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사무엘하 23:11-19
11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사기가 올라 거기 녹두나무가 가득한 한쪽 밭에 모이매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12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
13 또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곡식 벨 때에 아둘람 굴에 내려가 다윗에게 나아갔는데 때에 블레셋 사람의 한 무리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14 그 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의 요새는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17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18 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이니 그는 그 세 사람의 우두머리라 그가 그의 창을 들어 삼백 명을 죽이고 세 사람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19 그는 세 사람 중에 가장 존귀한 자가 아니냐 그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그러나 첫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
♱ 다윗의 용사들 ♱
하나님 아버지, 다윗의 용사들처럼 저희도 무명한 자로 충성하며 부족해도 정직하게 평가받는 인생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다윗의 용사들은 첫째, 큰 구원을 이루었으나 무명한 자들입니다.
어제 본문인 8절부터 다윗의 용사 중 제일 먼저 무명의 새 용사가 소개되었어요. 첫 번째로 소개된 최고의 영웅은 요셉밧세벳입니다. 그 유명한 군대장관 요압은 어디로 가고 듣도 보도 못한 그가 먼저 소개됩니다. 그가 단번에 800명을 죽였다는 것은 오늘로 치면 전도의 용사로서 단번에 80명을 전도한 것과 같아요. 두 번째 용사 엘르아살은 손이 칼에 붙기까지 싸웠다고 하지요. 그리고 오늘 11절에 나오는 삼마가 무명의 세 용사 중 마지막 사람입니다. 12절에 ‘그는 그 밭 가운데 서서 막아 블레셋 사람들을 친지라 여호와께서 큰 구원을 이루시니라’고 해요. 삼마는 녹두 나무 가득한 밭 가운데 서서 블레셋 사람들을 막아 큰 구원을 이루었어요. 도망가지 않고 자리를 지킨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큰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삼마보다 더 위대한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세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홀로 사탄의 세력을 꺾고 승리하셨어요. 이렇듯 내가 도망치고 싶은 그 자리에서도 대장 되신 주님을 의지하여 버티면 주께서 큰 구원을 이루십니다. 저는 제가 섬기는 우리들 교회의 목장 보고서를 빠뜨리지 않고 봅니다. 수많은 목장 보고서를 수십 년을 봤는데 매주 죄 가운데서 서서 사탄의 수많은 공격을 꺾는 놀라운 적용을 하면서 가정을 지키고 구원으로 이끄는 모습을 봅니다. 정말 우리 평신도 리더쉽들이 드러나지 않는 용사들이라 생각됩니다. 분명 이 땅에서는 무명하나 천국에서는 주님이 두 팔 벌리고 가장 앞서 맞이해 주실 유명한 자들인 줄로 믿습니다.
저는 평생 화장실 청소만 하시다가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천국 가신 저희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유명해진 저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무명하게 섬기신 어머니 중 누가 더 큰 용사일까요? 저는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가봐야 아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어요. 모든 것을 갖춘 부자 같은 사람이 겸손하게 헌신하기란 그만큼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출중한 능력을 갖추고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은사를 아낌없이 드린 능력의 사람이 다윗 공동체에 이렇게 세 명이나 있었네요. 그래서 사무엘서 기자는 마지막에 그 이름들을 등장시키며 이들로 인해 다윗 왕국이 세워졌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무명의 세 용사에게 최고의 영예를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두려워서 도망치고 싶은 자리는 어디입니까? 그 자리에서 대장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나는 무명해도 하나님 앞에서 자리를 지키는 용사입니까?
다윗의 용사들은 둘째, 부족해도 주께 충성하는 자들입니다.
13절부터는 그다음 3인의 용사가 등장해요. 그러면서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지냈을 때의 이야기가 기록됩니다. 삼십 두목 중 세 사람이 다윗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베들레헴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온 이야기죠. 다윗이 고향 베들레헴 우물물이 마시고 싶다고 소원하자 세 용사가 목숨을 걸고 블레셋 진영을 뚫고 들어가 물을 길어옵니다. 다윗을 향한 사랑과 충성에서 나온 헌신이지요. 그런데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드리며 17절에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까’라고 해요. 자기만족을 위해 부하들의 생명을 함부로 여기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그런데 17절까지 이름이 없던 이 세 용사 중 두 사람, 아비새와 브나야만 18절부터 그 이름이 나와요. 그리고 끝내 한 사람의 이름은 빠지는데 학자들은 그를 요압으로 봅니다. 요압은 신념과 야망으로 목숨을 걸었기에 그가 떠온 물은 순수한 충성의 결과물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이의 소원을 채우는 일에 인생을 바치는 것은 귀한 일이지만 사람을 우상 삼아 하는 충성은 충성대로 받되, 그 물은 마시지 않는 분별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18절, 19절에 ‘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이니 그는 그 세 사람의 우두머리라 그가 그의 창을 들어 삼백 명을 죽이고 세 사람 중에 이름을 얻었으니 그는 세 사람 중에 가장 존귀한 자가 아니냐 그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그러나 첫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였더라’고 해요. 아비새는 다윗의 조카이자 요압의 동생이지만 다윗은 혈연이라고 봐주지 않습니다. 첫 세 사람에게는 끝내 미치지 못했다고 분명히 평가하지요. 다윗 왕국은 혈연이나 지연이 아니라 오직 충성과 행위의 공정함으로 평가받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재능과 지위를 비교하며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빠지는 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이에요. 비교의식은 실패의 감정을 낳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열등감의 비교의식이 해결되어야 예수 그리스도 능력으로 자신 있게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적용 질문이에요.
♱ 내가 사람을 혈연, 지연, 학연으로 차별하며 특혜를 준 일은 무엇인가요? 온 힘을 다해 충성하면서도 비교의식과 생색으로 그 헌신을 퇴색시키지는 않습니까?
술에 빠져 지내던 지난 삶에서 돌이켜 술 중독을 교회 공동체에 고백하고 술을 줄이는 적용을 하고 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저희 가족과 친척이 모인 자리에는 늘 술이 빠지지 않았어요. 그러나 그 모임은 거의 싸움으로 끝났고 그 적막한 분위기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요. 그렇게 음주 문화에 익숙했던 저는 성인이 되는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짜릿함을 느꼈어요.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지요. 그날 이후 저는 블레셋 같은 술에 대항하지 못하고 돈과 사람들 뒤에 숨어 음주가무를 즐겼어요. 저에게는 다윗의 세 용사처럼 중독의 근원을 돌파하여 말씀의 우물물을 길어 올릴 믿음과 용기가 없었거든요. 어떤 날은 토요일 밤부터 주일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주일 예배를 드렸는데 설교 시간에 세상 모르게 졸거나 딴생각하다가 ‘말씀을 맺습니다’라는 목사님의 말에 눈이 떠졌습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이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술을 끊을 수 있다고 확신하며 술을 마시는 건 큰 죄가 아니라고 여겼어요. 그러다 큐티하는 공동체에 속해 믿음과 기도의 용사인 지체들에게 저의 술 중독을 고백하면서 술을 조금씩 줄이는 적용을 했어요. 회식 때 주변에서 술을 권해도 음료수를 마시겠다며 거절했지만 지인들과 식사하거나 처음 접하는 술 광고를 보면 '한 잔쯤은 괜찮지 않을까?'하고 미혹되기도 해요. 어떤 중독도 내 힘으로 끊을 수 있다 자만하지 않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공동체에 나눌 수 있는 믿음을 주시길 기도해요. 저의 적용은 ‘직장 동료들과의 식사나 회식 자리에서 ‘한 잔은 괜찮아’라는 말을 들어도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내 힘으로 술을 끊을 수 있다는 마음을 버리고 작고 사소한 유혹도 공동체에 나누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의 용사들은 영웅전의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 역사의 증인들입니다. 백성이 도망친 때 홀로 자리를 지키고 이름 없이 충성하며 목숨 건 헌신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싸웠어요. 세상은 화려한 무대 위의 주인공을 알아주지만 하나님은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충성하는 한 사람을 기억하십니다. 그러므로 무명한 자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주께 받은 은혜를 나를 위해 쓰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꺼이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릴게요.
주님,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고 충성하는 그 한 사람을 기억하여 그를 통해 큰 구원을 이루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처럼 저희도 두려워서 도망치고 싶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대장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며 끝까지 버티길 원합니다. 이름 없이 무명하게 섬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등감과 우월감의 비교 의식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게 도와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사람으로 우상 삼는 충성을 내려놓고 주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제가 받은 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꺼이 내어드리길 원합니다. 드러나지 않게 가정과 공동체를 지키는 이 땅의 모든 무명한 용사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이 나라와 흔들리는 가정마다 주님이 찾아가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