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21:1-9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
2 너희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은 나가서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3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4 그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5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6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7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8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9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 피 흘린 죄를 제하라 ♱
하나님 아버지, 피 흘린 죄를 제하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피 흘린 죄를 제하는 은혜를 얻으려면 첫째, 내 탓임을 고백하며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이라고 해요. 들판에서 시체가 발견됐어요. 그런데 누가 죽였는지 몰라요. 억울한 죽음인데 범인을 찾을 수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에요. 이런 미제 사건 앞에서 우리는 보통 어떻게 하나요? ‘나랑 상관없는 없는 일이야’ 하고 지나가겠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세요?
2절에 ‘너희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은 나가서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라고 해요. 지도자들이 직접 나가서 거리를 재야 해요. 그리고 거기서 제일 가까운 성읍을 찾아낸 후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일 처리를 맡깁니다. 죽인 사람도 아니고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도 아닌데 그냥 가까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책임져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도 그래요. 가정에서 직장에서 공동체 안에서 일어난 사건과 문제에 대해 내가 저지르지 않은 일에는 "저는 몰라요. 저랑 상관없어요." 하며 모르는 체하려 하죠. 그런데 하나님은 가까운 자에게 물으세요.
3절 4절에 보면 ‘그 성읍의 장로들이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매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끌고 가서 그 목을 꺾으라’고 합니다. 아무 소나 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순수하고 귀한 재물을 택하라는 거예요. 가까이 있는 자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이렇게 값을 치르는 일이에요. 대충 때우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을 내놓은 일입니다.
제가 섬기는 우리들 교회에서는 소그룹에서 한 지체가 넘어지면 리더가 자기 잘못도 아닌데 함께 아파하며 스스로 회개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바로 이런 게 가까이 있는 자의 책임이 아닌가 싶어요. 그 지체의 죄에 대해서 성읍의 장로 격인 리더가 함께 뉘우치고 회개하고 아파하면서 그 지체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것이죠.
♱ 여러분은 어떠세요?
- 내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하며 도망간 일은 무엇인가요?
- 가정과 공동체에서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피 흘린 죄를 제하려면 둘째,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5절에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고 해요. 장로들만이 아니라 제사장들도 함께 그 자리에 참여해요. 6절과 7절에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라고 해요. 손을 씻는다는 건 결백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행동이죠. 그런데 자기가 죽이지 않았다고 증명하면서도 그 자리를 피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해야 합니다. "나는 안 그랬어요. 나는 잘 몰라요." 하면서 그냥 발을 빼는 게 아니라 암송아지의 목이 꺾이는 그 현장에 자기 손을 얹고 함께 서 있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곁에 지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직접 잘못하지 않았다고 해서 발을 빼서는 안 돼요. 비록 내게 직접적인 잘못이 없다 해도 여전히 그 사람 곁에 그 공동체 곁에 머물러 함께 낮아지는 것. 그것이 진짜 겸손이에요.
♱ 적용 질문 드릴게요.
- “나는 잘못 없어요”하며 모르는 체하면서 떠나 버린 관계는 없습니까?
고통을 당하는 지체나 공동체에 남아서 그 짐을 함께 짊어지고 있습니까?
남편의 음란으로 괴로웠으나 함께 짐을 져주는 공동체 지체들과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사명을 감당하는 가정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몇 달 전 남편의 데이트 앱 채팅과 음란이 드러났어요. 남편은 정신과에 가서 중독 진단을 받았고 신혼 초부터 남편의 잦은 외도로 힘든 시간을 보낸 저는 오랜 상처가 올라와 괴로웠지요. 남편을 향한 원망과 자책 속에 엎드러져 있을 때 하나님은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 같은 교회 공동체를 움직이셨어요. 얼마 전 남편은 부부 소그룹 모임에서 자기 죄를 솔직히 고백했어요. 그러자 지체들도 연약하고 음란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나누고 7절의 장로들처럼 남편의 죄를 자기 죄처럼 여기며 함께 기도해 주었습니다. 골짜기 같은 소그룹 모임에서 서로의 아픔을 짊어지는 은혜의 물이 흘렀어요. 모임 마지막에 각 부부끼리 포옹할 때는 하나님이 저의 피 섞인 눈물을 보시고 공동체의 기도를 통해 닦아주시는 것 같았죠. 9절에서 하나님은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고 하세요. 이제 시작된 남편의 치료와 회복의 과정이 두렵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은혜가 공동체의 정직한 고백을 통해 이미 저희 부부에게 흘러오고 있어 감사해요. 남편이 20년 만에 어둠을 뚫고 빛으로 나와 자기 죄와 수치를 고백하게 하신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려요. 그리고 이 짐을 함께 져준 소그룹 공동체에도 감사드려요. 이제는 저희 가정이 아직 멍에를 매지 않은 암송아지처럼 사명을 감당하게 되기를 소망해요.”
8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라고 해요. 속량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몸값을 지불하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니 이것은 이스라엘 전체를 위해 용서를 구하는 기도예요. 범인은 딱 한 사람인데 기도는 온 이스라엘을 위해 드려줘요. 왜일까요? 한 사람의 죄가 온 공동체를 오염시키기 때문이에요.
9절에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고 하지요. 정직한 일이라는 게 뭐냐 하면 내 식구, 내 편만 생각하고 아파하는 게 아니라 온 공동체의 죄를 내죄로 여기고 아파하는 거에요.
우리는 보통 내 자식, 내 가족이 아프면 밤새 염려하며 눈물을 흘리지만 이웃이나 교회, 나라가 아파하는 일 앞에서는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점점 거룩해질수록 저절로 그 아픔의 지경이 넓어지게 하세요. 처음부터 세상 걱정, 나라 걱정을 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내 가정, 내 자녀부터 시작해서 이웃과 공동체와 나라로 애통함의 범위가 넓어지도록 이끄시는 거예요. 그게 바로 신앙이 자라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로 오염된 나의 심령은 오직 하나님의 방법인 대속으로만 씻길 수 있어요. 멍에를 매지 않은 순수한 암송아지가 희생된 것처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내 죄가 사해졌습니다. 내 노력이 아닌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은혜를 의지할 때 진정한 정결함을 얻게 됩니다. 죄는 결코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책임이 있어요. 억울해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낮아지며 내 식구의 아픔을 넘어 공동체와 이웃의 아픔까지 내 죄로 여기고 아파할 때 하나님이 그 고백 위에 용서와 회복의 은혜를 더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저희와 상관없다고 여기며 외면해 온 아픔들이 실상은 제 책임이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짊어져야 할 짐들이 있다고 하시는데 그것을 회피하고 억울하다 여기며 그 자리를 떠나려고만 했습니다.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가족이나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나와 상관없는 일로 여긴 교만함과 무정함을 주님 앞에 내려놓길 원합니다. 이런 저희를 위해 영원한 화목 제물이 되어 주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마음을 넓혀주셔서 공동체와 이웃, 이 나라의 죄와 아픔까지 내 탓으로 여기며 애통함으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공동체와 이 나라에 진실한 회개를 통해 참된 회복이 일어나는 역사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