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20-29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 내가 믿나이다 ♱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믿음 없음을 주께 고백하며 다시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는 말씀으로 고침 받기를 원합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믿음이 회복되려면 첫째, 나의 믿음 없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20절에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고 해요. 예수님께 데리고 오니 귀신이 아이를 더욱 심하게 괴롭힙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교회에 오거나 큐티를 시작하면 상황이 악화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그러나 이것이 바로 치유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교회 예배에 한 번 데리고 오고 내 자녀를 수련회에 한 번 보내는 것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몰라요. 특히 마가복음에서는 이 아이가 외아들임을 강조해요. 외아들, 외딸처럼 간절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귀신의 역사가 더 잘 작용함을 보여주지요. 이런 사건이 찾아올 때 무서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문제를 직면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때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21절에 예수님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으세요. 이 아이의 부모가 보낸 고통의 시간을 헤아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의 기간을 알아주고 인격적으로 교제할 때 치유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자녀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해서 괜히 데리고 왔나 하며 회피하고 싶어질 때가 많지요. 하지만 드러나야 고침이 있고 심각하게 받아들일 때 회복이 시작됩니다.
22절에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해요. 이 말은 믿음이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불신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아버지는 예수님을 찾아온 간절함과 최후의 믿음을 지닌 사람이기도 하지요. 제자들의 실패 이후에도 여전히 예수님께 기대를 품고 불쌍히 여겨 주시길 간구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간구가 필요해요. 불신이 있다면 오히려 그 불신을 고백하며 도와주시길 간구해야 합니다.
23절과 24절을 보면 예수님은 ‘하실 수 있거든’ 이라는 말에 단호하게 대답하십니다. 이 아버지는 즉시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절히 외쳐요. 이 아버지는 자식 문제로 예수님께 왔다가 도리어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축복이 되었네요. 할렐루야. 그래서 자녀의 문제는 부모가 고침받는 시작점입니다. 적용 질문 드릴게요.
♱ 주님 앞에서 나도 모르게 ‘하실 수 있거든’이라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녀나 가족의 문제를 통해 주님이 내게 믿음을 주시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이 회복되려면 둘째, 기도 외에는 안 된다는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25절에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라고 해요. 더러운 귀신은 꾸짖어야 할 대상이지 무서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특히 두 종류의 귀신을 말씀하시는데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이라고 하시지요. 누가 뭐라 해도 들리지 않는 귀 먹은 귀신, 할 말 못하고 거품만 뿜는 벙어리 귀신이 우리 안에도 다 있지요. 이것을 말씀으로 꾸짖어야 해요. 예수님은 단순히 쫓아내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한 번 치유된 자리도 다시 죄에 들어갈 수 있음을 경고하시는 것이지요.
26절에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라고 해요. 귀신은 마지막까지 소리 지르고 경련하며 발악하고 떠납니다. 고침을 받으려면 이런 일이 반드시 있어야 해요.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도 척추가 부러지는 일, 감옥에 가는 일, 빚쟁이가 더 몰려오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을 치유의 진통으로 받아들여야 해요.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오해하며 곡해하고 비방할 수 있지만 그런 평가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어요.
27절에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고 해요. 예수님은 죽은 것처럼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회복이 따르지요. 끝까지 믿기만 하면 만세전부터 택하심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회복됩니다.
28절에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하지요. ‘왜 다른 집사는 남편도 변화되고 자식도 변화되는데 나는 안 됩니까?’라는 질문과 다를 게 없지요. 이에 예수님이 뭐라고 답하시나요? 29절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결론은 기도입니다.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서기관들과 변론했기에 본질을 놓쳤던 것이지요. 귀신을 쫓아내는 문제도 자녀의 변화도 가정의 회복도 기도 없이는 될 수 없습니다. 기도할 일을 가지고도 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기의 영광을 나타내려는 마음이 있으면 기도하지 못합니다. 결국 서기관들과 변론만 하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 귀 먹고 벙어리 된 내 내면을 말씀으로 꾸짖고 있습니까? 치유의 고통 앞에서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립니까? 문제 해결보다 먼저 기도로 주께 나아가나요?
관상동맥 수술을 앞두고 주께 간절히 기도하며 출세를 위해 가정에 소홀한 죄를 회개하고 죄에서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초등학생 때 할머니를 따라 믿음 생활을 시작한 저는 교회 직분을 사명으로 여기며 살았어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장남으로 자란 저에게 교회는 꿈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죠. 성인이 되어 대기업에 합격한 후엔 인정받고자 열심히 일했어요. 매일 야근과 회식으로 건강이 나빠졌지만 믿음 있는 척 30년 넘게 새벽 기도와 운동을 하며 버텼어요. 그렇지만 어느 날 갑자기 숨이 가빠져 병원에 갔더니 관상동맥이 막혀 목숨이 위태롭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심장 수술을 앞두고서 믿음이 없던 저도 22절과 24절에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처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회복실에서 깨어나 환자들의 비명을 들으니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고백이 절로 나왔어요. 이제껏 아내와 자녀의 보살핌을 받으며 출세를 위해 가정에 소홀했던 것을 깨닫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회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주님이 제 손을 잡아 일으켜 주셨어요. 이후 교회 양육 훈련을 받고 죄의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택자의 은혜를 누리고 있어요. 여전히 혈기를 다스리기 어려워도 이제는 매일 큐티하며 말씀대로 사는 기쁨을 맛보고 지인들의 구원에 더욱 관심 가지며 나눠줄 것만 있는 인생을 살길 소망해요. 저의 적용은 ‘직장에서 함께 근무한 신우회원들에게 큐티인을 전하겠습니다. 저를 믿음의 공동체로 인도해 준 아내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잘 듣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 없음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부족함을 도우시고자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라고 고백하는 자에게 주님은 귀신이 다시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며 그 권세를 끊으시고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십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 벙어리 귀신, 귀 먹은 귀신을 말씀으로 꾸짖고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아가 기도하는 선택을 하시기를 바라요. 나의 무능과 한계를 인정할 때 주님은 우리 가정과 인생을 회복시키십니다. 믿음 없는 세대 가운데서 나 혼자라도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며 믿음의 고백을 드리는 오늘 하루를 보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자녀의 문제, 가정의 문제, 삶의 고통 앞에서 여전히 주님을 제한하며 ‘하실 수 있거든’이라 말하는 불신을 회개합니다. 믿음이 있는 척, 잘 되는 척하며 살아온 저희의 교만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말씀을 들어도 들리지 않고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며 거품만 물고 감정대로 반응하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오늘도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고백하며 주님 앞에 섭니다. 우리 안에 귀 먹고 벙어리 된 마음이 있음을 내어놓사오니 말씀으로 꾸짖어 주시고 귀신이 다시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는 은혜로 덧입혀 주시옵소서. 고침의 과정에서 소리 지르고 흔들리는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죽은 것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주님이 친히 손잡아 일으키시는 분임을 끝까지 믿게 도와주시옵소서.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기보다 그것을 그대로 주님께 가지고 나아가길 원합니다. 어제의 은혜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기도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가정과 자녀 관계와 삶의 모든 영역을 주님 손에 다시 올려드리오니 주님의 뜻대로 고치시고 회복하시고 사용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