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18:1-14
1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2 그들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기업을 가지지 않을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 그들에게 말씀하심 같으니라
3 제사장이 백성에게서 받을 몫은 이러하니 곧 그 드리는 제물의 소나 양이나 그 앞다리와 두 볼과 위라 이것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4 또 네가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네가 처음 깎은 양털을 네가 그에게 줄 것이니
5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6 이스라엘 온 땅 어떤 성읍에든지 거주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가 사는 곳을 떠날지라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 이르면
7 여호와 앞에 선 그의 모든 형제 레위인과 같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
8 그 사람의 몫은 그들과 같을 것이요 그가 조상의 것을 판 것은 별도의 소유이니라
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10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11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12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14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느니라
♱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
하나님 아버지, 땅이 아니라 주님만을 기업으로 삼으며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려면 첫째, 땅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1절에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고 해요. 다른 지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저마다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을 것이지만 레위 지파만은 예외예요. 그들에게는 논밭도 목초지도 자기 이름으로 등기할 땅 한 뺨도 주어지지 않았어요. 대신 2절에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라고 하지요. 땅과 하나님 둘 중 어느 것이 더 큰 기업일까요? 당연히 하나님이죠. 차원이 다른 기업이잖아요. 사람은 눈에 보이는 땅을 붙잡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분 자신을 기업으로 주십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자체가 나의 기업이 되는 인생은 세상을 다 얻은 것에도 비할 수 없는 풍요로움 그 자체입니다.
3절과 4절에 보면 백성이 드리는 제물의 앞다리와 두 볼과 위, 처음 거둔 곡식과 기름과 양털은 제사장의 몫으로 주어집니다. 이것은 백성이 자원하여 드림으로 완성되는 것이에요. 제사장이 백성에게 요구해서 받는 게 아니라 말씀을 듣고 감동된 백성이 스스로 드리는 것이지요. 그러니 서서 섬기는 제사장은 먹을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도 그래요. 형제들과 밤낮 다투고 서로 더 가지려고 욕심부리면서 살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얻고자 하는 자는 잃고, 잃고자 하는 자는 도리어 얻습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기업을 삼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다툴 이유가 없어요. 저 또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사역은 사람들의 대접을 기대할 수 없는 자리였죠. 하지만 그 결핍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는 은혜였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물질이 내 기업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만이 나의 유일한 기업이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지금 내가 붙잡고서 놓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나요?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려면 둘째, 내가 있는 자리에서 차별 없이 섬겨야 합니다.
6절에 ‘이스라엘 온 땅 어떤 성읍에든지 거주하는 레위인이 간절한 소원이 있어 그가 사는 곳을 떠날지라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 이르면’이라고 해요. 여기서 간절한 소원이라는 말은 ‘그 영혼의 모든 바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요. 지방에 흩어져 살던 레위인이 마음에 사무치는 소원을 품고 중앙 성소로 올라오면 7절에 ‘여호와 앞에 선 그의 모든 형제 레위인과 같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나니’라고 해요. 어디에 있든지 한결같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섬길 수 있다는 것이죠. 지방에서 왔다고 차별받지 않고 중앙에서 오래 섬긴 레위인과 동일한 몫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시골 성읍에서 조용히 조용히 섬기든 사람들이 알아주는 자리에서 섬기든 하나님 앞에서는 차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사람들에게서 인정받는 자리와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를 나누어 놓고서 알아주는 자리에서만 열심히 섬기려는 마음이 있잖아요. 하지만 오늘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지방 레위인이든 중앙 레위인이든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은 몫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나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시고 하나님 앞에서는 자리에 크고 작음이 없다는 거예요. 저희 어머니도 돌아가실 때까지 몸빼 바지 차림으로 교회에 변소 청소를 하셨어요.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만을 상급으로 여기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여러분, 내가 어느 자리에 있든지 바로 그곳이 하나님이 계시는 자리라는 걸 기억하시기를 바라요.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 있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진실하게 섬길 때 주님은 나를 그분의 일꾼으로 사용해 주십니다. 적용 질문 드릴게요.
♱ 지금 있는 자리를 하찮게 여기며 사람들이 알아주는 자리만 부러워하지는 않나요? 섬기는 지체들을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으로 판단하지는 않습니까?
불안과 욕심으로 자녀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만을 기업 삼아 말씀대로 양육하기를 소망한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청년 시절 저는 오랫동안 질병을 앓으시던 어머니의 인도로 큐티하는 교회에 다녔어요. 부모님을 따라 저 또한 공동체를 섬겼지만 겉으로만 따를 뿐이었지요. 그러다 결혼 후 첫째를 낳고서 말씀대로 양육하겠다 다짐했어요. 하지만 어느새 욕심이 올라와 강박으로 아이를 키웠어요. 기질이 예민한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매일 울고 밤에는 이부자리에 실수했어요. 초등학생이 된 아들은 하교 후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길 간절히 원했는데 저는 그런 아이를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세상 사람들의 양육법을 본받는 저의 가증한 행위에 대해 하나님이 예배와 공동체 모임을 통해 경고하셔도 듣지 않았죠. 결국 한계 상황에 다다른 저는 공동체의 권면대로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고 매주 지체들의 조언을 듣고 따랐어요. 하지만 아이가 안정을 찾고 학교 생활에 적응하자 금세 욕심이 생겨 영재원에 원서를 냈어요. 하나님은 그런 제게 불합격이라는 결과를 주셨습니다. 그제야 과도한 경쟁과 살벌한 환경으로부터 예민하고 불안함이 많은 아이를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죠. 그리고 불안과 욕심으로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한 저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어요. 그러자 하나님이 첫째도 청소년 큐티인 간증 필자가 되도록 은혜를 허락하셨어요. 하나님만이 저의 기업이 되심을 알려주시며 친히 양육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이제는 매일 주시는 말씀을 따라 세 아들을 양육하길 기도해요. 저의 적용은 ‘첫째가 불안감을 쏟아낼 때 짜증 내지 않고 잘 받아주겠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보게 되는 교육 관련 인터넷 동영상 시청 시간을 30분 이상 줄이겠습니다.’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지라도 그 땅에 들어가면 여전히 경계하고 쫓아내야 할 가증한 문화들이 존재하지요. 10절, 11절에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고 해요.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것은 몰렉 우상 숭배를 말하죠. 이런 가증한 행위는 사실 부모의 이기적인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자녀를 통해 내가 못 이룬 야망을 풀고자 하는 욕심이에요. 그래서 자녀를 일류로 만든다는 명분 하에 경쟁의 불구덩이 가운데로 집어넣는 거예요. 그러니 점을 치고 길흉을 살피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은밀히 점집을 찾는 사람이 있는 것이죠.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는 내려놓고만 싶고 고난은 피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붙드는 사람은 이 세상에 궁극적인 소망이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환난을 받아들이고 말씀의 인도를 따르기에 그 어떤 말에도 휘둘리지 않아요.
13절에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고 합니다. 완전하다는 것은 흠이 없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흠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날 때부터 죄인인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흠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의 가증함을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성품과 의지로는 죄를 이길 수 없기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나를 그분 앞에서 완전한 자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점을 치고 세상 가치관을 따르는 인생이 아닌 믿음으로 분별하며 말씀을 따르는 인생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부르시고 택하신 하나님을 나의 유일한 기업으로 삼고 그 주님만 따르고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드릴게요.
주님, 아무 소망 없는 이 세상의 썩어질 기업을 쫓아 살던 저희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정받는 자리만 좋아하고 세상 것들을 의지하며 기대려 하는 저희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기업이 되신다는 오늘 말씀을 붙들고 회개하길 원합니다. 각자 서 있는 자리에서 자녀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부모들의 가증한 죄악이 끊어지게 하시고 다음 세대 아이들이 하나님만을 기업으로 삼도록 말씀으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모두 주 앞에서 완전한 자로 살아가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