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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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신명기 15:1~11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난 15:3 "이방인에게는 독촉하고 형제에게는 면제하라" 이 말씀에 질문을 갖고 묵상하였다. 왜? 형제는 누구이고 이방인은 누구이며 왜? 구별하여 말했을까? 신명기 15장 3절의 이방인은 이스라엘 공동체 밖의 외국인을 뜻한다. 안식년에는 동족에게 빌려준 빚은 면제하고 독촉하지 않지만, 이방인에게 빌려준 빚은 계속 독촉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안식년의 목적은 채권자를 보호하는 데 있지 않고,하나님이 선포하신 면제를 통해 공동체 안의 가난과 빚의 대물림을 막는 데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자신의 재산을 희생해서라도 형제의 경제적 회복을 돕도록 요구했다. 또한 이 규정은 면제년이 가까웠다는 이유로 가난한 형제에게 빌려주기를 꺼리거나 인색하게 행동하지 말라고 이어간다. 빚을 면제하는 제도 자체가 남을 착취하지 못하도록 하며, 공동체 가운데 서로 돌보는 삶을 실천하게 하려는 맥락 속에 자리한다. 신명기에서 형제(אָח, 아흐) 는 단순한 혈연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애굽에서 하나님께 구속받은 백성이다. 그래서 15장의 핵심은: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받은 백성이니, 서로를 빚에 영원히 묶어두지 말라.” 나도 하나님 앞에서 갚을 수 없는 빚을 가진 죄인이었는데, 그리스도께서 나의 빚을 담당하셨다. 골로새서 2:14의 표현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불리한 “증서”를 십자가에서 제거하셨다는 복음과 연결하여 묵상할 수 있다. 그런데 신명기 15장을 여기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면 아주 놀라운 것이 하나 있다. 왜 하나님께서 “형제에게는 면제하라”고 하시면서도, 15:6에서는 오히려 “너는 여러 나라에 꾸어줄지라도”라고 하셨는지를 함께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받는 공동체’가 아니라 ‘흘려보내는 공동체’로 만드시는 구조가 보인다. 나는 참 인색하다. 돈에 대하여 인색하다. 돈과 관련없는 것은 다 나눠준다. 힘든 사람이 와서 도움을 요청하면 마음을 위로하고 상담을 요청하면 힘들어도 다 들어주고 6시간을 앉아 어지러운데도 들어주고 상담하여 돌덩이같은 마음을 깨고 평안을 누리며 그가 기쁨으로 돌아가게 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말을 잘 공감해주고 들어주며 아픈 사람 힘든 사람, 고난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눠 돕고 복음으로 사랑을 나눠줬다. 그런데 유별나게 돈에 대하여는 인색하다. 그리고 먹는 것에 대하여 인색하다. 왜? 난 이렇게 인색할까? 난 어려서 엄마가 경기로 인해 엄마 젖을 먹지 못하고 할머니 젖을 동냥해서 먹었다고 한다. 거기서 욕구불충족이 자리했던 것 같다. 난 아들과도 라면 먹다가 싸웠다. 내가 먹을 때 늘 옆에 사람것이 더 많아 보이고 더 좋아보인다. 많이 먹지도 않으면서 먹는 것에 참 인색하고 욕심이 많다. 거기에 돈도 돈 많은 사람을 보면 부럽기 보다 질투가 난다. 빼앗고 싶다. 돈에 대하여 욕심이 많으니 돈을 나눠주는 것에 인색하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돈이 남에게 사용되는 것이 손해라고 계산하며 인색하여 돈을 받는 것은 좋아하는데 주는 것이 싫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돈을 수억씩 입금하는 짓을 한다. 그것은 나의 이익을 위한 돈을 더 벌고자 하는 계산된 욕심이기에 결국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그 사기 당한 당사자를 미워하고 정죄하며 그 돈을 찾기 위해 난 그 돈의 노예가 되어 거짓말에도 허황된 말에 빠져 시간을 다 허비하고 그 돈을 메우기 위해 대출과 무리한 경제 생활로 파산에 이르고 가정경제가 무너졌다. 결국 김양재목사님 말씀에 "속는자 보다 속은자가 더 악하다." 고 했는데 100% 맞습니다. 내가 돈에 대한 욕심이 있어 인색하고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지 못하여 내 돈이라고 내 것이라고 생각한 내 죄로 사기당하고 돈도 다 잃어 이모양이 되었다. 오늘 말씀으로 돈이 우상되어 내 형제 공동체에 묻지 않고 묻는 것이 곧 나누는 것인데 난 공동체를 무시하고 공동체에서 말하는 것은 뻔하다고 생각하는 형제들의 생각을 처방을 정죄하고 공동체의 나눔 처방에 대한 정죄함을 면제 하지 않아 결국 가난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방인과 공동체를 구별하지 못했다. 언약백성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면제 받았기에 공동체를 정죄하고 판단하며 무시했던 나의 죄를 보며 공동체의 질서를 무시한 내죄를 보게 되었다. 이제 내 죄를 보며 공동체안에서 흘러나가는 내가 되기를 기도한다. “주님, 제가 움켜쥔 손을 펴게 하시고, 붙잡고 있는 사람을 놓게 하시며, 잊고 있던 속량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소서.” 나는 하나님께 빚진 자였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놓아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사람을 붙들지 않고 놓아주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적용) 1. 사기 당하였다고 정죄하며 미워했던 친구를 이제 손에서 놓아주겠습니다. 더 이상 그 친구에게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내려놓겠습니다. 2. 날 억울하게 재판하였던 판사님을 욕하고 복수한다고 했던 마음을 이제 내려놓고 분노를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3. 처남의 힘든 일과 아픔을 공감하여 그의 구원을 위해 실천하여 추석 때 처남과 대화하고 방문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