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27:11-26
11 모세가 그 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2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14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7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8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0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1 짐승과 교합하는 모든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2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3 장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4 그의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5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6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 아멘 할지니라 ♱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이 구원을 위해 주시는 것임을 알고 아멘으로 화답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아멘으로 화답하려면 첫째, 서라고 하신 곳에 순종으로 서야 합니다.
어제 모세는 요단을 건너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서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라고 했지요. 그리고 오늘 11절에 ‘모세가 그 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라고 해요. ‘그 날’이라는 말이 참 중요해요.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어도 정작 지켜야 할 시점은 오늘이거든요. 아직 요단을 건너기도 전인데 건넌 후에 할 일을 미리 가르쳐주는 거예요. 평소에 들은 말씀이 없으면 막상 그 상황에서 순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2절과 13절에 보니 열두 지파를 둘로 나누어 축복을 상징하는 그리심 산과 저주를 상징하는 에발 산에 마주보고 서라고 해요. 시몬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그리심 산에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에발 산에 서라는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이들은 모두 믿음의 열두 지파잖아요. 믿음의 지파라고 저주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아닌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이라 해도 불순종하면 저주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미리 세워서 보여주시는 것이죠. 이것이 누가 더 낫고 못하고의 문제는 아니에요. 사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일 뿐입니다. 그러니 축복을 선포하는 자리든 저주를 선포하는 자리든 다 하나님이 쓰시는 자리인 거예요. 그리고 이 두 산은 마주보고 선 가까운 산이에요. 그런데 그 작은 차이에서 시작한 순종과 불순종이 처음에는 미약해 보여도 나중에는 축복과 저주라는 엄청난 간격으로 벌어집니다. 그러니 정확한 산에, 말씀의 산에 서서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14절에서 모세는 레위 사람에게 모든 백성을 향해 큰 소리로 저주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명해요. 그런데 순종하는 자에 대한 언급은 딱히 없는데 저주받을 죄에 대한 언급이 길게 나옵니다. 내일부터 보게 될 28장에서도 순종할 때 받는 축복에 관한 말씀보다 불순종할 때 받는 저주에 관한 말씀이 훨씬 더 장황히 기록되어 있어요. 성경 자체도 그래요. 에녹이나 고넬료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기록이 짧은데 사기꾼 야곱이나 여자 문제로 집안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은 다윗의 이야기는 길게 기록되어 있잖아요. 우리가 얼마나 철저히 무너진 죄인인지 깨우쳐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있는 것이죠. 죄인으로 태어난 우리에게 장차 올 심판을 미리 선포하시는 것은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붙들게 하는 복음인 것입니다.
♱ 적용해 보세요.
나는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서 말씀의 산인 그리심 산에 서 있나요, 내 욕심의 산인 에발 산에 서 있나요?
내 죄를 지적하는 말씀이 들릴 때 변명합니까, 아니면 나를 향한 사랑으로 받습니까?
아멘으로 화답하려면 둘째, 내 죄를 말씀 앞에 직면해야 합니다.
15절 이하를 보면 은밀하고 치졸한 죄의 목록이 나와요. 먼저 우상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죄예요. 남들 눈에 드러나지 않게 우상을 세우는 것이지요. 이어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죄예요. 특히 가난하고 못 배운 부모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지요. 다른 사람은 사랑하면서 정작 내 부모는 무시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죄입니다. 이는 단순히 남의 소유를 침범하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남의 은사를 시기하고 질투해서 그 사람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도 경계표를 옮기는 일입니다. 또한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죄라고 해요. 부모가 자녀에게 교회의 리더가 지체에게 길을 잘못 일러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죄도 기록되지요. 힘없는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게 세상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주님은 그것이 죄라고 하세요. 20절부터는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성적 타락의 죄가 기록됩니다. 눈여겨볼 것은 하나같이 약자를 향한 죄라는 거예요. 그들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여기는 인간의 악함을 하나님은 이토록 구체적으로 짚어내십니다. 그리고 이웃을 몰래 죽이는 죄, 뇌물을 받고 무지한 자를 죽이는 죄까지 이어지지요.
그런데 이 모든 저주를 들은 백성에게 아멘으로 화답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저주받을 죄임을 인정하라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감출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니 내 죄가 드러나는 것이 도리어 살길이요 회개할 기회예요. 창세기에는 시아버지와 동침한 다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다말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갔어요. 죄가 아무리 주홍빛같이 붉어도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니 26절에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하실 때 철저히 내 죄를 직면하며 아멘으로 화답해야 해요. 그때 비로소 은밀한 죄의 사슬이 끊어지고 에발 산을 떠나 그리심 산에 서는 회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어떠세요?
내 마음 깊은 곳에 남몰래 세워 둔 우상은 무엇입니까?
남의 은사를 시기하여 그 사람의 경계표를 옮기고 있진 않나요?
내 죄가 드러나는 사건을 수치로 여기며 도망칩니까, 아니면 회개의 기회로 삼으며 ‘아멘’으로 받습니까?
에발 산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그리심 산의 축복으로 인도하신 주께 감사하며 부모님의 구원을 위해 섬기겠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제가 10살 때쯤 아버지는 친구에게 빚보증 사기를 당하셨어요.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어머니는 성경책을 장롱 깊숙이 숨긴 채 이혼하겠다며 외갓집으로 가셨다가 한 달 만에 지하방으로 돌아오셨죠. 이후 부모님은 빚을 성실히 갚아 나가셨지만 독촉장은 25년 동안 따라다녔고 인생의 허무함에 지친 어머니는 영적으로 방황하다가 천주교인이 되셨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에 친구의 권유로 교회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어요. 이후 말씀을 들으며 일 때문에 자녀를 세밀히 챙기지 못하신 어머니를 경홀히 여긴 죄, 신혼여행에서 허락하신 생명을 낙태한 죄, 남편을 우상 삼아 내 필요를 채우려고 한 죄를 깨닫고 회개했죠. 그런데 한 번은 지인의 아들을 도우면 그 아들이 약속한 대로 교회에 나올 것이라 믿고 신용 카드를 빌려주었는데 그 아이는 빚만 남기고 잠적했어요. 이 일로 저는 ‘난 절대 사기당하지 않을 거야’ 했던 자기 확신이 무너지고 아버지를 무능하다고 무시하던 교만을 보게 되었어요. 또 인본적인 삶을 갈망하고 숭배하다가 에발 산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저를 돌이켜 그리심 산의 축복을 받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어머니와 종교 때문에 갈등하는 게 싫어 전화를 피하고 어머니를 섬기는 것도 귀찮아서 바쁜 척하며 잘 찾아뵙지 않아요. 이렇게 사랑도 애통함도 없는 저를 주님은 간증 필자로 부르셔서 ‘아멘 할지니라’고 하세요. 이제는 판단과 정죄를 내려놓고 구원을 위해 애통한 마음으로 부모님께 다가가길 기도합니다. 저의 적용은 ‘친정 식구들이 구원받도록 아침마다 기도하겠습니다. 부모님께 먼저 안부 전화를 드리고 어머니께 전화가 오면 잘 받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오늘 내가 어느 산에 서느냐 그 작은 차이가 결국 축복과 저주를 가릅니다. 내 안에 은밀한 죄를 덮어두지 않고 말씀의 빛 앞에 낱낱이 드러내시는 것이 도리어 주님의 사랑이에요. 그러니 아픈 말씀이 들릴 때 변명하거나 환경을 탓하지 말고 주홍빛 같은 죄도 보혈로 덮으시는 주님 의지하며 ‘아멘 내가 바로 그 죄인입니다’하며 정직히 인정하시길 바라요. 심판의 말씀에도 아멘으로 화답하며 에발 산을 떠나 그리심 산의 축복에 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평생 교회에 다니면서도 여전히 내 욕심의 산 위에 서서 세상의 우상을 은밀히 품고 부모를 무시하며 약자를 짓밟는 저희입니다. 남의 은사를 시기하여 경계표를 옮기고 정작 마음속 음란과 쾌락은 감춘 채 겉으로만 거룩한 척하는 위선도 있습니다. 오늘의 작은 불순종이 결국 저주로 이어짐을 기억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저희가 되길 원합니다. 아무리 수치스러운 죄일지라도 공동체 앞에서 드러내며 회개할 때 에발 산의 저주를 끊고 축복의 그리심 산으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다말의 부끄러운 이름조차 예수님의 족보에 올리신 그 보혈을 의지하여 내 죄를 찌르는 심판의 말씀에 변명하지 않고 ‘아멘 내가 그 죄인입니다’ 화답하며 서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의 백성이라 해도 불순종하면 저주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미리 세워서 보여주시는 것이죠. 이것이 누가 더 낫고 못하고의 문제는 아니에요. 사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일 뿐입니다. 그러니 축복을 선포하는 자리든 저주를 선포하는 자리든 다 하나님이 쓰시는 자리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