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16:1-12
1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2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소와 양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되
3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4 그 이레 동안에는 네 모든 지경 가운데에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할 것이요 또 네가 첫날 해 질 때에 제사 드린 고기를 밤을 지내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며
5 유월절 제사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유월절 제물을 드리고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 고기를 구워 먹고 아침에 네 장막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8 너는 엿새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고 일하지 말지니라
9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 너를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며 받은 복을 이웃과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인도하여 내신 은혜를 기억하려면 첫째, 나의 유월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절에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유월절을 행하라’고 해요. 왜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나요?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고 하죠. 신앙은 결국 내가 어떤 애굽에서 건져냄을 받았는지, 곧 구원을 기억하는 거예요. 우리가 받은 구원을 순간순간 기념하고 기억해야 주의 규례와 법도도 지킬 수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없으면 신앙생활도 결국 의무로 하게 되고 절기와 예배도 형식적으로 드리기 쉽습니다.
2절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유월절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내 이름을 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름 두신 곳, 곧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자리에서 구원의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3절에는 유교병이 아닌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먹으라고 합니다. 왜 하필 고난의 떡입니까? 그 힘들었던 애굽 종살이를 떠올리며 그곳에서 급히 나왔음을 평생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고난은 빨리 잊어버리고 좋은 일만 기억하고 싶은 게 우리의 속성이죠. 그러니 내가 어떤 고난에서 건짐 받았는지를 기억해야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방법이 있고 내가 붙들 것이 많으면 말씀을 듣기보다 자꾸 따지려 들죠. 그러나 정말 길이 없는 사람은 따질 겨를이 없으니 말씀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긴급한 것이 오히려 영적으로는 복된 환경입니다.
4절에는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하고 제물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해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부분으로 먹어서는 안 되고 전부 먹어야 합니다. 즉 ‘구원의 은혜를 조금만 취하고 나머지는 내 방식대로 살아야지’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십자가 없이 영광만 취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또 5절과 6절에 ‘유월절 제사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서 드리라고 해요. 물론 구원은 개인적으로 경험하지만 그 구원의 은혜는 공동체 안에서 선포되고 확인되어야 합니다. 혼자만 은혜받고 혼자만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먹고 함께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7절에서는 유월절 고기를 구워 먹고 아침에 장막으로 돌아가라고 해요. 먼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야 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예배 없이 일상만 살다 보면 다시 애굽의 방식으로 돌아가기가 너무도 쉽죠.
8절에는 마지막 날 성회로 모이고 일하지 말라고 해요. 죄 때문에 노동과 수고의 세계에 갇힌 우리를 다시 안식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옛사람으로 살면 모든 것이 노동이지만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면 같은 삶도 예배가 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 나는 어떤 애굽에서 건져냄을 받았나요? 지금도 그 구원의 감격을 기억합니까? 피하고 싶은 ‘고난의 떡’은 무엇이고 그것을 먹으며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이죠?
인도하여 내신 은혜를 기억하려면 둘째, 받은 복을 함께 나누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9절부터는 칠칠절이 나와요.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하나님 앞에 칠칠절을 지키라고 합니다. 유월절이 구원의 시작이라면 칠칠절은 구원받은 뒤 하나님이 주신 열매에 감사하는 절기이지요. 구원받았다고 끝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이 내 삶에 어떤 열매를 맺게 하셨는지 돌아보며 감사해야 합니다.
10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해요. 억지로 비교하며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복을 헤아려 자원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오래 누릴수록 점점 더 자원하는 마음이 생기는 게 마땅하죠. 그래서 11절이 참 중요합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 중에 있는 레위인과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라고 해요. 하나님이 주신 복은 나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사는 데 쓰라고 주신 게 아니에요. 내 주변에 연약한 사람들과 함께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레위인, 객, 고아, 과부처럼 힘든 사람까지 함께 즐거워해야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 나라 잔치가 됩니다. 내 삶이 편해졌다고 약한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애굽의 종이던 때를 기억하며 그들의 형편을 돌아보는 것이죠.
그래서 12절도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결국 나눔의 출발도 구원입니다. 내가 원래 종이고 아무것도 없던 사람이었음을 기억하면 자랑할 것도 움켜질 것도 없죠. 그저 받은 은혜를 흘려보낼 뿐입니다. 내가 땀 흘려 얻은 것 같지만 결국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물질도 시간도 자녀도 직분도 모두 주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내 가족만을 위해 쌓아둘 것이 아니라 힘든 지체와 나그네, 고아와 과부와 함께 누려야 하는 것이죠. 여러분은 어떠세요?
♱ 하나님이 주신 복을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쓰고 있진 않나요? 함께 즐거워하도록 내게 붙여 주신 연약한 지체는 누구인가요? 받은 은혜를 자원하여 흘려보냅니까?
축복이라 기대한 결혼생활이 고난의 떡처럼 느껴졌지만 자기 삶을 유월절 제물로 드리며 그 떡을 즐겁게 먹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다가 믿는 시댁을 만났어요. 하나님이 축복의 떡을 주신 줄 알았는데 막상 살아보니 이곳이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이 맞나 싶었어요. 젊은 시절 홀로 되신 시어머님과 네 명의 누이와 함께 100평짜리 한옥에서 살아온 남편은 밤마다 술을 마셨어요. 저는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는 남편을 보며 괴로웠고 낮에 일하고 밤에 쉬는 평범한 가정이 부러웠어요. 그래서 남편에게 나처럼 성실하고 성격도 무난한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냐며 윽박질렀죠.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도 잘 다녀온 아들이 언젠가부터 게임에 빠져 밤낮이 바뀐 생활을 했어요. 3절 말씀처럼 마치 하나님이 제게 고난의 떡을 먹으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한계 상황에 직면해서야 저는 공예배와 교회 소그룹 모임에 유월절 제물을 드리며 제가 잘한 게 하나도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어요. 현실감 없는 남편의 말은 들을 게 없다며 무시하는 제 모습이 오히려 남편을 격동시켜 술을 마시게 했다는 걸 깨달았죠. 그 후 남편은 제게 아파트를 팔고 재래시장에 있는 상가를 용도 변경하여 살자고 했어요. 저는 교만의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 말에 따랐어요. 그 뒤로 지금까지 10년째 단열도 안 되는 세트장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답니다. 그럼에도 망한 것 같은 이 환경이 남편 때문이야라고 원망하지 않아요. 여전히 고난의 떡을 먹고 있지만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며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저의 적용은 ‘더 이상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큐티 말씀을 다시 보며 요동하지 않겠습니다. 남편과 아들 때문에 힘들 때 제 속에 누룩처럼 퍼진 교만은 없는지 다시 살피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고난의 떡을 먹으며 우리를 애굽에서 건지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어디서 건짐 받았는지를 기억하면 오늘의 환경을 원망하기보다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복을 연약한 이웃과 함께 나누며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나를 애굽에서 건져내신 구원의 은혜를 평생 기억하며 나눌 것만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죄와 사망의 애굽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유월절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의 피로 살려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귀한 인생인데 우리는 그 구원의 감격을 너무도 쉽게 잊고 살아갑니다. 고난의 떡은 피하고만 싶고 힘든 환경은 죄다 남 탓으로 돌리며 원망 속에 지옥을 살아갑니다. 내가 어떤 애굽에서 건짐 받았는지 날마다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힘든 사건 가운데서 원망을 그치고 고난을 말씀으로 해석하며 가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내 안에 누룩 같은 교만과 자기 의를 회개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움켜쥐지 않고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 같은 연약한 지체들과 함께 나누며 즐거워하길 원합니다. 받은 은혜를 헤아려 억지가 아닌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고 섬길 수 있도록 저희와 함께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방법이 있고 내가 붙들 것이 많으면 말씀을 듣기보다 자꾸 따지려 들죠. 그러나 정말 길이 없는 사람은 따질 겨를이 없으니 말씀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긴급한 것이 오히려 영적으로는 복된 환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