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30:11–20
11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17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18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 생명을 택하라 ♱
하나님 아버지, 가까이 계신 주님의 말씀을 청종함으로 생명을 택하는 은혜를 누리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생명을 택하는 길은 첫째, 말씀이 내게 가깝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시작됩니다.
11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고 말해요. 우리는 흔히 말씀이 어려워서 특별한 사람만 잘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학을 많이 공부한 목사님 또는 남다른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죠. 평범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란 요원하게만 느껴져요.
그러나 하나님은 12절과 13절에서 누가 우리를 위해 하늘에 올라가거나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올 필요가 없다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14절에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고 해요. 말씀은 이미 우리 입과 마음에 와 있습니다. 말씀이 나에게서 먼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을 정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말씀 순종이 어려운 것은 지식이나 환경 때문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말씀을 듣지도 행하지도 않아요. 남편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되자 그제야 아내가 사랑한다는 고백을 남편에게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진작 말했으면 좋았을 그 말이 심히 가깝고 이미 입에 있었음에도 수십 년의 세월이 걸린 거예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기만 하면 얼마든지 행할 수 있는데, 그 마음이 없어서 말씀을 붙잡지 못한 채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가 붙잡아야 할 것은 새로운 지식이 아닌 내 삶 속에 이미 와 있는 말씀인 거예요. 내가 말씀 앞에서 마음을 열 때 그 말씀이 내 마음과 삶을 읽어 내려가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어떠세요?
내 입술과 마음에 있지만 붙잡지 못하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말씀이 어렵고 멀게만 느껴져 붙잡을 생각조차 아예 내려놓지는 않았나요?
생명을 택하는 길은 둘째, 생사화복 사이에서 올바른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라고 해요. 우리는 봐야 할 것은 보지 않고 볼 필요 없는 것을 보는 데 익숙하죠. 눈앞에 놓인 생명과 사망의 길을 정직하게 응시하지 않는 거예요.
16절은 생명의 길에 대해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이라고 설명해요. 이것이 생존과 번성의 길입니다. 이 길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얻을 수 있어요.
반면에 17절과 18절은 사망의 길에 대해 경고하지요.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은 모호하지 않고 너무도 분명합니다.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가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는 생명의 근원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이에요.
혹시 내가 말씀에 불순종하고도 세상에서 뭔가 잘 풀려서 말씀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착각이에요. 그건 오히려 영적으로 망하는 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믿음의 공동체에 꼭 붙어 가던 학생들이 막상 입시에 성공하고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턱턱 붙으면 공동체를 떠나 버리는 경우를 보곤 하죠. 광야 길에서는 하루하루 큐티하면서 말씀을 붙잡고 살아왔는데, 정작 요단강을 건너가 얻게 된 땅에서 그날이 길지 못하게 된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러니 불순종의 길에 있다면 차라리 육적으로 안 돼서 망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 있어요.
이렇듯 우리 삶에는 날마다 순종과 불순종의 길, 생명과 사망의 길이 놓여 있어요. 내 선택은 언제나 이 둘 중 하나로 향할 수밖에 없죠. 중립은 없습니다. 선교지에서 죽는 순종만 거룩한 것이 아니에요.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공동체에서 말씀대로 적용하는 사소한 순종 하나가 바로 생명을 택하는 길입니다.
♱ 적용 질문입니다.
가정과 직장, 공동체에서 지금 내 마음은 어느 길을 선택하며 걷고 있습니까? 생명의 길인가요? 사망의 길인가요?
인생의 풍파로 고달픈 가운데 사망과 화를 자초한 죄를 회개하고 사주팔자보다 복된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겠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세상만사 팔자소관이라 믿고 살던 저는 첫째 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도 액운을 쫓는다며 굿까지 했어요. 그 후 아들이 태어나면서 이 일이 잊힐 때쯤, 저와 달리 예수님을 잘 믿던 전처가 막내딸을 출산하다가 소천했어요. 저는 생사와 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외면한 채 스스로 저주받은 인생이라 여기며 남겨진 두 자녀와 함께 살아갈 소망마저 잃었어요. 그 무렵 직장 선배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재혼하며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나 편하고자 이기적으로 선택한 재혼 생활은 자녀 문제로, 아내와 시댁 간의 갈등으로 다툼이 계속되었어요. 이런 상황을 회피하고자 술과 음란에 빠져 불륜을 저지르고, 죄가 드러났음에도 오히려 아내를 모함하여 이혼했어요. 하나님은 전처와 지금의 아내를 통해 끊임없이 전도의 문을 여셨지만, 저는 17절 말씀처럼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들으며 구속사를 깨달은 아내는 내연녀와 함께 식당을 차린 저를 위해 계속 기도하며 기다려 주었어요. 저는 식당이 쫄딱 망하고서야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재결합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만 교회에 가 보자'라는 아내의 부탁으로 성전을 찾은 뒤 지금까지 공동체에 속해 가고 있어요. 늘 제 곁에 말씀을 두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몰라 사망과 화를 자초한 저의 죄를 회개합니다. 19절 말씀을 기억하며 이제는 생명과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작은 것이라도 적용하며 살길 기도해요. 저의 적용은 ‘정년 후 임금피크제로 줄어든 월급에 불평하지 않고 성실히 근무하겠습니다. 가정이 중수되도록 수고한 아내에게 미안해요, 고마워요라고 말하겠습니다.’입니다.”
19절에서 모세는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며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라고 선언해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구원을 위한 선택을 하라는 거예요.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청종하며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큐티를 하는 이유도 생명을 택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나의 선택이 지금 당장은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하지만 구원을 위한 그 선택은 하나님이 반드시 책임져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는 지금 이 자리, 오늘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말씀은 결코 멀리 있지 않아요. 이미 우리 입과 마음에 와 있습니다. 그 말씀을 따르고 청종하는 일에는 대가와 희생이 따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이야말로 우리의 생명이자 장수임을 기억하시길 바라요. 우리가 순종할 때 주님이 믿음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그 유업을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도 허락하여 누리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눈앞의 유익을 좇아 곁길로 가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순종함으로 생명의 길을 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주의 말씀이 결코 멀지 않고 우리의 입과 마음에 이미 가까이 와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유익에 미혹되어 말씀을 붙잡기보다 다른 신을 좇으며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저희입니다. 이제 손해 보는 것 같은 순간에도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며 생명을 택하는 결단을 하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굳게 붙들며 생명과 복의 길을 택하게 하시고, 사망과 화로 이끄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가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말씀을 청종하고 의지함으로 생명의 길로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작은 것부터 순종함으로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