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3:23-29
23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24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5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26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27 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고 네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니라
28 너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그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건너가서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29 그 때에 우리가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거주하였느니라
♱ 모세의 간구 ♱
하나님 아버지, 모세가 간구한 것처럼 내 뜻보다 주님의 뜻을 신뢰하며 다음 세대를 세우는 믿음을 가지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모세의 간구를 배우려면 둘째, 내 소원을 하나님께 솔직히 아뢰어야 합니다.
오늘 23절에 나온 ‘그 때’는 아주 중요합니다. 모세의 120년 인생이 거의 끝나가고 있어요.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순간이죠. 하나님이 이미 모세에게 너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말씀하셨음에도 모세는 한 번 더 들어가기를 간구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포기하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하나님께 숨김없이 올려드리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24절을 보니 모세는 먼저 하나님의 크심을 찬양합니다.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라고 하지요. 참 놀라운 고백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반석에서 물이 터지는 기적을 경험한 모세가 이제 와서 ‘이제야 하나님의 크심을 알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평생 주님을 알아가는 사람입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내가 주님을 많이 안다가 아니라 ‘주님은 너무 크신데 저는 너무 작습니다’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이죠.
이에 모세는 25절에서 ‘구하옵나니 나를 건너 넘어가게 하사’라며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솔직히 아룁니다. 생각해 보세요. 모세도 얼마나 들어가고 싶었겠습니까? 40년 동안 백성과 씨름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눈앞에 아름다운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다니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너무 아쉬운 거예요. 우리도 그렇지요.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 기도는 믿음이 없어보일까? 이런 소원은 말하면 안될까? 이렇게 생각하며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모세처럼 솔직히 구하면 됩니다. 응답은 하나님께 맡기고 내 마음은 숨김없이 아뢰는 것이 기도입니다. 적용 질문 드려요.
♱ 하나님의 크심을 신뢰하며 내 마음을 솔직하게 아뢰고 있나요? 하나님 앞에서도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모세의 간구를 배우려면 둘째, 족하다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26절에 보니 하나님은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하며 모세의 기도를 거절하세요. 참 매정하게 들립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백성을 이끌어온 모세인데 그냥 가나안 땅 한 번만 밟게 해주시면 안 되나 싶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만해도 족하다고 하십니다. 이 말은 네 기도가 귀찮다는 뜻이 아니라 네가 받은 은혜가 이미 족하다, 네 사명은 여기까지다 라는 거예요. 모세에게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소원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는 더 큰 뜻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진짜 들어가야 할 곳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겉으로 보기에는 혈기 한 번 냈다고 벌을 받는 것 같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것도 상급이에요. 이제 모세에게 더는 광야의 짐을 지우지 않고 쉬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주님은 사도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제해달라고 했을 때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시며 거절하셨어요.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받아야 은혜가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막으시고 멈추게 하시고 여기까지다라고 하시는 것도, 내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내 뜻이 꺾여도 주님의 뜻이 더 선함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에요.
27절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비스가 산 꼭대기로 올라가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세요. 들어가지는 못해도 눈으로는 보게 하십니다. 이것은 거절 속에 담긴 위로이지요. 모세의 소원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으신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실 때도 우리 마음을 아시기에 가장 선한 방식으로 위로하십니다.
28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여수아에게 명령하고 그를 담대하게 하며 그를 강하게 하라’ 하시며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이 아니죠. 이제 그를 이을 여호수아를 세워야 합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일을 다음 사람이 이어가도록 돕는 것이 모세의 마지막 사명이었어요. 내가 끝까지 주인공이 되려 하지 않고 다음 세대가 하나님의 기업을 얻도록 세워주는 것, 내가 못다 한 일을 다른 사람이 하게 될 때 폐기하지 않고 축복하는 것, 이것이 모세의 위대함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네가 볼 땅을 그들이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고 약속하세요. 모세는 보지만 여호수아와 백성은 들어갑니다. 누구는 씨를 뿌리고 누구는 물을 주고 누구는 열매를 거둡니다. 그러나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세요. 이것이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29절에 나온 벳브올은 바알 숭배와 관련된 땅이에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앞두고도 우상 숭배의 맞은편에 서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이제 여호수아를 통해 들어갈 그 땅에 영적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단순히 후계자가 아닌 영적 전쟁을 감당할 믿음의 사람을 세우는 것이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하나님이 그만해도 족하다라고 하시는데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붙들며 욕심내는 일은 무엇입니까? 강하고 담대하도록 세워주어야 할 나의 여호수아는 누구입니까?
아내와 아이를 보러 교회에 갔다가 구원을 바라보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아내와 재결합하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우유부단한 저는 큰 사건이 생기면 회피하고 거짓말을 큰 죄로 여기지 않는 나쁜 습성도 있어요. 그런데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제가 불법 성매매 업소에 출입한 사실을 아내에게 들켰어요. 처음에는 죄책감으로 참다가 나중에 아내에게 먼저 이혼을 요구했고 2년여의 별거 후 결국 이혼했습니다. 그 후 면접 교섭권으로 딸을 만나려고 2주에 한 번씩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 갔어요. 아내와 큰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한 것인데 하나님은 제 우유부단한 성격까지 사용하여 저를 교회로 이끌어 주셨어요. 그러나 저는 늘 여기까지만을 외치며 신앙도 아내와의 관계도 현상 유지만 하려고 했지요. 25절에서 모세는 40년의 광야 생활 이후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요단강을 건너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요. 그리고 하나님이 거절하시자 그 뜻에 순종해요. 그러나 저는 '어떻게 얻은 이혼인데?' 라는 생각에 지체들의 권면도 거부하면서 재결합을 회피했어요. 그러자 하나님은 ‘그만해도 족하니’ 하시며 저의 완악함을 꺾으시고 제 눈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실 구원을 바라보게 하셨어요. 그 은혜로 저는 아내와 재결합하여 믿음 안에서 다시 한 가정을 이루었고 음란과 배신의 죄를 제 입술로 고백하게 되었죠. 그럼에도 여전히 내 생각을 내려놓지 못해 순종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자녀들이 여호수아처럼 믿음의 유산을 이어받아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더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담대히 나아가길 소망해요. 저의 적용은 ‘사건 앞에서 회피하지 않고 아내와 믿음의 지체들에게 구체적으로 나누겠습니다. 공동체 지체들의 권면에 토 달지 않고 순종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세는 끝까지 가나안을 구했지만 더 큰 것을 준비하고 계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만해도 족하다 하셨어요. 가나안 대신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게 하시고 여호수아를 세워 하나님 나라를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오늘 간증한 성도님도 이혼으로 끝난 줄 알았던 인생에 하나님이 다시 시작할 은혜를 허락하신 거예요. 결국은 구원의 사건이 되었잖아요. 그러므로 오늘도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내가 주인공이 되기보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믿음으로 영원한 기업을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도 그만해도 족하다 하신 주님의 뜻을 묵상해 봅니다. 내 소원이 이루어져야 은혜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주님은 더 크신 계획이 있다라고 하십니다. 내 뜻이 막힐 때도 원망하지 않고 주님의 거절 속에도 사랑과 뜻이 있음을 신뢰하길 원합니다. 모세처럼 제 욕심을 내려놓고 다음 세대를 세우게 도와주시옵소서. 내가 주인공 되려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이 맡기신 나의 여호수아를 강하고 담대하게 세우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원해요. 눈에 보이는 가나안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받은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저희가 되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