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12:8-19
8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
9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11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12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13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15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으려니와
16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17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네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네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네 각 성에서 먹지 말고
18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19 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 각기 소견대로 하지 말라 ♱
하나님 아버지,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교만을 꺾고 오직 주님의 방법대로 구원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참된 안식을 누리려면 첫째,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8절에서 모세는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하며 강력히 경고해요. 광야 시절에는 이리저리 떠도느라 저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며 일마다 말이 잘 참 많았지요. 그러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는 결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죠? 9절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라고 해요. 구원의 과정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지요.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꺾여야 할 내 고집이 있고 순종해야 할 영역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안식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말씀마다 고개가 꺾어져 순종하면 안식을 누릴 수 있는데 일마다 내가 잘났다고 하니 안식이 없는 거예요. 누가 내 잘못을 지적하면 내가 언제 그랬냐 하며 화부터 내잖아요. 그러니 안식을 누릴 수가 없죠. 그런데 10절을 보면 진정한 안식은 내 마음대로 편히 쉬는 게 아니에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라고 하지요. 일단 요단부터 건너야 하고 건너가서는 사방의 대적과 싸워 이겨야 그 땅을 기업으로 얻고 주님이 주시는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힘들기만 한 사람은 없어요. 전투할 때가 있는가 하면 쉴 때도 있고 그러면서 풍성히 누릴 때도 있죠. 그래서 내 삶의 한 문제가 끝나고 잠시 평안할 때가 중요해요. 그때 미리미리 말씀을 듣고 먼저 지나온 신앙 선배들의 간증을 들어두어야 다음에 같은 문제 앞에서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2절에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 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라’고 해요. 우리는 높은 사람과 어울리며 즐거워하기를 바라곤 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자녀와 노비,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처음 예수 믿을 때는 이런 게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어요. 점차 말씀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면 비로소 자녀와 노비, 레위인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 빚지고 환난 당한 아둘람 공동체 사람들이 모여 다윗 왕국을 이끌었듯 하나님 나라는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나라인 것입니다. 적용해 보세요.
♱ 가정과 교회에서 내 생각만 옳다며 말이 많지는 않습니까? 말씀마다 고개가 꺾어져 순종하나요, 여전히 일마다 내가 잘났다며 고집부리나요? 잠시 평안할 때 누구와 함께 즐거워합니까?
참된 안식을 누리려면 둘째,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과 질서에 순종해야 합니다.
13절, 14절에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곳에서 번제를 드리고’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헌신과 회개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아무데서나 내 감정에 치우쳐하는 헌신은 삼가야 해요. 남에게 인정받고자 헌신하고 내가 낸 헌금을 은근히 자랑하는 것은 종교적 과시일 뿐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예배할 방법과 장소를 정해주셨어요. 그러니 교만할 것도 낙심할 것도 없어요. 약속의 땅을 주신 이유가 그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며 주님을 예배하게 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5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라고 해요.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다만 눈여겨볼 것은 ‘주신 복을 따라’라는 말씀이에요. 복의 분량은 저마다 다르거든요. 어떤 집은 갈치를 먹고 어떤 집은 고등어를 먹는데 그 수준이 다를 수 있는 거예요. 내게 주신 분량대로 감사히 누리면 되는 것이죠.
그런데 16절에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라고 분명한 제한을 둡니다.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피를 엄중히 다루셨어요. 생명이 피에 있고 무엇보다 훗날 예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그 피를 흘리실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이 제한은 생명의 귀중함과 십자가 대속을 잊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유롭게 누리되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는 거예요.
17절 18절에 언급하는 십일조와 서원 예물도 아무 데서나 먹지 말고 ‘택하실 곳’에서 자녀와 노비와 레위인과 함께 먹으며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19절에 ‘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합니다. 내 소견대로 쓰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나누며 섬길 때 참된 구원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내 마음대로 과시하는 헌신은 없습니까?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게 주신 분량의 복을 감사히 누리나요? 그 복을 누리되 결코 넘지 말아야 할 생명의 선은 확실히 지킵니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다 건강 고난, 사업 고난을 만난 뒤 말씀을 묵상하고 회개하며 하루하루 공동체에 묻고 간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어려서부터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며 똑똑하다 잘한다라는 칭찬을 받고 결과도 비교적 좋았기에 우쭐대며 자랐어요. 그러다 의사가 되어 병원을 운영하면서 내 소견이 맞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죠. 우쭐한 마음은 어느새 교만으로 변해 병원 일을 아내나 교회 공동체와 상의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했어요. 모든 일이 제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을 때 갑자기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어요. 그러나 저는 계속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한 직원에게 병원의 실무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는 병원과 관련된 사업체를 운영하며 자기 이익을 취했어요. 저는 그를 해고하고 이 사태를 수습하고자 주말 부부 생활을 하고 있던 아내에게 도와달라고 했지요. 아내는 기도하고 교회 공동체에 물어본 다음 제 부탁을 들어주었는데 제가 병원을 운영하다가 생긴 많은 문제를 수습하느라 힘들어했어요. 그러다 보니 퇴근 후 집에 오면 언쟁이 시작되었고 각자 자기 생각을 주장하느라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 아들, 딸이 ‘엄마 아빠는 주말 부부 안 했으면 벌써 이혼했을 거예요’라고 말할 정도로 자주 다투었어요. 그럼에도 저희 부부는 공동체 안에서 매일 같은 말씀을 묵상하고 회개하며 전날의 잘못을 사과하면서 하루하루 지내고 있어요. 이렇게 가족 모두 같은 말씀으로 큐티 하며 나누고 공동체에 물어보며 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라 생각돼요. 아내를 향한 불평이 올라올 때마다 하나님이 택하신 가정에서 아내와 함께 먹고 즐거워하라고 하신 오늘 말씀을 기억하겠습니다. 저의 적용은 ‘아내가 병원 일을 지적할 때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결과라고 인정하며 ‘당신 생각은 어때?’라고 묻겠습니다. 늘 아내가 나보다 옳다라는 마음으로 대화하겠습니다.’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지식과 경험이 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하나님의 질서를 넘어서는 순간 그것은 교만이 됩니다. 각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불평하던 옛 습관을 버리고 들려지는 말씀마다 고개가 꺾여져 순종하게 될 때 비로소 안식이 찾아옵니다. 그 안식은 나 혼자 즐기라고 주신 것이 아니에요. 연약하고 소외된 지체들과 함께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언제나 말씀의 질서대로 순종하고 어떤 일도 믿음의 공동체에 묻고 감으로 진정한 구원의 안식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평생을 똑똑한 척하며 내 경험과 판단만이 옳다고 고집하다가 가족과 공동체에 많은 말로 상처를 주는 저희입니다.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다가 고난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말씀 앞에 엎드리는 어리석음도 있습니다. 아무데서나 내 의를 과시하고자 행하던 헛된 헌신을 거두고 오직 주님이 명하신 방법대로 철저히 나를 깨뜨려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제게 주신 분량의 복을 감사히 누리게 하시고 주님이 주신 복을 마음껏 누리되 주어진 선을 넘지 않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무엇보다 평안할 때 나 혼자 즐거워하지 않고 기업 없는 레위인 같은 연약한 지체들과 함께 기뻐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이 허락하시는 참된 안식을 받아 누리는 저희가 되도록 함께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