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시편 70:1-5
1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3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
4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5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려면 첫째, 속히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시편 70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오늘 1절에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고 해요. 다윗은 지금 아주 다급해서 하나님께 속히 도와주시길 간청하지요. 창세 이후로 인류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건지심 없이는 단 1초도 살 수 없는 존재예요. 다른 길고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신뢰하고 의지할 유일한 도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아무리 애써도 우리는 도움을 구해야만 살 수 있는 너무나 연약한 피조물에 불과해요. 이처럼 한계투성이인 인생임에도 우리에게 속히, 속히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에는 유혹과 슬픔, 우울과 타락, 세상 욕심처럼 내 영혼을 노리는 대적이 끊임없이 찾아오지요.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2절과 3절에서 다윗은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해요.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며 해치려 하는 상황에서 다윗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원수를 분석하는 것도,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증명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있어요.
억울한 수모를 내 손으로 갚으려 혈기 부리는 것은 세상의 방식이지요. 심판은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 맡기고, 그들이 스스로 물러갈 때까지 의연하고 겸손하게, 정직하고 온유하게 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성도의 길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합니까? 유력한 사람에게 전화하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가진 돈과 인맥을 계산하죠. 요즘은 AI에게도 많이들 물어본다고 하더라고요. 각자의 방법으로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를 수없이 계산합니다. 원수들이 온몸으로 ‘아하, 아하’ 하며 나를 구체적으로 조롱하고 멸시하면 더욱더 세상 방법을 찾는 게 우리이지 않나요? 하지만 ‘천부여 의지 없어서’ 하며 손 들고 하나님께 속히 나오는 것이 성도입니다. 다윗은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었지만 그 신분도 군사력도 그를 구원하지 못했어요. 사람의 도움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달아야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하며 속히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 여러분은 어떠세요?
지금 무엇 때문에 “속히 도우소서” 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나요?
내게 닥친 문제 앞에서 하나님보다 먼저 찾는 사람이나 세상 방법은 무엇이죠?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려면 둘째, 나의 가난함과 궁핍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3절까지 아주 다급하던 다윗인데 4절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4절에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라고 해요. 다윗은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라고 고백하게 되기를 기도하지요. 하나님이 보이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 해결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목적이 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위대하시다’라는 고백은 우리 스스로 힘써 지어내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의 짧은 믿음과 혀와 지식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기란 너무도 힘든 일이지요. 그래서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 광대하심을 날마다 친히 보여주십니다.
5절에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라고 하지요. 문제 가운데 하나님이 보이면 나의 가난함과 궁핍함도 동시에 보입니다. 저도 시집살이가 너무 힘들어서 가출한 적이 있어요. 친정에 전화를 해도 “고조 밥만 먹여줘도 고마운 줄 알라우.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라우” 하며 전화를 끊으시니, 갈 데가 없어 제가 찾아간 곳이 기도원이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저의 영적 가난함과 궁핍함을 보게 되었으니 이게 복이었던 것이죠. 바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주님만 바라보며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참된 복입니다.
♱ 적용 질문 드립니다.
하나님을 알아가기보다 문제 해결에만 집착하고 있지는 않나요?
내 문제 가운데서 하나님이 보여 발견하게 된 나의 가난함과 궁핍함은 무엇입니까?
영어 공부가 힘들지만 하나님께 맡기며 힘든 시간을 잘 견디기를 기도한다는 한 초등학생의 어린이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영어 공부를 할 때 하나님이 저를 빨리 구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영어가 너무 어렵기도 하고,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좋지 않게 나오면 3절 말씀처럼 저 스스로를 비웃게 되거든요. 힘든 와중에도 주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저도 영어 공부가 너무 힘들어 하나님을 찾으니 큐티를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주님이 저를 도와주시고 구원해 주실 줄 믿어요. 힘든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며 영어 공부 시간을 잘 견딜 수 있기를 기도해요. 저의 적용은 ‘영어 공부가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찾으며 그날 주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게요.’입니다.”
친구의 실수를 보고 비웃은 일을 회개하며 이제는 친구를 비웃지 않고 그 마음을 헤아리겠다는 8살 어린이의 샛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학교에서 친구가 수학을 잘 못하고 말실수도 해서 속으로 비웃은 적이 있어요. 3절에서 다윗은 자신을 비웃는 사람들이 부끄러워 도망가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그런데 저도 실수를 해서 다른 친구에게 부끄러움을 당한 적이 있어요. 그러자 친구를 비웃은 기억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이제는 친구들이 실수해도 비웃지 않고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친구가 되고 싶어요. 저의 적용은 ‘친구들이 실수해도 비웃지 않을게요.’입니다.”
무서운 꿈을 꿀까 봐 겁이 날 때 다윗처럼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여섯 살 어린이의 새싹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가끔 무서운 꿈을 꾸면 엄마에게 가서 안아달라고 해요. 엄마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어주신단다’ 하시며 기도해 주시지요.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져 다시 잠들 수 있어요. 5절 말씀을 보니 다윗도 어려운 일이 생길 때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고 기도했대요. 저는 지금도 밤에 무서운 꿈을 꿀까 봐 겁이 나요. 그래도 하나님을 믿으며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잘게요. 저의 적용은 ‘자기 전에 무서운 꿈을 꾸지 않도록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할게요.’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다윗은 자기 생명을 노리는 대적 앞에서 왕의 권세도 군사력도 계산하지 않고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하며 하나님을 먼저 불렀어요. 그리고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며 자기 바닥을 정직하게 인정했지요. 짧은 믿음과 혀로는 주님을 드러낼 수 없기에, 바랄 것 없어 손 들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친히 그 광대하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세상 방법을 계산하기 전에 속히 주를 부르고, 나의 가난함과 궁핍함을 인정함으로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어려움이 닥치면 주님을 부르기보다 사람과 돈과 인맥을 먼저 계산하고 내 힘으로 어찌해 보려 애쓰다가 기도는 늘 맨 나중이었습니다. 조롱과 수모를 당할 때는 내 손으로 갚으려 혈기를 부리며 심판을 주께 맡기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다윗처럼 ‘속히 나를 도우소서’ 하며 주님을 먼저 부르고,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며 우리의 바닥을 정직하게 인정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광대하심을 날마다 바라보며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고백하게 도와주시옵소서. 바랄 것 없는 자리에서 주님만 바라보는 저희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