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28:15-26
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16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17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18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20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
21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22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
23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25 여호와께서 네 적군 앞에서 너를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 길로 나가서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땅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고
26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의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줄 자가 없을 것이며
♱ 명령을 지켜 행하지 않으면 ♱
하나님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우리의 죄를 보고 회개하며 십자가를 온전히 붙들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첫째, 나의 불순종이 고난의 원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제 1절에서 14절까지는 복에 관한 말씀이었는데 오늘 15절부터는 저주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복에 관한 말씀이 14절인 반면 저주에 관한 말씀은 68절까지 무려 54절이나 됩니다. 저주가 복보다 4배나 길고 그 내용도 훨씬 실제적이며 강도도 높지요. 왜 그럴까요? 100% 죄인인 우리는 본성이 악하여 가만두면 불순종의 길로 갈 확률이 크기 때문이에요.
15절에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라고 해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는 죄를 가리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지요. 명령을 지킴에 있어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죄이기에 1% 불순종이나 100% 불순종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아요. 그러니 우리는 늘 회개할 것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어 16절부터 19절까지 보면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저주를 받고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몸의 소생과 토지의 소산이 저주를 받는다고 해요. 어제 복이 임하던 바로 그 자리, 그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에 오늘은 저주가 임하는 것이죠.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복과 저주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어디에 있든 말씀에 순종하면 복이 되고 순종하지 않으면 그 자리가 그대로 저주가 됩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저주 같은 자리에 있다면 그 원인은 부모도 자식도 돈도 아니라 나의 불순종 때문이에요. 오늘 하나님이 명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모르니 규례를 지켜 행할 수가 없고 그래서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천국과 지옥 사이 그 담장 위를 걷는 것과 같아요.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막막한 고난이 올 때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는 고집과 불순종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것이지요.
♱ 적용 질문입니다.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고난 앞에서 여전히 환경과 사람을 탓하며 핑계 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곧 내가 돌이켜 순종해야 할 주님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둘째, 오직 생명의 십자가만을 붙들어야 합니다.
20절에 ‘네가 악을 행하여 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라고 해요. 하나님을 잊는 것 자체가 곧 악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살만해지면 주의 은혜를 까맣게 잊고 스스로 왕이 되려 하지요. 괴로움을 잊으려고 손으로 밤낮 수고해도 그렇게 애쓰는 중에 하나님을 잊고 있다면 그것이 곧 저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자를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라고 하세요. 무섭게 들리지만 하나님을 잊은 자에게는 빨리 망하는 것이 오히려 축복일 수 있어요. 견책을 내리신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사랑하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21절과 22절에는 얻어 차지할 땅에서도 염병과 온갖 재앙으로 그것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을 경고합니다. 공부도 일도 하나님의 목적 없이 내 욕심으로만 달려가면 무언가 이루어도 정작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재앙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교만하여 말씀을 떠나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진짜 두려운 것이지요.
23절에는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라고 해요. 비를 내려야 할 하늘이 놋이 되어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곡식을 내야 할 땅이 철이 되어 아무것도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던 그 모든 공급은 사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인데 우리는 그 통로가 끊기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을 때가 많아요.
25절에는 대적 앞에서 한 길로 나갔다가 일곱 길로 도망하며 흩어진다고 해요. 어제는 하나님이 나의 대적을 일곱 길로 흩으셨는데 불순종하니 이제는 내가 일곱 길로 도망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마귀의 속성이 바로 이렇게 흩어버리는 것이지요. 이 끔찍한 수치는 결코 우연이 아니에요. 돈과 세상 인맥을 피난처 삼고 하나님을 등진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피가 마르는 듯한 결핍과 수치 속에서도 세상 인맥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십자가 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어떠세요?
놋과 철처럼 꽉 막힌 문제 앞에서 나는 세상 인맥과 방법을 먼저 찾습니까, 아니면 십자가 은혜를 구합니까?
내가 붙들고 놓지 못해 하나님을 잊게 하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스스로에게 저주가 되었지만 함께 울고 웃어주는 공동체 덕분에 하나님께로 돌이켜 회복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교회 청년부에서 만난 남편과 결혼한 뒤 남편의 해외 연수로 미국에 가게 되었어요. 마음속에 걱정과 불안이 있었지만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죠. 그리고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했어요. 1시간 거리의 교회를 오가며 예배도 꼬박 참석했기에 제 삶은 잘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다 첫째가 뇌전증 진단을 받았어요. 아이가 언제 또 갑작스러운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평안이 사라지고, 피곤함과 생색이 쌓여 부부 간의 다툼도 잦아졌죠. 이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집값 상승과 남편의 당뇨 진단까지 겹쳐 내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는 말씀이 현실이 된 것 같아 불안했어요. 그제야 저는 거룩이 아닌 행복을 좇아 산 것이 곧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잊은 삶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예배의 자리에는 있었지만 제 삶의 기준은 하나님이 아닌 제 생각이었어요. 모든 것이 잘될 때 감사했으나, 그 흐름이 깨지자 감당할 힘이 없었어요. 그때 교회 공동체는 일곱 길로 도망해 흩어질 뻔한 저를 일으켜 함께 울고 웃어주었고 그 덕분에 저는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었답니다. 문제는 여전하지만 말씀 앞에 다시 서서 교회 공동체에 물으며 위로와 힘을 얻고 있어요. 하나님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기보다 제 생각과 세상 방법으로 불안을 다스리려 한 죄를 회개해요. 그럼에도 저주로 멸하지 않으시고 회복의 자리로 돌이키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의 적용은 ‘불안한 사건 앞에서 내 생각이 아닌 말씀을 기준으로 교회 공동체에 묻고 나누겠습니다. 남편과 자녀들이 힘들어할 때 내 열심으로 무언가를 해 주려 하기보다 기도부터 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삶에 다가오는 끔찍한 고난과 재앙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 고난은 교만한 내 자아를 부수고 말씀으로 돌이키게 하시려는 주님의 애절한 부르심입니다.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인간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수고를 이제는 그치시길 바라요. 사방이 가로막힌 듯한 녹과 철의 훈련장 속에서 세상의 썩은 동아줄을 끊어내고 오직 예수님의 피 묻은 십자가만을 굳게 붙잡으시길 바라요. 그리하여 내가 처한 절망의 자리에서 애통함으로 회개함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시는 주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덧입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살만할 때는 주의 은혜를 잊고 스스로 왕이 되어 주님을 잊고 사는 것이 악인 줄도 몰랐습니다. 내게 임한 결핍과 수치를 남 탓으로 돌리며 세상 인맥과 내 방법을 피난처로 삼아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놋과 철 같은 막힌 자리가 저를 멸하려는 저주가 아니라 거룩한 성민으로 세우시려는 사랑의 견책임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피가 마르는 듯한 결핍과 수치 가운데 흩어져 도망하고픈 마음을 다잡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만 붙들길 원합니다. 함께 울고 웃어주는 공동체 안에서 참된 회복을 누리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절망의 자리가 회복의 자리로 저주의 자리가 축복의 자리로 변화되는 은혜를 누리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