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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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 올리는 탄원서) 오늘 신명기 23:1~14 본문을 묵상하다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 14절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어제 말씀에도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난 늘 하나님을 부르짖으면서도 난 늘 외로웠다. 어제는 목장예배중 우리 부부의 나눔이 어떻게 하다보니 길어지고 집중되었다. 나눔을 아내가 하는 중에 아내의 직장에서 힘든 오픈을 위로하고 서로 좋은 처방을 사랑으로 해주셨다. 그런데 그 방향이 나에게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내가 나였다면 포기하고 나갔을 것이다." "남편이 가장의 자리 경제적인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면 불안이 없고 신뢰와 의지가 되어 직장에서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편안해질 것이다." 등 그런 나눔이었다. 난 순간 어 이게 아닌데??? 내가 옥살이 하고 그런 오픈이 마치 내가 가장으로서 역할과 아내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고 가장의 역할이 실종되어 아내가 직장에서 힘든 것이 아닌데...아내 조차도 "처음에는 표현도 잘하고 그래서 좋았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나의 받아들이는 정도는 50%정도이다. 그리고 늘 말씀을 가지고 말하니 난 그 수준이 아닌데 현실적인 말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아내가 초신자 목자이기에 말씀으로 사건을 해석하는 훈련이 필요해서 사랑하기에 홀로서기 신앙과 영적 성장을 위해 그렇게 한것인데 ㅠ 그런 아쉬운 마음으로 목장을 하고, 그리고 오늘 아침 묵상하기전 이런 마음이 나에게 올라오며 큐티일기를 쓰게 되었다. 제목 "나는 어디에 있나요?" 그냥 공동체에 소리치며 탄원하고 싶었다. 누구하나 내가 억울하게 옥살이 한 것에 대하여 "정말 억울하겠다. 그 놈 정말 나쁜 놈이다." 나의 억울함을 현실적으로 위로 하거나 그렇게 공감해준 사람은 없었다. 난 중학교시절 고아원에 있을 때 학교에서 우편수집책이 없어진 사건이 있었다. 그때 담임선생은 무조건 고아원출신인 날 바로 도둑놈으로 지정하고 날 때리기 시작했다. 난 억울해 죽을 것 같아 도망 나왔다. 이후 도둑이 내가 아닌 다른아이임이 드러났다. 난 그게 더 슬프고 큰 상처가 되었다. 그리고 난 고아원에서 형에게 성추행성폭행을 당했다. 중학교사춘기시절 이렇게 억울한 일을 겪었지만 그 누구도 날 위로해주지도 공감해주지도 않았다. 그냥 난 그렇게 살아야만 했다. 내 자식 내 형제가 이런 일을 겪었다면 가만 있겠는가? 난 평생을 엄마 사랑, 아빠 사랑 그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했고 받아 본적이 없다. 사랑을 받는 방법도 모르고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러니 늘 난 내가 사랑받고 관심 받기 위해 그들을 사랑하고 잘 해주고 그랬다. 그러니 늘 난 외로웠고 내 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파도 억울해도 말하지 않았다. 성폭행사건도 난 순간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으로 살았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생존 방법이었기에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이 늦은 나이에 난 내가 잘해준 사람에게 당해 억울한 재판으로 징역형으로 옥살이를 했다. 그런데 문자적으로 옥살이를 했다고 오픈하니 그 누구도 현실적인 위로는 하지 않는다. "내죄보라"는 말과 "아내와 가족이 힘들었다."는 것과 함께 전과자라는 말뿐이었다. 내죄보는것 그것은 맞다. 그것은 나의 몫이다. 나와 하나님과 관계 그리고 믿음의 문제이다. 그러나 나도 사랑받고 싶고 위로 받고 싶다. 너무 아프다. 너무 힘들다. 목자님이 내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데 가슴이 터질듯이 고맙고 위로를 받는다. 그의 눈물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아내는 내가 옥살이를 하고 나온 후 첫마디"날 이용한 것 같다.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나?" 이런 식의 불만으로 차가운 마음을 받았다. 난 어제 목장 후 내가 말한 말씀으로 위로하고 해석해주는 말이 아무 의미가 없고, 내가 작은것 남들이 놓치는 세밀한 나의 배려와 사랑이 돈이라는 것보다 약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며 그래 역시 돈이 그리고 미래에 대한 안정이 최고의 사랑이고 돈이 최고의 위로라는 생각에 잠시 슬펐다. 사실 내가 그랬다. 돈으로 가족과 아내를 행복하게 해줘야지... 그런데 주변을 보자. 돈은 풍성하게 주는데 사랑을 받지 못해 외롭게 울부짖는 아내들,,,,,가족들 얼마나 많은지? 물론 내가 돈이 최고라고 하며 허황된 것으로 살아 상대방에게 결과적으로 힘들게 한 것에 대한 내 죄를 보지 않는게 아니다. 그것은 이미 오픈했다. 그러나 난 나도 사랑 받고 싶고 위로 받고 싶다는 것이다. 이제는 나도 억울한 일을 삼키고 내 죄이니까 하면 말씀으로 해석하며 나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 억울함에 빠져 분노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존재하는가? 나는 어디에 있나? 결국 "나는 없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나 이다. 그럼에도 난 늘 나 혼자이다. 그런 날 아시기에 지금의 목장에 목자님을 나에게 붙여 주셨다. 목자님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 어쩌면 다 부질없는 것들인데 이것이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의 진영에서 더럽히는 나의 변같은 아우성인지 모른다. 지금 나도 "정말 억울한 일때문에 힘드시겠어요?" "여보 당신 참 억울한 일로 힘들지? 고생했어" 라는 말을 듣고 싶고 그런 공감을 받고 싶다. 난 평생을 받아보지 못했다. 목자님의 눈물로 난 받았음을 감격하고 있는 나이기 때문이다. 난 사랑에 대하여 포기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신가보다.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 받는 그런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께 오라는 것 같다. 이제 미움도 사치이고, 받는 것도 사치이며, 나는 그저 "나를 떠나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만 있을 뿐이다." 주여, 하오나 나에게도 세상에서 나를 위로하고 "정말 고생했다. 수고 했다. 잘 살아줘서 고맙다."라는 어머니의 음성을 듣고 싶은데 어떻게 해요? 나도 받고 싶어요. 세상 사는 동안에 날 공감해주고 날 위해 희생하는 그런 엄마는 없는 건가요? 그런 것을 바라는 난 믿음 없는 연약한 존재인가요? 하나님 저도 세상에서 위로 받고 세상에서 홀로 방에서 눈물 이제 그만 흘리면 살게 해주세요. "나 아파요 너무 억울해 힘들어요 나 좀 안아주세요" 목자님의 눈물 기도가 처음 받아보는 사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