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당·십자가 첨답도 없는 ‘열린교회’
서울 대치동 휘문고등학교 내에는 ‘우리들교회’가 있다. 교회 간판은 물론 십자가 첨탑도 없다. 주일과 수요일 저녁에 학생식당을 이용해 예배를 드리는 특이한 교회다. 식당 옆 자그마한 사무실에 보일 듯 말 듯 ‘우리들교회’라는 작은 표지만 있을 뿐이다.
또 좀 특이한 점은 이 교회 담임목사가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교회에서 큐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김양재(54) 목사가 담임을 맡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누구도 담임목사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특이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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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김 목사와 함께 큐티를 하던 13가정으로 창립된 교회는 1년도 안되는 사이에 500여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다. 교회당도 없는 교회,여성 목회자가 담임하는 교회가 개척 1년만에 이같은 부흥을 이룩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과연 이같은 성장 비결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교회에서 만난 성도들과의 대화에서 나왔다. 성도들은 한결같이 “목사님의 말씀이 너무 좋다”고 강조했다. 일상의 삶과 직접 연결되는 김 목사의 말씀에 모든 성도가 매료된 듯했다.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삶에 적용하며 새로운 결단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듣다보면 성경을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그 말씀대로 살고 싶은 영적 자극을 받는다는 것이다.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우리들교회 성도들은 ‘강남 사람들’보다는 타 지역 사람들이 많다. 인천과 부천,심지어는 전주와 천안 등지에서까지 오고 있다. 삶과 연결되는 말씀이 그리워서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가정이 부서지고 아이들이 망가지며 개인적 좌절감에 싸인 사람들이 이 교회에 와서 치유를 받았다. 김목사는 ‘삶에서 환란 당하고 빚지고,원통한 사람들’을 위해서 세워진 게 교회라고 말한다.
교회는 잔잔한 가운데 성도들에게 평안을 준다. 구국기도원 스타일도 아니고 그저 담담하게 말씀을 전한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큐티를 통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한다. 전 성도가 전심으로 큐티를 하다보니 서로 자연스럽게 자신들을 드러낸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아이가 가출하고 인생이 망가졌다는 부끄러운 경험들을 스스럼없이 내놓으며 위로를 받는다.
이 교회 성도인 이혜옥(37)씨는 직장암으로 인공장기를 몸속에 장착하고 살고 있다. 그러나 이씨는 암환자로서는 너무나 표정이 평안했다. 그녀는 “김 목사의 말씀을 듣고 평강의 삶을 살게 됐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이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날마다 큐티하는 목회자다. 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홍성사)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남서울교회 등지에서 25년간 큐티 사역을 펼쳤다. 큐티선교회도 조직해 큐티 대중화에 진력했다. 그녀도 절망 가운데 큐티를 통해서 새로운 활력을 얻었었다. 서울대 음대 피아노과를 졸업한 재원인 김 목사는 30대에 산부인과 의사였던 남편이 갑자기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이전에 믿지 않는 집안에서 고된 시집살이를 하던 김 목사는 82년부터 큐티를 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큐티를 통해서 구원의 확신을 가졌고 주위 사람들을 전도하기 시작했다. 결혼 13년만에 남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뒤 그녀는 절망 속에서 에스겔서 말씀을 붙들고 큐티에 매달렸다. 말씀으로 위로 받으면서 내면에 평안이 찾아왔다. 위로하러 온 사람들이 도리어 위로를 받고 돌아갔다. 말씀의 힘은 놀라웠다.
해외 유학생들의 수련회인 코스타에서도 학생들에게 큐티를 강의했다. 쟁쟁한 목회자들이 코스타 강사로 참여했으나 가장 큰 인기를 끈 사람은 김 목사였다. 그녀의 강의가 끝나면 상담을 원하는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섰다.
큐티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1000명을 넘어서자 더 이상 혼자 사역을 감당할 수 없어 2000년 7월17일 큐티선교회를 창립했다. 코스타 집회 등에서 만난 옥한흠 이동원 홍정길 김진홍 김동호 목사 등이 그녀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그러다가 신학을 했다. 서울 방배동 기독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신학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큐티 사역을 지속적으로 이뤄나가기 위해서 였다. 수많은 사람이 모이다보니 주위에서 “신학도 하지 않은 여자가…”라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큐티 사역을 훼방받지 않고 주일에 비신자들을 전도하고 싶은 열망에 시작한 신학공부였다. 공부를 마치고 안수를 받았다. 당초 교회 개척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큐티 가운데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셨다. 비신자들을 전도하라는 명령이었다. 2002년 10월 13가정으로 자신의 아파트에서 기도 모임을 가졌다. 금세 집이 꽉 찰 정도로 부흥했다.
교회를 찾기 위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나 적당한 교회를 찾을 수 없었다. 교회 개척을 위한 기도 가운데 한 집사가 “1000평의 땅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소리를 듣고 김 목사는 하나님께서 선하게 자신들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런 가운데 휘문고등학교와 접촉하게 됐다. 미션스쿨도 아니었기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학교 관계자가 김 목사를 만나본 뒤 식당을 쓰도록 허락했다. 사무실 공간도 마련해줬다. 수요일 저녁과 주일에는 학생들이 식당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갑자기 500명 좌석의 예배당과 시청각실,그리고 2만여평의 주차장이 생겼다. 하나님의 역사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교회는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지급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면서 학교를 도왔다. 휘문고등학교와 우리들교회는 지역사회와 교회가 연합된 하나의 모델이 됐다. 예쁜 전통적인 교회당은 없지만 우리들교회는 강남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가장 저렴하게 사용하는 교회가 됐다.
우리들교회는 영혼 구원이 최고인 공동체와 말씀으로 살아나는 기쁨의 예배공동체를 꿈꾼다. 그래서 모든 성도가 성경적 가치관으로 변화되기를 원한다. 매일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써 안식을 누리는 공동체,누구나 생각하는 멋진 교회공동체를 우리들교회는 조용히 이뤄나가고 있다.
이태형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