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21:22-22:12
21: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22:1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2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또는 네가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려 줄지니
3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형제가 잃어버린 어떤 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 본 체하지 말 것이며
4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
5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
6 길을 가다가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의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보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7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되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8 네가 새 집을 지을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
9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
10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11 양 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12 너희는 너희가 입는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
♱ 거룩을 위한 명령 ♱
하나님 아버지, 거룩을 위한 명령을 알기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거룩을 위한 명령은 첫째, 시체를 밤새 두지 않는 것입니다.
22절에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어서 23절에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라고 합니다. 죄에 대한 심판은 분명합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그분의 거룩함을 나타내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죽을 죄 범한 사람을 심판하시는 중에도 하나님은 그 사람의 시체조차 함부로 다루지 않도록 명령하신다는 거예요.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해도 죽은 사람을 밤새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마음속에서 계속 매달아 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 사람은 틀렸어. 저 사람은 안 돼. 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해’ 하며 그 사람을 내 마음속 형틀에 계속 매달아 놓고 정죄할 때가 있잖아요.
고된 시집살이를 한 저도 처음에는 그랬지요. 겉으로는 네네네 하며 대답했지만 마음으로는 판단하고 미워하며 정죄했어요. 나무 위에 달아놓고선 곱씹고 또 곱씹으며 판단했습니다. 그러니 홀로 지옥을 살 수밖에 없었죠.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렇게 매달아 놓은 죄인을 당일에 장사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속에 매달아 놓은 수많은 죄인을 그날의 말씀으로 묻어야 합니다. 2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고 하지요. 내가 매달아 놓은 것을 매장하지 않으면 내가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용서는 나를 위해 주신 거룩을 위한 명령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할 수가 없어요. 마땅히 죽을 죄를 범한 그 사람을 용서하기가 어디 쉽나요? 당장 나와 관련이 없어도 유명한 범죄자의 출소 소식에 ‘왜 나왔냐? 벌써 내보내면 어쩌냐?’ 하며 이를 가는 게 우리잖아요. 정말 사랑을 할 수도 만들 수도 없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아직 매달린 수많은 사람을 장사 지내게 하시고자 한 사람을 보내십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라고 하지요. 예수님이 친히 나무 십자가에 달리셔서 내가 받아야 할 저주는 물론 내가 용서하지 못해 매달고 있는 그 사람이 받아야 할 저주까지 대신 담당하신 것이죠.
♱ 여러분은 어떠세요?
아직도 마음속에서 장사 지내지 않고 나무에 매달아 정죄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그 사람이 받아야 할 저주까지 예수님이 이미 지셨음을 믿습니까?
거룩을 위한 명령은 둘째, 못 본 체하지 않는 것입니다.
22장 1절에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라고 해요. 3절에서도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라 하지요. 4절에서는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막말로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소나 양을 발견하면 굳이 돈 들이고 시간 들여가며 보살필 이유가 없잖아요. 아예 못 본 체하든지 몰래 잡아먹어 버리든지 하면 그만 아닙니까? 그런데 그러지 말고 일단은 내 집으로 데려가 정성껏 돌보라는 거예요.
그러니 보세요. 남의 가축도 이렇게 돌보라는데 하물며 길 잃은 내 형제와 이웃에게 우리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지요. 더 수고하고 더 정성을 기울여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길 잃은 내 형제와 이웃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려면 이렇게 구체적인 수고와 헌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내 곁의 지체가 소를 잃든 길을 잃든 매사에 못 본 체 하진 않습니까? 나 하나 사는 것도 너무 바쁘고 내 코가 석 자인데 이웃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냐며 무관심하지요. 이런 우리를 향해 4절에서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걸 것들을 일으킬지니’라고 합니다. 이 명령은 형제를 위한 명령이 아니에요. 바로 나를 위한 명령입니다. 내가 그를 일으키는 것 같은데, 그로 말미암아 내가 일어납니다. 내가 돌려주는 것 같은데, 그로 말미암아 내가 돌려받게 됩니다. 왜죠? 이 명령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거룩을 위한 명령이기 때문이에요. 남의 자식을 돌보면 내 자식은 하나님이 돌보는 와주십니다. 구원을 위해 내 시간을 쓰면 하나님이 내 시간을 지켜주십니다. 이것이 죽음을 깨뜨리고 살아나는 부활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 있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 적용 질문 드립니다.
지금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내 곁의 지체는 누구입니까?
그를 보고도 못 본 체하고 있진 않나요?
정말 저 사람만큼은 돕고 싶지 않다 하는 그는 누구인가요?
상사의 갑작스러운 장례를 치르며 하나님 없는 세상 성공이 얼마나 공허한지 깨닫고 이제는 말씀으로 마음에 술을 달기를 다짐한다는 한 청년의 청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지난 겨울 건강하셨던 회장님이 갑자기 폐에 물이 차 병원에 입원하신 뒤 두 달 만에 돌아가셨어요. 평소 너무나 건강하셨기에 준비 없이 맞이한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은 제게 큰 충격이었죠.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비서로 가까이에서 모시며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기에 갑작스러운 빈자리가 잘 실감이 되지 않았어요. 회장님이 입원하신 동안 가족보다 병원에 더 오래 상주했기에 장례를 치르고 상속을 준비하는 동안 옳고 그름의 판단으로 생색이 무섭게 올라오고 돌아가신 분을 향한 연민만 남았지요.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못 본 체하지 말고’라는 말씀이 세 번 나와요. 또 돌봐주고 돌려주라고도 하세요. 몸은 고되고 마음은 생색이 났어도 입원하신 동안 매일 곁을 지켰기에 회장님을 붙잡고 영접 기도를 받으시도록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이 떠올라요. 세상 성공에 늘 목이 말라 있고 돈을 사모하는 저의 허술한 마음에 이번 사건을 통해 믿음 없는 세상 성공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8절처럼 믿음에 튼튼한 난간을 만들어주신 것 같아요. 그럼에도 상속 과정의 불만과 이해타산만을 이야기하는 그들이 부럽고 한편으로는 정죄돼요. 그러나 성공을 위해 입맛에 맞춰 섬기는 자가 되지 않고 믿는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 앞에 매일 큐티 말씀으로 12절처럼 ‘제 마음에 술을 달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구원을 위해 섬기는 구별된 자가 되기를 기도해요. 저의 적용은 ‘출근하면 오늘도 모든 순간 지혜주시길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겠습니다. 정죄와 판단이 올라올 때 심호흡하고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겠습니다.’입니다.”
5절에서는 여자가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고 남자가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와 정체성을 함부로 뒤섞지 말라는 것이죠. 동성애는 생명을 낳을 수 없는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죄악입니다.
6절에서는 어미와 새끼를 비유하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가르쳐주시죠.
9절부터 12절에는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고 소와 나귀를 함께 겨리하지 말며 양털과 베 실을 섞어 짠 옷을 입지 말라는 여러 규례가 나옵니다. 그리고 옷 네 귀에 술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는 반복해서 구별이라는 원리가 나타납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과 똑같이 살지는 말라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백성으로 구별해 부르시고 거룩을 명하십니다. 거룩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그저 오늘 내게 주신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는 것이에요. 우리에게 네 귀에 단 옷 술과 같은 표식, 즉 말씀을 붙들고 살아감으로 날마다 더욱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릴게요.
주님, 아직도 땅에 묻지 못하고 매달아 놓은 채 정죄하는 미움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너 때문이야"를 외치는 저희입니다. 나무 위에 달리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나 때문이야"로 변화되길 원합니다. 못 본 체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힘든 그 한 사람을 찾아가길 원합니다. 구원을 위해 물질과 시간을 흘려보낼 때 주님이 우리의 가정과 자녀도 책임져주실 줄 믿습니다. 주여,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길 원합니다.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는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생명을 해하는 모든 악법이 폐하여지고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왕 노릇하는 우리 가정과 직장과 나라가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