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18:15-22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16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9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20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21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22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 나와 같은 선지자 ♱
하나님 아버지, 내게 보내신 참 선지자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기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참 선지자를 세우시는 하나님은 첫째, 나를 위해 중보자를 보내십니다.
15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고 해요. 여기서 ‘너를 위하여’라는 말은 하나님이 막연히 선지자를 세우신 게 아니라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그를 일으키신다는 거예요. 이런 중보자가 왜 필요할까요?
16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호렙 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큰 불을 보았을 때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라고 간구했어요.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서면 두려울 수밖에 없지요. 내가 죄 중에 있을 때는 말씀이 애가와 애곡과 재앙처럼 들립니다. 심판과 고난이 싫고 십자가는 영광이라는 말도 싫은 거예요. 예배는 열심히 드리지만 정작 ‘하나님, 그저 잘 되게만 해주세요’라고 기도할 때가 많지요. 말씀의 다스림을 받기보다는 고난 없이 세상에서 잘 되기만을 구하는 거예요. 이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대신 전해줄 중보자를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성경만 던져주어도 다 알아듣는다면 굳이 낯설고 먼 땅에 선교사를 파송할 이유가 없겠죠. 우리에게는 말씀 육신이 되어 삶으로 보여주는 누군가가 필요해요. 이 선지자 한 사람은 종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지만 동시에 각 시대에 하나님이 세우신 에스겔, 예레미야 같은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말 못 하는 자가 되기도 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잃기도 하면서 각각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을 대신 전했어요.
우리도 그래요. 오늘 내 곁에 바로 나를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지요. 그의 얘기나 간증을 들으면서 '어쩜 나랑 저렇게 똑같을까?' 생각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 사람이 나를 위해 보내졌음을 깨닫는다면 그의 말이 저절로 들리게 됩니다. 나와 전혀 다른 완벽해 보이는 사람의 말보다 나와 같은 처지에서 주님을 만난 사람의 말이 마음 문을 열게 하지요.
♱ 여러분은 어떠세요?
- 지금 내 곁에서 나와 같은 처지로 나에게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있나요?
- 하나님의 뜻보다 내 형통만을 구하며 예배드리지는 않습니까?
참선지자를 세우시는 하나님은 둘째,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는 죄를 지적하십니다.
19절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라고 해요. 여기서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라는 말의 의미는 ‘내가 그에게서 찾을 것이다’라는 뜻이기도 해요. 하나님이 친히 찾으신다는 게 강조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사냥꾼이 사냥감을 추격하듯이 직접 찾아내어 심판하십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 하고 내 고집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가장 큰 불순종이자 형벌이에요.
그런데 20절에는 또 다른 위엄이 나와요.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세요. 거짓 선지자의 특징 중 하나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아님에도 그것을 제멋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전하는 것이에요. 마치 신적 권위가 있는 것처럼 자기 생각과 욕심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해서 쏟아내는 겁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을 아예 다른 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이지요. 물론 다른 신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자는 금방 구별이 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는 거짓 선지자는 분별하기가 참 어렵지요. ‘자녀가 일류대에 붙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십자가 없이도 누리는 영광이 복이다’라면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전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떤가요? 내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눌리는 무거움만 남습니다. 이런 기복적이고 거짓된 가르침에는 평강이 없어요. 결국 참된 말씀 사역은 십자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내 생각과 욕심을 가지치기하여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내 마음대로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 적용 질문 드릴게요.
- 누군가가 자기 마음대로 한 말에 평강을 잃은 적이 있습니까?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단정하며 말한 적은 없습니까?
고집을 부리며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과 같음을 깨닫고 회개했다는 한 초등학생의 어린이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제 앞머리가 길어 눈을 가리자 엄마는 앞머리를 옆으로 넘기던지 짧게 자르자고 여러 번 말씀하셨어요. 저는 넘기겠다고 해놓고 자르기 싫어서 계속 피했지요. 결국 엄마는 화내시며 제게 멋이 하나도 없다고 하셨어요. 15절 말씀을 보니 제가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는 것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올바른 길을 알려주시는데 저는 그 말씀을 가볍게 여긴 것 같아 회개하게 돼요. 하나님 말씀도 부모님 말씀도 소중히 여기며 작은 일이라도 순종하는 제가 될래요. 저의 적용은 ‘부모님 말씀대로 눈이 가리지 않을 정도로 앞머리를 자를게요’입니다.”
제 마음대로 하고 우긴 모습을 회개하고 이제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어른들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6살 어린이의 새싹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유치원에서 친구와 부딪힌 일이 있었어요. 저는 선생님께 ‘친구가 저를 일부러 밀쳤어요’라고 말했어요. 선생님은 친구가 실수로 부딪힌 것이니 친구의 사과를 받아주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저는 계속 고집을 부리며 친구가 일부러 밀쳤다고 우겼어요. 유치원에서는 선생님 말씀, 교회에서는 목사님 말씀, 집에서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는데 저는 가끔 제 마음대로 행동해요. 이제는 15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보내주신 어른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할게요. 저의 적용은 ‘어른들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게요’입니다.”
21절에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고 해요. 우리도 가끔 이런 의문이 생기기도 하죠. 그래서 22절에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라고 그 분별의 기준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증험과 성취를 꼭 세상 성공으로만 생각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병이 낫고 사업이 잘되고 자녀가 좋은 학교에 가는 것만 성취라고 여긴다면 망하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는 성도에게는 무슨 성취가 있느냐고 물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 그것이 아닙니다. 진짜 성취는 생명의 성취예요. 말씀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죄로부터 돌이켜 회개하는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는가? 이것이 바로 참된 증험입니다.
예레미야도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했을 때 거짓 선지자라는 비난을 받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말씀이 참되었음이 드러났죠. 참 선지자의 말은 당장엔 듣기 불편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말씀은 반드시 생명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예언은 결국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분이야말로 선지자 중에 선지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증험이자 성취인 거예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나를 위하여 참 선지자 되신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순종함으로 생명을 얻고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릴게요.
주님, 죄인인 저희를 위하여 선지자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내 생각과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 보니 주님의 음성이 두려워 피하고 싶은 완악함이 있습니다. 때로는 제 생각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하여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생명되는 말씀을 분별하여 듣길 원합니다. 당장 성취가 보이지 않아도 인내함으로 기다리길 원합니다. 참 선지자 되신 예수님의 음성에 날마다 귀 기울이며 순종하는 저희가 되게 하시고 자기 마음대로 전하는 말이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말씀을 전하는 저희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특별히 다음 세대 자녀들에게도 이 생명의 말씀이 들리고 깨달아지는 복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