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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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기도문에 대하여 묵상하여 보았습니다. 나 역시 주기도문을 할 때 주문외우듯 형식적으로 하곤 했습니다. 어느날 내가 주기도문을 주문외우듯 하는 것을 깨닫고 다시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던 그때를 기억하며 다시 주의 뜻을 새겨보고자 했습니다. 이제는 기도할 때도 주가 가르쳐주신대로 처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시작하여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나의 기도가 바뀌었습니다. 요즘 성도 또는 목사 들의 기도를 보며 무슨 연설문이나 강의하는 기도문들을 보게 됩니다. 기도의 순서대로 하지만 기도가 나의 연설문이고 대중에게 보여지기 위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닌 연설문에 불과한 것 같아 하나님께 너무 죄송스러웠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이 모든 말씀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데 왜? 말씀인가? 말씀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알고 사용하고 있을까? 성경말씀이 이렇게 입에 붙어 있어서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사전적의미는 1) 상대방의 말을높여부르는말로쓰입니다. 2) 자기의말을낮추어표현할때도사용됩니다."제 말씀은..."과같이웃어른에게자기말을낮추어말하는 표현. 3) 성경에서는 "하나님의말"을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사전적의미를 분명히 알았다면 이제는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말씀"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결국 기도이기에 "말씀"이라고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말"이라는 사전적의미가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말씀..." 또는 "이 모든 말씀(하나님의 말)을....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는 기도 표현은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사전적의미로 정확하게 "이 모든 기도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로 바꿔하시길 바랍니다. 주기도문을 함께 묵상하기전 기도 마지막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권면을 드립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주기도문에 대하여 함께 나눠보고 싶습니다. 주기도문은 마태복음 6:9–13을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먼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기도를 잘 외우는 방법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어떤 마음과 방향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은“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기도”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먼저 주기도문의 구조를 보십시오 마태복음 6:9–13을 크게 나누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세 가지 간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우리의 삶을 위한 네 가지 간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그리고 마지막에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라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마칩니다. 즉, 하나님 → 하나님 → 하나님 → 나의 필요 입니다. 이것이 주기도문의 가장 중요한 구조입니다. 그럼, 주기도문 전체를 묵상해본다면, 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헬라어로는 Πάτερ ἡμῶν ὁ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Pater hēmōn ho en tois ouranois 입니다. “아버지” — Πάτερ (Pater) 예수님은 하나님을 단순히 “신”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아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단순히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아시는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나의 아버지”라고만 하지 않고 “우리 아버지”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기독교의 기도는 “나만 잘되게 해주세요.” 가 아닙니다. “우리”를 품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개인주의적인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로 부르게 하신 것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딸로 자녀 삼아 주시고 성민되게 하심"을 확신하는 고백이며,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택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 가까이 자녀로 삼아주셨음을 감사하며 확신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2.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ἁγιασθήτω τὸ ὄνομά σου hagiasthētō to onoma sou 직역하면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게 하소서.” ① “이름” — ὄνομα (onoma)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히 호칭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존재, 성품, 명예, 권위, 평판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히 “하나님이라는 글자가 거룩하게 되게 해주세요”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누구신 분인지 세상 가운데 올바르게 드러나게 하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거룩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②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ἁγιασθήτω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동태라는 것입니다. 직역하면: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게 하소서.” 입니다. 즉, “하나님, 사람들이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인정하게 하시고 제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지 않게 하소서.” 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첫 번째 기도는 사실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 받는 것을 먼저 구하게 하소서.”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성공하게 해주세요.” “내가 인정받게 해주세요.” “내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그런데 예수님은 먼저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십시오.” 그러므로 주기도문의 첫 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가, 아니면 내 이름을 높이는가?” 3. “나라가 임하시오며” ἐλθέτω ἡ βασιλεία σου elthetō hē basileia sou “당신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여기서 나라 — βασιλεία (basileia) 는 단순히 영토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의미는 왕권, 통치, 다스림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주세요”라는 것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통치가 이 땅에 나타나게 해주세요.”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무엇을 선포하셨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4:17)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 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나라가 임하시오며” 라고 기도할 때에는 두 가지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① 지금 내 삶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소서. 그리고 ②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오게 하소서. 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개인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해주세요”는 “하나님, 내 계획을 이루어 주세요”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다른 사람을 바꾸어 달라는 기도이기 전에 나를 하나님의 통치 아래 두는 기도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화가 났습니다. 그때 “하나님, 저 사람을 변화시켜 주세요.” 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지금 이 순간 제 마음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제 분노를 제가 통치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통치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4.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헬라어는 γενηθήτω τὸ θέλημά σου genēthētō to thelēma sou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입니다. “뜻” — θέλημα (thelēma) 단순히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계획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기뻐하시는 것, 결정하신 뜻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루어지이다”에 사용된 γενηθήτω (genēthētō) 는 “되게 하소서 / 일어나게 하소서”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뜻하시는 것이 실제 현실이 되게 하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여기가 정말 중요합니다.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땅에는 인간의 뜻이 있습니다. 내 뜻이 있고, 다른 사람의 뜻이 있고, 세상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는 “내 뜻을 하늘의 뜻에 맞추어 주십시오.” 라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 이것이 바로 주기도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를 예수님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로만 가르치신 기도문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신 기도입니다. 세 문장을 연결해 보면 놀랍습니다. 예수님의 순서는 정확합니다. 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의 이름 ↓ ②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의 통치 ↓ ③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뜻 그리고 그 다음에야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가 나옵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 → 하나님의 나라 → 하나님의 뜻 → 그리고 나의 필요 입니다. 5.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헬라어의 ἐπιούσιος (epiousios) 라는 단어가 “일용할”로 번역됩니다.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여러 해석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오늘 필요한 양식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늘” 입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10년 동안 먹고살 것을 한꺼번에 주세요.” 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광야의 만나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날마다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이 공급자이심을 믿습니다.” 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물론 이것은 노력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수고하되,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식”은 음식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필요한 힘, 오늘 필요한 지혜, 오늘 필요한 사람, 오늘 필요한 용서, 오늘 필요한 은혜. 그래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내일을 내가 미리 살아버리지 않게 하시고 오늘 필요한 은혜를 오늘 주십시오.” 6.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여기서는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했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해 주신다”라는 단순한 거래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은 용서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엄청난 용서를 받았는데 “나는 저 사람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받은 은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하나님, 제가 받은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죄”는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6:12의 ὀφειλήματα (opheilēmata) 는 문자적으로 빚, 빚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죄를 하나님께 진 빚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갚을 수 없는 빚을 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용서받은 사람 → 용서하는 사람 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7.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μὴ εἰσενέγκῃς ἡμᾶς εἰς πειρασμόν 여기서 πειρασμός (peirasmos) 는 문맥에 따라 시험, 유혹, 시련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악으로 유혹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야고보서 1:13도 하나님은 악으로 시험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하나님, 제가 시험과 유혹 앞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십시오.” 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너무 믿으면 안 됩니다. “나는 절대 안 넘어져.” 가 아니라 “하나님, 저를 붙들어 주세요.” 가 성도의 기도입니다. 8.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여기서 “악”은 헬라어 πονηρός (ponēros) 입니다. 문맥에 따라 악 자체 또는 악한 자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하나님, 악의 세력과 죄의 권세에서 저를 지켜주십시오.” 라는 간구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 죄를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주기도문 전체가 하나의 길로 연결됩니다. 주기도문은 7개의 간구가 아니라 하나의 영적 여정입니다. ①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 ② 하나님의 이름을 먼저 생각합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③ 하나님의 통치를 구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 ④ 내 뜻을 내려놓습니다. “뜻이 이루어지이다” ↓ ⑤ 오늘의 필요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 ⑥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냅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 ⑦ 시험과 악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악에서 구하소서.”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가는 전체적인 삶입니다. 우리는 보통 거꾸로 합니다. 내 문제 → 내 필요 → 내 뜻 →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함. 예수님은 순서를 바꾸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 하나님 → 하나님 → 그리고 나 이것이 주기도문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주기도문을 “주문”처럼 외우지 않으려면 한 문장씩 이렇게 마음으로 바꾸어 기도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아버지, 오늘 제 말과 행동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지 않게 하시고, 제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드러나게 하소서.” “나라가 임하시오며” “아버지, 오늘 제 마음과 생각과 가정과 일터를 제가 다스리지 말고 하나님께서 다스려 주십시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버지, 제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맞추려 하지 말고, 제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게 하소서.” 이렇게 한 구절씩 천천히 기도하면 주기도문이 주문이 아니라 실제 삶의 기도가 됩니다. 그리고 세 문장을 하나로 묶으면 제가 보기에는 예수님의 의도가 이것에 가깝습니다. “아버지, 사람들이 나를 통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게 하시고, 내 삶 가운데 아버지의 통치가 임하게 하시며, 결국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내 삶이라는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렇게 보면 주기도문의 간구는 “나를 내려놓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루어지면 뒤의 “일용할 양식”, “죄 용서”, “시험”, “악에서 구원”도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제 주기도문 묵상을 마무리하면서 주기도문은 그냥 주문외우듯이 하지않고 그 의미를 기억하며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주기도문을 하겠다고 깊게 묵상해봅니다. 더불어 나의 기도도 이제는 연설문이나 보여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기도가 되길 기도하며 다시한번 주기도문에 대하여 묵상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이 글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