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19:14-21
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
15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16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면
17 그 논쟁하는 쌍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당시의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18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19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20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
21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
♱ 위증의 악을 제하라 ♱
하나님 아버지, 우리 중에 있는 악을 제할 수 있도록 우리가 주의 은혜 안에 거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악을 제하기 위해서는 첫째,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각 지파와 가문별로 땅을 분배받을 것입니다. 이때 지파와 가문 사이에 경계표라는 것이 세워질 것인데 14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아무리 예수님 믿어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분깃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만 이웃의 것을 탐내곤 하지요. 99가지를 가졌어도 이웃이 내게 없는 한 가지를 가지면 그것을 탐내는 게 우리 인간의 본성이지요.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경계표를 흔드는 것은 하나님의 원리를 거스르는 것이에요. 땅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모든 백성에게 나누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인 까닭입니다. 그 경계표를 옮기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빼앗고 도적질하는 것과도 같아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분깃이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믿고 그 경계 안에서 진정 풍성함과 만족을 누림이 마땅합니다. 저도 그랬어요. 우리들 교회를 개척할 당시 남의 자리를 넘보거나 남의 것을 부러워할 시간이 없었어요. 저희 집에서 시작된 큐티 모임이 커져서 나중에는 학교 식당을 예배당으로 쓰게 되었을 때도 감사할 뿐이었어요. 하나님이 주신 분깃만큼 받아먹으며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 여러분은 어떠세요?
- 이미 충분히 받았음에도 이웃의 것을 탐내고 있지는 않나요?
-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경계표를 옮기려 눈독 들이는 자리는 어디인가요?
악을 제하기 위해서는 둘째, 죄를 판단할 때 신중하고 공정해야 합니다.
15절에서 18절까지 하나님은 재판의 절차를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15절에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라고 해요.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누군가의 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체들의 죄를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사려 깊게 두세 증인을 두고서 그 사건을 확정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죄, 즉 그 사건을 확정하라는 것이지 죄인을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또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서 거짓으로 형제를 모함하면 18절에 보니 재판장이 자세히 조사하여 그 진위를 가려낼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살면서 정말 논쟁하고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기회가 없다 보니 상대방을 이기려고만 하다가 오히려 역으로 상처받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특히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라는 표현을 유심히 보아야 해요. 15절에서는 그냥 사람이라고 했다가 18절에서 그 형제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합니다. 거짓 증인이 해하려 한 사람이 다름 아닌 내 형제임을 잊어버린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거예요. 우리도 그래요. 공동체 안에서 죄 문제를 다룰 때면 그 무엇보다도 사려 깊고 공정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감정이나 편견에 휩싸이지 말고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하는 것이죠.
♱ 적용 질문 드립니다.
- 한 사람의 말만 듣고 누군가를 쉽게 정죄한 적은 없습니까?
- 누군가로부터 받게 된 상처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상처를 전가한 적은 없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욕심을 채우며 이중생활을 하다가 말씀으로 양육받으며 악을 제해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중이에요.
“직업군인으로서 복무를 마치고 바로 행정 군무 사무관으로 임용된 일은 하나님이 제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과 같았어요. 젊은 지휘관이라고 환영받으니 열정적으로 일하고 교회에서 차량 운전 봉사를 하며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지요. 그러나 시간이 흘러 제 안에 잠재된 음란의 씨가 싹터 업무를 핑계로 유흥을 즐기며 탐욕적인 이중생활을 자행했어요. 그런 제게 지친 아내는 해외 유학 중이던 아이들에게로 가버렸습니다. 19절 말씀대로 하나님은 아내를 속인 제 악을 제하시려고 꾀한 그대로 갚아주며 경고하셨지만 저는 이마저 무시했어요. 오히려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져 자유로워졌다고 착각하며 하나님이 주신 땅의 경계를 넘으면서 지냈어요. 동창들과 산악회를 조직해 등산을 가고 직장 동료들과 친목 모임을 빙자해 음란한 생활을 지속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지방에서 홀로 지내시던 어머니가 당뇨와 병증으로 한쪽 눈이 실명되셨어요. 제가 모시겠다 나서서 4년간 어머니를 돌보며 삼 형제 중 나만 효도한다는 생각에 우쭐해졌죠. 그러나 정작 제 가정은 방치되어 있었고, 저는 눈에는 눈으로 공정하게 판결하기보다 제 뜻대로 보복하고자 이혼을 준비했어요. 그때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제게 교회 소그룹 모임에 가보자고 권했어요. 저는 그곳에서 말씀을 듣고 양육을 받으면서 그동안 아내를 속이고 음란하게 산 죄를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악을 제하여 거룩한 삶을 회복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저의 적용은 ‘제 음란의 주범인 술을 끊겠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을 내 생각대로 결정하지 않고 아내와 교회 공동체에 먼저 묻겠습니다.’입니다.”
20절에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고 해요.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큐티하는 것이 악을 제하는 것이기도 해요. 21절에는 그 유명한 동해복수법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하는 말씀이 나와요. 이 말씀은 얼핏 대단히 가혹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정반대의 의미예요. 가혹하고 무제한적인 보복이 성행하던 고대 사회에서 복수자가 가할 수 있는 형벌의 유형에 엄격한 제한을 가한 법이기 때문이죠. 당한 것 이상으로 보복하지 못하게 그 당시에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종이나 가난한 사람들까지도 공정하게 보호받도록 만든 법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문자적으로만 적용하다 보니 사람들이 자기 권리 주장에만 관심을 갖고 의무는 외면하려 들죠. 권리를 쓸 수 있지만 쓰지 않는 것이 온유인데 부부 사이에도 자녀 관계에도 자신의 권리만 내세우면 그 안에 사랑이 있겠습니까? 물론 죄는 반드시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감정에 휩싸이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가 어렵기에 하나님은 감정을 절제하고 냉정하게 악을 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참된 진리의 증인으로 살아가라는 거예요.
한 성도님은 남편의 반복 되는 죄악과 무책임한 행동으로 일어나는 갈등이 두려워 늘 그냥 덮고 넘어갔다고 해요.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는 것과 죄를 방치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되셨답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남편의 죄를 눈감아주는 것이 결국 서로를 병들게 했던 거예요. 이후 더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남편에게 솔직하게 문제를 말하고 남편과 함께 참여한 공동체 소그룹 모임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어보고 기도를 요청했어요. 그러자 남편도 고질적인 자기 죄의 문제를 깨닫게 되고 그 죄의 문제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지만 죄인인 우리는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참고 기다리세요. 그러나 결국엔 반드시 정의를 세우십니다. 이웃의 경계표를 탐내지 않고 함부로 정죄하지는 않지만 또한 죄 앞에서는 단호해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릴게요.
주님, 내 분깃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웃의 경계표를 탐내며 지낸 저희의 탐욕과 죄성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99가지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한 가지 부족한 것에 마음이 빼앗겨 이웃을 쉬게 하고 내 욕심을 채우려 한 죄를 고백합니다.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쉽게 정죄하고 판단하는 조급함을 이제 이제는 좀 내려놓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더는 죄를 긍휼이라는 이름으로 방치하지 않고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길이 참으셔서 인자와 용납으로 저희를 기다려 주셨듯이 우리 또한 지체들을 품으며 사려 깊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우리 가정과 공동체 가운데 거짓과 위증이 아닌 진실이 세워지게 하시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양심의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는 자들이 다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