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19:1-13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여러 민족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 네가 그것을 받고 그들의 성읍과 가옥에 거주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 가운데에서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
4 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곧 누구든지 본래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인 일,
5 가령 사람이 그 이웃과 함께 벌목하러 삼림에 들어가서 손에 도끼를 들고 벌목하려고 찍을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함과 같은 것이라 이런 사람은 그 성읍 중 하나로 도피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니라
6 그 사람이 그에게 본래 원한이 없으니 죽이기에 합당하지 아니하나 두렵건대 그 피를 보복하는 자의 마음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데 그 가는 길이 멀면 그를 따라 잡아 죽일까 하노라
7 그러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기를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 하노라
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 다 네게 주실 때
9 또 너희가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의 길로 행할 때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이같이 하면 그의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11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상처를 입혀 죽게 하고 이 한 성읍으로 도피하면
12 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거기서 잡아다가 보복자의 손에 넘겨 죽이게 할 것이라
13 네 눈이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있으리라
♱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 ♱
하나님 아버지, 언제나 도피성이신 주님께 피하고 우리를 통해 다른 누군가도 주님께로 피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도피성이 되려면 첫째, 내게 주신 것을 나누며 길을 닦아야 합니다.
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여러 민족을 멸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땅을 네게 주시므로’라고 해요.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들을 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주신 것은 단지 잘 먹고 잘살라는 게 아니지요. 나만 누리고 자랑하라고 주신 게 아니라 내게 주신 것을 나누어 생명을 살리는 도피성이 되라는 뜻입니다.
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길을 닦고 모든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하게 하라’고 하세요. ‘길을 닦고’라는 말은 도피성까지 가는 거리를 미리 계산해서 누구든지 쉽게 도달할 수 있도록 도로를 정비하라는 뜻이에요. 부지 중에, 즉 실수로 그의 이웃을 죽인 사람이 피를 보복하는 자에게 쫓기다가 길이 멀어서 붙잡혀 죽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땅을 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내게 주신 시간, 돈, 건강, 재능을 나누어서 도로를 닦고 도피성이 되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무언가가 오히려 사람들이 내게로 오는 길을 가로막는 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에게 쉽게 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놓아야 하나님이 땅을 주신 이유가 살아나는 거예요.
5절을 보면 벌목하러 갔다가 도낏자루가 빠진 사고로 이웃을 죽인 부지중 살인의 예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를 일상으로 가져와 보면 우리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별생각 없이 툭 던진 말 한마디, 무심한 태도 때문에 가족과 이웃이 마음에 상처받을 때가 있죠.
그러면 6절에 ‘그 피를 보복하는 자의 마음이 복수심에 불타서 살인자를 뒤쫓는데’라고 해요. 원한도 없이 실수로 이웃을 죽인 일에도 남은 가족은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보복하려고 하지요.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 복수심은 더 무섭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나요?
7절에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도피성은 남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곳이에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도망할 곳이 없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진짜 도피성이신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됩니다. 도망할 곳이 없다는 게 그래서 축복일 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는 이런 경우에 스스로 도망할 구멍을 만들어 놓고는 정작 예수님께는 가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숨을 곳이 다 막혀야 우리가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 여러분은 어떠세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들로 사람들이 쉽게 다가오고 피할 수 있도록 길을 닦고 있습니까, 아니면 담을 쌓고 있습니까?
이렇게 도피성이 되면 둘째, 주님이 더 넓은 지경을 허락하십니다.
8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 다 네게 주실 때’라고 해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날이 온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땅의 확장에는 조건이 붙습니다. 9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항상 그의 길로 행할 때에는 이 셋 외에 세 성읍을 더하여’라고 하세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할수록 내 사명의 지경이 더욱 넓어진다는 거예요. 내가 말씀 안에 거하고 내 죄를 보며 회개할 때 내가 속한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더는 억울하고 무고한 피가 흐르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님이 도피성을 넉넉히 두게 하시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결국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복이 커질수록 더 많은 생명을 책임지고 섬기는 자리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이끄십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지경을 넓혀주실 때는 더 많이 누리라는 뜻이라기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도피성이 되라는 뜻이에요. 내게 주신 복이 늘어나는데도 여전히 내 것만 챙기고 있다면 하나님이 지경을 넓혀주신 이유가 무색해지는 것이지요. 따라서 내 욕심과 야망을 위해 지경을 넓혀주시길 구할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더 품고 도피성 역할을 감당하도록 인도해 주시길 부르짖어 간구해야 합니다.
♱ 적용 질문 드릴게요.
하나님이 내 삶의 지경을 넓혀주신 적은 언제였나요?
넓어진 자리만큼 더 많은 사람을 품고 섬기고 있습니까?
나 혼자만 누리려 하진 않습니까?
힘든 시집살이가 도피성이었음을 깨닫고 감사한 마음으로 시아버님을 간병하며 구원을 위해 적용하기를 기도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넓은 평수의 아파트를 분양받아 돈을 불리려고 신혼 초부터 시집살이를 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실직하여 결국 시아버님이 잔금을 치러주셨고 저희 부부는 대가족과 살다가 분가했어요. 이후 남편이 벌인 사업이 망하면서 저희 부부는 전세자금이라도 건지고자 위장 이혼을 했어요. 여호와께서 여러 민족을 멸절하신 1절 말씀처럼 제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고 투잡을 뛰며 발버둥 칠 때 시댁에서 집을 지으면서 다시 합가했습니다. 그때 저는 지인의 소개로 말씀 공동체에 속해 구속사 말씀을 들으며 평안을 얻었어요. 이후 시어머님은 병중에 공동체의 기도로 주님을 영접하신 뒤 병상 세례를 받으신 뒤 소천하셨고 시아버님은 교회에 나와 소그룹 부리더가 되셨어요. 요즘 저와 남편은 구원을 위해 손과 발이 가는 적용을 하고 있어요. 구강암 수술을 받으신 시아버님이 식사하기 편하시도록 부드러운 음식을 준비해요. 또 주일에는 아버님을 모시고 교회에 가는데 아버님이 오래 앉아 있는 걸 힘들어하셔서 중간에 나오곤 해요. 지칠 때도 있지만 죄 많은 저를 구원하려고 구별하여 주신 새 성읍과 같은 이 환경이 감사해서 남편과 교대로 시아버님을 간병하고 있어요. 내 뜻만 부르짖으며 탐심으로 살다가 죽을 뻔한 제게 생명을 보존하고 가족과 함께 살아나도록 시집살이 도피성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이곳에서 저와 가족이 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도록 매일 말씀 묵상으로 제 죄를 회개하며 구원을 위해 적용하길 기도해요. 저의 적용은 ‘시아버님이 예배 도중에 힘들어하시면 휠체어를 조용히 밀고 나오겠습니다. 남편과 갈등이 생길 때 그게 아니라 하지 않고 남편의 말을 따르겠습니다.’입니다.”
그런데 11절과 12절에 보면 상황이 달라져요.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이웃을 미워하여 엎드려 그를 기다리다가 일어나 상처를 입혀 죽게 하고서 도피성으로 도망하면 그 본 성읍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아다가 보복자의 손에 넘겨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13절에서는 ‘네 눈이 그를 긍휼히 여기지 말고 무죄한 피를 흘린 죄를 이스라엘에서 제하라’고 말씀하세요. 도피성은 실수한 자를 위한 은혜의 자리이지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은 자가 숨어 버티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무조건 좋게 말하고 참아주는 것이 사랑이며 긍휼인 줄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계획적으로 타인을 상하게 하는 사람을 눈감아 주는 것은 긍휼도 아니고 사랑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구원을 훼방하고 고의적으로 상처 주고 실족시키는 죄악은 분별하여 단호하게 끊어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한 도피성은 죄를 무조건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공의를 행할 때 완성됩니다. 이 도피성 제도에 담긴 하나님의 긍휼과 공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러므로 이제 길을 닦아주는 도피성이 되어 내 곁의 지체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릴게요.
주님, 부지중에 감당할 수도 없는 죄를 지어 죽을 수밖에 없던 저희를 외면치 않고 저희의 도피성이 되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안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저희를 구원의 도피성으로 불러주셨사오니 이제 저희도 시간과 재물, 건강과 은사를 사용하여 지체들이 언제든 다가올 수 있도록 길을 닦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의 도피처가 모두 막혀야 비로소 주께로 피하는 저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가게 도와주시옵소서. 내 속에 교만의 담을 허물길 원합니다.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지체들이 저희를 통해 도피성이신 주께로 피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저희 모두 사랑 안에서 공의를 행하는 거룩한 도피성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이 내게 주신 무언가가 오히려 사람들이 내게로 오는 길을 가로막는 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에게 쉽게 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놓아야 하나님이 땅을 주신 이유가 살아나는 거예요.
내가 말씀 안에 거하고 내 죄를 보며 회개할 때 내가 속한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더는 억울하고 무고한 피가 흐르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나 열심히 하는데 돌아오는 건 모욕이고 너무 억울하다고 하면서 살았는데, 목장에서 나누고 예배 드리면서 매일 울면서 저도 다른 사람도 저에 대해서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억울한 가족들에게도 제가 도피성 같은 사람이 되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