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2:2-16
2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 증인이 되리라 ♱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뜻을 알고 그 음성을 듣게 하신 목적이 주님을 위한 증인이 되기 위함임을 기억하도록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증인이 되려면 첫째, 내 죄가 고난보다 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2절에 보면 바울이 히브리말로 말함을 들은 무리가 더욱 조용해집니다. 언어 하나로 이렇게 분위기가 바뀔 수 있네요. 바울은 존중의 언어로 ‘부형들아’라고 부르며 말을 시작하지요. 여기에는 바울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을 죽이려는 무리 앞에서 감정을 쏟아내며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복음을 전할 기회를 붙들고자 성령의 인도를 따릅니다.
3절부터 바울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목조목 설명해요. 유대인이며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에서 자라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배우고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었다고 고백하지요. 이 모든 말은 자신이 원래 복음을 핍박한 자였다는 죄고백인 동시에 자신도 청중인 유대인과 같은 민족, 같은 신앙 배경, 같은 열심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동질성의 고백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밝힘으로써 ‘우리’를 대표하는 고백을 하고 있어요. 이것은 곧 ‘나도 너희처럼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 자였다’라는 고백입니다. 자신이 그들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똑같은 배경과 교육을 받은 ‘우리’였음을 밝히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성령의 말함입니다. ‘나는 너희와 다르다’가 아니라 ‘나도 너희와 같은 죄인이다’라는 고백의 간증이에요.
많은 간증이 자기 자랑으로 흐르기 쉬운데 참된 간증은 나와 청중을 분리하지 않고 같은 죄인으로 세웁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죄인입니다. 당신도 나와 같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를 위한 예수님의 구원이 있습니다.’ 이 메시지가 성령의 말함의 본질입니다. 내 자랑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공감의 언어로서 간증해야 합니다. 간증이란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발표가 아니라 복음을 향한 다리 놓기인 것이에요. 내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말할 수 있을 때 복음의 말씀이 그 삶에 선명히 전달됩니다. 그래서 성령의 말함은 나의 죄도, 나의 배경도 포함된 인생 전체의 고백인 것입니다. 적용 질문 드릴게요.
♱ 내 고난보다 내 죄를 더 깊이 보고 있습니까? 회개의 고백도 없이 자랑하고자 증인의 자리에 서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증인이 되려면 둘째, 성령의 택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9절에 보면 바울은 자신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빛은 보았으나 주님의 음성은 듣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22장에서는 빛을 보았다고 9장에서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니 모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두 표현은 사운드와 보이스의 차이로 이해할 수 있어요. 주변 사람들은 소음처럼 들리는 사운드를 들었지만 바울은 자신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보이스를 들은 것입니다. 택함을 받은 자에게는 같은 말씀도 보이스로 들립니다. 똑같은 말씀이라도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리는 것이 바로 성령의 택하심입니다.
10절에서 바울은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묻지요. 이 짧은 질문에 바울의 철저한 항복과 주권의 이동이 담겨 있습니다. 이제 삶의 주어가 나에서 주님으로 바뀐 것입니다. 이에 주님은 ‘다메섹으로 들어가라’고 하세요. 바울은 즉각 순종하지만 여기서 놀라운 점은 하나님이 바울에게 앞으로의 모든 일을 미리 알려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고 하세요. 이는 우리로 하여금 매일 주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세밀한 경영입니다. 먼 미래를 생각하기보다 오늘 다메섹에 들어가라는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11절에 바울은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어 다른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다고 해요. 말씀이 들렸다고 하나님을 만났다고 인생이 단숨에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무기력해지고 철저히 인도받는 인생이 됩니다. 그것이 택자의 특징이에요. 이제 바울은 이전처럼 자기가 주도해서 다니는 인생이 아니라 끌려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움직이는 인생이 된 것이지요.
12절에서 14절까지를 보면 아나니아가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고 말하며 바울의 눈을 뜨게 합니다. 이어 ‘하나님이 너를 택하셨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미리 손으로 붙들었다’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프로케이 리사토’가 사용되었어요. 즉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사건은 우연이 아니고 태초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택하심입니다. 그리고 이 택하심에는 세 가지 목적이 담겨 있죠.
첫째는 자기 뜻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행복보다 거룩에 있습니다. 둘째는 그 의인을 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의인이 없어요. 나의 의로 살던 인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인으로 보는 인생으로 바뀌는 것이 구원의 핵심입니다. 셋째는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시기 위함이에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린 것 자체가 하나님의 택하심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같은 말씀도 나에게 주신 보이스로 들립니까? 성령의 택하심을 따라 오늘 다시 들어가야 할 다메섹은 어디입니까?
남편과 사업을 하며 힘든 일을 불평하다가 세상 가치관에 갇혀 아내와 엄마의 때를 살지 못한 죄를 회개하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큐티인 묵상 간증이에요.
“세상 성공을 꿈꾸던 저는 결혼 후에 박사학위를 따고 대학에서 근무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백혈구 수치 이상이 생겨 눈까지 안 보이게 되었어요. 저는 불면증과 우울증까지 겪다가 아나니아와 같은 공동체를 만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예배의 자리로 나왔죠. 현재 저는 남편이 원하던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요. 몇 달 전 고객들에게 나누어 줄 회사 기념품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남편과 갈등이 있었어요. 저는 대형 매장에서 한 번에 사길 원했고 남편은 소매점에서 할인가에 사길 바랐어요. 남편의 말을 따르니 많은 영수증을 처리해야 하고 물건 운반도 어려웠죠. 그러다 회계사에게 현금 영수증이 없고 총액도 맞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화가 난 저는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남편을 고발하며 불평했지요. 그러자 지체들은 ‘성실한 남편분이 알뜰하기까지 하시네. 그 덕분에 집사님이 공부할 수 있었던 거예요.’라고 했어요. 그제야 세상 가치관에 사로잡혀 아내와 엄마의 때를 살지 않은 저의 죄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8절 말씀처럼 남편과 자녀의 구원을 방해한 제가 바로 예수님을 박해한 죄인임이 인정되었어요. 이후 낮아진 마음으로 영수증을 하나씩 풀칠해 종이에 붙인 뒤 회계사에게 증빙 자료로 제출했습니다. 앞으로는 바울처럼 저도 죄와 수치를 드러내며 복음의 증인으로 살길 기도해요. 저의 적용은 ‘남편이 업무상 요청하는 일을 할 때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업무 관련 미팅이 있을 때 큐티인을 한 권씩 챙겨가서 선물하겠습니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말함은 내 죄를 드러내는 고백으로부터 시작되고 성령의 택하심은 그 죄인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오늘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에 앞서 ‘주님, 제가 오늘 무엇을 하리이까?’ 묻는 하루를 보내시길 바래요. 그 물음을 통해 다시 들어가야 할 다메섹이 보이고 내게 맡기신 증인의 사명이 선명해질 것입니다. ‘왜 주저하느냐’ 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으로 반응하여 오늘도 성령의 증인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드립니다.
주님, 오늘도 죄인인 저희를 불러 회개의 자리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인생이지만 이제는 고난보다 내 죄가 더 크다는 것을 인정하며 회개함으로 주님 앞에 서기를 원합니다. 빛으로 나를 둘러 비추시고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주신 것도 성령의 택하심인 줄 믿습니다. 오늘도 내 다메섹, 내가 다시 들어가야 할 자리로 끊임없이 부르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길 원합니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감추지 않고 내 수치와 죄악까지도 주님의 복음을 위한 증언으로 고백하게 도와주시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제는 주저함 없이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의 말씀을 따라가는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