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6:1-15
1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12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14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15 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
♱ 이스라엘아, 들으라 ♱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아 들으라’ 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말씀을 듣는 삶은 첫째, 말씀대로 행하는 삶입니다.
1절에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라고 해요. 모세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모세가 백성에게, 그리고 백성이 다시 자녀와 손자에게 전해야 할 말씀이에요. 이 말씀을 주신 목적은 단 하나, 백성을 가르치고 행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어야 하는 이유도 결국은 그대로 지키고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말씀을 사모하면서 보게 되어 있고 열심히 보면 전하게 되어 있어요. 모세도 하나님께 들은 것을 백성에게 전했잖아요. 그래서 신앙은 한 세대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로 흘러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말씀 안에서 만난 관계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말씀으로 교제하며 서로 신뢰하기에 영육 간에 날이 장구해지는 복을 누리는 거예요.
3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듣는다는 건 히브리어로 ‘쉐마’인데 이 단어는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듣고 그대로 순종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어요. 듣기만 하고 흘려보낸다면 진짜로 들은 것이 아니겠죠. 말씀을 들었다면 반드시 삼가 행하는 자리에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어떠한가요?
3절에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고 하지요. 우리 인생 전체가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있게 된다는 약속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매주 매일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내 삶의 결정과 습관을 바꾸고 있나요? 아니면 듣고 나서 그냥 잊히나요? 말씀을 듣는 것과 말씀대로 사는 것은 결국 같은 의미라는 걸 기억하시기 바라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 내가 듣고 주위의 지체나 자녀에게 반드시 전해야 할 명령과 규례와 법도는 무엇인가요? 최근에 들은 말씀 중 중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듣는 삶은 둘째,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치고 강론합니다.
4절은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명령으로 시작해요. '쉐마 이스라엘'이라는 이 구절은 이스라엘 신앙 고백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들어야 할 첫 번째 말씀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우상들과는 비교가 불가한 오직 유일하신 분입니다. 다른 신은 없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십니다. 그렇다면 이 유일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까요?
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과 행동 즉 전인격적인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히브리어로 '마음'은 생각과 의지가 있는 자리를 의미하고 '뜻'은 감정과 열정, 욕구가 있는 자리를 뜻해요. 그리고 '힘'은 의지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의 존재 전체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지정의를 다해 전인격적으로 100% 온전한 사랑을 드려 하나님께 항복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분을 향한 사랑의 증거가 7절 말씀처럼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가 되는 거예요. 말씀이 내 마음에 새겨져 있으면 집에 앉았을 때, 길을 갈 때, 누워 있을 때, 일어날 때 등 언제 어디서든 그 말씀을 강론하게 됩니다. 식구들과 함께 식탁에서 나누는 대화, 출근길에 듣는 묵상, 나눔, 자녀와 함께 읽는 짧은 본문 한 절, 이런 일상의 반복 속에서 신앙이 다음 세대로 흘러가는 거예요. 참된 가르침은 부모가 먼저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적용해 보세요.
♱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나요? 하나님과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며 적당히 타협하지는 않나요?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 말씀을 나누고 부지런히 강론합니까?
게임과 장난감의 유혹에 넘어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 것을 회개한다는 한 초등학생의 어린이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다른 것을 더 사랑해요. 텔레비전을 보고 태블릿 PC로 게임을 하고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게 훨씬 더 좋거든요. 그래서 주일마다 교회 가기가 너무 힘들어요. 교회에 가는 대신에 게임을 너무 하고 싶어서 안 간 적도 있어요. 5절 말씀대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세상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섬긴 거예요. 주일만 되면 교회를 가겠다는 다짐이 자꾸만 약해져요. 우상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사랑하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기도할래요. 저의 적용은 ‘주일 예배에 빠지지 않고 꼭 참석할게요’입니다.”
큐티보다 인터넷 동영상과 게임 캐릭터 열쇠고리에 마음을 쏟은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1등 자리에 두겠다는 6살 어린이의 샛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5절 말씀을 보며 그동안 큐티를 소홀히 한 제 모습이 생각났어요. 머리로 큐티가 먼저라고 생각했지만 인터넷 동영상과 게임이 더 좋아서 엄마에게 핸드폰을 달라고 졸랐거든요. 그리고 말씀을 손에 매고 이마에 붙이듯 항상 기억하기보다 캐릭터 열쇠고리를 모으는 일에만 마음을 쏟았지요. 이제라도 하나님을 제 마음에서 1등으로 두며 무엇보다 큐티를 가장 먼저 할래요. 저의 적용은 ‘학교 가기 전에 큐티를 먼저 하고 큐티하지 않은 날에는 영상을 보지 않을게요’입니다.”
마음대로 큐티하던 모습을 버리고 이제는 힘과 마음을 다해 큐티하기로 다짐한다는 5살 어린이의 새싹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예배 시간이 즐거워요. 하지만 큐티 시간은 즐겁지 않아요. 그래서 마음대로 줄 긋고 대충 색칠하고는 ‘다 했다’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요. 엄마는 말씀을 읽고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알려주셨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큐티했어요. 큐티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고 힘들어도 앞으로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며 마음과 힘을 다해 큐티할게요. 저의 적용은 ‘큐티를 열심히 하며 하나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할게요’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그들이 가진 힘 때문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신 맹세로 이루어지는 일방적인 은혜이죠. 백성은 자신들이 건축하지 않은 성읍과 채우지 않은 집, 파지 않은 우물과 심지 않은 포도원을 거저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배불리 먹고 만족할 때 발생해요. 광야의 궁핍함보다 가나안의 풍요가 영적으로는 더 큰 위기예요. 이에 모세는 12절에서 경고하여 이르기를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일이 잘되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쉽게 망각하죠. 가나안의 선물은 누리면서도 정작 그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잊고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돈과 성공과 쾌락을 쫓습니다. 그래서 15절에 ‘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고 하지요.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를 향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의 다른 이름이에요. 하나님은 나를 너무 사랑하시기에 내가 다른 무언가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내 삶이 풍요로워질수록 더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억해야 하지요. 언제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공동체 지체들과 나누는 것이 은혜를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제대로 들은 사람은 하나님을 온 존재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전하게 됩니다. 주께 받은 그 은혜를 기억하고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릴게요.
주님, 애굽의 종 되었던 저희를 피 값으로 사셔서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주님이 저희에게 풍요를 허락하셨는데 저희는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너무 쉽게 주님을 잊어버립니다. 이제는 머리로만 아는 신앙에서 더 나아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주님 한 분만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모든 일상 가운데서 주의 말씀을 붙잡고 우리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도 그 말씀을 강론하며 흘려보내는 저희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마음판에 새기고 그 말씀대로 적용함으로 우리의 날이 장구하고 번성하는 복을 누리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