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33:20-29
20 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하게 하시는 이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 갓이 암사자 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
21 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 곧 입법자의 분깃으로 준비된 것이로다 그가 백성의 수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
22 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
23 납달리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쪽과 남쪽을 차지할지로다
24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으며 그의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의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25 네 문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가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26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27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28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 구원을 얻은 백성 ♱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가득한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지난 이틀 동안 모세가 죽기 전에 각 지파를 축복하는 장면이 나왔죠. 르우벤과 유다를 시작으로 레위, 베냐민, 요셉, 스불론, 잇사갈 지파를 축복했어요.
구원을 노래하려면 첫째,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20절에 ‘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하게 하시는 이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 갓이 암사자 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라고 해요. 갓 지파는 요단 동쪽의 광대하고 비옥한 땅을 기업으로 받았어요. 민수기와 여호수아에 보면 갓 지파의 기업은 목축에 적합하고 상당히 넓은 지역임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모세는 그런 갓을 가만히 앉아 누리는 지파가 아니라 암사자처럼 원수의 팔과 정수리를 찢는 용맹한 지파로 묘사합니다. 넓은 땅을 주신 것은 편히 쉬라는 게 아니라 그 힘으로 다른 지파를 위해 함께 싸우라고 주신 복임을 말하는 것이에요.
21절에는 ‘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 곧 입법자의 분깃으로 준비된 것이로다 그가 백성의 수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라고 해요. 갓은 약속의 땅을 분깃으로 받을 때 요단 동쪽에서 먼저 기업을 받았지만 거기에만 머물지 않고 형제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때까지 함께 싸우러 나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모습이에요. 내가 받은 것이 많다면 나만 누리면서 편하게 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받은 은혜로 공동체를 섬기는 것이죠. 먼저 믿은 내가 다른 사람의 영혼 구원을 위해 나아갈 때 구원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아직 믿지 않는 가족을 포기할 수는 없지요. 먼저 말씀을 깨달았다고 연약한 사람을 무시할 수도 없어요. 먼저 회복되었다고 아직 상처 가운데 있는 사람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가 클수록 내 옆에 있는 사람의 구원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하는 거예요.
♱ 여러분은 어떠세요?
하나님이 먼저 내게 주신 은혜와 복을 누구와 나누고 있나요?
내가 받은 것을 나의 안전과 편안함만을 위해 사용하고 있지는 않나요?
내가 맡은 자리에서 마땅히 치러야 함에도 피하고 있는 영적 전쟁은 무엇입니까?
구원을 노래하려면 둘째, 각자의 역할로 기쁘게 섬겨야 합니다.
22절에서 ‘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라고 해요. 사자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자의 새끼라고 해요. 아직 어리고 작아 보이지만 장차 용맹하게 일어날 것임을 알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23절에는 ‘납달리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쪽과 남쪽을 차지할지로다’라고 합니다. 이렇듯 각 지파에게 주시는 축복의 모양이 다릅니다. 어떤 지파는 싸우는 힘을 받고 어떤 지파는 넓은 땅을 받고 어떤 지파는 풍성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복의 모양이 아니라 각자 받은 모습대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에요. 남의 땅과 비교해서도 안 되고 내 땅이 싫다고 버려서도 안 됩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과 사명은 다 달라요. 내게 허락하신 가정과 직장, 내 재능과 모습은 곧 하나님이 나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허락하신 기업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신 땅이 구원을 노래하기에 가장 좋고 적합한 땅임을 기억하시길 바라요.
24절과 25절은 아셀에 대한 축복입니다. ‘아셀은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으며 그의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의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라고 해요. 아셀은 형제들에게 기쁨이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축복입니까? 내가 잘되는 것만 복이 아닙니다. 내가 있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것이 곧 복입니다.
26절부터는 각 지파에서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축복으로 시선이 옮겨집니다.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라고 하죠. 여수룬은 얼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백성을 부르는 표현이에요.
27절에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라고 하지요. 이것이 진짜 복이죠. 분배받은 땅과 능력도 물론 복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이 나의 처소가 되어 주시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복입니다. 내게 주신 땅에서 내게 주신 모습으로 구원을 노래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나의 상급이 되어 주시는 인생입니다.
♱ 적용 질문 드립니다.
구원을 노래하기 위해 주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기업은 무엇인가요?
내가 받은 땅이 마음에 드나요, 아니면 옆 지파와 비교하며 부러워하나요?
나의 처소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최고의 상급으로 여기며 살아갑니까?
세상 행복과 물질 우상을 좇으며 아내와 자녀를 힘들게 하던 삶에서 돌이켜 구원을 얻은 백성답게 살아가길 원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가난한 집안에서 교통비 외에는 부모님께 용돈 한 번 받아본 적 없이 자랐기에 물질 욕심을 초월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대기업에 입사하고 결혼하여 세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저만의 세상을 만들고 의를 쌓아갔어요.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며 물질의 복을 받고자 기복적인 마음으로 주일 예배를 빠지지 않았죠. 이렇게 세상 행복 바라는 저의 열심은 자녀들의 학창 시절까지 계속되었어요. ‘다 너희 잘되라고 이러는 거야’라며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리고, 근면성실한 아빠처럼 살면 된다며 내가 옳다만 부르짖었습니다. 아내와 자녀가 제 요구에 순순히 따르지 않으면 따를 때까지 언성을 높이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어요. 그 결과 자녀들은 마음의 문을 닫은 채 교회를 떠나고, 저는 종합검진에서 예기치 못하게 위암 진단을 받았어요. 감사하게도 수술은 잘 되었고 수술 후 눈을 뜨게 되니 하나님께 감사 기도가 절로 나왔어요. 29절 말씀에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백성이 바로 저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지요. 현재 저는 한 기업에서 31년째 근무하고 있어요. 이제는 저의 옳음을 증명하려는 열심을 내려놓고 자녀들에게 내 뜻을 꺾고 공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기를 원해요. 세상 행복과 물질 우상을 좇아 방랑하던 저를 하나님의 처소에 거하게 하시고 공동체와 함께하는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해요. 저의 적용은 ‘자녀들이 예배의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지갑은 열고 입은 닫고 기다리겠습니다. 육의 성전을 관리하고자 퇴근 후 아내와 함께 20분 동안 운동하겠습니다.’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는 모두 같은 모습으로 축복받지 않았어요. 갓은 싸우는 힘을 받았고 단은 사자의 새끼처럼 용맹함을 받았으며 납달리는 은혜와 복이 가득한 삶을 약속받았어요. 또 아셀은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견고한 문빗장이 되리라는 복을 받았지요. 이렇게 지파마다 받은 복은 달라도 마지막 결론은 하나, 곧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결국 복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입니다. 내가 어떤 지파와 같은 인생을 살든, 싸우는 인생이든 섬기는 인생이든 풍성한 인생이든 어려움이 많은 인생이든, 하나님이 나의 처소가 되시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29절 말씀처럼 그것이 곧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의 인생인 줄로 믿습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갓 지파처럼 넉넉한 땅을 허락하심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선봉에 서서 싸우라는 뜻인데 내 안락함만 챙기려 하는 이기심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먼저 은혜받은 자로서 내가 속한 자리에서 형제를 살려내는 거룩한 영적 전쟁의 선봉에 서서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저희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남과 비교하며 내게 주신 본분에 대해 불평하는 일을 그치고 아셀 지파처럼 내가 속한 가정과 공동체에 기쁨이 되는 존재가 되길 원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거처가 되어 주심에 감사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구원을 얻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임을 담대히 증언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그 고백 위에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