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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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32:15-27
15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18 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 19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하게 한 까닭이로다 20 그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세대요 진실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22 그러므로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도다 23 내가 재앙을 그들 위에 쌓으며 내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로다 24 그들이 주리므로 쇠약하며 불 같은 더위와 독한 질병에 삼켜질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 25 밖으로는 칼에, 방 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젊은 남자도 처녀도 백발 노인과 함께 젖 먹는 아이까지 그러하리로다 26 내가 그들을 흩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으나 27 혹시 내가 원수를 자극하여 그들의 원수가 잘못 생각할까 걱정하였으니 원수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수단이 높으며 여호와가 이 모든 것을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함이라
♱ 반석을 버린 여수룬 ♱
하나님 아버지, 어떤 환경에서도 반석이신 주님을 버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반석을 버린 마음은 첫째, 풍요 속에서 은혜를 잊습니다. 15절에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라고 해요. 여수룬은 온전하고 의로운 자, 올바른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시는 애칭이요. 하나님께 사랑받던 이 백성이 막상 배가 부르니 반석이신 하나님을 발로 차버립니다. 광야에서는 만나조차 하나님 없이는 얻을 수 없어서 날마다 하나님을 찾았는데 살찌고 윤택해지니 그 반석을 업신여긴 거예요. 16절, 17절에는 그들이 다른 신으로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키며 알지도 못하던 신들에게 제사했다고 해요. 먹이시고 입혀주셨으면 마땅히 하나님께 제사해야 하는데 제사의 방법만 남기고 그 대상을 하나님이 아닌 우상으로 바꿔버린 것이죠. 우리 삶에도 이렇게 알지 못하던 신들이 있어요. 바빠서 손대지도 못하던 것들을 여유가 생겨 맛보면 기가 막히게 달콤하게 느껴지죠. 형편이 어려울 때는 하나님밖에 없다면서 매달리다가, 살림이 펴지고 여유가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알지 못하던 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술과 도박, 유흥일 수도 있고 시대마다 유행하는 새로운 문화와 풍조일 수도 있어요. 18절에 ‘너를 낳은 반석을 네가 상관하지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네가 잊었도다’라고 해요. 처음에는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다가 나중에는 아예 상관하지 않게 되고 결국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 이것이 배은망덕의 순서입니다. 여러분, 광야 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하루치 만나 외에는 아무것도 쌓아둘 수 없었어요. 그래서 아침마다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니 그곳에 포도주와 기름을 창고에 쌓아둘 수 있게 됩니다. 그러자 더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죠. 바로 이것이 여수룬이 걸어간 길입니다. ♱ 여러분은 어떠세요? 지금 내 삶이 넉넉해지고 편안해질수록 하나님을 덜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형편이 좋아지면서 슬그머니 따르고 있는 ‘알지 못하던 신’은 무엇입니까?
반석을 버린 마음은 둘째,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시게 합니다. 19절에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하게 한 까닭이로다’라고 해요. 내가 하나님을 잊고 있을 때도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20절에 ‘내가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겨’라고 하세요. 얼굴을 숨기신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죄를 지어도 자각이나 죄의식이 없고,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는 상태가 됨을 말해요. 이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심판이에요. 벌을 주시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우리가 망할 때까지 하나님이 침묵하며 기다리시는 거예요. 21절에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라고 해요.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헛된 것을 섬기면, 하나님도 그분의 백성이 아닌 자를 부르셔서 우리에게 질투를 일으키게 하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서 잘되는 것을 보며 시기하고 질투한 적이 있으시죠? 그것은 내 안에서 말씀이 깨달아지지 않는다는 신호이기도 해요. 말씀이 내 속에서 살아 역사하면 남과 비교할 겨를이 없는데 내 속에 말씀이 없으니 자꾸 다른 사람에게 눈이 가고, 그와 비교하면서 마음이 상하는 것이죠. 한 집사님은 남편이 사업에서 실패하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반석이신 하나님보다 남편의 능력을 반석으로 삼고 의지해 왔음을 깨달았다고 해요. 형편이 좋을 때는 교회도 말씀도 뒷전이었는데,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서야 하나님의 얼굴이 자신에게서 숨겨져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 여러분, 내 마음이 메마르고 말씀이 무디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얼굴이 가려진 신호임을 아시길 바라요. ♱ 적용 질문이에요. 요즘 마음이 무뎌져 말씀이 잘 안 깨달아지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비교 의식으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괴로워하진 않나요?
아이가 이단에 빠진 것이 공부의 신에게 제사한 자기 삶의 결론임을 인정하며 구원의 약속을 믿고 회개하며 가겠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아들은 고3이 되는 겨울방학에 시청에서 개설한 멘토링 강의를 듣겠다고 했어요. 명문대 학생들이 학업과 진로를 상담해 주는 유익한 프로그램이었어요.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강의를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하는 아들이 기특했죠. 저는 아들이 명문대에 가는 꿈을 꾸며, 21절 말씀처럼 허무한 것으로 아들에게 부담을 주었어요. 그러자 몇 달 후 하나님이 제게서 얼굴을 숨겨 저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이셨습니다. 알고 보니 그 강의는 사회봉사로 위장한 이단의 포교 활동이었던 거예요. 아들은 이단의 멘토들과 공부 및 운동을 함께하며 그들의 교리에 빠졌어요. 방황하는 아들을 보니 밖으로는 칼에, 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고 삶의 터까지 불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죠. 이후 청소년부 사역자님과 선생님의 심방으로 아들의 속마음을 알게 되었어요. 아들은 저의 무심함과 남편의 이기적인 분노로 늘 외로웠고, 이제 부모도 친구도 못 믿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하교 후에는 방에 틀어박혀 가족과의 소통을 단절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아들의 마음을 살피지 않고 17절 말씀처럼 공부의 신에게 제사하며 아이를 이단으로 내몬 죄가 보여 회개했습니다. 수개월이 지나 아들은 가족과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지만, 성년이 된 지금도 교회에 나오지 않아요. 세상 욕심에 학벌 우상으로 아들에게 부담을 주며 허무한 것으로 채우려 한 저를, 하나님이 아들의 눈으로 지켜보고 계신 거예요. 구원의 약속을 믿고 아들이 주님 품으로 돌아올 때까지 저의 죄를 회개하며 가겠습니다. 저의 적용은 ‘공동체 사랑의 빚진 자임을 잊지 않고 제게 맡기신 교회 소그룹을 기쁘게 섬기겠습니다. 아들이 예배를 회복하고 신교제와 신결혼을 하도록 기도하겠습니다.’입니다.”
22절부터 25절까지는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지 계속 이어집니다. 분노의 불이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고, 재앙이 쌓이며, 질병과 짐승과 칼이 젊은이와 노인과 젖먹이에게까지 예외 없이 덮친다고 해요. 이 백성이 지은 죄의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낱낱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26절, 27절에서는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요. ‘내가 그들을 흩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에 대한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으나 혹시 내가 원수를 자극하여 그들의 원수가 잘못 생각할까 걱정하였으니 원수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수단이 높으며 여호와가 이 모든 것을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함이라’고 해요. 하나님은 이 백성을 완전히 멸하실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이죠?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로 쓰인 대적들이 자기 능력을 자랑하며 우리 힘으로 이겼다고 착각할까 봐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받을까 봐 심판에서 손을 거두신 거예요. 자식이 아무리 속을 썩여도 부모가 그 이름을 부르며 끝까지 참는 것처럼, 하나님도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는 중에도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으십니다. 대적이 우리 앞에서 잘난 척하며 ‘너희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라고 조롱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걸고 우리를 붙드십니다. 심판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덕분에 오늘 우리가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끝까지 우리 편 되어주심을 잊지 않길 바라요. 우리의 반석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다시 돌이켜 그분의 긍휼을 얻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형편이 좋아지니 알지 못하던 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가증한 죄악으로 주님의 질투와 진노를 일으켰습니다. 배부르고 윤택할 때 오히려 주님을 잊고 업신여기는 저희의 완악함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얼굴이 숨겨진 줄도 모른 채 무감각하고 무딘 마음으로 지내온 삶에서 돌이켜 날마다 주님의 말씀 앞에 저를 비추어 보길 원합니다. 심판받아 마땅한 우리이지만, 그럼에도 주님의 이름을 걸고 끝까지 붙들어주시는 긍휼을 사모합니다. 넉넉할 때도 부족할 때도 한결같이 반석이신 주님만 의지하며 따라가는 저희 인생이 되도록 늘 함께하며 붙들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