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이 주의 성실을 가리켜 반드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라고 했지요.
23절에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라고 해요. 이 기쁨은 늘 겉으로 웃는 모습만을 말하지 않아요. 말씀을 전하고 주의 능력을 전할 때 누리는 기쁨이기에, 하나님 안에서는 슬퍼할 때도 있는 것이죠.
24절에 ‘나의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작은 소리로 읊조리오리니 나를 모해하려 하던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라고 합니다. 비파와 수금, 입술과 혀로 종일토록 내 의가 아닌 주의 의를 전하면 나를 넘어뜨릴 사탄의 세력은 결국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되어 있어요.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힘들지만, 심한 고난 가운데 여기까지 이끌어 오신 주님을 찬송하며 가는 것입니다.
♱ 적용해 보세요.
지금 내게 보이신 심한 고난은 무엇입니까?
그 고난이 나를 다시 살리시려는 주님의 큰일임을 믿습니까?
내가 건짐받은 고난이 ‘우리’로 넓어져 다른 지체를 살리는 약재료로 쓰이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말씀을 들으며 원 가정에서의 고난이 해석되어, 이제는 주님의 공의와 구원을 전하며 살기를 소망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제가 초등학생 때 부모님은 경제적인 이유로 매일 싸우시다가 결국 이혼하셨어요. 아버지는 바로 재혼하신 뒤 저희 형제를 계모에게 맡긴 채 돈을 벌러 나가셨죠. 계모는 아버지가 가끔 집에 오실 때만 웃으며 저희를 대하다가, 아버지가 안 계실 때면 차갑게 돌변하셨어요. 그 후 저는 친어머니와 살게 되었지만 풍랑과도 같은 청소년기를 보내며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20대에 직장인이 되었으나, 경제적으로 준비되지 않으면 부모님처럼 매일 싸우다 이혼할 것 같아 결혼은 꿈도 꾸지 않았지요. 그러다 누군가를 만나 교제하게 되어도 이 사람과는 이혼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앞서 헤어졌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40대에 저는 한 자매를 만나 교회에 다니게 되었어요. 그 자매는 이혼하고 홀로 딸을 키우던 중이었죠. 저는 말씀을 들으면서 제 상처와 죄들을 직면하며 인생이 해석되었어요. 그리고 저를 교회로 인도해 준 여자친구와는 이혼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결혼했어요. 그런데 오랫동안 방황하며 산 탓에 육적 자녀 없이 나이만 들어가니 노후가 걱정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주일, 홀로 모든 공예배에 참석하고 주무시다가 평안히 소천하신 노년의 성도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예배드리다가 주님께 가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평안해졌어요. 자격 없는 제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라는 18절의 간구예요. 원 가정의 고난에서 저를 다시 살리신 주의 측량할 수 없는 공의와 구원을 종일 전하며 살길 원해요. 저의 적용은 ‘아내의 딸인 저의 영적 자녀에게 이 간증을 전하겠습니다. 제 간증이 실린 큐티인을 사무실에 두고 방문하는 분들에게 전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 중에도 찬송하려면 내 의를 내려놓고 100% 옳으신 주의 공의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심한 고난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리시려는 주님의 성실하심임을 믿어야 해요. 내 고난이 해석되면 나의 찬송이 우리의 찬송이 되고, 그 찬송이 다른 영혼을 살리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주의 의만 종일 읊조림으로 늙어 백발이 될 때까지 주의 능력을 후대에 전하며 고난 중에도 찬송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나를 가장 무섭게 대적하는 자가 다름 아닌 내 안의 나인 줄 모르고 조금만 억울해도 내 의를 증명하려 했던 저희입니다. 저희를 살리시려고 심한 고난을 겪게 하셨는데 그것을 저주로 여기며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살 만해지면 주님을 잊고 주의 능력을 전하는 일도 멈추는 완악함도 있습니다. 이제는 어떤 억울한 일 앞에서도 주의 공의만 전하길 원합니다. 땅 깊은 곳 같은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다시 이끌어 올려 주실 주님을 믿습니다. 그 고난이 말씀으로 해석되어 우리를 살리는 찬송이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늙어 백발이 될 때까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다가 주께로 가는 우리의 인생이 되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