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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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요약 (신명기 14:3~21) 구별된 백성이 먹어야 할 음식과 먹지 말아야할 음식이다. 굽이 갈라지고 쪽발이며 새김질하는 육식동물,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 정결한 새 종류는 먹되 굽이 갈가지거나 쪽발 둘중 하나만 있는 육류 비늘 없는 물고기 시체를 먹는 새는 금하는 음식이다.
** 묵상하기
* 새김질 :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고 심중에 새기는 내면적 신앙.
* 굽이 갈라짐 :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외형적 삶과 행위.
나는 최근 딸을 독립시키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힘이 들었다.
딸은 고등학교를 졸업 후 몇 개월 후에 독립하였었다.
그때도 너무 이른 독립이기도 했고 도와줄 능력도 없다고 여기고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아빠의 금전적인 도움을 받아 독립을 하여 3년을 살았다. 무질서하고 무절제하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딸을 독립시킨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아빠의 도움으로 독립하겠다는 딸을 붙잡을 수도 없었다. 독립하였어도 딸에 대한 염려는 늘 있었다.
그리고 3년 후 딸은 직장을 잃고 생활비를 절약한다고 다시 합가를 하겠다고 들어온지 1년이 지났다.
성인으로서 최소한 지킬 몇 가지 생활방식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규칙을 서로 합의하에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딸 스스로 지킨 적이 거의 없고 참을 수 없을 만큼 참다가 수차례 잔소리를 해야 겨우 실행하거나 참을 수 없는 내가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딸이 나를 기만하고 조롱하는 것 같은 느낌을 수차례 받았지만 딸의 복잡한 마음도 어느 정도는 헤아리기에 엄마로서 받아 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딸이 좀 더 건강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아주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원점으로 돌아가는 딸을 보면서 ....
딸이 원망되기도 했지만 죄책감도 들었다.
최근 보험 설계사가 된 딸이 나에게 보험 권유를 하면서 딸의 마음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
딸은 자신이 설계한 보험이 나에게 필요하니 나를 위해서 보험을 가입을 강요하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큰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다.
가입 여부를 두고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딸이 독립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보험 가입이 무척 부담이 되는 금액이지만 딸에게 도움이 된다면 금액 조정을 해서 가입을 해 주고도 싶었다. 그러나 딸은 자신이 설계한 금액을 들어야지 자신의 성과금이 채워진다며 급하게 몰아붙이니 억지 가입을 진행하는 중 시간 초과로 가입진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과정 중에 딸은 ‘나는 그 돈 있으면 당장 독립하지.’라는 말과 딸의 태도에서 실망감 뿐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감정들로 딸애게 냉랭해지고 벽을 치게 되는 나를 느꼈다.
최근 아들을 결혼시키고 난 후 부부싸움이 잦아졌다는 부부의 사례를 연구하던 중 아내에게 있는 감정이 남편처럼 의지하던 아들에 대한 ‘상실감’이라는 것을 알았고 나의 감정에도 있는 감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딸을 입양할 당시 사랑하는 마음과 건강한 가정의 울타리면 충분하다는 마음이었다.
아기를 면접을 보고 선택하는 시간이 주어진다고 했지만 아기를 보러가기 전 나는 남편에게 면접 볼 필요 없이 어차피 하나님께서 보내주실 아이일 것이니 처음 만난아기를 그냥 입양하자고 제안했고 그 아이가 지금의 딸이다.
딸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기질적으로 극 내향적인 우리 아이들과 달리 밝고 무척 외향적이었다.
새로운 동네를 이사 가면 딸아이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알 정도였다.
이런 딸을 양육하면서 ‘이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나는 충분하다. 더 바랄 것이 없다. 이 아이에게 나중에라도 보상을 받으려는 마음은 절대 가지지 말자.’라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양육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 아이에게 배신감만은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도는 했었다.
오늘 말씀에
* ~~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모든 것~~~ 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6.7절)
==> 굽이 갈라진 것은 세상과 구별됨을 새김질은 말씀을 새김질함을 나타낸다.
딸을 입양할 때 나의 모습은 말씀은 없고 구별된 자로 의로운 척하는 행위만 있었다는 깨닫게 된다.
아들들에게는 성경적이지 않다는 남편의 말에 유아세례도 받지 않았으면서 딸은 만인에게 공포라도 하듯 유아세례를 받게 했다.
딸을 입양할 때 미리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면 수용했을 아들들에게 전후 사정 설명 없이 입양사실을 통보하는 식이었다.
그때 나는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절차를 밟자는 권유를 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키울 것인데 지깟것들에게 뭐하러...’이라는 일침에 나는 더 이상 주장하지 못했다.
아들들은 아들들 나름대로 상처였을 텐데, 아무 불평 없이 동생을 돌보는 아들들을 기특하게 여길 뿐 그 아이들의 마음은 헤아려주지 못했었다는 아쉬움을 뒤늦게야 깨닫는다.
최근 알 수 없는 내 마음은 무엇일까? 어디에서 온 마음일까? 를 생각해도 선명하지 않았다.
며칠 동안 알 수 없는 감정들은 나를 우울하게 했고 절망하게도 했다.
이러한 나의 감정속에 슬픔 분노감, 배신감, 서운함, 죄책감이 혼재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결혼 후 남편과 시댁에 30년간 헌신했지만 냠편은 나에게 상실감 배신감 분노감을 안겨주었다.
3개월전에 결혼한 둘째는 성숙하게 독립시킬 수 있었다.
나의 이상형이라고까지 말했던 둘째 아들이었기에 이것도 서서히 보내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들부부가 한 달 전 쯤 방문 계획이 있었지만, 며느리의 사정으로 불발이 되었다.
둘째에게 느껴지던 상실감과 서운함은 이어지는 딸의 문제로 그 감정을 추스릴새도 없었다.
나는 딸의 태도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또다른 상실감이 올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어제 자기직전에 알고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얼마나 울다가 잠들었는지...
지금 이 아이에게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약간의 배신감은 느끼는 것 같다.
딸의 사건으로 나의 신앙의 실체를 보고 깨닫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오랜 신앙생활을 했지만 내안에 말씀이 없었으니 분별 할 줄도 몰랐고 표면적으로 의롭게 보였던 남편을 우상 삼았던 나의 신앙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가증하였는지를 깨닫게 된 ... 오늘의 말씀이다.
주님 쓰레기같은 마음을 깨닫고 회개로 청소한 자리에 바로 연민의 감정으로 채우는 저를 봅니다. 되었다 함이 없는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