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21:10-21
10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손에 넘기시므로 네가 그들을 사로잡은 후에
11 네가 만일 그 포로 중의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12 그를 네 집으로 데려갈 것이요 그는 그 머리를 밀고 손톱을 베고
13 또 포로의 의복을 벗고 네 집에 살며 그 부모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한 후에 네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의 남편이 되고 그는 네 아내가 될 것이요
14 그 후에 네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마음대로 가게 하고 결코 돈을 받고 팔지 말지라 네가 그를 욕보였은즉 종으로 여기지 말지니라
15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16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 듣고 두려워하리라 ♱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의 죄와 허물을 정직히 드러냄으로써 온 가정과 공동체가 듣고 두려워하는 은혜가 임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듣고 두려워하는 공동체는 첫째, 연약한 자를 물건처럼 여기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남자가 포로 중에서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마음에 끌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1절에 ‘네가 만일 그 포로 중의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이라고 해요. 이스라엘의 승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지만 백성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이끌려 포로로 잡혀 온 여인 중 하나를 아내로 삼고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상황 자체를 막지는 않으시되 절차를 알려주십니다. 이는 이스라엘 남자가 이방 여인을 자기 정욕의 도구나 소유물 취급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신 것입니다. 그 절차를 보면 여자를 집으로 데려가 머리를 밀고 손톱을 베고 포로의 옷을 벗기고 부모를 위해 한 달 동안 애곡하도록 하지요. 이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포로로 끌려온 여인의 비참함과 정서적, 육체적 상처를 헤아리고 그녀의 슬픔에 동참하라는 배려입니다.
이 본문의 배경을 안다면 이 규례가 얼마나 파격적인지 알게 되지요. 고대 근동에서 패전국의 여자들은 승전국 군사들의 성적 노리개나 약탈 대상일 뿐이었어요. 아무 절차도 없이 짓밟히고 버려지는 게 당연시되었죠. 하지만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연약한 자들을 돌보시는 분이기에 그렇게 하는 것을 막으십니다. 아무리 힘없는 전쟁 포로라 할지라도 그의 존엄성을 지켜주라는 것이죠. 14절에 ‘그 후에 네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마음대로 가게 하고 결코 돈을 받고 팔지 말지라 네가 그를 욕보였은즉 종으로 여기지 말지니라’고 해요. 만일 여인을 보내려 할 때는 그녀의 소원대로 즉시 놓아주되 결코 거래의 대상으로 삼거나 상품 취급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나의 이기적 욕망과 순간적 감정을 채우려고 누군가를 이용하거나 대상을 수단으로 전락시키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내 주위에 있는 연약한 지체들을 내 감정이나 욕망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예요.
♱ 적용 질문 드릴게요.
누군가가 실망스럽다는 이유로, 혹은 내가 더 나은 조건에 있다는 이유로 그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나요?
내 주위의 연약한 지체들을 긍휼의 마음으로 대합니까?
듣고 두려워하는 공동체는 둘째, 자기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질서를 따릅니다.
15절부터는 두 아내를 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랑받는 아내와 미움받는 아내가 있는데, 미움받는 아내의 아들이 장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마음은 자꾸 사랑받는 아내의 아들에게 기울어요. 이에 대해 17절에서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고 합니다. 자기 감정으로 하나님의 법과 질서를 뒤집지 말라는 명령이지요.
이 본문을 보면 딱 떠오르는 가정이 있죠. 바로 야곱의 가정이에요.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고 레아를 미워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미움받는 레아를 통해 유다를 주셨고 그 유다의 계보에서 메시아가 나셨습니다. 미움받았기에 오히려 공평했던 거예요. 포로된 여인은 자유를 얻었고 미움받는 아내의 아들은 장자의 몫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사랑받는 아내는 무엇을 받았을까요? 사랑받는 것 그 이상의 상급은 없다는 거예요. 지금 내 형편이 어떠하든 내 신랑 되신 예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누리는 사람에게는 그 이상의 상급이 필요하지 않아요.
여러분, 우리의 가정은 내 안에 있는 편애와 애증, 미움이 훈련되고 성숙해지는 자리입니다. 이삭이 에서를, 야곱이 라헬을 편애했듯이 우리 가정에도 은근한 편애가 있지는 않습니까? 야곱이 라헬과 라헬의 자녀를 편애하므로 빚어진 자녀들의 갈등이 정말 끔찍할 지경에 이르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편애는 자녀 하나를 무너뜨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 가정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거예요. 내 감정과 조건에 따라 사람을 찾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지체를 공평하고 존귀하게 대할 때 우리 가정과 공동체 안의 성숙과 회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 여러분은 어떠세요?
내 감정과 기호에 따라 자녀나 지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는 않나요?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말씀으로 가정과 공동체를 세우고 있습니까?
외도한 아빠를 향한 분노로 반항심이 올라오지만 아빠도 구원의 대상임을 깨닫고 이제는 아빠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한 청소년의 청소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제가 3살 때 아빠는 직장에서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서 자주 못 만나게 되었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아빠가 집에 잘 오지 않으셨어요. 그러다 6학년 때 아빠와 축구장에 갔다가 우연히 아빠의 핸드폰에서 모르는 여자 이름 뒤에 하트 표시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화가 나서 아빠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냥 회사 동료라고 하셨죠. 이후 분노와 속상함으로 반항심이 올라왔는데 제가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풀 방법은 축구뿐이었어요. 친구들 집에 부모님 두 분이 다 계시는 것이 부러웠고 혼자 계신 엄마를 보면 우울했어요. 마음은 엄마에게 잘하고 싶었지만 행동은 폭언과 분노로만 표출되었죠. 집이 답답해 밖으로만 나가 돌며 노는 친구들과 어울렸어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학교생활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놀고 싶고 아빠를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올라요. 하지만 말씀을 들으면 아빠도 구원의 대상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말씀과 기도가 부족한 저 때문에 아빠가 계속 변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요. 이제는 아빠를 원망하기보다 부모님 덕분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에 감사하며 제 속에 완악하고 패역하며 순종하지 않는 모습을 회개하길 원해요. 아빠가 여전히 밉지만 하나님이 아빠의 건강을 지켜주시길 기도드려요. 아빠가 가정으로 공동체로 돌아오시는 날까지 아빠를 위해 기도할게요. 저의 적용은 ‘약한 엄마를 배려하며 따뜻하게 안아 드리겠습니다. 학생으로서 해야 할 공부를 먼저 하고 놀겠습니다.’입니다.”
18절부터는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 이야기가 나오지요.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징계해도 듣지 않는 아들이에요. 20절에 보니 그럴때 부모는 그 아들을 성문으로 데려가 장로들에게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조건 자식을 고발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자녀의 악을 부모가 객관적으로 보고 공동체 앞에 정직하게 내놓으라는 뜻입니다. 부모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죄는 공동체가 함께 짊어져야 해요.
그래서 21절 말미에 뭐라고 하나요?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고 해요. 자녀의 허물을 감추고 자랑만 하다가는 오히려 그 죄가 곪아서 더 큰 문제로 터집니다. 자녀의 문제를 솔직하게 나누는 것이야말로 공동체가 함께 두려워하며 죄를 예방하는 길이에요. 부모 혼자 끌어안고 감추다가 곪아 터지게 두는 것보다 공동체 앞에 정직하게 내놓고 함께 짐을 지는 것이 그 자녀를 살리는 길입니다. 결국 나 한 사람, 한 가정의 정직한 고백이 공동체 전체를 지키는 울타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물건처럼 대하지 말라 하시고 감정이 아닌 질서를 따르라고 하세요. 또한 자녀의 악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라 하십니다. 이 모든 명령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라는 부르심이에요. 나와 우리 가정의 허물을 숨기지 않고 드러낼 때 온 공동체가 듣고 두려워하며 함께 거룩해지는 은혜가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 기도드릴게요.
주님, 오늘 엄중한 말씀으로 저희의 완악함을 비추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안목의 정욕과 감정에 이끌려 내 곁에 있는 지체를 함부로 대하곤 했습니다. 내 속에 숨겨진 편애와 치우친 감정으로 식구와 자녀를 대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의 허물을 숨기지 않고 공동체 앞에 정직히 내어놓기를 원합니다. 그리함으로 주님의 질서를 따라 가정과 공동체를 거룩하게 세워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자녀를 진리 안에서 바르게 양육하며 믿음의 본을 보이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방황하는 자녀들을 둔 가정마다 주님이 찾아가 주셔서 그들을 만나주시고 곧 공동체가 함께 그 짐을 지고 그들을 품으며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다 같이 거룩함에 이르는 모든 공동체가 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