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24:10-22
10 네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줄 때에 너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전당물을 취하지 말고
11 너는 밖에 서 있고 네게 꾸는 자가 전당물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12 그가 가난한 자이면 너는 그의 전당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13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
14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15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16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18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종 되었던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첫째, 약자의 자존심과 생명을 배려합니다.
돈의 영향력은 엄청나죠. 멀리서 보면 각각 골드가 비슷하게 보이잖아요. 그래서 돈을 하나님 위치에 올려놓기도 합니다. 돈은 한 사람의 인격까지도 죽이는 힘이 있어요. 돈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비굴해지는지 몰라요. 그래서 빌려주는 사람도 빌리는 사람도 신중해야 하고 공동체 안에서 돈거래는 금해야 합니다. 이 돈 때문에 모든 관계가 깨어지고 공동체가 와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이처럼 돈에는 강력한 힘이 있고 하나님은 그 돈을 빌려주는 사람의 권한을 제한하십니다.
10절과 11절에 ‘네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줄 때에 너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전당물을 취하지 말고 너는 밖에 서 있고 네게 꾸는 자가 전당물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라고 해요. 하나님은 이웃에게 돈이나 곡식을 빌려주며 전당물을 잡을 때 채권자라고 해서 마음대로 가난한 이웃의 집안으로 쑥 들어가 전당물을 빼앗아 오지 말라고 하세요. 집에 들어가는 순간 가난한 지체의 부끄러움과 수치,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죠. 비록 빚을 진 채무자라 할지라도 그의 최소한의 자존심과 인격을 지켜주라는 하나님의 깊은 배려입니다.
그런데 이게 꼭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에서만 적용될까요? 돈 문제는 가족 간에도 예외가 없지요. 돈으로 왕 노릇하려 하고 돈으로 수치심을 주는 일이 가족 간에도 비일비재하잖아요. 하나님은 이런 일을 엄격히 금하십니다. 그렇다고 담보를 잡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꾸는 사람이 먼저 담보를 내놓는 것이 서로를 위한 배려예요. 담보도 없이 큰돈을 빌려주었다가 도리어 여러 가정이 함께 무너지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눈앞에서 야박하다는 소리 듣기 싫어 그냥 빌려주는 것이 결국은 두고두고 모두를 깨뜨리는 거예요. 그러니 꾸어주는 것도 안 꾸어주는 것도 때를 따라 하는 것이 인격적인 것입니다.
이어 12절과 13절에는 ‘그가 가난한 자이면 너는 그의 전당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해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하지요. 당시 고대 근동에서 겉옷은 낮에는 옷이지만 밤에는 추위를 막는 이불 역할을 했어요. 그러니 가난한 자의 겉옷을 밤새 전당물로 안고 자지 말고 반드시 돌려주라는 거예요.
14절과 15절에도 곤란하고 가난한 품꾼의 삯을 미루지 말고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고 합니다. 그 품꾼은 그 하루 품삯에 생계와 목숨이 걸려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내가 가난하던 시절, 내가 애굽에 종살이하던 시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풍성히 먹이신 그 은혜를 기억해야 해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 되어 소망이 없을 때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의 달리사 내가 받아야 할 모든 수치와 저주를 대신 감당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 여러분은 어떠세요?
조금 유력하다고 해서 가난하고 연약한 지체의 자존심과 인격을 짓밟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겉옷을 빼앗아 밤새 들고 있지는 않나요?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둘째, 밭모퉁이를 남겨 둡니다.
17절과 18절에 ‘너는 객이나 고아의 성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해요. 그리고 22절에서도 다시 한번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순간 당장 내 몫을 챙기느라 눈이 뒤집히는 작은 잔인함을 보이기 쉬운 까닭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죄에서 건짐 받았는지를 늘 눈앞에 두고 기억해야 해요. 그럴 때 주님이 나의 주인 되어 주셔서 내 삶을 책임지고 이끌어가십니다.
계속해서 19절부터 21절까지는 아주 구체적인 삶의 지침을 주십니다. 밭에서 곡식을 벨 때 한 뭇을 잊어버리고 왔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살피지 말며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라고 하세요. 그리고 그것을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두라고 하십니다. 이는 가난하고 외로운 자들이 자존심 상하지 않고 구걸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양식을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하라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어떤 뭔가요? ‘내가 땀 흘려 수고해서 번 내 돈인데 왜 남을 줘? 내 밭에 떨어진 곡식 하나라도 남김없이 싹싹 긁어모아서 내 곳간에 쌓아야지.’ 하는 지독한 욕심과 이기심으로 살아가지는 않나요? 바닥까지 싹싹 긁어모아 내 곳간을 채우려는 삶은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는 자의 모습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고 기억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밭모퉁이”를 남겨두어 약자들에게 흘려보내는 구체적인 적용을 할 때 그것이 나를 살리고 내 가정을 살리는 부활의 비밀이 됩니다.
♱ 적용 질문입니다.
종 되었던 나를 구원해 주신 주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내 몫을 싹싹 긁어모으느라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지는 않습니까?
내가 오늘 기꺼이 남겨두어야 할 시간과 물질의 “밭모퉁이”는 무엇인가요?
도피하듯 시작한 결혼 생활 가운데 가정폭력을 겪고 말씀 공동체로 인도되어 성경적 가정생활을 배우며 이타적인 삶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부모님께 종노릇하는 삶에 지쳐 도피하듯이 결혼했어요. 저희 부부는 ‘Give and Take’의 가치관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지요. 남편은 자기혐오와 술에 사로잡혀 자신의 결핍을 제게서 찾으려 하고 저는 자기애와 인정 중독으로 제 결핍을 남편에게서 보상받으려고 했어요. 그렇게 저희 부부는 서로의 한계와 연약함을 보듬기보다 10절 말씀의 악덕 전당포 주인처럼 서로의 감정, 체력, 재물을 전당물로 여기며 취하려고만 했어요. 그러니 저희 가정은 영적인 객과 과부와 고아의 집합체였습니다.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결혼 생활에서 남편은 집 없이 돌아다니는 객이었고 저는 남편이 없는 것과 다름없는 과부였어요. 또한 자녀들은 있으나 마나 한 부모 밑에서 고아와 같이 자랐죠. 하나님은 남편의 희생과 배려를 전당물로 취하려는 저를 돌이키시려고 제게 가정폭력의 사건을 허락하셨어요. 이 일로 저는 말씀 공동체로 인도되어 비슷한 고난을 겪은 지체들의 나눔을 들으며 남은 것이 있음을 보게 되었죠. 세상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믿음의 공동체에 속하여 속량함을 받고 성경적인 가정생활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울 수 있었답니다.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자녀들은 전당물을 맡겨야만 생존할 수 있다 믿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모른 채 행복과 성공만 따르는 괴물이 되었을 거예요. 말씀을 묵상하며 자기 죄를 고백하는 공동체에서 이타적인 삶의 의미와 기쁨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저의 적용은 ‘매주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저의 자기애와 인정 중독을 나누겠습니다. 자기연민으로 알코올 의존증에 사로잡힌 남편을 미워하지 않고 밥을 잘 차려주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남의 집 문턱을 함부로 넘지 않고 밭모퉁이를 기꺼이 남겨둡니다. 종 되었던 나를 속량하신 그 은혜를 날마다 기억함으로 약자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내 것을 흘려보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저희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조금 유력해졌다고 가난한 이웃의 집 문턱을 함부로 넘고 돈으로 왕 노릇하며 가족에게조차 수치심을 주곤 합니다. 남의 겉옷을 안고 자면서도 그것이 그 사람의 생명인 줄 몰랐습니다. 하루 품삯에 목숨이 걸린 이의 절박함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내가 땀 흘려 번 것이라며 바닥까지 싹싹 긁어모아 곳간을 채우기 바쁘고 정작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둘 밭 모퉁이는 생각도 안 한 욕심 많은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내가 어떤 죄에서 건짐 받았는지 늘 나의 죄패를 기억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약자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남겨둔 것으로 한 사람을 살리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주님, 서로를 전당물로 여기며 살아가는 부부와 가정들을 찾아가 주시고 주인 없이 신음하는 이 나라의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도 찾아가 주셔서 주님이 친히 주인 되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다 같이 살아나는 저희가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