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28:27-37
27 여호와께서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피부병으로 너를 치시리니 네가 치유 받지 못할 것이며
28 여호와께서 또 너를 미치는 것과 눈 머는 것과 정신병으로 치시리니
29 맹인이 어두운 데에서 더듬는 것과 같이 네가 백주에도 더듬고 네 길이 형통하지 못하여 항상 압제와 노략을 당할 뿐이리니 너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며
30 네가 여자와 약혼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그 여자와 같이 동침할 것이요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에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 네가 그 열매를 따지 못할 것이며
31 네 소를 네 목전에서 잡았으나 네가 먹지 못할 것이며 네 나귀를 네 목전에서 빼앗겨도 도로 찾지 못할 것이며 네 양을 원수에게 빼앗길 것이나 너를 도와 줄 자가 없을 것이며
32 네 자녀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종일 생각하고 찾음으로 눈이 피곤하여지나 네 손에 힘이 없을 것이며
33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
34 이러므로 네 눈에 보이는 일로 말미암아 네가 미치리라
35 여호와께서 네 무릎과 다리를 쳐서 고치지 못할 심한 종기를 생기게 하여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이르게 하시리라
36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 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
37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떠나 내 힘으로 살려 한 교만을 회개하고 구원할 분은 오직 십자가의 주님뿐임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주의 구원을 경험하려면 첫째,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오늘 27절에 하나님이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피부병으로’ 치시는데 ‘네가 치유 받지 못할 것이며’라고 하세요. 질병 자체도 고통스럽지만 더 두려운 것은 치료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8절에는 육체의 질병을 넘어 ‘미치는 것과 눈 머는 것과 정신병으로 치’신다고 해요. 여기서 눈이 멀었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인 시력뿐만 아니라 사물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무엇이 옳은 길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영적 어두움까지 말해요.
그래서 29절에 ‘맹인이 어두운 데에서 더듬는 것과 같이 네가 백주에도 더듬고’라고 하지요. 대낮에 길이 환하게 보이는 시간인데도 더듬는다고 합니다. 빛이 없어서가 아니라 결국은 내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분명히 내게 주어졌음에도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하며 내 판단대로 갑니다. 가족이 권면하고 교회 공동체가 말해주어도 듣지를 않습니다. 그러면서 일이 꼬이면 사람 탓 환경 탓하기 바쁘죠. 영적 맹인이 되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사건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몰라요. 늘 압제와 노략을 당하는 것 같은 인생이 됩니다. 그런데도 ‘너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며’라고 해요. 돈도 사람도 학벌도 내 경험도 결국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에 구원할 자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백주에도 더듬고 있다면 더 열심히 뛰는 것이 답이 아닙니다. ‘주님 제가 보지 못했습니다’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말씀이 들리고 주께서 내 눈을 열어주시며 걸어갈 길을 보여주시는 경험을 하게 되지요.
♱ 적용해 보세요.
나는 말씀이 분명히 보여주는 길을 두고도 ‘내가 알아서 하겠다’라며 더듬고 있지는 않나요?
잔소리로 여기며 흘려듣는 가족과 공동체의 권면은 무엇입니까?
주의 구원을 경험하려면 둘째, 내 소유가 나를 지켜주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30절부터는 더 구체적인 상실이 이어져요. 약혼했는데 다른 사람이 그 여자를 차지하고, 집을 지었는데 거기에 살지 못하고, 포도원을 심었는데 그 열매를 먹지 못한다고 합니다. 31절에는 소와 나귀와 양을 눈앞에서 빼앗길 것이라고 해요.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너를 도와줄 자가 없을 것이며’라는 말씀이에요. 가진 것을 잃는 것도 힘든데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까지 갑니다. 32절에는 자녀까지 다른 민족에게 빼앗긴다고 하지요. ‘종일 생각하고 찾으므로 눈이 피곤하여지나 네 손에 힘이 없을 것이며’라고 합니다. 자녀는 우리가 가장 믿고 사랑하는 대상이지만 잘 키워놓았다고 자녀가 다 내 뜻대로 살지는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붙들고 있었다면 자녀가 부모의 손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 되겠습니까? 33절에는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라고 합니다. 평생 애써 모은 것을 내가 누리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누립니다.
이러므로 34절에 보니 결국 ‘네 눈에 보이는 일로 말미암아 네가 미치리라’고 하지요. 보이는 것에 소망을 두었기에 보이는 것이 무너지면 나도 함께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을 잃을까봐 불안하고 자녀를 잃을까봐 불안하고 자리를 잃을까봐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그 말인즉 결국 그것들을 내 구원자 삼았다는 의미일 수 있어요.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던 것이 무너지면 결국 나도 같이 무너지는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것을 빼앗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거예요. 소유가 없어져도 하나님이 계시면 살 수 있지만 모든 것을 가져도 하나님이 없으면 결국 미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어떠세요?
내가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녀입니까, 돈이나 집입니까, 자리입니까?
그것이 내게 하나님보다 더 큰 구원자가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주의 구원을 경험하려면 셋째, 수치의 사건을 회개의 기회로 받아야 합니다.
35절에 보니 하나님이 무릎과 다리를 치셔서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고치지 못할 종기가 생기게 하신다고 해요. 서고 걷는 것조차 힘든 상태라는 것이죠. 36절에는 네가 세운 왕을 알지 못하는 나라로 끌어가신다고 합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해서 왕으로 세운 것과 함께 끌려간다는 것이에요. 우리는 하나님 말고도 끊임없이 자기 왕을 세우려 하지요. 성공을 배우자를 자녀를 돈과 권력을 왕으로 세우고서 생명까지 걸고 따라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것 때문에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리로 끌려갈 수 있어요. 내 힘으로 세운 왕은 결국 나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낯선 나라에 끌려가서는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라고 해요. 처음에는 내가 선택해서 세상 것을 의지했지만, 나중에는 그것의 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정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평생 사람 눈치를 보고, 돈이 좋아서 따라갔는데 돈의 노예가 되고, 가족을 너무 사랑해서 붙들었는데 가족의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입니다.
37절에 보니 ‘결국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고 해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받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럽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 수치는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미리 주심은 우리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거예요. 주님 외에는 세상 어디에도 나를 구원할 자가 없음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람에게조차 웃음거리가 된 그 자리에서 ‘주님밖에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곧 회복의 시작인 것입니다.
♱ 적용 질문입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여 왕으로 세웠는데 오히려 나를 끌고 가고 있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내 수치와 비방의 사건을 돌이키라는 구원의 부르심으로 받습니까?
엄마 말씀을 흘려듣고 고집부리며 할 일을 미룬 자기 모습이 어두운 데서 더듬는 맹인과 같음을 깨닫고 회개했다는 한 중학생의 청소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얼마 전 청소년부에서 간증할 기회를 얻었어요. 평소 큐티나 설교에 그리 열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말씀을 묵상하며 제 모습을 돌아볼 좋은 기회라고 여기며 잘해보자고 마음먹었지요. 하지만 마감 기한에 맞춰 간증을 쓰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많은 사람 앞에 선다는 생각에 떨려서 자꾸만 미루게 되었죠. 어머니는 주말에 간증을 완성하라고 하셨지만 저는 알아서 하겠다며 듣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학교와 학원 숙제도 미리 하라고 늘 말씀하시는데 저는 잔소리로 여기며 짜증을 냈어요. 대답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니 마감이 닥치면 급하게 해치워 결과물도 엉성하고 짜증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29절에 보니 하나님 말씀을 떠난 자는 맹인이 어두운 데에서 더듬는 것처럼 환한 대낮에도 길을 찾지 못한다고 경고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하며 어머니의 말씀을 흘려듣고 제 고집을 앞세우는 모습이 분명히 보이는 길을 두고 헤매는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는 꼭 마감 기한에 맞춰 제가 해야 할 일들을 마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제 고집을 내려놓고 말씀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한 걸음씩 걷기 원해요. 저의 적용은 ‘집필 안내 문자가 오면 2주 안에 간증문을 쓰겠습니다. 엄마가 하시는 말씀에 바로 순종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에는 ‘너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는 무서운 선언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사랑의 경고입니다. 세상에는 나를 구원할 자가 없지만,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은 끝까지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 주님만 붙들고 말씀을 따라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말씀을 떠나 내 힘과 판단만 믿고 살다가 백주에도 더듬는 영적 맹인이 바로 저희입니다. 돈과 자녀와 자리와 사람의 인정을 붙들면 안전할 줄 알았는데 세상 어디에도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잃어버릴까봐 두려워서 붙들고 있는 우상을 이제는 깨뜨리길 원합니다. 내 소유나 자녀보다 내 체면보다 주님 한 분을 더 크게 보기 원합니다. 수치와 비방의 사건이 찾아올 때 내가 세운 왕과 우상을 보게 하시는 구원의 사건으로 받아들이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오직 십자가의 주님만 붙들고 말씀의 길을 걸어가는 저희가 되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