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9:11-21
11 사십 주 사십 야를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돌판 곧 언약의 두 돌판을 주시고
12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
13 여호와께서 또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14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고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시기로
15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에는 불이 붙었고 언약의 두 돌판은 내 두 손에 있었느니라
16 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도를 빨리 떠났기로
17 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으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노라
18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여 크게 죄를 지었음이라
19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였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 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21 너희의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
♱ 그때에도 기도하고 ♱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이 무너진 그때에도 기도하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그때에도 기도하려면 첫째, 언약의 두 돌판을 붙들어야 합니다.
어제 1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며 드디어 요단을 건너 강대한 적들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선언하지요. 그런데 전략과 전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얼마나 악하고 목이 곧은 백성인지 계속해서 지적합니다. 이를 아는 것이 그 땅을 차지하는 비결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모든 것이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 역시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반역하는 족속이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11절에 ‘사십 주 사십 야를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 내게 돌판 곧 언약의 두 돌판을 주시고’라고 해요. 모세는 산에 올라가 40일간 금식하며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그런데 40일이 끝나는 날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12절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여기서 속히 내려가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도를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느니라’고 하셨지요.
이 백성을 누가 인도했나요? 하나님이 ‘나의 백성’이라 하며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잖아요. 그런데 12절에서는 모세에게 ‘네 백성’이라고 하셨어요. 왜죠? 이스라엘이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장 큰 우상은 바로 내 자아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잠시만 눈을 떼면 스스로 부패하여 금세 자기 욕심을 위해 우상을 부어 만드는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떠나서는 한순간도 거룩할 수 없죠.
그러자 주님은 13절에서 그들을 ‘목이 곧은 백성’이라 하시고 14절에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고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셨어요. 모든 약속이 무너지고 깨어져 멸망 당해 마땅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15절에 보니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산에는 불이 붙었고 언약의 두 돌판은 내 두 손에 있었느니라’고 하지요. 모든 것이 끝났다 하는 그 순간에도 모세의 두 손에는 언약의 두 돌판이 있었다고 해요. 이 언약의 말씀을 끝까지 놓지 않아야 하는 것이죠. 그래야 다시 기도할 수 있고 다시 돌이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무슨 약속이 깨졌나요? 결혼 약속인가요? 거래처와의 약속인가요? 그것이 스스로 부패하여 나 자신을 위해 우상을 만든 결과임이 인정되나요? 그 상황에도 약속의 두 돌판을 끝까지 붙들겠습니까?
그때에도 기도하려면 둘째, 내 자아를 깨뜨려야 합니다.
16절에 ‘내가 본즉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어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도를 빨리 떠났기로’라고 해요.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보니 난리가 났습니다. 모든 백성이 우상을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우상이 무엇인가요? 출애굽기에 보면 금송아지라고 하죠. 그런데 놀랍게도 아론은 이 금송아지를 가리켜 하나님이라 명했어요.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그 심연을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자기를 위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잖아요.
저 역시 그랬어요. 하나님을 위한다며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지만 실상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장로님 댁에 시집간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결국 외제차를 몰고 나온 남편의 재력을 보며 부잣집이 좋아 시집간 것이었죠. 그러니 이 금송아지는 결국 내 자아입니다.
17절에 ‘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으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노라’고 해요. 모세가 하나님을 대신해 그 분노를 표출한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직접 써주신 이 돌판은 산산조각이 났는데 이 백성의 마음은 깨어질 줄을 모릅니다. 우리의 자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자아가 깨어지면 내 존재도 사라질까봐 끝까지 죄악을 붙들고 놓지를 않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도 그 말씀은 깨뜨릴지언정 내 자아는 그대로입니다.
결국 모세는 어떻게 하나요? 18절에 40일 동안 여호와 앞에 엎드려 금식하며 백성을 위해 기도했다고 해요. 19절에 보니 주님은 그때에도 모세의 말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결국 모세는 21절에 ‘너희의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끌 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고 해요. 내가 깰 수 없으니 모세가 대신 깨뜨려줍니다. 마찬가지로 이토록 질긴 우리를 위해 결국 주님이 자신을 십자가에 던져 그 육체를 깨뜨리셨어요. 그러니 십자가 외에는 구원받을 길이 없는 거예요. 그 십자가를 의지하여 주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이 곧 내 자아를 깨뜨리고 죽이는 출발점인 것입니다. 적용해 보세요.
♱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나를 위해 부어 만든 금송아지는 무엇입니까? 십자가 앞에 엎드려 내 자아가 깨어지기를 기도하나요? 여전히 깨어지기 싫어 회피만 하나요?
어머니의 헌신적인 기도를 기억하며 지금은 교회를 떠나 계신 어머니가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겠다는 한 청년의 청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잦은 갈등과 다툼 가운데 어머니의 인도로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가게 되었어요. 저는 온 가족이 주일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어요. 청소년 시절 저의 나눔과 기도 제목은 항상 가정에 관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결국 부모님이 이혼하시며 온 가족이 교회를 떠났어요. 저도 내가 의지할 대상은 부모님도 하나님도 아니다라는 생각에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와 결핍을 인간관계와 술, 음란으로 채웠습니다. 저의 죄를 알지 못하니 환경만 탓하며 결핍을 채우느라 급급하여 불신 교제를 일삼았어요. 그러다가 결혼까지 생각한 상대로부터 잠수 이별을 당했어요. 그 사건은 하나님이 다시 저를 부르신 사건이 되어 지금까지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예배의 자리로 나오지 않으세요. 예수 믿게 해준 부모가 최고의 부모라는 설교를 듣고 부모님을 향한 원망과 상처들이 말씀으로 해석되지 않아 여전히 우리 가정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지 못하는 제가 바로 목이 곧은 백성임을 인정합니다. 모세가 40주 40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 기도한 것처럼 가정을 위해 헌신적으로 기도한 것은 바로 어머니였어요. 그 기도 덕분에 우리 가정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제가 어머니의 예배 회복을 위해 기도할 차례인 것 같아요. 여전히 해석되지 않은 쓴뿌리들 때문에 훈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말씀 가운데 나의 우상을 날마다 진멸하며 묵묵히 기도하길 원해요. 저의 적용은 ‘어머니의 예배 회복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모세처럼 가족과 지체들, 교회의 새가족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약속이 깨어지고 멸망당해 마땅한 그 순간에도 모세의 두 손에는 언약의 돌판이 있었습니다. 그 돌판을 깨뜨린 후에도 모세는 40일을 엎드려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어요. 우리는 스스로 자아를 깨뜨릴 수 없기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친히 자신을 깨뜨리셨습니다. 주님의 몸이 찢기신 그 십자가를 의지함으로 내 자아를 내려놓고 모든 것이 무너진 그때에도 주님께 엎드려 기도함으로 그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을 만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릴게요.
잠시만 눈을 떼면 스스로 부패하여 금송아지를 만드는 저희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 하면서도 결국 나를 위해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듯이 오늘 말씀 앞에 회개하는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언약이 파기되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그 순간에도 모세처럼 언약의 두 돌판을 손에서 놓지 않길 원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내 자아를 산산조각으로 깨뜨릴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언약의 말씀을 다시 붙들고 일어나 기도하는 저희가 되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