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11-19
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 믿음이 없는 세대여 ♱
하나님 아버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하시고 믿음 없는 세대 속에서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믿음을 지키려면 첫째, 고난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11절에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라고 해요.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목격한 제자들은 엘리야에 대해 질문합니다. 말라기 4장 5절에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리니’라고 하신 예언 때문이었지요. 제자들은 여전히 메시아의 길이 영광과 회복일 거라고 기대했어요. 그러니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면 예수님의 고난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래도 이렇게 묻는 것이 대단한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끝까지 시험하고 비판만 하잖아요. 그런데 제자들은 잘 알아듣지 못해도 계속 질문을 해요. 이처럼 질문하는 사람이 바로 제자가 됩니다.
12절에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라고 하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성경으로 답하십니다. 엘리야가 과연 먼저 오긴 하지만 인자이신 예수님도 고난받고 멸시당할 것이라는 이사야 53장의 예언을 왜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반문하세요. 회복만 말하고 고난은 무시하는 신앙은 반쪽짜리 신앙입니다. 우리도 회복과 영광의 말씀은 좋아하지만 고난과 십자가의 말씀은 싫어하잖아요. 그러나 예수님의 길은 반드시 고난을 통과해야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13절에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엘리야가 이미 왔다고 하세요. 그 엘리야는 세례 요한을 의미하지요.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멸시하고 함부로 대우했어요. 그러나 세례 요한은 고난받는 회복자였고 예수님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고난의 통로로도 쓰십니다. 우리에게도 저마다 기가 막힌 고난과 아픔과 슬픔이 있지요. 그러나 이 고난을 통해 누군가의 회복자가 되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영광만 기대하며 고난은 피하려고 하진 않습니까? 위로와 유익에만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읽고 있진 않나요?
믿음을 지키려면 둘째, 주님께 데려가는 적용이 필요합니다.
14절에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고 해요.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내려오셔서 남아있던 제자들이 무리와 서기관들에게 둘러싸여 논쟁하고 있는 모습을 보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함께 계시지 않는 동안에도 사역을 이어가야 했지만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해 실패를 경험하고 맙니다. 이 틈을 타 서기관들은 제자들을 몰아붙이며 변론을 걸어왔고 제자들은 사역의 실패를 인정하기보다는 말로 대응하고 있었지요.
15절에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등장하시자 무리가 놀라며 달려와요. 제자들에게 실망한 그들은 다시금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께 달려온 것이죠. 제자들은 복음의 대리자로 사역을 감당했다기보다 예수님 없이도 무언가를 해 보이려 하다가 결국 사람들의 실망만 사게 된 것이죠. 물론 최선을 다했겠지요. 그러나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뭐라고 하시나요?
16절에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고 하세요. 예수님은 제자들과 서기관들이 무엇을 놓고 변론 중인지 물으십니다. 이는 책망의 말씀이지요. 그들은 귀신 들린 아이를 치유하는 것보다 논쟁에 집중하고 있었어요. 바리새인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질책하신 거예요. 제자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회개하거나 주님께 도움을 구하려 하기보다 논리 싸움에 빠져 있었던 것이죠.
17절에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고 하며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직접 나섭니다. 그는 분명 예수님을 찾고 왔지만 예수님이 보이지 않자 제자들에게 부탁했던 것이지요. 제자들이 겸손하게 자신들의 무능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소개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제자들은 자신을 내세우려다 결국 실패했습니다.
18절에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고 해요. 마가는 특히 귀신의 구체적인 행동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이는 이방인을 독자로 둔 마가복음의 특징인데 영적 고통의 실체를 알리고자 했기 때문이에요. 제자들은 이미 6장에서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받았지만 지금은 그 권세를 잃어버렸습니다.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살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19절에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라고 하시지요.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 심지어 아버지까지 믿음 없는 세대로 책망하며 탄식하십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셨지만 산 아래로 내려오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신앙의 현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결국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믿음 없는 제자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치유의 사역을 감당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지금 해결하려는 문제 앞에서 주님께 나아가기보다 사람과 논쟁하거나 내 방식대로 해결하려고 하진 않습니까? 어제의 은혜와 사명에 안주하며 기도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진 않나요?
남편의 병원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되어서야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이기심을 회개하고 남편과 아들의 구원을 기다리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남편이 운영하던 병원은 오랫동안 적자였지만 남편은 병원을 정리하지 않았어요. 저는 그런 남편을 원망했지요. 그러다 정부의 장애인 보조기기 지원 사업으로 남편 병원에서 처방전을 잘 발급해 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환자들이 몰려들었어요. 하지만 이 일로 남편은 부정 발급 조사 대상이 되어 검찰 조사를 받았고 저도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 했어요. 소그룹 부리더와 지체들이 위로하고 기도해 주었지만 막상 어두운 조사실에 들어가니 저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탄식할 뿐이었어요. 그리고 남편이 10년간 처방한 환자 목록의 양에 놀랐고 ‘감옥에 가게 되면 원장님만 가세요’라는 수사관의 말에 정신이 혼미해졌어요. 이후 공동체에서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며 '병원이 망하면 힘들어서 어쩌나?' 하며 남편의 구원보다 내 안위만 걱정한 저의 이기심을 회개했어요. 그러자 이런 저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믿어지고 19절 말씀처럼 저를 오래 참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평안을 얻었어요. 3년 후 남편은 기적처럼 무혐의 판결을 받았어요. 이제는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아직 교회에 나오지 않는 남편과 아들을 믿음으로 섬기겠습니다. 저의 적용은 ‘남편과 아들이 구원받도록 기도하고, 교회 전도축제에 초청하겠습니다. 힘든 환경 가운데 있는 지체들에게 제 간증을 나누고 기도 제목을 보면서 기도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믿음 없는 세대에서 불러내어 믿음의 자리로 초청하십니다. 오늘 나의 연약함, 가정의 문제, 마음의 상처를 끌어안고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해 보시길 바라요. 내가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이 나와 함께 내려오십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에서 주님을 끝까지 의지하며 고난을 통해 회복을 이루고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믿음 없는 세대 속에서 저희를 불러주시고 또 기다려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고난은 피하고 영광만 누리길 바라는 저희의 이기적인 마음을 회개합니다. 주님의 뜻보다 내 기대를 앞세우며 말씀을 내 유익대로만 해석한 교만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말씀을 가까이 하고도 변론만 하며 논쟁으로 하루를 채우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문제보다 크신 주님께 다시금 데려오는 적용으로 믿음을 회복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제자들처럼 실패하고 무기력한 현실 가운데 있을지라도 다시금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길 원합니다. 주님께 데려오는 그 적용 하나로 가정이 살아나고 공동체가 살아나며 믿음 없는 세대 가운데 복음이 전해지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