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오늘 말씀 본문은 신명기 16:13~22 오늘 말씀을 요약하면, “여호와 앞에 나아감” → “공의를 행함” → “우상숭배를 거부함”으로 이어진다. 특히 16절의 “여호와를 뵈옵되”는 단순히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것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 같아 깊게 묵상해보았다. 먼저 여호와앞에 나아가는 것에 대하여 묵상해보면 "여호와를 뵈옵되”는 실제로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다는 뜻인가? 신명기 16:16의 히브리어(yērāʾeh ʾet-pənê YHWH) 직역하면 “여호와의 얼굴 앞에 보이다/나타나다”라는 뜻인데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panim, 얼굴·앞·임재) 이다. 따라서 “여호와를 뵙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얼굴을 육안으로 본다는 의미가 아닌것 같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 후에는 성전의 하나님의 임재가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곳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제물을 드리며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즉,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내가 나아가 하나님 앞에 선다.” 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출애굽기와 신명기에서 반복되는 “여호와 앞에”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을 보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먼저이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하나님 앞에 있다”는 의식으로 예배한 것이다. 그러므로 16장은 놀라운 흐름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 →하나님께서 먹이셨다 → 하나님께서 열매를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감사한다 →그리고 사람에게 공의를 행한다.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신앙의 원리가 나온다.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선 사람은 사람 앞에서 공의를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공의 (tsedeq) 는 단순한 법률적 공정성만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른 관계,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바른 관계를 포함한다. 그래서 공의로운 사람은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것을 선택하는 사람” 반대로 불의는 꼭 거짓말하고 사기 치는 것만이 아니라 내게 유리하기 때문에 옳지 않은 것을 모른 척하는 것도 불의가 될 수 있다. 16장 16절의 “여호와 앞에 나타나며”와 20절의 “공의만을 따르라” 사이에 18~19절의 재판과 판단이 들어 있다. 이것은 우연한 배열이 아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묻는다. “네가 정말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드리지만, 공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증명된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면서 사람에게 불공정하다면 성경은 그것을 온전한 신앙으로 보지 않는다. 돈 앞에서 “이익이 되느냐?”보다 “정직하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냐?”보다 “사실에 근거해서 판단하는가?” 갈등이 생겼을 때 “내가 이기느냐?”보다 “하나님 앞에서 옳으냐?” 를 묻는 것이다. 오늘 말씀으로 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며 날 돌이켜보게 된다.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배를 드리고 큐티도 하고 목자로 섬기고 크리스챤으로 잘 보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감사와 나눔이 없는 "여호와를 뵈옵되" 이것이 되지 않았다. 여호와를 뵙는 하나님앞에 서 있는 예배와 삶이 아니었다. 그러니 난 사람을 만나도 나에게 손해가 되는지? 외모와 그 사람의 스펙과 돈이 있고 없고를 보고 이익이 된다면 그에게 날 숨기고 그의 손목에 잡혀 따라 다녔다. 미국에서 돈 많이 벌고 항공사도 하고 대단한 인맥과 대기업회장과도 친구라고 하니 그가 내 미래를 책임져 줄것이라고 생각하여 난 그분을 "형님"이라고 바로 호칭하며 엄청 가까운 사람으로 여기며 급히 돈이 필요하니 1주일 후에 주겠다고 하여 바로 입금하며 내가 사람을 만나도 난 장아무개회장이 내 형님이라고 자랑질을 하며 내가 엄청난 인맥을 가진 것처럼 거들먹 거렸다. 그러나 그 형님은 돈을 갚지도 않고 점점 힘든다고 하며 미국에서 번돈을 한국에서 다 사기당했다고 하며 점점 멀어져 갔다. 지금은 전화도 받지 않는다. 그는 늘 날 보면 "동생아 넌 능력이 많으니 내가 이거 되면 니가 다 맡아서 해야 한다. 난 나이가 있어서.."하며 큰 꿈을 주며 난 그말에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그가 도리어 내가 있어보이고 내가 이용가치가 있어 날 이용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얼마나 날 죽이고 싶고 내가 싫은지 모른다. 이렇게 어리석고 무지하고 내 욕심앞에 분별이 되지 않는 것은 내가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보아도 난 여호와를 뵈옵는 자가 아니었다. 사람을 만날때 사업을 할 때 가정과 교회를 섬길 때 하나님앞에 서 하나님을 뵙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날 우선하여 내 앞에 있는 인맥좋고 좀 있어 보이는 사람만 보고 공의보다 내 불의가 앞서 그와 같은 불의를 행하게 되었음을 보며 내 악을 보게 된다. 맞다 절기를 지키는 것에 전제 조건은 구원의 은혜를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여호와를 뵙는 즉 공동체에 묻고 말씀에 묻고 하는 것이 바로 공의로 이어지는 것인데 난 내가 결정하고 내가 확정하여 모든 것들을 행하는 난 여호와를 뵙지 않는 그런 삶을 예배로 드렸다. 주여, 이렇게 어리석고 믿음 없는 날 그래도 사랑하시니 감사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을 오늘 뵈오며 말씀으로 공의를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공의는 곧 하나님이시오니 공의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아멘 적용) 아직도 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며 나에게 이익이 되는지? 부터 보는 악함이 있습니다. 이익이 안된다고 멀리한 남동생에게 전화하고 남동생을 우리들교회로 인도하기 위해 우리들교회를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