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11:26-12:7
11:26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27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28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30 이 두 산은 요단 강 저쪽 곧 해지는 쪽으로 가는 길 뒤 길갈 맞은편 모레 상수리나무 곁의 아라바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의 땅에 있지 아니하냐
31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려 하나니 반드시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 거주할지라
32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베푸는 모든 규례와 법도를 너희는 지켜 행할지니라
12:1 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2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를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3 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4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5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6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7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 복과 저주의 갈림길 ♱
하나님 아버지, 내 안에 숨은 우상들을 온전히 파멸하고 약속하신 복의 길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복과 저주의 갈림길에서 생명을 택하려면 첫째, 내 안의 세상 가치관과 은밀한 우상을 철저히 깨뜨려야 합니다.
26절에서 모세는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라고 해요. 선포는 모세가 하지만 하나님이 모세의 입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입니다. 중간 지대는 없어요. 복 아니면 저주입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되고 그 도에서 돌이켜 다른 신을 따르면 저주를 받습니다.
그래서 29절에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에 이르면 ‘그리심 산에서는 축복을 애발 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고 명하지요. 그런데 12장 1절에 이 약속의 땅은 ‘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이라고 해요. 이렇듯 하나님 나라는 내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서 얻는 땅입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평생에 지켜야 할 규례와 법도가 있어요. 그러니 구원은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2절에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를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라고 해요. 내가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평안한 가정을 이루었다고 끝이 아니죠. 그 응답받은 자리, 곧 차지하게 하신 그 땅이 바로 가장 위험하고 치열한 영적 전쟁터입니다. 붙고 나니 대학가에 술집과 카페, 쇼핑몰이 즐비하고 미팅신, 다이어트신, 미남미녀 숭배가 나를 유혹하거든요. 좋은 곳에 취직하면 어떤가요? 골프신, 접대신, 돈과 성공의 신이 언제든 내 손을 잡으려고 달려들지요. 그 우상들의 절하며 세상을 따라간다면 그것은 곧 저주의 산, 에발 산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곳에서 멸하라’고 합니다. 거룩은 타협하지 않는 과감한 결단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차마 끊어내지 못한 은밀한 죄, 돈과 학벌과 명품을 향한 집착, 내 자식을 남보다 뛰어나게 키우려는 욕망의 신상들을 사정없이 찍어내고 불살라야 해요. 아까워하면서가 아니라 마땅히 여김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금송아지 사건 때 3천 명이나 죽었다고 놀랄 게 아니에요. 다 죽어 마땅한데 조금밖에 안 죽었다고 해야 하는 거예요. 기껏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도 정작 천국에 못 간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 억울함이 뼈저리게 느껴져야 아낌없이 우상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해 보세요.
♱ 오늘 내가 선택해야 할 복과 순종의 길은 무엇입니까? 헐고 부수어야 할 ‘푸른 나무 아래’의 우상은 무엇이죠? 버리기가 아까워 은밀히 감추어 둔 죄는 없나요?
복과 저주의 갈림길에서 생명을 택하려면, 둘째 자기 소견대로가 아닌 주님이 택하신 방법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4절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라고 해요. 이방 민족들은 자기가 편한 곳, 즉 보기 좋은 높은 산이나 푸른 나무 아래 어디서든 자기 마음대로 우상에게 제사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내 기분이나 편의주의가 통하지 않아요.
5절에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라고 하지요.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 하나님이 택하신 십자가 복음의 길로만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택하신 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자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 공동체입니다. 기복과 신비주의를 따라 ‘내 병 고쳐주세요.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 기도하며 떼쓰는 예배는 이방신을 섬기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병 고침을 위해 재물을 위해서도 기도해야겠죠. 그런데 영혼 구원이나 거룩이 아니라 단순히 나의 행복만을 위해 구한다면 그것이 곧 기복입니다. 참된 예배는 6절에 나오는 번제와 희생 제물, 십일조, 서원제, 낙헌제처럼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부인할 내 몫의 십자가를 짊어지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올바른 회개와 헌신으로 내 고집이 부서질 때 비로소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어요.
내 죄를 뿌리 뽑고 온전히 파멸하면 7절 말씀처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하게 되지요. 온 가족이 함께 예배의 자리에 앉아 주님이 주신 구원의 기쁨을 나누는 것, 성도가 모여 교제하며 즐거워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천국을 누리는 삶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내 편의와 기복적인 마음으로 이방 신을 대하듯 하나님을 예배하지는 않나요? 내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위해 헌신함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립니까?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게임을 우상으로 섬긴 것을 회개하고 이제는 큐티와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한 초등학생의 어린이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게임을 너무 좋아해요. 그런데 엄마는 큐티와 공부를 다 끝내야 게임을 할 수 있다고 하세요. 그래서 빨리 게임을 하려고 억지로 큐티와 공부를 하고 정해진 게임 시간도 어겼어요. 결국 게임이 우상이 되어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혼난 뒤 게임은 금요일 저녁에만 하기로 했죠. 3절 말씀에서 모세는 아세라 우상을 불태우고 다른 우상들을 찍어버리라고 해요. 게임을 우상 삼은 것을 회개하며 큐티와 공부를 먼저 열심히 할게요. 그리고 게임은 약속한 시간에만 할래요. 저의 적용은 ‘게임을 하자고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면 금요일에만 할 수 있다고 말할게요’입니다.”
예배에 방해가 될 만큼 게임 생각으로 가득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겠다는 9살 어린이의 샛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의 우상은 스마트폰 게임이에요. 주말에만 게임을 할 수 있다 보니 예배 시간에도 빨리 게임하고 싶다라는 생각에 멍때릴 때가 있어요. 그런데 3절에서 우상을 불태우고 완전히 없애버리라고 하세요. 게임을 아예 안 하는 건 아직 자신이 없지만, 예배 시간을 방해하는 게임 생각을 깨뜨리고 더 열심히 찬양하고 큰소리로 기도해 볼게요. 예배 시간에는 하나님만 생각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래요. 저의 적용은 ‘예배 시간에 신나게 뛰며 찬양하고 큰 소리로 기도할게요’입니다.”
두 어린이가 게임이 우상이라고 똑같이 말하네요. 아이들한테는 정말 게임과 스마트폰이 큰 우상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삶이 아무리 성공하고 평안해 보여도 하나님의 질서가 없다면 그것은 저주의 길입니다. 내 속에 똬리를 튼 교만과 이기심, 세상의 이름들을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며 사정없이 헐고 깨뜨려야 해요. 내 편의에 따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드리는 이방 제사를 멈추고 피 흘림이 있는 진정한 번제와 헌신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온 가족이 여호와 앞에서 참된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드립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과 욕심을 따라 저주의 길을 기웃거리는 저희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구원의 길을 가면서도 여전히 곁눈질하며 세상의 푸른 나무 아래를 찾아 쾌락과 돈과 자식 성공의 우상을 섬길 때가 많습니다. 이런 저희의 완악함을 십자가에 못 박길 원합니다. 저희 속에 있는 모든 우상을 다 끄집어내어 헐고 깨뜨리고 불사르게 도와주시옵소서. 얄팍한 기복 신앙으로 주님을 내 편의에 따라 섬기려 한 이방 제사의 모습도 다 내버리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이 택하신 곳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저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피흘림이 있는 회개의 제단을 쌓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이 진정으로 여호와 앞에서 기뻐 뛰며 찬양하는 복된 가문이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주님, 특별히 다음 세대 아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미디어와 스마트폰 게임의 유혹으로부터 이들을 지켜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큐티를 먼저 하고 각자에게 맡겨진 일들을 우선함으로 복의 길을 선택하여 걸어가는 우리의 자녀들이 되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