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14:3-21
3 너는 가증한 것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4 너희가 먹을 만한 짐승은 이러하니 곧 소와 양과 염소와
5 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름한 사슴과 산 염소와 볼기가 흰 노루와 뿔이 긴 사슴과 산양들이라
6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모든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
7 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 곧 낙타와 토끼와 사반, 그것들은 새김질은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너희에게 부정하고
8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
9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모든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요
10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모든 것은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에게 부정함이니라
11 정한 새는 모두 너희가 먹으려니와
12 이런 것은 먹지 못할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물수리와
13 매와 새매와 매의 종류와
14 까마귀 종류와
15 타조와 타흐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16 올빼미와 부엉이와 흰 올빼미와
17 당아와 올응과 노자와
18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며
19 또 날기도 하고 기어다니기도 하는 것은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먹지 말 것이나
20 정한 새는 모두 너희가 먹을지니라
21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스스로 죽은 모든 것은 먹지 말 것이나 그것을 성중에 거류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파는 것은 가하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
♱ 거룩한 백성의 구별된 삶 ♱
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새김질하고 적용함으로 거룩한 백성의 구별된 삶을 잘 살아내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되려면 첫째, 말씀을 새김질하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모세는 오늘 3절에서 ‘너는 가증한 것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고 단호히 명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면서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까지 아주 세밀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먹는 것 하나까지 구별하게 하심으로 삶의 가장 사소한 자리에서도 거룩한 백성임을 기억하게 하신 거예요.
6절을 보면 먹을 수 있는 정결한 짐승의 기준은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모든 것’이라고 합니다. 굽이 갈라졌다는 것은 세상의 더러움과 분명하게 분리되어 구별된 삶, 곧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거룩한 행실을 상징해요. 그리고 새김질을 한다는 것은 먹은 음식을 다시 꺼내어 씹고 소화하듯 들은 말씀을 날마다 깊이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며 내면화하는 삶을 뜻해요. 큐티하는 삶이라고도 할 수 있죠. 중요한 것은 이 둘 중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7절에 낙타나 토끼처럼 새김질은 하지만 굽이 갈라지지 않은 짐승은 부정하다고 해요. 머리로는 말씀을 달달 외우고 은혜도 받는데 정작 삶의 현장에서는 세상 사람과 똑같이 타협하며 사는 무력한 신앙이죠.
반대로 8절에 돼지처럼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는 짐승도 부정하다고 해요. 주일 예배도 잘 드리고 겉모습은 꽤 거룩해 보이는데 그 속에는 말씀 묵상도, 한 영혼을 향한 애통함도 없는 위선적인 신앙인 거예요. 이런 것은 먹지도 말고 그 사체도 만지지 말라고 엄히 경고합니다. 그러니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나 껍데기 뿐인 율법주의는 절연히 끊어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꼭꼭 씹어먹고 꺼내어 또 씹으며 그 말씀을 내 삶에서 손과 발을 움직이는 구체적인 적용으로 살아내는 것이 곧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셨기에 말씀 묵상과 적용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드릴게요.
♱ 말씀은 잘 듣고 은혜도 받는데, 구별된 행실이 없는 ‘낙타’같진 않나요? 겉모습은 거룩한 직분자이면서 정작 큐티도 안 하고 내 죄를 보는 것도 힘들어하는 ‘돼지’같은 모습은 없습니까? 오늘 내가 새김질하여 살아내야 할 말씀은 무엇인가요?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되려면 둘째, 죄와 사망의 문화를 거스르고 생명의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9절, 10절에 물고기 중에 정결한 것은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모든 것’이라고 해요. 비늘은 외부의 오염과 공격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는 갑옷 역할을 하며 지느러미는 거센 물결을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는 역동적인 힘을 상징하죠. 성도는 죽은 물고기처럼 세상의 정욕과 유행이라는 탕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자가 아닙니다. 믿음의 지느러미를 힘차게 저어 타락한 문화를 거슬러 오르고 거룩의 비늘로 죄악의 침투를 막아내는 자가 바로 성도입니다. 세상이 다 음란과 쾌락을 쫓아 돈을 향해 흘러갈 때, 나 혼자서라도 생명을 향해 몸부림치며 세상의 물결을 역류하여 나아가는 모습이 곧 그리스도인의 생명력입니다.
12절부터 18절에는 먹지 못할 부정한 새들이 기록되죠. 독수리, 솔개, 까마귀, 올빼미 등은 썩은 채를 파먹거나 다른 짐승을 잔인하게 잡아먹는 맹금류입니다. 하나님이 이것들을 부정하다고 규정하신 데에는 죽음과 파괴, 잔인함의 속성을 멀리하라는 뜻이 담겨 있죠. 남을 물어뜯으며 상처를 주는 말을 즐기거나 잔인한 세상 미디어를 탐닉하는 것은 내 영혼에 부정한 고기를 먹이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21절에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스스로 죽은 모든 것은 먹지 말 것이나 그것을 성중에 거류하는 객에게 주어 먹게 하거나 이방인에게 파는 것은 가하니라’고 해요. 똑같은 행동인데 금해야 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해도 무방한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왜 그렇죠? 내가 바로 여호와의 성민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왜 남은 되는데 나는 안 되느냐 하며 비교하는 게 무의미합니다. 우리는 그저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로 뒤이어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지니라’고 해요. 염소를 먹는 건 무방한데 그 고기를 어미의 젖에 삶지는 말라는 거예요. 새끼를 먹여 살려야 할 그 젖으로 새끼를 요리하는 건 생명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 미각의 만족을 위해 그렇게 잔인한 방법을 쓰지 말라는 거에요. 이 말씀은 출애굽기에도 두 번이나 나올 만큼 거듭 강조됩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제물 자체보다 인격적인 제사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예물을 드려도 그 과정이 잔인하면 주님은 그 예물을 기뻐하지 않으세요. 그러니 믿는 우리에게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목적의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 세상 가지관과 유행에 휩쓸려 생명력 없이 흘러 떠내려가는 모습은 없나요? “왜 남은 되는데 나는 안 되느냐”하며 비교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결과만 좋으면 다 괜찮다며 잘못된 과정을 보고도 모른 척 눈 감고 있진 않나요?
소그룹 리더로 부르심을 받자마자 술을 마셔서 부끄러웠지만 자발적으로 술을 절제하는 것이 구별된 여호와의 성민으로 살아가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았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3년 전 새해 첫날 저는 교회 소그룹 리더로 세워졌어요. 그런데 그날 저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죠. 다음 날 아침 소그룹 리더가 되자마자 술을 마신 게 부끄러워 자괴감이 들고 그날 이후로 술을 끊고 한동안 직장이나 외부 모임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 적용을 했어요. 그런데 직장에서 노동조합 대표를 맡고 소산별 노동조합의 임원을 맡으니 술자리가 많아졌어요. 처음에는 신앙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며 탄산음료를 마셨지요. 그러나 언제부턴가 한 잔 두 잔 술을 받아 마시다 급기야 거나하게 술에 취하고 말았어요. ‘술을 마시면 그리스도인이 못 되고 꼭 술을 안 마셔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인가?’하며 하나님께 반항하기도 했지요. 그러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은 제가 자발적으로 술을 절제하여 여호와의 성민으로서 구별되게 살아가며 사명을 감당하길 원하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저는 공공기관 재직자로서 또 노동조합의 임원으로서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어요. 하지만 정작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제 삶 가운데 잘 드러나지 않았죠. 이제는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교회 지체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말씀대로 적용하며 살아가고 아직 믿음이 없는 친지들에게 복음도 전할 수 있길 소망해요. 저의 적용은 ‘불필요한 모임을 줄여서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크고 작은 행동과 결정 앞에 말씀 묵상과 기도를 우선시하고 아내와 교회 공동체에도 묻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성민으로 부르신 이유는 먹고 마시는 일상의 순간까지 세상과 거룩하게 구별되게 하시려는 거예요. 그러려면 겉모습만 그럴듯한 껍데기 신앙을 버리고 날마다 말씀을 깊이 새김질하며 적용함으로 삶의 행실을 세상의 것과 구별해야 하지요. 거센 세상의 파도를 믿음의 지느러미로 거슬러 오르며 생명을 죽이는 잔인한 풍속을 단호히 거절할 수 있기를 바라요. 우리 삶의 작은 선택 하나도 말씀대로 결단하고 행동함으로 생명을 향해 하나님 나라를 향해 힘차게 거슬러 오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평생을 예배당에 앉아 있으면서도 말씀에 새김질도 없고 십자가의 달라진 행실도 없는 위선자 같은 저희의 모습을 봅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남을 물어뜯고 정죄하며 죽이는 맹금류 같은 모습도 있습니다. 지느러미와 비늘이 다 떨어져 세상 죄악의 탁류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저희의 나약함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왜 남은 되는데 나는 안 되느냐며 비교하고 원망하기를 그치고 우리가 여호와의 성민이기에 지켜야 할 경계가 있음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생명의 질서를 짓밟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가증한 양식을 탐하지 않고 오직 말씀을 깊이 새김질하여 이 타락한 세상 속에서 생명의 역류를 이루는 거룩한 성민이 되도록 붙잡아주시옵소서.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한결같이 구별된 삶을 살아감으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는 저희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