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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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31:19-29
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0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21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 22 그러므로 모세가 그 날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더라 23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24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25 모세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6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7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28 너희 지파 모든 장로와 관리들을 내 앞에 모으라 내가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려주고 그들에게 하늘과 땅을 증거로 삼으리라 29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길을 떠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하게 하므로 너희가 후일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 증거가 되게 하라 ♱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증거로 삼아 붙들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증거가 되게 하려면 첫째, 말씀을 노래로 삼아 오늘 가르쳐야 합니다.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둔 모세에게 하나님은 뜻밖의 명령을 내리세요. 19절에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고 하세요. 율법책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십니다. 왜일까요? 사람은 설교나 훈계는 잘 잊어버려도 노래는 입에 배어 밤낮으로 흥얼거리잖아요. 어린 시절 교회 학교에서 부르던 찬송, 어머니가 흥얼거리시던 가락은 평생 기억에 남지요. 20절에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라고 해요. 광야의 결핍이 아니라 가나안의 풍요가 배교의 이유가 될 것이라고 하세요. 이스라엘이 굶주릴 때는 하나님을 찾다가 배부르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신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아신 거예요. 형통이 오히려 신앙의 위기가 될 수 있기에 말씀을 노래로 삼아 입술에 두게 하십니다. 말씀이 머리에만 머물지 않고 입술에 붙어 저절로 흘러나오게 하신 것이죠. 환난 당할 때도 정신을 차리는 유일한 길은 바로 익숙한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다가 망하며 무너지고 나서야 불현듯 과거에 들은 말씀, 입으로 되뇌던 구절이 떠오를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22절에서는 ‘그러므로 모세가 그 날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더라’고 해요. '그 날'이 중요합니다. 모세는 미루지 않았어요. 나중에 가르치면 늦습니다. 오늘 자녀에게 말씀을 심어주는 일, 내 마음판에 말씀을 새기는 일은 미루면 안 됩니다. 신앙은 바로 '오늘' 심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노래를 가르치자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도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세요. 그동안 여호수아는 모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해 들었어요.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직접 명하십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누군가를 통해 조금씩 말씀이 들리다가 어느 순간 하나님이 친히 내 마음에 말씀하시고 사명을 주시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거예요. ♱ 여러분은 어떠세요? 내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고 오히려 말씀에서 멀어지고 있지는 않나요? 오늘 내가 해야 할 적용을 내일로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증거가 되게 하려면 둘째, 말씀을 곁에 두고 언제든 붙들어야 합니다.
24절에 보니 모세는 노래만 지은 것이 아니라 율법의 말씀을 모두 책에 기록했다고 해요. 성경은 조각조각 모아놓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완전한 책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레위 사람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책을 하나님의 언약궤 곁에 두어 증거가 되게 하라고 합니다. 모세는 광야 생활 40년간 수없이 불평하던 백성의 습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어요. 27절에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라고 하잖아요. 모세는 지금도 백성이 거역하는데 자신이 죽은 후에는 얼마나 더하겠냐는 거예요. 인간에게 본질상 하나님을 거역하려는 본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죠.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죄를 물처럼 마시며 범죄할 것을 안 거예요. 그러니 언약궤 옆에 둔 말씀은 훗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할 때 변명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되는 동시에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표지판이기도 한 거예요. 이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말씀에 맡깁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을 마무리하며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러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고 말했죠. 모세도 바울도 비록 자신은 백성과 함께하지 못하지만 말씀이 그들을 붙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러니 오늘 내가 큐티하는 것이 곧 말씀에 붙들려 가는 최고의 길입니다. ♱ 적용 질문입니다. 말씀을 내 삶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두고 있습니까? 큐티를 내 마음 내킬 때만 하나요, 아니면 습관을 따라 날마다 하고 있나요?
말 못할 마음의 병을 교회 수련회에서 나누고 평안을 경험한 뒤 다른 사람들을 살리길 소망하게 되었다는 한 고등학생의 청소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모태신앙인으로 자랐지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없이 부모님을 따라 의무적으로 교회에 다녔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 동아리 친구들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어요. 그때부터 시작된 대인기피와 불안 증세로 저는 점점 소극적으로 바뀌었어요. 누군가가 뒤에 서 있기만 해도 공포를 느낄 정도로 마음의 병이 깊어졌죠. 그러나 이 고통을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했어요. 부모님에게 짐이 되기도 싫고 제 본모습을 보이면 다른 사람들이 저를 싫어할까 봐 두려웠거든요. 혼자 우울해하며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다면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실까?’라고 원망했어요. 코로나19 팬데믹에 고립된 생활이 차라리 편하다고 느껴질 만큼 사람과의 만남은 버거웠고, 중학교 때 다시 찾아온 관계의 갈등은 저를 극단적 선택의 문턱까지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다가 참석한 교회 청소년부 연합 수련회에서 저는 처음으로 제 오랜 아픔을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에 털어놓았어요. 놀랍게도 제 상처를 고백하는 순간 저를 짓누르던 우울감이 사라지고 말할 수 없는 평안이 찾아왔지요. 제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으시고 상황을 해결하셨음을 확신할 수 있었어요. 그 후 확신 가운데 입교를 하고, 19절 말씀처럼 제가 겪은 고난이 단순히 아픔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이들을 살리는 증거가 되길 기도하고 있어요. 저를 어둠에서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제는 제 삶이 누군가에게 희망의 노래가 되기를 소원해요. 저의 적용은 ‘매일 큐티하며 말씀이신 하나님을 찾겠습니다. 힘들 때 교회 소그룹 지체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겠습니다.’입니다.”
28절과 29절에서 모세는 장로와 관리들을 불러 모아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떠나면 재앙이 임할 것을 경고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불순종으로 받는 심판 중에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해요. 우리의 패역함이 마지막이 아니라 그 패역함 가운데서도 새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리라는 믿음이죠. 우리도 그래요. 날마다 말씀을 듣고 가지만 또 어느샌가 죄악의 자리에 거하곤 하잖아요.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이 내 적나라한 실상을 드러내고, 그 드러난 죄 앞에서 용서를 구하며 다시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백성의 완악함으로 인한 심판을 예언하는 말씀 뒤에도 하나님은 친히 구원의 길, 회복의 길을 예비해 두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나의 연약함과 완악함을 다 알고 계세요. 그래서 노래를 주시고 말씀을 내 곁에 두게 하십니다. 내가 오늘 붙드는 한 구절의 말씀이 환난의 순간에 나를 살리는 증거가 되게 하실 줄 믿으시길 바라요. 이 생명의 말씀을 날마다 내 입술과 마음의 노래로 품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형통하여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주님을 잊어버리는 저희의 연약함과 본성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이를 아시고서 말씀을 증거로 삼는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영적으로 근신하며 오늘 붙잡아야 할 말씀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행하는 저희가 되길 원합니다. 완전하신 주님의 말씀을 언제나 곁에 두어 붙들고 담대히 적용함으로 육신의 본성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특별히 다음 세대에게도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이 노래로 심기어 흘러가도록 인도해 주셔서, 그들 또한 말씀 곁에서 자라며 증인 된 인생을 살아가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