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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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15:1-11
1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2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3 이방인에게는 네가 독촉하려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준 것은 네 손에서 면제하라
4-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9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10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 네 손을 펼지니라 ♱
하나님 아버지, 내 권리와 소유를 움켜쥐지 않고 탕감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궁핍한 형제에게 손을 펼칠 수 있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우리의 손을 펼치려면 첫째, 내가 먼저 탕감받은 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1절에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고 해요. 이스라엘에는 7년마다 빚을 면제해 주는 규례가 있었습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 입장에서 보면 참 어려운 명령이지요. 받을 돈이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이제는 내게 받을 권리가 있는 것까지 내려놓으라는 거예요. 내가 채권자라면 정말 듣기 힘든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런 명령을 주실까요? 2절에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고 해요. 사람을 봐서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내가 하나님께 1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면 나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형제도 품어 참을 수 있게 됩니다.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모든 죄의 빚을 탕감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같은 은혜를 입은 형제에게 내가 언제까지 권리만 주장하며 독촉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면제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내 권리를 내려놓는 십자가의 태도입니다. ‘내가 옳아. 그러니 네가 사과해야 해. 네가 갚아야 해.’하며 끝까지 받아내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큐티를 하다 보면 이런 말씀 때문에 오히려 괴로울 때가 있죠. 말씀을 모를 때는 그냥 내 권리대로 살면 되는데 말씀을 들으니 면제하라는 말씀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괴로운 몸이 바로 천성으로 가는 훈련입니다. 그러면 4절과 5절에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가난은 단지 물질의 궁핍함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영적으로도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6절에는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라고 해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허락하신 복의 분량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며 내 권리를 내려놓는 사람에게는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부유함을 주십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부자인 것입니다. 적용 질문 드릴게요.
♱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큰 죄의 빚을 탕감받았는지를 기억합니까? 정당한 권리라는 이유로 끝까지 받아내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하나님 때문에 면제해 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의 손을 펼치려면 둘째, 내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7절에 보니 가난한 형제에게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고 손을 움켜쥐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앞에 중요한 말이 나오죠. 바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입니다. 내가 사는 땅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내가 가진 물질도 하나님이 주신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완악해져 손을 움켜쥐게 됩니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번 돈인데 너만 힘드냐? 나도 여유가 없어" 하며 자꾸 계산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8절에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고 아주 분명히 명령합니다. 조금 도와주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필요한 만큼 넉넉히 주라는 거예요. 이것은 단순히 윤리 도덕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소유의 주인이 정말 하나님이신가를 시험하는 문제입니다.
9절을 보면 더 현실적인 상황이 나옵니다. 면제년이 가까워지면 돈을 빌려주기가 딱 싫어지잖아요. '이제 곧 7년째인데 빌려주면 못 받는 것 아니야?' 하는 계산이 서는 거예요. 형제의 형편보다 내 손해를 먼저 계산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악한 생각이라고 하세요. 우리도 그렇지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가도 '이 사람이 갚을 수 있을까? 내가 괜히 손해 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 사람을 보는 눈까지 달라집니다. 말씀은 이것을 악한 눈이라 표현해요.
10절에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고 합니다. 사실 주면서 안 아까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적으로는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손을 펴는 사람에게는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라’는 약속이 뒤따릅니다. 하나님 나라는 반대입니다. 펼칠수록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나누는 사람이 오히려 부유해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예요.
그리고 11절에 보면‘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라고 해요. 이 땅은 천국이 아니기에 언제나 부족한 사람도 있고 넉넉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차이를 통해 서로 훈련받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주는 훈련을 하고 어떤 사람은 받는 훈련을 합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 서로 섬기며 하나님 나라를 배워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하나님이 주신 것을 내 것이라며 움켜쥐고 있지는 않나요? 손해를 계산하며 가난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내가 마음과 손을 펴서 넉넉히 섬겨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기적인 짠순이로 살다가 인색한 모습을 회개하고 십일조를 드리며 다른 지체를 위해 물질을 쓰는 적용도 하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난 저는 3살 때 얼굴에 화상을 입었어요. 어머니는 저의 수술비를 마련하고자 작은 슈퍼를 운영하셨는데 저는 열심히 일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인색함이 생겼어요. 대학에 다닐 때는 화려한 캠퍼스에서 밝게 빛나는 친구들의 얼굴과 화상으로 일그러진 제 얼굴을 비교하며 깊은 열등감에 빠졌어요. 그러다 병원에서 고칠 수 없다는 진단까지 들으니 이대로는 취업도 결혼도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어 비가 오면 물이 새는 어두운 지하방에서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그 후 저는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소천하시는 사건으로 하나님을 만났어요. 그러나 제게는 여전히 돈을 사랑하는 마음과 인색함이 있었어요. 예배 시간에 지갑에 천 원이 있으면 헌금했지만 만 원짜리만 있으면 아까워서 헌금하지 않았어요. 적은 월급으로 빠듯이 살다 보니 십일조를 하라는 말씀에도 순종하기가 너무 어려웠죠. 그러다 복을 받고자 억지로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돈에 집착하고 인색한 제 모습을 회개했어요. 그리고 가난한 형제를 위해 물질을 쓰는 적용도 하게 되었습니다.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는 지금도 저는 여전히 돈을 좋아하고 탐심이 종종 올라와요. 하지만 이제는 이기적인 짠순이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릴 것만 있고 사람들에게 넉넉히 줄 것만 있는 인생을 살아가길 원해요. 저의 적용은 ‘물질 고난을 겪는 지체에게 반찬을 정성껏 만들어주겠습니다. 자녀들에게 저의 간증을 나누며 십일조 신앙을 가르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손에 쥔 것이 있어야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도 권리도 사람도 쉽게 놓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은 ‘네 손을 펼지니라’고 말씀하세요. 왜냐하면, 이미 우리가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면제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권리를 내려놓고 내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인정하며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마음과 손을 펴시길 바라요. 우리가 움켜쥔 손을 펼 때 우리 손이 닿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복을 더해주실 줄 믿습니다. 주께 받은 은혜를 면제와 나눔으로 흘려보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갚을 수 없는 죄의 빚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탕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가 옳다 주장하며 받아야 할 것을 끝까지 받아내려 합니다. 손해 보지 않으려고 돈과 권리를 움켜쥐고 살아갑니다. 주님, 내가 먼저 면제받은 자임을 잊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사람이 아닌 하나님 때문에 내려놓고 내 권리보다 한 영혼을 살리는 일을 더 귀하게 여기는 저희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주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함으로 아끼는 마음을 내려놓고 필요한 자에게 마음과 손을 넉넉히 펼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주는 훈련도 받는 훈련도 잘 감당하게 하시며 받은 은혜를 면제와 나눔으로 흘려보내는 저희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