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신명기 2:1-15
1 우리가 방향을 돌려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서 여러 날 동안 세일 산을 두루 다녔더니
2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 너희가 이 산을 두루 다닌 지 오래니 돌이켜 북으로 나아가라
4 너는 또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주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스스로 깊이 삼가고
5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 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6 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고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8 우리가 세일 산에 거주하는 우리 동족 에서의 자손을 떠나서 아라바를 지나며 엘랏과 에시온 게벨 곁으로 지나 행진하고 돌이켜 모압 광야 길로 지날 때에
9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을 괴롭히지 말라 그와 싸우지도 말라 그 땅을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롯 자손에게 아르를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10 (이전에는 에밈 사람이 거기 거주하였는데 아낙 족속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크므로
11 그들을 아낙 족속과 같이 르바임이라 불렀으나 모압 사람은 그들을 에밈이라 불렀으며
12 호리 사람도 세일에 거주하였는데 에서의 자손이 그들을 멸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으니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주신 기업의 땅에서 행한 것과 같았느니라)
13 이제 너희는 일어나서 세렛 시내를 건너가라 하시기로 우리가 세렛 시내를 건넜으니
14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15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진영 중에서 멸하신 고로 마침내는 다 멸망되었느니라
♱ 돌이켜 나아가라 ♱
하나님 아버지, 오랜 광야의 방황 속에서도 돌이켜 나아가라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구원으로 돌이켜 나아가려면 첫째, 오랜 광야 생활이 주께서 보호하시는 은혜의 시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1절에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가 여러 날 동안 세일산을 두루 다녔다고 해요. 무려 38년이라는 기나긴 방황의 시간이었어요. 목적 없이 떠도는 것 같은 이 지루한 시간 속에서 그들은 인내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2절과 3절에 드디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너희가 이 산을 두루 다닌 지 오래니 돌이켜 북을 나아가라’ 하십니다. 오랜 광야 생활도 결국은 끝이 있습니다. 그때를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반드시 끝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징계의 38년이 결코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7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고 해요. 여기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게 있어요. 광야에서 고생한 것 자체가 복이라는 거예요. 정착해서 편히 잘 사는 에돔보다 광야를 두루 다니는 나를 하나님이 알아주시니 그것이 복인 거예요. 우리는 늘 ‘저 사람은 안 믿어도 잘 사는데 왜 나만 이 고생인가?’ 하지요. 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종국에 어떤 경우에도 부족함이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없다고 아우성치며 바라는 것들은 대개 사치품인 경우가 많지요. 하나님은 반드시 필수품을 주시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옷이 헤어지지 않게 밤낮으로 지켜주십니다. 우리도 각자 통과하는 고난의 터널이 저마다 있지요. 재정의 위기, 끝없는 질병, 꽉 막힌 관계 속에서 ‘두루 다닌 지 참 오래되었다’ 하며 탄식하곤 해요.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시간 동안에 하나님은 나를 굶기지도 않고 내 교만을 꺾어 거룩으로 빚어가시며 세밀히 돌보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고난 중에도 부족함이 없게 하신 주님을 찬양할 때 비로소 ‘돌이켜 나아가라’는 사명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거예요. 적용해 보세요.
♱ 광야 같은 고난 속에서도 나의 생명과 가정을 지켜주신 은혜를 인정합니까? 그 징계 시간에 오히려 부족함이 없었음을 깨닫나요? 내가 없다며 아우성치는 그것이 혹시 사치품은 아닙니까?
구원으로 돌이켜 나아가려면 둘째, 주께서 정하신 선을 넘거나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북으로 진군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에돔 지역을 지날 때 각별히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4절 5절에 ‘너희는 스스로 깊이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라고 엄히 명령하세요. 그 땅은 하나님이 에서에게 주신 기업이기 때문이에요. 9절에도 모압을 괴롭히거나 싸우지 말라고 당부하죠시. 그 땅 역시 롯의 자손에게 주신 기업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에돔이나 모압처럼 믿음이 없어도 이 세상 것을 이렇게 차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해요. 그러니 부러워하지도 다투지 말고 그저 인정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6절에 보면 심지어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고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고까지 하세요. 안 믿는 친척이 아무리 부자라도 신세 지지 말라는 거예요. 내 신분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광야길을 걷게 하시고 하나님을 떠난 애돔과 모압은 그 길가에 정착하여 잘 살게 하시니 얼마나 부럽습니까? 배알이 뒤틀릴 법도 하지요. 그래도 얻어먹지 말고 값을 치르라고 하십니다.
10절부터 12절에도 보면 세상은 강하고 많고 키가 크다고 합니다. 그런 자들을 르바임이니, 에밈이니 하며 여러 칭호로 부르지요. 우리도 그런 스펙과 "사"자 들어가는 칭호를 다들 부러워하잖아요. 그러나 각자 자기 몫의 자리가 있고 세상 사람들의 활동조차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기에 인정하고 다투지 말며 삼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동료의 공로를 시기 하거나 내게 주지 않은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 않나요? "나는 직분자니까" 하며 영적 우월감으로 믿지 않는 가족을 무시하며 다투는 것도 하나님의 질서를 깨뜨리는 죄라는 걸 알아야 해요. 14절, 15절에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38년 동안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다 멸망했다고 해요. 하필 군인들이에요. 싸움터에서 열심히 싸우던 내 열심이 죽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어린아이 같고 연약한 자들만 남기십니다. 그러니 천국 가는 그날까지 공동체 안에서 나의 자격 없음을 고백하며 십자가 공로를 의지할 때 세렛 시내를 건너 약속의 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적용해 보세요.
♱ 지금 내가 영적 우월감이나 시기심으로 다투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안 믿는 이의 형통을 부러워하며 그 신세를 지려 하지는 않나요? 마침내 멸망해야 할 나의 열심은 무엇입니까?
아플 때에도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감사한다는 한 초등학생의 어린이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편도 때문에 열이 많이 났어요. 거의 매달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입원도 여러 번 했죠. 아플 때마다 속상하고 힘들었지만 금방 열이 내리고 오래 앓지는 않았어요. 7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광야를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주시고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게 하셨대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제가 아플 때마다 하나님이 언제나 제 옆에 함께 계셨음을 깨달았어요. 저를 지켜주시는 하나님, 정말 감사해요. 저의 적용은 ‘힘들어도 언제나 주님을 믿으며 주일 예배도 잘 드리고 큐티도 열심히 할게요’입니다.”
무서운 유치원 선생님 때문에 마음이 광야 같았지만 이제는 그 선생님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9살 어린이의 샛별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유치원에 다닐 적 무서운 선생님 때문에 매일 마음이 힘들었어요. 초등학생이 된 후에도 가끔 그때가 생각나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죠.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광야 길을 걷는 동안 늘 함께하셨고 부족함이 없게 하셨대요. 제게 광야 같았던 그 시간도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하나님이 계속 저를 지키고 계셨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제는 미움을 버리고 선생님을 위해 기도할래요. 저의 적용은 ‘하나님 지켜주셔서 감사해요. 라고 기도할게요’입니다.”
엄마 말씀에 순종하여 이제는 사촌 형에게 장난치거나 위험하게 놀지 않겠다는 6살 어린이의 새싹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는 사촌 형을 좋아해요. 그런데 같이 장난을 치다 보면 제가 형을 다치게 해요. 얼마 전에도 집에 놀러 온 형을 다치게 했어요. 엄마는 저를 혼내시며 "형에게 계속 장난을 치면 형이 안 놀러 올 수도 있어" 라고 알려주셨어요. 이스라엘 백성은 빨리 갈 수 있던 길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서 오래 걸려서 갔대요. 엄마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저에게 좋은 일인 것을 알았어요. 형이 안 놀러 오기 전에 엄마 말씀대로 순종해서 형에게 장난치지 않을게요. 저의 적용은 ‘엄마 말씀을 잘 듣고 사촌 형이 놀러 오면 사이좋게 지낼게요’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광야를 통과하며 하나님을 붙들게 된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복이에요. 그러니 안 믿는 이의 형통을 부러워하며 다투지 말고 내게 줄로 재어주신 몫에 자족하길 바라요. 무엇보다 내 안에 군인 같은 열심이 다 죽어질 때 비로소 세렛 시내를 건너 약속의 땅으로 돌이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내 몫의 십자가를 감사함으로 감당하며 영적 행진을 이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답답하고 지루한 고난의 광야를 지날 때면 불평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 보면 그 모든 시간이 저를 거룩으로 빚어가시고 부족함 없이 돌보아 주신 사랑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내게 없는 것을 불평하며 남의 것을 탐내고 다투려 하는 저희의 교만과 혈기를 꺾어주시길 기도합니다. 믿음 없이도 잘 사는 이들을 부러워하거나 신세를 지려 하지 않고 내 몫에 자족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무엇보다 싸움터의 군인 같은 우리의 열심이 다 죽어지고 어린아이처럼 연약한 자로 남아 오직 십자가 공로만 의지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주님과 동행하며 광야를 잘 건너 약속하신 구원의 땅으로 나아가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