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시편 71:1-12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2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3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4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악인의 손 곧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의 장중에서 피하게 하소서
5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6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7 나는 무리에게 이상한 징조 같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8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9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10 내 원수들이 내게 대하여 말하며 내 영혼을 엿보는 자들이 서로 꾀하여
11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은즉 따라 잡으라 건질 자가 없다 하오니
12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
하나님 아버지, 사는 날 동안 주님만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주님이 내 소망이 되려면 첫째, 사람이 아닌 주께로 피해야 합니다.
시편 71편은 표제가 없어 저자가 밝혀져 있지 않아요. 다만 어제 본문인 70편과 긴밀히 이어져서 표제 없이 계속된 다윗의 시로 보기도 하죠. 어제 묵상한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는 표현이 오늘 12절에 그대로 나오고, 9절로 미루어 보아 노년에 지어진 시임을 알 수 있지요.
1절과 2절에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해요. 나를 건지는 것은 나의 의가 아니라 주의 의예요. 여기서 의는 심판이라기보다는 언약 백성을 끝까지 지키고 건지시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말하지요. 내가 매여 있는 죄악의 사슬은 내 생각이나 행위, 내 의로는 풀리지 않아요. 주께서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셔야 주의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 피한다는 것은 현실을 회피하는 게 아니에요. 주님도 십자가를 직시하시고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신 후에 골고다에 오르셨잖아요. 그러므로 주께 피하는 것은 내 사건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부활을 믿으며 내 몫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에요. 이것을 모르니 피한다면서 돈으로, 유력한 사람으로, 자녀와 경력으로 숨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피하면 결국 영원한 수치를 당할 일이 생겨요. 지금이라도 내 모습을 직면하고 신앙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영원한 수치를 당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3절에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라고 해요.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수시로 드나들면 싫어하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천 번을 찾아가서 기도해도 기뻐하세요. 구원받은 뒤에도 피할 일은 끊이지 않지만, 주께서 이미 나를 구원하라고 명령하셨으므로 친히 반석과 요새가 되어 악인의 손, 곧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의 장중에서 나를 보호해 주십니다.
♱ 여러분은 어떠세요?
나의 피난처는 누구이고, 어디입니까?
억울할 때 사람의 귀에 하소연합니까, 주의 귀에 아룁니까?
천 번을 불러 기도해도 기뻐하며 응답해 주실 주님을 믿나요?
주님이 내 소망이 되려면 둘째, 모태에서부터 나를 택하신 주를 의지해야 합니다.
5절과 6절에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라고 합니다. 시인은 노년의 고통 속에서 자기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붙든 바 되었음을 기억합니다. 어머니가 낳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 이 신분을 알아야 여러 악을 물리칠 수 있어요. ‘하라, 하지 말라’ 하는 명령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훨씬 더 힘이 있습니다. 하다못해 우리 부모님이 선생님이라고만 해도 옷깃을 여미게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7절에 ‘나는 무리에게 이상한 징조 같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라고 해요. 시인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이상한 존재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많은 고난을 겪는 시인을 보며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주님은 시인의 견고한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저도 남편이 하루아침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주변에서는 모두 저를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봤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 18장 말씀으로 ‘내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냐’ 하시며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하셨죠. 죽음으로 끝난 사건이 아니라 사명으로 부르신 시간이었죠.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 두면 이것이 이상한 징조로만 보여요. 그러나 우리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그래서 8절에 시인도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하며 주를 찬송하지요. 무리에게 이상한 징조가 되어야 비로소 입술로 찬송하고 행위로 주를 높이게 되는 거예요.
9절에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라고 해요. 세상은 내게 힘과 재물이 있을 때는 몰려들지만 늙고 쇠약해지면 가차 없이 떠납니다. 여기서 쇠약함이란 육체뿐만이 아니라 영적인 쇠약함도 포함해요. 그래서 원수들이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은즉 따라 잡으라 건질 자가 없다’ 하며 서로 꾀하지요. 그렇게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은 사건이 와도 시인은 12절에서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하며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생각해 보면 남이 나를 괴롭히는 고난은 내 속의 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 나를 멀리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니 내 힘이 빠질수록 하나님이 더 선명해지고, 내 육이 무너질수록 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 적용해 보세요.
내 소망의 근거가 내 조건입니까, 모태에서부터 나를 택하신 주님의 은혜입니까?
망한 것 같은데 도리어 주를 찬양하게 된 이상한 징조의 간증은 무엇입니까?
관계가 어려워 실패한 것 같았지만 하나님 말씀으로 해석되어 이제는 그것을 구원의 도구로 삼아 살고 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대인관계가 거의 없이 사신 부모님 밑에서 자란 저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잘 몰랐어요. 혈기가 대단하셨던 아버지는 화가 나면 저에게 질문을 던지시고는 대답과 상관없이 때리셨고, 대답을 망설이면 자신을 무시한다며 때리셨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누군가와의 대화가 두려워 점점 혼자 있는 게 편한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은 그런 저를 과묵하고 다른 곳에서 뒷담화하지 않는 의리 있는 친구로 여겨 자신들의 고민을 제게 털어놓곤 했어요. 하지만 정작 재미있게 놀 때는 저를 찾지 않았죠. 그래서 저는 무리 속에 있어도 늘 외로웠고, 좋을 때는 자기들끼리 어울리고 힘들 때만 찾아오는 친구들이 야속했어요. 마치 제가 실패자라는 생각이 들고, 제 인생이 7절 말씀처럼 이상한 징조같이 여겨졌어요. 그러다 교회에 다니면서 구속사 말씀으로 제 인생이 해석되자 이 모든 것이 모태에서부터 저를 택하신 주의 은혜임을 깨달았어요. 혈기 많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된 두려움으로 인해 어디서나 말을 조심하고 신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건강하게 대인관계 맺는 법을 배우지 못한 저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이것을 구원의 도구로 삼아 복음을 전하고 있어요.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며 말씀으로 해석해 줄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이 제 인생에 베푸신 가장 큰 도우심이에요. 할렐루야. 저의 적용은 ‘다른 사람의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경청하겠습니다.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당황하여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고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시인은 늙고 힘이 쇠하여 원수들이 ‘하나님이 그를 버렸다’라고 조롱하는 자리에서도 사람이나 돈이 아닌 반석이신 주께 피했어요. 그리고 소망의 근거를 자기 조건이 아니라 모태에서부터 자기를 택하신 주의 은혜에 두었지요. 내 의로는 죄의 사슬이 풀리지 않고, 사람의 귀에 들려서는 내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주의 의와 주의 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건을 직시하며 반석이신 주께 피하고, 무리에게 이상한 징조가 되는 그 자리에서 입술과 행위로 주를 찬송함으로 힘이 쇠약해지는 날까지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내 힘과 젊음과 재물을 피난처로 삼고 사람의 그늘에 숨으면서도, 교회에 다니고 기도도 하니 그것을 주께 피하는 줄로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억울할 때는 주의 귀가 아니라 사람의 귀를 찾아다니며 내 의로 풀어 보려 애쓸 때도 많습니다. 주여, 이제는 내 사건을 직시하고 내 몫의 십자가를 지며 반석이고 요새이신 주께로 피하기를 원합니다. 모태에서부터 저희를 택하시고 오늘까지 붙드신 분이 주님이심을 기억하며, 이상한 징조로 보이는 그 자리에서도 입술과 행위로 주를 찬송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남이 주는 고난보다 우리 속의 악이 더 크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럼에도 나를 멀리하지 않고 품어 주시는 주님께로 날마다 피하는 저희가 되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