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웅교수(전총신대총장,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소장) [시작] 형제연합교회는루터보다약100년먼저종교개혁을부르짖었던보헤미아(체코공화국)의교회개혁자,얀후스(J.Hus,1369-1415)의후예들이며,코메니우스(J.A.Comenius,1592-1670,모라비아)는후스의개혁정신을가장잘이어받았던형제연합교회(Unitasfratrum)의목사요,또한그공동체를이끌었던3번째감독이자마지막감독이었다.그는가톨릭의종교박해로고국에서살지못하고,형제연합교회를이끌고일생을망명생활로외국에서보냈으며,30년종교전쟁을종결한베스트팔리아평화조약(1548)에서도기대했던종교자유가보장되지않아,교회를해산하고,감독직을내려놓아야했던비극적인인물이었다.특히코메니우스는그당대에교육학자로이름나있었으나,정작그가신학자였다는사실은까마득히잊고있다가최근,코메니우스에관한유럽학자들의연구는그가신학자란사실을확인하게되었고,또한17세기에일어난유럽경건주의운동의주역이었다는사실들이밝혀지면서,새롭게주목받게되었다.특히그가남긴미완성유작인'인간사개선에대한포괄적제언'(Dererumhumanarumemendationeconsultatiocatholica)이란라틴어원고가1935년독일경건주의운동의본산지인할례(Halle)에서발견되면서,코메니우스는20세기후반에이르러서야신학자요,철학자요,교육자로서,그리고경건주의운동가로서삶의개혁자로서,희망의신학자로서그의학문은높이평가되고있다.1992년이체코가공산권에서해방되어자유화되는해였고,또한코메니우스탄생400주년의해로,체코정부는코메니우스를제2의국부로,내세워존경하고,그의학문과명예를회복시켰다. 이러한역사적인인물,코메니우스와제1종교개혁의후예들인형제연합교회(Unitasfra-trum)에관하여그들의역사와신학과신앙전통을한국교회에소개하는기회를만들어준우리들교회목회자이신,김양재목사님께깊은감사를드린다.그간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를설립하고,코메니우스의교육신학사상알리기에주력해온한사람으로서필자는큰보람을느끼게된다. 논문전체의내용은첫째,코메니우스가누구인지?그의생애와활동을비교적자세하게소개하며,아울러현대신학자들의평가에근거한코메니우스의신학적인위치를밝혀보았다.둘째,이상적인신앙공동체를지향했던코메니우스의신학과형제연합교회의역사와신앙의특성을소개하며,셋째,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가이해한죄고백의신학적인이해와그실제를유추해석하며,넷째,코메니우스와형제연합교회가유럽의경건주의운동에미친영향을상세히다루었다.그리고논문의결론에서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의신학이죄고백과관련하여건강한신앙공동체로서보여주는의의(교훈)가무엇인지를밝혀보았다. 1.코메니우스의생애와사역,그리고그의신학적인위치 1)코메니우스는누구인가? 코메니우스는1592년,보헤미아(Bohemia,체코공화국)의남쪽,모라비아(Moravia)의우헤르스키브로드(Uhersky-Brod)근처니브니체(Nivnice)라는작은마을에서탄생하였다.일찍이부모를잃었고(10-11세),고아가된코메니우스를그의고모가슬로바키아(slovakia)국경근처에있는스트라츠니체(Straznice)로데려다가돌보았다.그때문에학교교육을제대로받지못하고,농사일과수공업을배우면서자랐다.16세에이르러그의아버지가남긴얼마의유산이발견되어,그덕택으로다시고향으로돌아와프레로브(Prerov)에있는형제연합교회가운영하는라틴학교에서공부하게된다.뒤늦게학교에들어갔지만,그의총명한머리는숨길수가없었고,그의아버지가속해있던형제연합교회가그를주목하고,장차그교회의지도자가되도록독일에있는헤어보른(Herborn)과하이델베르그(Heidelberg)대학으로유학을보내게된다.그리고코메니우스의이름은원래체코어로코멘스키(Komensky)였으며,그것은모라비아의작은마을콤나(Komna)에서온자란뜻을가진다.청년기의대학생활에서선지자아모스(Amos)를좋아하여,그의이름,얀(Jan)뒤에다붙였으며,코멘스키를라틴어로표기하여코메니우스(Comenius)로불렀다. 코메니우스는그곳대학들에서훌륭한선생들의학문적인영향을받게되는데,먼저헤어보른대학에서는요한하인리히알스테드(J.H.Alsted)교수로,그에게서철학과신학을배웠다.특히백과사전의작업,그리고철학적인사고인범지혜(Pansophia)에관하여큰도움을입었다.그리고요하네스피셔(J.Fischer)교수에게서는성경과성경해석의중요성에관한것으로,특히하나님의나라와천년왕국사상과기독교의종말사상에관하여배웠다.그리고하이델베르그대학에서는다빗파레우스(DavidPareus)교수이며,그는그당시루터파와칼빈파사이에분쟁을극복하고서로화해와연합을힘쓰는교회연합운동을전개했던인물이었고,코메니우스는그에게서평화사상과교회연합사상에큰영향을받게된다.그외에도독일에서교수학(Didactic)의전문가인볼프강라트케(W.Ratke)교수의교수학적인영향을간접적으로받게되었고,후에그의대교수학(Didacticamagna)에서교수학사상을새롭게발전시킨다. 코메니우스는대학시절의학업결과는놀라운정도였는데,무엇보다도성경에정통하였으며,그당시종교개혁자들의신학사상에관하여도정확한지식을소유하고있었다.그는역시플라톤과신플라톤주의에정통하였고,아리스토텔레스와세네카에대해서도풍부한지식을가지고있었다.그외에도그당시유럽에서이름나있던인문주의자요하네스비베스(J.L.Vives)와신학,철학,자연과학등도수용하였으며,프랜시스베이컨(F.Bacon)과토마소캄파넬라(T.Campanella)의사상에도영향을받았다.후에근세철학의아버지로불리는철학자르네데카르트(R.Descartes)를만나교제하기도하였다.이러한것들은오늘날코메니우스사상의중요한근거들로확인되고있다. 2)코메니우스의작품과그의활동 코메니우스는그의생애동안에많은저술과활동을하게되는데,문서로는약150여종이상을작성하여책으로출판하였고,많이분실되었지만,상당수가아직도남아있어서그의사상을이해하는데중요한근거가된다. 그는1614년대학공부를마치고,고향으로돌아와모교인,프레로브(Prerov)에라틴어교사로활동한다.그리고후에그학교의교장이되었다.그는이때부터교육에관한이론과실제를경험하게된다.1616년에플렉(Fulnek)에있는형제연합교회의목사로안수를받게되었고,1618년결혼을하였으며,또한그곳학교의교장으로일한다.풀넥의교회를맡게된것은,그곳대부분의교회구성원들이독일브란덴부르그출신인왈도파신도들의후손들로독일어를사용하고있었기때문에,독일에서공부하고돌아온코메니우스가그교회의목회사역에적임자로추천되었기때문이었다. 코메니우스는역시풀넥의목회사역이불과3년의짧은기간이었지만(1618-1621),그곳에서많은것을경험하였다.특히억압받는가난한자들의삶을경험하면서,정의에관한문제를깊이고민하게된다.그의주요작품인'하늘로보내는편지'가유명한데,사회적인인간의문제를하나님께호소하는글이었다.가난한자와부자들의편지,예수그리스도에게보내고받는편지등,4개의편지로구성된작품이었다. 그러나코메니우스는곧은둔생활에들어가게된다.그이유는보헤미아의정치적인상황이형제연합교회에매우불리하게작용하였고,형제연합교회의지도자들과함께체포명령이내려졌기때문이었다.벌써1618-1620년에사이에프라하에서프로테스탄트의정치세력과가톨릭편에서있는황제를중심한반종교개혁세력사이에권력투쟁이벌어지게된다.이때,정권찬탈을시도했던프로테스탄트의세력은반종교개혁세력의대항으로결국1620년11월프라하근교,백산전투에서대패하여,보헤미아는다시가톨릭교회의지배하에놓이게되었다.이싸움은유럽사회전체를파괴했던30년종교전쟁의시작이되었다. 은둔생활에서,코메니우스는가장슬픈비보를받게되는데,그것은흑사병으로그의아내와두아이를잃게된일이었다.코메니우스는인간적인슬픔을억누르고,그때쓰게된,유명한책이,'세상의미로와마음의낙원'(DieLabyrinthderWeltunddasPradiesdesHerzens)이다.이책은코메니우스가경험했던인간의모습과사회적인삶의형태를비유적이며풍자적인형태로그린것이다.역시이책은서사시적인형태로작성되어체코인들이많이읽는고전작품중하나로유명한책이되었다. 코메니우스는1522-1525년에도슬픔에슬픔을,위로에위로를등의작품들을발표하였고,형제연합교회의성도를위로하는위로서가되었다.그리고3번째위로의책은'안전의중심'(Centrumsecuritatis)이란책이다.여기서분명히하나님,인간,그리고자연을삼각구도로하는코메니우스의사상이드러나게된다.이글은세상이란바퀴한가운데하나님이계신다.세상의사물들은방사선모양으로혹은바퀴의살모양으로배열되어있으며,일정한거리를두고,그중심부주변을각기다른속도로회전하게된다.이그림에서코메니우스는두가지근본적인결론을도출한다.즉각각의피조물은두개의중심부를가지게되는데,하나는모든사물의창조주이시며,보존자이신하나님이시며,다른하나는자시자신으로,하나님이그에게부여한자신의독특성과본성이다.이러한중심개념은코메니우스에게있어서확고부동한위치이자,동시에역동적인관계성을뜻한다.그리고인간은내적인하나님과외적으로는회전하는피조물들사이에서자신의이중적사명에따라자신에게주어진자리를지키며,동시에하나님과바른관계를갖는일이다.그런데인간이이러한이중적인사명을놓치는것이인간의실수로서,자기중심적인태도와미로에등장하는호기심처럼,피조물에몰두하는일이다.피조물에몰두함으로써인간은그에게주어진본래의자리에서멀어지게되며,동시에자기중심적인태도는인간이세상의중심부인하나님과바른관계를맺지못하게만든다.그리고자신이하나님이되는것으로,이것이모든악의시초가되는것으로코메니우스는보았다. 코메니우스의글들은대부분성경의내용을통하여표현되었다.이러한작품들에서확인되는것은코메니우스에게서성경은끊임없는믿음과용기와희망을제공하는위로의샘이었고,지치지않게하는능력이었다.그는하나님안에신앙의뿌리를깊이내리고,자신의고난을보며,그자체의고통을느끼는것이아니라,오히려다른사람을염려하며,전인류의더나은미래를준비하는모습을보게된다.그리고그리스도가십자가에달리신자요,부활하신자일뿐아니라,역시형제연합교회가오래전부터알고있었던것처럼,실제로그리스도가이세상의유일한왕으로도래하고있는자라는사실에대하여분명히확신하고있었으며,그러한신앙의확신이코메니우스가인생의어려운시간에도절망하지않도록그에게큰도움을주게된다.또한현세에서풍성한결실을이루게된것들을빼앗기고잃어버리게될때에도,그리스도를의지하고,하나님의팔에붙들린자신을확신하고있는한,아무도자신을잃어버리지않게된다는사실을코메니우스는그의이모든글에서분명히보여주고있다. 그런데보헤미아와모라비아의프로테스탄트의정치적상황은더욱악화일로에처하게된다.그이유는1627년보헤미아의황제페르디난트2세는보헤미아의갱신된국가법이란것을발표하여프로테스탄트들의모든신분계층들의자유와종교의자유를박탈하였기때문이었다.이제가톨릭의합스부르그가문이모든권세를쥐게되었고,보헤미아는완전히가톨릭의세상이었다.결국코메니우스와형제연합교회는더이상고국보헤미아에서종교의자유를보장받지못하고,폴란드리싸(Lissa)에형제연합교회가있는곳으로망명길을떠나게된다.그리고형제연합교회의젊은목회자인코메니우스가사전에그망명길을준비하게되었다. 코메니우스는형제연합교회와함께리사(Lissa)에서새로운삶을시작하게된다.먼저코메니우스는리사에서1628-1641년까지13년을보내면서많은책들을쓰게되었고,또한그가여기서보헤미아를넘어서유럽사회에알려진인물이되는기회를얻게된다.그리고코메니우스는1648-1650년,1654-1656년에도이도시로다시돌아와서거주하였다. 그는이곳리사의인문고등학교교사로,후에교장이된다.그리고1632년에형제연합교회의총회서기가되었다.분주한일과에서도그는여러권의책을쓰게되는데,먼저교육의목적,목표,아이들에대한이해,그들의무엇을어떻게배우도록해야할것인지,교수방법을제시한교사지침서인보헤미아의교수학을출판하였다.그리고이책은후에암스테르담에서대교수학이란이름으로다시수정보완하여,그의교육학총서첫번내용으로제시된다.그리고부모들이자녀들을학교에보내기전까지가정에서무엇을어떻게교육해야할것인지?어머니학교의소식이란부모교육지침서도출판하였다.그리고열려진언어의문,자연과학개론등의책들을출판하였다.이책들은모두학생들이교재로사용하기위한것이었다. 코메니우스는1637년에범지혜의선구자(Prodromuspansophiae)란책을만들게되는데,이책은코메니우스가생각해온교육철학의핵심주제인모든지혜(Pansophia)로모든사람을철저하게교육하려는범지혜의교육계획서였다.라틴어로작성된이책이1638년영국에서출판되면서코메니우스는일약범지혜의철학자로,그리고교육학자로그의이름이유럽의지성인세계에알려지게되었다. 1640년대의코메니우스는이책으로인하여,유럽의여러나라에서초청을받게된다.먼저파리에있는가톨릭의추기경리헤리우(Richelieu)가,코메니우스를데려다가파리에범지혜의대학을세우려하였고,영국에서도코메니우스를데려다가범지혜의대학과영국의국가교육계획을개혁하도록맡기려했다.그리고스웨덴에서도코메니우스는학교교육에필요한교재집필로초청을받게되었다.또한그당시미국마세추세츠주에서하바드대학이설립되면서,코메니우스를초대총장으로초청하게되었다.그러나코메니우스는이모든초청들에다응할수가없었다.그이유는그가책임지고있는형제연합교회를돌보아야하는일때문이었다.다만영국의회의초청에응하였으나,곧영국내의종교대립으로인한시민혁명이일어나아무런일도하지않고,약9개월동안런던에서체류하다가다시스웨덴의초청을받고,스톡홀름으로향하게된다.이때영국의체류동안에코메니우스는빛의길(ViaLucis)이란그의범지혜의교육철학에근거한학교교육개혁에연관된문화정치적인책을집필하였고,후에암스테르담에서1668년에출판하였다. 코메니우스는1642년6월영국을떠나스톡홀름으로향하는도중에암스테르담에들리게된다.여기서그는스웨덴의초청을받도록힘썼던데기어(LouisdeGeer)를만났으며,또한라이덴근처,엔데게스트성(endegeest)에머물고있던데카르트(R.Descartes)도만나게된다.물론두인물의만남은각각의추종자들사이에서준비했던일이며,오래살았던코메니우스는그의회고록에서데까르트와의역사적인만남을상세히기록하여전했다.중요한것은이들은서로의학문적인경의를표하였고,데까르트는코메니우스의범지혜의철학과세계공용어의필요성에대하여공감하였고,코메니우스는데까르트의수학적인사고방식과엄격한검증에감탄하였으며,수학과자연과학의발전에생각을같이하였다.그러나이들에게서의차이점은이성중심의인식에관한것인데,데까르트가그의모든사상체계를오직이성에근거하여구성하는반면,코메니우스는지식습득에는이성과더불어인간의감각과하나님계시의증거가필요함을주장하게된다.그리고코메니우스는데까르트의사고가한쪽으로치우쳐있음을정확히지적하면서,후에여러글들에서그러한문제들을잘분석해내기도하였다.코메니우스는데까르트의'나는생각한다.고로나는존재한다'란명제를비판하게되는데,생각할때만존재하고잠잘때는존재하지않는지를반문하면서,인간은생각하면서도,행동해야하는존재임을강조하면서,데까르트철학에나타나는생각과행동의이원적인분리문제를지적한다.그리고코메니우스는데까르트를비판하기보다는그를추종하는자들(Cartesianer)의데까르트에관한왜곡을비판하였다.코메니우스는그의말년에암스테르담에산재해있는데까르트주의(Caetesianismus)적인사고를'철학의암적훼손(DerKrebsschadenderPhilosophie)이라고비판하였다. 코메니우스는이때1642년8월50세의나이에역시스웨덴의초청을받고,스톡홀름으로간다.거기서스웨덴의수상옥센스티에르나(A.Oxenstierna)를만나고,루이스데기어(R.deGeer)의재정후원으로스웨덴의학교개혁을위한새로운교재집필을위임받게된다.코메니우스는이작업을스웨덴의영토였던독일의동북해안에있는도시엘빙(Elbing)에거하면서수행하게된다.그이유는그곳이형제연합교회가있는리사와거리상가까운곳이었기때문이다.그래서형제연합교회를돌보는일을병행할수있었다.그는이곳에서스웨덴의학교교재집필외에도,그가후에미완성작품으로남긴세계개혁을위한구체적인제언서를준비하였다. 1648년56세가된코메니우스는리사로다시돌아오게된다.그런데도착후얼마되지않아그의아내,도로테아(Dorothea)가병으로죽게된다.1618년에시작된30년종교전쟁은마지막국면에이르게된다.가톨릭편인프랑스와프로테스탄트편인스웨덴사이의전쟁은뮌스터오스나부릭에서베스트팔리아평화조약(WestfalliaFriede)으로끝나게되었다.그러나그토록고대하고기다렸던형제연합교회의종교자유는보장받지못했다.그리고코메니우스의고향이며조국인보헤미아는적그리스도인가톨릭의통치하에들어가고말았다.이것은역시형제연합교회의몰락을의미하였다. 1650년코메니우스는형제연합교회에드리는위로의글'죽어가는어머니,형제연합교회의유언'을남기게되었다.그내용은형제연합교회의죽음을탄식하며,어떻게유럽사회에서신앙생활을유지해야할지를되묻고,교회의몰락에도불구하고형제연합교회가결코헛되지않음을상기시키면서,형제들이프로테스탄트의다른교회들에속하여신앙생활을할때,형제연합교회의신앙유산인6가지를보존하게되기를희망하였다(진리의사랑,성경말씀에충성,교회의훈육,모국어보존,교회연합정신등).그리고모든프로테스탄트교회들이그리스도안에서연합하기를소망하였다. 코메니우스는이러한상황에서형제연합교회의감독직을부여받게되었다.그러나그것은형제연합교회의마지막감독직이었다.1649년57세나이에요한나가요소바(J.Gajusova)와함께세번째가정을꾸리게된다.그리고암스테르담에서그의작품들이출판하도록코메니우스는초청을받게된다.그러나항가리의사로스파탁에있는라틴어학교를코메니우스의범지혜로개혁하는일을해달라는초청으로그곳으로먼저가게된다(1650년).역시코메니우스는그곳에서학교교육의책임자가되었고,그유명한두권의교재인'그림으로배우는세계'(Orbissensualiumpictus)란책과놀이학교(ScholaLudus)를출판하게된다.전자는어린아이들이그림으로언어와세계의자연피조물과정신과기독교신앙을배우게한모든지혜학습의모범적인책이었다.그리고후자는학교를아이들의놀이의장,즐거움의장이되게하는것이었고,연극상연등을하도록대본을제시한책이었다.그림으로배우는세계의책은1658년에준비하여라틴어-독일어판이출판되었다. 그러나코메니우스는역시항가리의사로스파탁(Sarospatak)에오래머물수가없었다.불행하게도,그를지지하던영주라콕지(Racockzy)가전쟁에서전사하였고,사로스파탁의사람들에게서코메니우스가원했던범지혜의교육에관한관심이그렇게성공적이지못했기때문이었다.그리고리사에서형제연합교회는코메니우스가다시리사로돌아오기를재촉하였다.그래서코메니우스는3번째다시리사로되돌아오게된다.그러나정치적인상황역시코메니우스에게우호적이지못했다.30년종교전쟁은끝났지만,부분적으로프로테스탄트와가톨릭사이의대립관계는여전히남아있었다.특히스웨덴이폴란드에서의전쟁으로코메니우스가제2의고향처럼머물렀던리싸가가톨릭군대의침입으로정령당하게되었다.그때문에코메니우스의집과모든서재가불타게되었고,그가그동안작성하고준비했던원고들의대부분이소실되었다.황급히코메니우스는리사에서피난처를또찾아야만했었다. 원래코메니우스는영국으로망명하려했으나,뜻대로이루어지지않았다.이제코메니우스인생의마지막기간이암스테르담에서새롭게시작된다.그는이전에큰도움을받았던화란의거부,루이스더기어(LouisdeGeer)의아들인라우렌티우스의초청을받게되었다.그의도움으로암스테르담에서코메니우스는14년을살게되었다.코메니우스옆에는그의사위피터스피굴루스야불론스키(P.P.Jablonsky)가동행하였다. 여기서코메니우스는두가지큰작업에열중하였는데,하나는교육학총서(Operadidacticaomnia)를출판하는일이었고,다른하나는오래전부터구상하고시도했던'인간사개선에대한보편적인제언'의글을완성시키는일이었다.그러나이작품은끝내미완성유작이되고말았다.그리고코메니우스의모든교육과관련된문서들을총집결시킨교육학총서는암스테르담의시정부의재정후원으로출판의빛을보게되었다.그리고특히코메니우스의곁에는30년종교전쟁과관련하여예언가들이항상동행하였는데,크리스토퍼코터,크리스티나포니아톱스카,니콜라우스드라빅등의인물들이었다.코메니우스는때때로그들의예언들에귀를기울이는일로일찍이형제연합교회에고소당하여비판을받았으며,'계시의역사'란글과'참된예언과거짓예언'이란글을발표하여,자신의입장을변호하기도하였다.가장크게문제가되었던것은드라빅의예언인데,그는30년종교전쟁에서프로테스탄트가승리하고,보헤미아형제연합교회가고국으로돌아가게될것을예언했으나,그예언은적중되지않았으며,상황은정반대가되었다.심지어코메니우스의옛제자였던폴란드의형제연합교회에속한니콜라우스아르놀드(N.Arnold,1618-1681)의코메니우스에대한비판은코메니우스에게큰충격이었다.코메니우스는이러한예언과관련하여당하는여러비판을그냥묵과하지는않았다.마침내1665년에'어두움에서나아온빛'(Luxatenebris)이란책을출판하여,긴급한전쟁의위기상황에서예언을통하여하나님이형제연합교회의미래를밝히는뜻이무엇인지를확인하려고드라빅(Drabik)의소리에경청했던사실을고백하였으며,그러나하나님의성경말씀의계시외에인간구원의어떠한계시는없음을분명히밝히기도하였다. 코메니우스는암스테르담에서의노년기에도왕성한저술활동을지속하였는데,형제연합교회의찬송가와신앙교육을위한요리문답서,형제연합교회의역사에관한글,교회법의개정과형제연합교회의옛신앙고백서의개정판등을출판하였다.그리고정치와직접연관된3편의글,삼단논법(Syllogismus),독일을향한마지막나팔(DieletztePosaunueberDeutschland),그리고평화의천사(Angeluspacis)등을저술하였다.이가운데특히평화의천사는직접그당시정치가들을겨냥했던것으로,그대상은1664-1667년사이에있었던계속된영국과네델란드사이에두번째해전을종식시키려고,브레다(Breda)에모였던양국의사절단들이었다.바다의항해권으로다투고주도권을주장하는그들에게바닷길은천지를창조하신하나님이만드신것으로,그주인이하나님이며,그바닷길은평화롭게함께사용해야하는공동의것이지,어느개인한나라의것이아님을밝히고,해상권다툼은중단되어야한다는것을역설하였다.코메니우스가직접그회담에사절단으로참석하여연설하였는데,그의연설에감화를받고,문제를평화롭게해결하는데공헌하기도하였다. 코메니우스는거의인생의마지막에까지삼위일체존재방식의하나님을거부하고,단일신론을강하게주장하여예수의신성만을강조하던소시니안주의에대항하여많은비판의글을남겼다.그리고코메니우스가죽기전해에,흐로닝겐대학의교수였던칼빈주의자마레시우스(S.Maresius,1599-1673)에게서비판을받게되었는데,그는천년왕국론에대표적인인물로코메니우스와라바디를지적하면서비판하였다.그러나유감스럽게도코메니우스는잦은질병으로더이상자신의신학적인입장을충분히변호할만한상태에있지못했다. 코메니우스는마지막작품으로'꼭필요한한가지'(1667-1668)를출판하게되었는데,이책은코메니우스의유언으로불리기도한다.그이유는그의삶과사상,그리고그의희망을다시한번감동적으로,친밀하게요약해주고있기때문이다.코메니우스는먼저행복에대한질문으로시작한다.인간의행복은첫째,이성의밝은빛가운데서,둘째,일더미속에서일할때,그일들이적절한순서에따라진행될때이며,셋째,이생의소유를확실히누리는것에서라고하였다.그런데이러한행복이왜그렇게잘실현되지않는지에대하여미로란말을사용하여설명한다.인간은세상의미로에서나올수있는탈출길을찾아야한다.이세상의모든혼란들은오직한가지,즉사람들이필요한것과불필요한것을제대로구분하지못한데그원인이있음을전제하고,필요한것을간과하고,불필요한것에끊임없이몰두하며,그것에뒤엉켜휩쓸리기때문이라고하였다.그러므로꼭필요한한가지는그리스도의규칙(말씀)만이오직세상의미로에서탈출할수있는출구를가르쳐준다는것을증언하였다. 그러면인간에게가장먼저필요한것이무엇인가?그대답은바로자기자신이다.인간은자신을알며,자신을다스리며,자신을사용하고,누리는법을배워야한다고하였다.코메니우스는역시이것을해낼수있기위해서3가지영역을보여주었는데,그것이그가말한교육을포함한학문,정치,종교의개혁이었다.특히코메니우스는그의형제연합교회의사역은교회연합에있음을강조하면서,그것이야말로세계를개선하기위하여절대적인조건임을강조하였다.지금까지자신의사역은이러한일을성취하지못했지만,그러나분명히열매를거두게되리라고역설하였다.그리고이제자신이이끌던작은형제연합교회가전세계의모든민족가운데,곳곳에서세워지기를소망하였다.그리고자신이관계하던작은형제연합교회는문을닫고,두가지책출판과함께전세계를향하여큰형제연합교회의문을열어젖히기를희망하였다.하나는그의조국을위하여모국어로쓴책이며,다른하나는다른민족들을빨리계몽하기위하여라틴어로...쓴것이었다.그것은아마도'인간사의관계개선에관한보편적인제언'이란세계개혁안이었을것이다. 그러나코메니우스는총7권으로구성된그의책을부분적으로다완성하지못한채,남기고,1670년11월15일78세의나이로암스테르담에서숨을거두었다.지금그는암스데르담의근교나르덴에있는화란개혁교회공동묘지에안장되어있다. 3)코메니우스에관한현대신학자들의평가와그의신학적인위치 유럽교회와신학의역사는약3세기동안신학자로서의코메니우스를잊고있었다.그결정적인이유는17세기프랑스에출판된역사적이며비판적인권위를가진삐레베일(PierreBayle)의사전때문이었다.그사전은신학자로서의코메니우스에관해서는침묵한채,그의생존기간에부분적인활동이었던,학교의교사요,언어의교수학자요,백과사전적인교재집필자에한정된교육자로만소개해놓았기때문이었다. 그러나1935년,독일경건주의운동의본산지였던할례(Halle)에서발견된코메니우스의미완성유작('인간사개선에관한포괄적인제언')의라틴어원본은이러한코메니우스의학문적인이해를완전히바꾸어놓게되었다.그이유는이문서들은제목이뜻하는그대로인간이관계된모든일들이올바른관계의질서속에세워지도록유럽사회를개혁하려는그의제언들이담겨있었고,그의모든생각들은성경에근거한것으로,신학적이며,철학적이며교육적인것들로엮어진종합적인통찰을보여주었기때문이다.또한이책들은기독교적인삶을대변할뿐아니라,철학적이며,우주적이며,인간학적인그시대의사상들을대변하였고,특히종교개혁이완성하지못한,삶(세상)의개혁방법을포괄적으로담아놓은그의신학작품이었다.그안에서코메니우스는모든유럽의지성(철학)인들과정치인들과종교인들과의대화를요청하였고,특히교육과정치와교회의개혁을위한구체적인제언들이담겨있었다. 그러면코메니우스가'인간사개선에대한보편적인제언'(consultatiocatholica)을통해서성취하려는것은과연무엇인가?그것은코메니우스의핵심교육철학인판조피아(Pan-sophia)와관계되어있다.우리말로범지혜(汎知慧),또는모든지혜로번역된다.인간은우주에존재하는사물들이무엇인지?그내용과존재방식과존재목적을알아야하며,그래야원래목적대로그것을올바르게사용할수있다는것이다.그러나이러한인간의양심적인자유의지의사용(usus)이왜곡될때,무질서와혼돈이거기서야기되는것으로보았다.가장중요한것은존재의근원과방편과목적에대한앎은창조주의뜻을헤아리는것과연관되었다.결국코메니우스에게서판조피아(Pansophia)는하나님에게서나아와하나님께로돌아가는모든존재들의삶의전체과정에대한올바른지적인이해를뜻하며(롬11:36),인간은그과정에서모든지혜(내용,방법,목적)를헤아리고,본래목적한대로사용해야한다는자유의지의중요성이강조되었다.코메니우스는이러한판조피아(Pansophia)사상을성경에서발견하였는데,골1:27-28절은결정적인근거이다.바로자유의지의선용때문에코메니우스는모든사람들이모든지혜를배워서,그리스도안에서완전한자로행동할것을목표하였다.물론여기서완전하다는것은윤리도덕적인완전주의가아니라,그리스도의말씀에전적으로순종하는삶을뜻한다.그리고코메니우스는7권각각의책앞에다이와같은전체를가리키는판(Pan)의개념을연결시켰다.그리고첫번째책인,범각성론(Panegersia)의서문에서코메니우스는범개혁의의도한바를상세히밝힌다.그것은하나님의형상인인간이다스려야할세상사물들(자연/피조물)과의관계이며,진지하게서로대화해야할동등한다른사람(이웃)들과의관계이며,또한창조주하나님과관계된지식(경건)들을알게해주려는것이었다.여기서하나님은영원을다스리시며,인간의의지는그분의뜻에따라,그분과의교제를위한준비에힘써야하는데,그것은간단히말해서학문(eruditio)과정치(politia)와종교(religio)의3가지영역에관계된지식들로서,그것이바로인간사(人間事)에해당하는일이었다.그리고지금하나님은이3가지영역의일들이무질서와혼돈가운데놓여있는데,그것들이인간이겪고있는불행임을느끼고,그것의개선(改善)에대한소망을사람들로하여금갖도록일깨우려는것이었다.그리고세상의원상태,즉낙원의상태는인간의타락으로본래의모습을상실하였고,그로인하여발생하는모든문제는학문과정치와종교의영역에관계된것들로서,그간여러개혁(루터,쯔빙글리,멜란히톤,부쳐,칼빈,부게하겐등)들이시도되었지만,성공하지못한것은잘못된방법을사용했기때문임을지적한다.먼저종파간에서로를파멸시키려는의도를가지는한,종파들은없어지지아니하고,더욱늘어났으며,적대감을가지고없애려했으나,더날카로워지기만했다는것을지적한다.학문적인작업은많으면많을수록학문은더욱엉클어져갔기때문에,이제는먼저병폐를찾고,치유책을찾으며,이두관계를살펴보자는것이다.코메니우스는지금까지의개혁의시도들이종교,정치,학문의어느한특정한부분에만치우쳐있었기때문에,제대로성공하지못한것이며,온전한개혁은이제이3가지영역에서포괄적으로,삶의모든영역에서전체적으로개혁되어야할삶의개혁이며,그것을세계개혁으로부르게된다. 그러면코메니우스가그토록세계개혁을희망했던7권으로구성된문서들의내용과관련하여,오늘날유럽의신학자들은코메니우스의학문을어떻게평가하는가?특히이러한평가들에서우리는코메니우스의신학의학문적인위치를학인하게된다. 먼저독일본(Bonn)대학의헤닝슈뢰어(H.Schroeer)교수는코메니우스를그간잊어버렸던실천신학의학문적인대가(大家)로평가하였다.바젤의조직신학교수인밀릭로흐만(MilicLochman)은코메니우스를세계개혁을희망했던신학자로불렀고,교회연합적인종교개혁의대표자로,세계를개혁하려는희망의열정가로평가하였다.튀빙겐대학의종교교육학교수인닢코(K.E.Nipkow)는코메니우스의신학을종말론적인행렬로부터전진하는미래를향한희망의신학의전주자(前奏者)로여겼다.또한화란우트레히트대학의교회사와선교학교수,판데어린데(VanderLinde)는코메니우스의신학을귀환의신학으로명명하면서,코메니우스는교회연합운동을위한현대적인의미를지닌신학자로평가하였다.그리고슬로바키아의코메니우스대학(브라티스라바)의조직신학교수인이고를키씨스(IgorKissis)는코메니우스야말로샤르뎅이나,몰트만과같은현대신학자에버금가는인물로보았으며,현대신학의선구자로평가하였다.그리고독일의복음대학의교육학교수인클라우스샬러(K.Schaller)는코메니우스의교육학은인간의인간성형성교육그자체가목적이아니라,하나님의계시목적을실현하기위한수단으로서의교육을이해한,그야말로교육하는신학자이며,또한실천신학자임을밝혀주었다. 이러한유럽신학자들의평가를전제할때,코메니우스는신학자가분명하며,그러나17세기의전통적인교리체계를따라그의신학을제시한조직신학자이기보다는신앙적인삶을전제한행동하는신학,또는실천지향의신학을제시한실천신학자가분명하다.그리고그는종교개혁의전통적인신학체계를따르면서도,종교개혁신학이교리논쟁과더불어지나치게사변적이며,스콜라주의적인상태에머물러서로다름만을고집하고대립하던전통교리신학적인한계를뛰어넘어,행동실천적인신학을강조한실천지향의신학자였다.그리고인간교육문제를앞세워'인간사개선에대한포괄적인제언'(Consultatiocatholica)을직접만든것은전적으로그의신학적인사고에근거하고있음을보여주는실증적인것이며,17세기의전환기에,새롭게일어나는이성중심적인사고와자연과학의급격한발전에,기독교하나님의자리가위협받는상황에서,교리대립(루터파와칼빈파)의변증일변도의방법만으로는전혀그시대의인본주의적인도전을극복할수없다는판단하에,종교개혁적인구원신학(칭의론)을뛰어넘어창조신학을중심으로,창조세계전체를직시하고,인류구원의문제를새롭게해결하는새로운신학적인방향을제시해주었다.이러한코메니우스의실천지향적인신학의특징은역시종교개혁이고집한종말론적인신학의한계를뛰어넘어,땅에서이루어져야할천년왕국(주기도문)의종말론을지향한것에서도분명히드러난다. 2.코메니우스와형제연합교회가지향한이상적인신앙공동체의역사 원래형제연합교회(Unitasfratrum)는루터의종교개혁보다약100년먼저보헤미아-모라비아에서시작한종교개혁자,요한후스(J.Hus,1369-1415)를추종하던그룹중하나였다.후스는1405년경부터프라하대학의설교자로,교수로,그리고마지막에그대학의총장이되었다.그러나그는영국의위클리프(J.Wycliffe,1324-1384)로부터받은성경에근거한종교개혁적인사상은더욱성장하여,로마가톨릭교회의비성경적인가르침과사제들의타락상을비판하면서,복음의설교를통하여종교개혁을부르짖게되었다.그는프라하대학의총장자리에서파면을당하면서도,그의종교개혁의외침은수그러들지않았고,절정에이르렀다.결국로마가톨릭교회는그를콘스탄츠종교회의중,종교재판에넘겼고,그를화형시키고말았다.가톨릭교회의이러한잔악한행동에보헤미아와모라비아지역의귀족들과백성들은크게분노하게되었고,여러그룹의후스추종자들이생기게되었다.첫째타보르(tabor)란도시에서시작한타보리텐파(Taboriten)들은하나님나라실현에복음과칼을함께사용하는정치적으로매우급진주의자들이었다.둘째양영성체파(Utraquisten)로불리는자들은성찬의떡과잔을함께분배하기를요구했는데,가톨릭의성찬의떡과잔을동시에베푸는술책에휘말려대부분다시가톨릭교회로되돌아가도말았다.셋째,형제연합교회(Unitasfratrum)인데,타보리텐파에서이탈된사람들,소수가중심이되어1440년경에새로이시작되었다.하나님나라의실현에복음과칼이필요함을주장하는그들의생각에반대하고,새로운개혁적인복음운동을시작한사람이취첼츠키(P.vonTchichelcky,1380-1452)라는한평신도였다.그는원래타보리텐파에속했던인물이었지만,그들의비복음적인태도에실망하고,성경말씀을따라순수한복음에순종하며살기를원하여,그주변사람들이모이면서시작된다.이그룹은사도시대의신앙을따라성경의진리와복음에합당한순종의삶을추구했던매우경건한자들이었다.복음의진리에대하여매우비타협적인성격을보이며,경건한신앙과엄격한신앙훈련방식때문에다른그룹으로부터박해를받기도하였다.이들은성경대로임박한그리스도의재림을기다리는종말론적인신앙을가진자들이었다.그런점에서형제연합교회는다른후스파추종자들과는달리진정한후스정신의계승자들로평가되었다. 생각하면코메니우스는형제연합교회의역사가약162년이지난후(1592)에태어난인물이다.정확히말하면,코메니우스가먼저형제연합교회의영향을받고성장하였으며,후에다시그는형제연합교회의목사가되었고,가장어려운시기(30년종교전쟁)에지도자가되어마지막감독으로형제연합교회를이끌었던인물이었으며,많은영향을미친신학자요,목회자였다. 1)보헤미아형제연합교회의역사 그러면형제연합교회의역사는어떠한가?순수한사도시대의신앙공동체를염원하면서,형제연합교회를출발시킨인물은역시한평신도취첼츠키(P.Tschichelcky)였지만,실제로형제연합교회가형성되도록신학적인토대를세워준인물은루카스폰프라그(LukasvonPrag)라는신학자였다.그는취첼츠키의정신을그대로이어받아성경을신앙생활의유일한범칙으로삼았으며,특히예수의산상수훈을매우중히여기고,실천하도록힘썼으며,주님의만찬에함께하시는분은'영으로임하신그리스도'라는성경의이해를분명히하여루터와는구분하였다. 보헤미아형제연합교회는1464년에교회법을준비하기위하여총회를개최하였고,교회의신학적인토대를놓았다.이때믿음으로의롭게되는복음의진리(칭의)와그리스도의법에순종과교회의훈육등을공동체생활의근본토대로삼았다.그러나이교회가믿는칭의(稱義)는단순한믿음만이아니라,더깊이그리스도의사랑에근거하고있었다.믿음과사랑에근거한칭의가확실한소망을가져다주는참복임을믿었다.그리고믿음과사랑에기초한형제연합교회의칭의론은선을행함으로의롭게된다는가톨릭교회의입장과는전적으로달랐다.그리고사랑은오히려기독인들에게당연히나타나야하는성령의열매로인식되었고,사랑의행위는그리스도의계명에순종하는증거로이해하였다.그때문에형제연합교회는이웃에대한사랑의행위를올바른믿음의외적인증거로삼게된다.그리스도에대한순종의행위없이말로만고백하는신앙은충분하지않은것으로생각하였고,참된믿음은그리스도의멍에를짊어지고자하는결단이며,또한그리스도께서원하는것을실제로행하는것으로이해하였다.이런관점에서형제연합교회는훈육을신앙의중요한조건으로생각하였는데,그이유는훈육이그리스도의멍에를짊어지게하는일에큰도움으로여겼기때문이다.그리고이러한훈육은폭력이나,강요에의한것이아니라,애정에근거한사랑의훈육이었기때문이다. 폰프라그(VonPrag)는총회를통하여형제연합교회(Unitasfratrum)라는교회공동체의명칭을공식화한다.그리고교회의정치조직도성경대로장로제도를선택하였다.이것은칼빈에게서배워스코트랜드에서실천한존낙스(J.Knox)의장로제도보다훨씬앞선역사였다.또한사도들의모범을따라제비뽑는방식으로3명의성직자를선출하였고,이를장로로부르며,그중에한명이수석장로가되어,교회전체를대표하는감독(Bishop)의역할을하게하였다.1499년이래로10명으로구성된협의회로확대하여,기존3명의장로들과함께최고의의결기관이되었다.형제연합교회의총회는교회의봉사자로서10인의장로협의회와목사들,그리고집사들로구성하였다. 형제연합교회는1494-1528년사이에새로운전환기를맞게된다.이기간에교회를정착시키고,가톨릭의종교박해에도불구하고,순수한복음의사도적인신앙을견지하고,당당한프로테스탄트교회로성장시키는일에3명의지도자들이차례로중요한역할을하게되었다.그들은루카스폰프라그(LukasvonPrag)와,얀아우구스타(JanAugusta),얀불라흐스라브(JanBlahslav)였다.1517년에루카스폰프라그(1640-1520)는형제연합교회의첫번째감독이되었다.그는신학자로서형제연합교회의조직을확대하며,지금까지형제연합교회가진리수호를위하여그간폐쇄적이며,분파적이었던모습에서개방적인모습으로변화시켰다.즉세상속에서하나님의사역을더욱성취하기위하여복음에대한교회의사회적책임도강조하게된다.그는특별히교회를통한하나님의사역을본질적인것과목회수단적인것,비본질적인것등으로구분하고,본질적인것은하나님의구원사역과직접연관된것으로믿음,소망,사랑을사역의중심에다놓았다.형제연합교회는믿음은하나님의선물로이해하였으며,이러한믿음에는전적으로하나님의은혜이며,인간의그어떤노력(공로)이개입될수없음을강조하였다.사랑또한하나님의활동으로이해하였고,자비로운하나님의의지와은혜로예수그리스도안에서실현된것으로보았으며,이러한믿음,사랑가운데참된소망이존재하는것으로인식하였다.소망은기독인의삶의방향과인생의목표를밝혀준것으로이해하였다.그때문에이러한소망은하나님과기독인의관계에서가장핵심적이며본질적인사역으로이해하였다.그리고목회의수단적인것은교회를통하여반복적으로수행되어야할하나님의말씀의선포인설교와성례와열쇠의직무수행이었다.그리고목회수단의사용목표는역시모든사람을믿음,소망,사랑으로인도하는것이었다.루카스는교회의사역에서이러한본질적인것과목회수단적인것을구분함으로써보헤미아형제연합교회의신학을특징짓는일에기여하고,형제연합교회가성경과교회와의관계를이해하는일에큰영향을미치게되었다. 2)형제연합교회와종교개혁자들과의관계 1517년비텐베르그(Wittenberg)에서종교개혁을일으킨마르틴루터(Luther)는1519년에비로소보헤미아의종교개혁자인얀후스의가르침이매우복음적인것으로인정하게된다.그리고루터는후스파사람들과의접촉을시도하였다.그때문에보헤미아지역에서도루터의종교개혁을따르는추종자들이생겨났다.역시반대로형제연합교회의감독인루카스(Lukas)는루터의종교개혁의입장들을집중적으로연구하였고,종교개혁의정신을확인하기위하여마침내형제연합교회와루터가만나게된다.특히루카스와루터와의만남은루터교회와형제연합교회가긴밀하게교제하는프로테스탄트교회로서연합하였다. 루카스가죽은후,얀아우구스타(1572년사망)가형제연합교회의장로가된다.그는신학자로서,설교가로서형제연합교회를이끌었다.1542년에비텐베르그를방문하여루터와교제하였으며,그가1532/33년에형제연합교회의신앙고백문을만들때,루터가만들었던아욱스부르그신앙고백서의도움을받았고,루터는신앙고백서를라틴어로번역하는일에도움을주었고,그고백서의서문에추천글을직접써주기도하였다. 형제연합교회와루터의관계는루터와멜란히톤(Melanchton)이죽은후,유감스럽게도악화상태에빠져갔다.그이유는강한종파주의적인성격을지닌루터파의추종자들과의관계에서많은어려움을겪었기때문이다.결정적인것은루터파교회는유럽전체의프로테스탄트들과연합을외면하고,그들자체의안전만을생각하여,형제연합교회의불신을초래한다.결국1555년에체결한아욱스부르그평화화의(Augsburgfriede)가문제였는데,특히'통치자의영토에통치자의종교를'(Cuiusregio,eiusreligio)이란문구로인하여,루터파만살아남는문제가발생하게되었다.루터파교회에크게실망한형제연합교회는이때부터다시프로테스탄트연합을강조해온,스트라스부르그의마틴부쳐(M.Bucer)와제네바의칼빈(J.Calvin)에게로관심을돌리게된다.특히칼빈의가르침에서형제연합교회가지향하고있던신앙의교리와신학적인이해가일치하는점들이많은것을알게되면서(성만찬,교회훈육,국가권력으로부터의자유,그리스도왕권의삶에서의주권인정등),형제연합교회는칼빈에게로항하였다.그이후부터보헤미아형제연합교회의젊은세대들은비텐베르그가아닌,제네바,하이델베르그,바젤스트라스부르그,헤센지역의헤어보른대학등으로유학을보내게되었다.유감스럽게도1548년보헤미아의왕페르디난트I세는보헤미아의형제연합교회를박해하게되었고,모든설교자를체포하도록명령을내렸고,지도자아구스타는체포되어심한고문을받고,16년동안감옥에갇혀있다가죽음을맞게되었다.이후로부터형제연합교회는극심한종교박해를받게된다. 1557년얀블라호스라브(1571년사망)가형제연합교회의장로로선출되었다.그는형제연합교회의후진양성에힘을쏟았는데,교단내에서인재를발굴하여외국에유학하도록개방정책을펼쳤다.그이전까지목사양성에별다른학력을요구하지않았으며,훌륭한목회자밑에서자체적으로경건훈련을받게하고,소명과사명을따라목자로세워교회의예배와목회사역을감당하게하였다.그리고목사에게특별히급여가따로지급되지않았다.오히려사도들의모범을따라가난하게사는것을미덕으로삼았고,목사들은생활비를자비량으로해결하였다.그러나이제는목회자가외국대학에서고전어를공부하고,성경원어에충실한설교자가되도록훈련받게하는방향으로전환하였다.그리고형제연합교회는체코어로된크랄리체번역성경(1579-1595)을소유하면서,교회지도자들의학문적인신학수학에대하여긍정적인생각을가지게되었다. 3)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신학의근본토대 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의신학은근본적으로하나님이인간을구원하기위하여계시하신성경에근거한다.성경은하나님의말씀으로서후스의정신을그대로수용하고따랐다.이러한성경에나타난신학적인근본토대는형제연합교회의첫신학자였던루카스폰프라그가제시하였다.그리고이러한형제연합교회가지향하는근본적인신학을코메니우스는그대로수용할뿐아니라,오히려전인류를구원하는선교교육적인,또는교육선교적인신학의관점으로새롭게발전시키게된다. (1)형제연합교회의성경이해와구원신학 루카스가제시한신학대로,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는하나님의성경계시에근거한복음의핵심적인과제를본질적인것(Essentialia),수단적인것(Ministerialia),부수적인것(Accidentialia)으로구분한것을그대로따랐다.그리고본질적인것3가지는하나님이인간에게요구하는필수적인것으로믿음,사랑,소망의목표를놓치지않았다.그것을형성하도록돕는은혜의수단을하나님의말씀(성경)과교회(천국열쇠의직무)와성례3가지를잘사용하였다.특히구원신학의본질은믿음,사랑,소망(고전13:13절,살전1:3절,골1:4-5,히10:22-26)에확고히두었다.그리고부수적인일(Accidentialia)은교회의규범들,교회의경건과관련하여만들어낸여러관습들을생각하였다. 여기서루카스는구원에필수적인것을두가지관점에서설명한다.먼저하나님편에서의본질적인것은하나님의은혜,예수그리스도의공로,성령의선물이다.그리고인간편에서의본질적인것은바로믿음,사랑,소망이다.이러한신적인은혜없이,믿음은죽은것이며,사랑은결핍된것이며,소망은텅빈것이다.믿음,사랑,소망은살아있으며,다만하나님의사역에의참여안에서,그들의종교적인존재와효력을가지게된다.결국믿음,사랑,소망은은혜로살며,하나님을위하여살아있게된다.그리스도의구원은은혜와하나님의진리가능력이며,그리스도안에서이루어진공로이며,성령안에서주어진선물이며,인간의영안에서믿음과사랑과소망에의참여인것이다.하나님편과인간편에서의근본적인일들은신적인실체(實體)의양면과같은것이며,또한인간구원의목표를가진것이다.왜냐하면하나님은구원을인간들이원하거나줄수있는것에근거하지않고,반대로하나님이스스로인간밖에서,인간을통하여인간안에작용하는것에근거하였기때문이며,인간편의필수적인일들이인간의공로가아니라,하나님의값없이주어진은혜의선물임이분명한것이다. 형제연합교회는이러한구원신학의대전제하에서목회자들을깨우쳤으며,교회공동체의일원들을깨우치고,그들의신앙을믿음,사랑,소망으로서의삶을철저하게살도록훈련을시켰다. (2)코메니우스의성경이해와구원신학 코메니우스는역시형제연합교회의목회자답게,성경계시에근거한구원신학의근본토대를그대로수용하고따랐다.특히본질적인것3가지믿음,사랑,소망은정경중의정경(CanonimCanon)임을강조한다.코메니우스는역시성경전체의내용을3가지계시로구분하여,믿음을요구하는구원의계시들(Offenbarungen),사랑의요구요,순종을요구하는명령들(Gesetze),소망의근거인그리스도를통하여약속한언약들(Verheissungen)로이해하였다.이러한관점은그가만든마누알릭(Manualik,성경핸드북)의서문에서이렇게밝힌다.'하나님은인간을그의형상을따라만드시고,그를창조전체의주인(관리인)으로세우신후,자신이모든것들의창조주임을계시하였다.즉그는먼저하나님과창조주와보존자에대하여생각하고믿어야할것과둘째,하나님이기뻐하도록행동할것을,셋째,다시금하나님의자비에관하여현재와영원히인간의순종을기대한다.이러한3가지는하나님에대한믿음,하나님을향한사랑(표면적으로는순종의모습),하나님의자비에대한소망으로,하나님형상의존재근거와신분상태가왕관이며,장식이며,역시모든종교의전체였다'.그는계속해서코메니우스는시편119:18절'내눈을열어서주의율법에서놀라운것을보게하소서'란기도문의사용과'너희가여기서배워야하는모든것에관한총체적인것은믿음,사랑,소망이어야한다는것을강조하였다. 이것은후에코메니우스에의하면,그의교육신학사상의핵심적인주제가된다.그의유명한책,대교수학(Didacticamagna)에서모든학교에서사용해야할성경교육의목표로제시되었다.'성경에서배운모든것은믿음,소망,사랑에관계되어야한다.왜냐하면이3가지는하나님이우리에게그의말씀가운데서계시하신것이참되다고생각했던것들을향하여노력해야하는주된목표들이기때문이다.말하자면어떤것들은우리가알게되도록그가밝혀주며,다른것들은우리가행하도록책임을일깨우며,그는다시다른것들을현세와미래의삶에서그의자비가운데서기다리도록하신다.그리고성경전체는이세가지중,그하나와관계없는것은아무것도없다.이와같이그것을잘이해하는것,즉그들이신적인요구들을이성으로명심하게되도록가르쳐야잘가르쳐야한다.' 코메니우스는역시이러한믿음.소망,사랑을성경전체를이해하는해석학적인기준으로제시한다.먼저구약성경에서아브라함에게일러준하나님의말씀(창17:1,15:1)에서다.나는전능하신하나님이라(믿음),내앞에서변화하고경건하라(행하여완전하라)(사랑),나는너의방패가되며,너의지극히큰상급이니라(소망)고한말씀에서이다.첫째,전적으로믿음에근거하여나(하나님)를믿으라는것이며,둘째,나(하나님)를사랑하고나(하나님)에게순종하라는말로,전적인사랑을요구한것이며,셋째,현세와영원에서모든자비를나(하나님)에게기대하라는것으로이해하였다.그리고역시코메니우스는믿음,소망,사랑이신약성경에나타난복음의구원계시의핵심임을밝힌다.그것은새언약의창초자이며,중보자이신예수그리스도가보여준구원신앙의모습으로이해하였다.즉요한복음14장에근거하여,1절에서하나님을믿으니또나를믿으라.(믿음),15절에서너희가나를사랑하면,내계명을지키리라(사랑),3절에서가서너희를위하여거처를예비하면,다시와서너희를내게로영접하여나있는곳에있게하리라(소망)고한말씀이다.그리고마28:19절이하의말씀을근거로코메니우스는예수님의부탁대로제자(사도)들이그것을잘수행하였고,또한사도바울역시,주님이분부한말씀을열심히수행한것으로이해하였다(고전13:13,엡1:15.8,골1:4-5,벧전1:3ampndash9,행24:14-16). 코메니우스는또한사도이후시대에어거스틴이그의소책자엔키리디온(enchiridion)에서밝혀놓은믿음,소망,사랑의신학을역사적인근거로확인하였고,그리스도안에있는형제를구별하는일에도아주보편적이며,본질적인근거로이해하였다.어거스틴은믿음,소망,사랑을다만종교적인삶에서얻으려고노력해야하는기독교적인가르침의중심점으로삼았다.영혼이사랑을통하여영향을받아거기서생겨나는믿음으로충만해질때,거룩하고완전한영혼이분명해질그곳으로,그영혼은선한삶을통하여하나님을바라보게되며,그것은말하자면,무한한아름다움으로최고의행복(하나님)을향하게되는것이며,그일을이제사람들은믿음으로시작하며,그완성은얼굴과얼굴을대하여하나님을보게되는일로이해하였다(고전13:12).그것이총체적인구원신앙의핵심으로,믿음은과거와현재와미래의일들에관계된것이며,소망은다만선한것과미래의것에관계된것이며,이러한이유때문에믿음은소망과구분되어야할것을분명히하였다.그리고소망이믿음없이성립될수없는것처럼,역시사랑은소망없이이루어질수없으며,또한이양자(사랑과소망)는믿음없이되는것이아님을강조하였다.어거스틴이래로교회역사에서믿음,소망,사랑은신앙문답교육의핵심주제로삼았던것은잘알려진일이다.새신자들의세례준비교육에서,기존신자들의신앙을재정립하는일에서,믿음은사도신경으로,소망은주기도문으로,사랑은십계명으로연결하여기독교신앙의토대를깨우치는내용이되었다.그리고이러한믿음,사랑소망은다시믿는신자들이하나님앞에서개인의실존적인삶의관계에서자신의모습을되돌아보게하는회심과죄고백의기준점이라고말할수있다. (3)이상적인신앙공동체로서형제연합교회의신앙적인특징 여기서우리는이상적인신앙공동체로서의형제연합교회가보여준신앙적인특성을4가지로생각해볼수있다. 첫째,성경을하나님의말씀이요,구원의절대적인진리의말씀으로믿었던신앙공동체였다.형제연합교회는먼저신구약성경이하나님의말씀으로서모든믿는자들과전체로서의교회를위하여계시하신,신앙적인삶의유일한규범임을믿었다.이러한성경관은무엇보다도보헤미아의종교개혁자요한후스의신앙정신에근거한것이었으며,복음진리의순수한전파와신앙실천에대한불타는열망으로살았던사람들이었다.특히로마가톨릭교회의잘못된상태와그들,사제들의변화되지않은거짓된삶에강한실망과자극을받고있었기때문에성경말씀대로살려는노력이훨씬더강하게부각되었고,그들신앙생활의전부였다고할것이다.형제연합교회는하나님의말씀인성경에대한권위를최상의것으로삼았다.그리고이러한성경이해는1457년경에이미형성되어있었으며,다시약60년후에루터의종교개혁을통하여확인되었던것이다.형제연합교회의신학적인근본토대를제공했던신학자루카스는역시예배의모임에서더큰가치를성경의해석에두었으며,그때문에하나님의말씀인성경의설교가이들공동체에가장중요행위였다.거기서신자들은신실한삶의방향과행동에대한표준을얻을수있었으며,또한여러잘못된교리(이단적인것)로부터교회를보호할수있는능력을소유할수있었다.그리고형제연합교회는1579-1594년,특별히성경번역위원회를구성하여,외경을포함한구약성경전체를번역하게된다.그리고체코어로번역된클라리체성경을사용하게되었다. 둘째,성경말씀의실천으로서,믿음대로순종하는신앙공동체였다.믿음의순종은항상형제연합교회가전제하고있는성경이해로되돌아간다.즉성경은유일한삶의표준으로서말씀을가진성경을인정하는것만으로충분하지않았으며,사람들은주님의계명을순종할때만족하였다.형제연합교회는교회공동체가그리스도의말씀을믿고,순종하는관계에서만보존되며,또한그리스도의계명을성취하며,그리하여그리스도의사랑을실천적인신앙행위를통하여증명하는신앙공동체였다.그리고이들형제연합의신앙공동체는하나님의말씀이요구하는대로그말씀에순종하는삶을인생최고의목표로삼았다.그때문에형제연합교회는그리스도를따르는삶의모범을보일수있었다. 체코의신학자흐로마트케(Hromdke)는형제연합교회가하나님의말씀에대한믿음의순종이얼마나독특한지를루터가하나님의말씀을이해하여순종하는것과비교하여설명한거에서그특징을읽어볼수가있다.즉루터가하나님이란말을들을때,그에게는그말씀은기쁨의소식인은혜,은혜로들린다.거기서나를너에게주노라,나를영접하라,너에게선물하리라,너의마음을열라,너를안아주리라,또한루터가그리스도란말씀을들을때,그는자신의죄때문에십자가에달리시고,거기서그를부르시는십자가에못박히신자를본다.너의죄가용서되었다.나의의로옷을갈아입어라!너는아무것도소유하지못한죄지은걸인이다.그러나너는내아들의죽음으로왕이된아들의표지(標識)로서황금의왕관을너의머리위에씌우리라.그러나형제연합교회는루터와는다르게하나님의말씀을듣게된다.즉'그들이하나님과그리스도란말을동시에듣는다면,나는너를부르며,너에게명령하며,너에게나의뜻을선포한다.선하고,선한것을너에게서요구하며,내기쁨인그것을너에게알린다.'그리고흐로마트케는비교하면서결론적으로이렇게말한다.'루터에의한믿음은텅빈두손의벌림이며,하나님이주시는선물의영접이며,죄용서로부터온기쁨의확신이지만,형제연합교회의믿음은아주간단한하나님의명령에대한겸손의청취라는것이다.그것은예수그리스도가그의제자들에게서기대하는것으로,구세주의발자취를따르며,그와맺은언약안에서인내하며,성취하는그리스도의멍에를기꺼이짊어지도록준비하는행동의결단이었다.' 우리는형제연합교회의신앙은이러한성경말씀의이해와함께그들의믿음의순종은그리스도의삶을그대로실천하려는행동지향의신앙이었음을확인하게된다.그것이순수한예수의제자의삶이요,후스신앙의참된추종자의모습이었음을확인하게된다. 셋째,성경말씀대로순종하기를배우고훈련받게하는교회의훈육(사랑으로의지도)을자랑스럽게여기는신앙공동체였다.교회는코메니우스가고전14:40을자주인용했던'모든것은품위있게하고,질서있게하라'는말씀처럼,교회공동체의참된모습은질서가운데서,하나님의백성답게순종하는삶이어야함을전제한다.이것은개별신자가세상의삶에서어떻게순종상태를유지해야하는가?란질문의대답은서로같은믿음을가진사람들임을깨닫고,하나의신앙공동체를형성하는연합과통일에두었다.그것이형제연합교회의신앙의특징이며,교회(신앙)공동체를형성하는모습이었다.그리고그러한공동체안에서사람들은진실로그리스도를섬길수있으며,다만거기서각각받은은사의충만을수용할수있게되며,그야말로가족공동체로형성된초대교회의모습을보게된다(비교,행2:42,4:32등).그리고이러한믿는자들의공동체에적용된신앙훈련의방법이교회훈육(Kirchenzucht)이었다.훈육은그리스도의사랑으로가르치고깨우치는신앙훈련을의미한다.세상의모든것들에서,그리고자신의삶에서그리스도가실제적인왕으로다스리며역사하도록참된순종에이르게하는방법이었다.그것은그리스도의사랑으로행하는일었다.즉,결코강요하거나억압으로따르게하는행위가아니라,그리스도의형제사랑으로권고하며권면하는영혼의돌봄을위한상담과같은대화의역할이동반되는것을의미하였다.그리고형제연합교회는하나님말씀의전파와성례의시행에서뿐아니라,역시확고한질서와그가부자든가난한자이든신하이든,통치자이든모두가동등하게결속된훈육(사랑의권고)과함께있는참된신앙공동체였다.또한코메니우스는특별히그가남긴'죽어가는어머니,형제연합교회의유언'이란글에서,더이상존재하지못하는형제연합교회의죽음을탄식하며,어떻게유럽사회에서신앙생활을유지해야할지를되묻고,이제는프로테스탄트의다른교회들에속하여신앙생활을계속하도록권고하면서,형제연합교회의6가지신앙의유산이보존되기를희망한내용가운데3번째가교회훈육이었다(진리사랑,성경말씀에충성,교회의훈육,모국어보존,교회연합정신등). 넷째,형제연합교회는참된교회의자유,즉신앙의자유를누리는신앙공동체였다.형제연합교회는한번도권세를가진지역성주(왕)의보호아래에서자란것이아니라,공동생활의저변에서국가권력의의지에대항하여,언제나신앙의박해를받았고,그들신앙적인삶은여러가지방식으로방해를받았던것이다.생각하면,모든것은인간적으로볼때,하나님말씀의순종과주님에대한신실성과그들형제들의단순한신앙고백의용기를가진증거에의존되어있었다.이러한그들의내적인자유는국가(권력)편에서간섭하는모든공격에대항하여(로마가톨릭의세력)그들의표면적인자유를보증하는힘으로작용되었다.이와같은내적인자유안에서형제연합교회는형제자매로부터확고한질서를가진살아있는신앙공동체의모습을드러낸것이다.그리고이러한교회공동체는그리스도의통치가자신들에게만임할뿐아니라,전삶에서실제로효력을갖게되도록노력하였던것이다.그리고그리스도가삶의주인으로인정된그곳에서인간은각자현세적인권세로부터자유로운자가될수있었다.거기서사람들은그의구세주의멍에를짊어지기를더이상두려워하지않았으며,예수때문에굶주리고,고난과박해와고문당함을두려워하지않았던것이다.왜냐하면,그들은저미래적인영광을높이바라보고있었기때문이며,또한그들의주님이유일한만물의주(主)라는것을알고있었기때문이었다.그리고형제연합교회는이러한자유의보존에종교개혁의교회들보다다른더위에높이우뚝서있는모습이분명하였다.물론형제연합교회의1세대들은세상에대하여매우폐쇄적인삶을살았던것은당연했다.수도자적인이상론의모습으로주님을따랐기때문이다.그러나그들은곧그러한생각들에서허물어지게되었다.즉예수그리스도에대한개방적인통찰은세상의모든일들에대해서도,형제연합교회가분명한입장을견지하도록해주었기때문이었다(사회적인책임에관한인식).이러한형제연합교회는이제사회에대하여매우비판적인태도를가지게되었다.그리고전적으로기독인의순수한자유를보존하기위하여힘썼다.이러한자유안에서이형제연합교회는마침내하나님과말씀에순종함으로,세상에대한책임(정의와평회)을짊어질수있었다.그리고하나님과세상사이에서이중적인삶을만들지않도록힘썼다.이러한결단은그리스도와십자가에못박인자와부활한자와장차다시오실자에대한믿음을통하여강화했던것으로이해된다. 결과적으로이상적인신앙공동체로서의형제연합교회가보여준신앙의특징은위의4가지로평가되지만,근본적으로초대교회의사도적인신앙공동체를염원하였고,복음이말하는형제사랑과형제평등과신앙의자유를실천하고경험하는참된복음적인교회(공동체)였다고할수있다.특히신앙공동체로서의교회의결속을위하여교회의훈육(사랑의지도)을철저하게실천한것은코메니우스시대에이르러가장강하고번영한교회로발전했던것으로알려져있다. 3.코메니우스와형제연합교회의죄고백에관한신학적인이해와실천 1)죄고백과회심에관한신학적인이해 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는개인의구원은먼저하나님의선택에기인한것으로이해하고,이러한구원에이르기위하여인간은하나님의말씀에서나아오는참회와믿음을필요로하였다.여기서참회와믿음은원래죄용서와칭의(의롭다함)를약속한복음에근거한일이다.즉하나님말씀의설교는언제나인간의죄를목표하며,말씀으로역사하는성령의도움으로하나님앞에서죄인임을인정하고,죄를고백하고,중생의확신과함께온전한구원에이르게된다. 그러나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의인간의죄와타락에관한이해는하나님의창조사상과깊이관련되었기때문에그의인간론에관한신학적인이해가우선적으로필요하다. 하나님은창조시에인간을최고의피조물인하나님형상으로만드셨다.코메니우스는하나님형상의본질적인요소를3가지(이성적인능력,대리자로서의역할자질,자유의지의능력)능력으로이해하였는데,불순종에의한인간의타락은부여된하나님형상의본질적인능력의상실을뜻하며,그것은스스로하나님과같이되려는교만에근거하며,결국창조세계의한복판에서창조주가세워준본래의자리(위치)를벗어난데서기인한것으로이해하였다.죄는창조주가세워둔그본래자리를떠나,다른곳에머무는것에서생겨나게된것으로이해한다.그리고코메니우스는역시인간을거울에다비교하여,역할의중요성을밝힌다.대우주(Macrocosmos)와소우주(Microcosmos)의모사(摹寫)관계로보았다.인간은대우주(하나님)의것을반사하는거울의역할을수행해야하는존재였다.그러나인간이하나님의올바른빛가운데머물때만거울의역할은가능하며,그반대는텅빈모습이된다.그것은인간에게부여된과제를성취하지못하는무능한존재를뜻하며,인간은미로에갇혀있는눈먼자(맹인)이며,그를자유롭게할수있는것은그에게는아무것도없음을뜻하였다.인간이자기를영화롭게하는가운데서만자신의근거를찾으려는이러한뒤틀림(죄)이그의고유한목적과사물의목적을알려는행위를방해한다고보았다.왜냐하면인간은타락을통하여그의존재목적을상실해버렸기때문이다.인간의타락으로창조세계는여전히불완전한상태에놓여있으며,그세계의완성을위하여,인간은다시올바른자리(위치)에로데려와야했다.이러한회복(본래의자리로되돌아옴)이그리스도의사역이다.그리스도는전인류의구원자이며,구원은그리스도에게로자신을되돌림에달렸다.그것이그의원래목적에로되돌아감의가능성(기회부여)인것이다.그리고천지만물의주인인,창조주의기쁨이되기위하여인간은그의본성의타락을통하여벗어난,원래의자리로되돌아와야하며,그리스도의형상을닮도록자신의의지는전적으로타락되었으며,스스로는멸망을향해갈수밖에없음을인정해야한다. 여기서참된죄고백이요구된다.그리고이러한그리스도를통해서만가능하게되는하나님께로향하는것을코메니우스는신앙(경건,종교)이라불렀다.인간은복음을통하여,즉그복음은인간이온전히하나님의사람(구원의사람)이되게하는은혜로서,믿음으로만얻게되는칭의(稱義)이며,그복음을들음(설교)으로성령의깨닫게하는역사로회개와믿음이생겨나며,또한새롭게됨인중생의확신과함께다시하나님의창조세계에그리스도의동역자로서게된다.그때문에코메니우스에게서죄고백이중요하지만,죄고백을뛰어넘어그리스도의동역자로서하나님의일에일꾼됨을더중요하게여겼으며,그것은땅에서이루어질그리스도의통치실현에쓰임받는역할에있었다.죄고백과중생의체험은개인이하나님앞에바로서는경건이중심이라면,그목적,또는그목표는창조세계의동역자로서의활동인이웃과사회에선한복음의영향력을미쳐,정의와평화에기여하는삶에있음을인식하였기때문에,과거에연연하는것이아니라,미래지향적인희망의신학자였다.코메니우스의이러한생각은그리스도재림의준비와그의종말사상(천년왕국)이해와깊이연관된다.그때문에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는처음부터,성경은기독교경건(신앙)의본질을세워주는하나님의말씀임을전제하여,구원신앙의본질은믿음,사랑,소망에두고,그것들이항상반응되게하는삶(개인적이며사회적인)을돕기위하여3가지은혜의수단(성경,열쇠의직무,성례)을사용하였다.여기서우리는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가제시한죄고백과회심의신학적인근거를또한발견하게된다.그것은성경계시의핵심이요,기독교신앙의본질로이해된믿음,사랑,소망이다.믿음은칭의(죄용서)의은혜에대한고백이며,사랑은그은혜에대한삶에서의실천이며,소망은여전히그의약속의성취를기대하는미래를향한희망이다.그리고믿음,사랑,소망은인간이하나님앞에서자신의경건상태를끊임없이확인해야할목표이면서,동시에참된목표에이르지못한자신의되돌아봄의실제적인죄고백의기준이었다.그때문에성경말씀의설교(가르침)는언제나믿음(구원의은혜),사랑(하나님의요구/순종),소망(약속/기대)이라는3가지관점에서하나님의음성을듣게하며,그것들에상응하지못한자신을되돌아보면서,하나님께로마음을향하는죄고백의회개가요구되었던것이다.그리고믿음,사랑,소망은인간의실존적인삶의궁극적인질문의대답과연관된것임을생각하면,그것이죄고백의실제적이며,신학적인근거와기준이라는것은더욱분명해진다.그이유는하나님을떠난인간은언제나스스로자신이만든안전망들로만족하려하지만,사실은더불안해하며,불만족하며,영적기근의갈증을느끼며,실제로완전하고영원한것을향하여더욱그리워하고,방황하며찾게되기때문이다. 2)죄고백의실천에관한이해 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가죄고백을중히여기고,죄고백의방법을어떻게실천했을까?이러한질문의답을밝히기위하여우리는교회가적용해온,죄고백의실천방법을역사적으로고찰해볼필요가있다. 초대교회이래로기독교회는하나님앞에서죄인임을인정하고,예수그리스도가구주임을믿음으로,죄가용서되며,거룩한기독인이되는절차를세례의식을통하여실천하였다(예수의명령).중세기에가톨릭의신학자토마아퀴나스는일상에서저지르는인간의실수와관련하여죄고백과그죄가용서되었음을확인해주는교회의행위를성례로설정하였다.그래서로마가톨릭교회는신부앞에서고해성사(신부에게개인의죄를고백하고,속죄의적절한처방을구함)를통하여죄문제를해결하게하였다.그러나종교개혁을통하여성례로서죄고백의행위는거절된다.물론루터는종교개혁의초기에고해성사를성례로붙들고있었다.그이유는죄로인하여고민하는신자의영적돌봄의필요성때문이었다.그러나참회(죄고백)는언제나하나님앞에서마음의회개가중요하였다.그리고마18:15-20의말씀과관련하여죄를땅에서묶고,풀어주는역할에대한질문에서,루터파교회는당연히참회자의죄고백을듣고,그고백을그리스도의이름으로풀며,반대로죄를묶는역할(열쇠의직무,권징)이말씀의사역자에게부여된과제로시행하였다.그리고루터파교회는교회훈육의관점에서개인의참회(죄고백)는성찬참여의허용과관련하여개인의삶의변화와도덕적인행위에대한믿음과신앙지식에관한것들의확인을위해,목사가개인의죄고백(Privatsbeichte)을청취하고죄용서의확신을심어주게하였다. 그러나유럽의개혁교회는루터파교회의모습에대립하여처음부터다른길을걷게된다.그것은칼빈의신학적인영향때문인데.참회(죄고백)에관한질문에서성경에근거하여3가지참회방식을선택하였다.첫째,하나님앞에서행하는것,둘째,사람앞에서행하는것,셋째,사적인죄고백이었다.여기서사적인죄고백(Privatbeichte)은다시두가지로구분된다.특히'서로자기의죄를고백하며'(약5:16)란말씀에근거하여,하나는개인적인것으로자기의약점들을알린후에서로충고하며,위로함으로그리스도안에다시일어서도록돕는일이었다.다른하나는이웃에게죄를고백하는것으로,죄지은당사자에게찾아가서그에게미친해에대하여진심으로사과하고,노여움을풀어화해하는행위였다(마5:23-24).여기서칼빈은죄를누구에게고백해야할것인지에대한질문과함께그고백을들어주어야할대상은목사임을밝힌다.목사는고백하는자에게죄가용서됨의확신을고백자에게심어주어야하는위로자의직책을맡은것으로이해하였다(마16:19,18:18,요20:23).중요한것은목자와고백자사이에상호충고와상호견제역할이다.즉목사는죄용서의증인이며,보증자의책임을부여받은것으로이해하였다.그리고하나님앞에서의죄고백(시32:5,시51:단9:5,요1서1:9)은칼빈에따르면,참된회개의불가피한구성요소로서,그리고참된회심의결정적인요소로서마음의고백을강조하였다.그리고사람앞에서의죄고백은각자가공개적으로마음속에있는비밀을온세상이듣는가운데서자기의수치와하나님의큰자비와영예를성실하게공개적으로말할수있는것으로판단하였다(삼하12:23,레16:21).그렇지만칼빈은역시레16:21과느9:1-3절의말씀에근거하여,죄고백은단순한개인의사적인죄고백이아니라,공개적인죄책고백(OffeneSchuld)관계하여이해할것을강조한다.즉개인의죄(불의)의사회성과관련하여국가공동체나,민족공동체의재앙이나.하나님심판의위기에서죄의책임에관한고백을하게했다.그래서개인의죄책고백을공중앞에서행하도록제네바교회의예배가운데로가져온다.예배시작에서,먼저우리의도움은천지를창조하신주님의이름에달려있다는말을선언한후,바로죄책고백의순서가진행되게하였다.그리고죄책고백(OffeneSchuld)은문서로작성한고백문을회중과함께낭독하는방식으로목사가진행하게하였다.그리고죄책고백문을낭독한후에는그죄의책임이용서되었음을성경말씀을들려주어회중을위로하고,죄가용서되었음을확인시켜주는의미를첨부하였다.물론공중예배에서의죄책고백은개인의사적인죄에대한고백이아니라,하나님의계명과관련하여신앙공동체가책임을다하지못한사회적책임을포함한진지한태도의죄의책임(죄책)을고백하게한것이다.현재한국장로교회는이러한방식을대부분평신도대표인장로가예배에서기도순서로담당하고있다. 그러면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가실천한죄고백의형태와적용의실제는어떠했을까?이것이우리의궁극적인질문이다.필자는먼저이점을밝히기위하여몇가지가정을전제하여유추적인해석을시도해보려고한다(역사적자료의불충분으로). 첫째는형제연합교회는1517년에시작한종교개혁의지도자,루터와교제하였다.그리고성경이해와몇가지교리적인차이에도불구하고상당기간형제연합교회지도자(루카스폰프라그)는루터파교회와도교제하였다.거기서루터의예배개혁정신을본받았을것으로짐작한다.둘째는유감스럽게도형제연합교회는루터와멜란히톤이죽고난후,루터파교회와의교제를단절하게된다.그리고형제연합교회는그당시프로테스탄트교회들의연합을매우강조했던스트라스부르그의부쳐와제네바의칼빈에게로향하게된다.그결과형제연합교회의후계자양성은비텐테르그에서스트라스부르그,바젤,제네바,하이델베르그,헤어보른등의칼빈주의신학을가르치는대학들에로옮기게되었다.여기서코메니우스는그곳대학들에서칼빈의개혁신학사상의영향을크게입게되었다. 필자는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가이때부터칼빈의종교개혁사상과유럽의개혁교회의신학적인영향을가장많이받게된것으로판단하며,역시죄고백에관한신학적인이해와그실천에서도동일했던것으로추정한다.특히형제연합교회와칼빈의개혁신학과는신앙교리와신앙실천의방법에서로일치하는것이실제로많았다(성경관,성찬의성령임재,교회훈육.장로제도,교회연합정신,국가관등).거기서예배와예전방법을비롯하여죄고백은당연한교회의행위로여겨지며,오히려복음의사회적책임에대한이해도서로일치했던것으로판단한다.그리고현재유럽의개혁교회(칼빈의제안)가예배에서시행하고있는죄책고백의형식처럼,형제연합교회는그러한예배형태의전철을따랐을것으로유추한다.즉그것은개인의사적인죄고백에한정되지않고,그것을뛰어넘어이웃과의관계에서사랑의책임을다하지못한죄책고백을더중요하게생각하고,예배에서고백문으로실천했을했을판단한다.그러므로필자의이해로는하나님이그리스도를통하여베푸신구원의은혜를믿음으로받고,성령의은혜가운데서십자가의고난을스스로짊어지고,기꺼이그리스도를따르는제자로서의삶에더충실했지,사적인죄에관한지나친고민으로죄고백과중생(경건)의도(道),쌓기만을힘쓰는일에인생의시간을다보내게하지않았던것으로판단한다. 4.코메니우스와형제연합교회가유럽의경건주의운동에미친영향 17세기,유럽사회는근세시대로발전하는새로운시대전환기였다.인간의이성적인가치를앞세운계몽주의가싹트는시기였고,자연과학의발전과함께,합리주의적인이성적인사고가전통적인기독교의권위에새로운도전으로등장한시기였다.30년종교전쟁(1618-1648)은기독교의전통과권위를스스로무너뜨리는결과를초래한다.역시개혁을부르짖고일어난프로테스탄트역시루터파와칼빈파로분열되어신앙교리의대립과다툼은신앙의통일성을상실한채,유럽사회와프로테스탄트를더욱혼란하게하는원인이되었다.이러한환경에서신앙과교회를새롭게하려는경건운동은프로테스탄트내에서일어나게되는데,그것을교회역사는경건주의(Pietismus),또는경건운동(Froemmigkeitsbe-wegung)으로정의한다.독일의교회역사가알란트(K.Aland)는경건주의라는사상체계는결코제시된일이없으며,다만항상각인된여러신앙의형태들이존재한다고해명하였다.대체로경건주의운동의패러다임은3가지형태를가지는데,죄고백과중생의체험과그리스도를따르는예수제자의삶이었다.그리고경건주의운동은역시개인의회심과함께중생한자들에의한교회를새롭게하려는교회개혁에목표를두었다.코메니우스와형제연합교회는이러한유럽의경건주의운동에결정적인영향을미치게된다.과연그들의영향은어떤것이었던지를밝혀보기로한다. 1)유럽경건주의운동의주역으로서코메니우스의영향 코메니우스가유럽의경건주의운동에영향을미치게된것은먼저,영국에서일어난청교도들(Puriten)과의접촉에서였다.코메니우스는1641년9월,영국의회의초청을받고런던에가게되는데,그곳에서약9개월체류동안에영국의퓨리턴들과교제하게된다.그들이새롭게추구하는교회개혁과함께새롭게일어나는영국의퓨리턴의경건운동을코메니우스는적극지지하며,독려했었다.그리고실제로코메니우스를런던으로초청한배후의인물이코메니우스의친구인,사무엘하르트립(S.Hartlib)이었는데,그는이미영국에서일어나고있는청교도들(Puriten)과깊은관계를맺고있던인물이었다.특히그는1637년코메니우스가작성하여보냈던'범지혜의선구자'(ProdromusPansophiae)란책에매료되어코메니우스의동의도받지않은채,1638년런던에서그원고를책으로출판하였다.그목적은유럽의지성인들과정치인들에게코메니우스의범지혜사상(Pansophia)을알리고싶어서였고,이제는그를데려다가영국의퓨리턴들이희망했던영국의교회개혁과국가교육개혁작업을그에게맡겨서,영국의실제적인종교개혁이관철되기를염원했기때문이었다.그러나유감스럽게도영국의회파와왕당파사이에내전으로인하여,코메니우스는아무런작업도추진하지못하고,다시되돌아오게된다.그리고코메니우스는영국의퓨리턴의지도자,레위스베일리(LewisBaily)가쓴고전적인'경건의실제'(PraxisPietatis)라는책을체코어로번역하여보헤미아형제연합교회에알리게되었는데,그것은형제연합교회형제들의경건한삶의변화에도영적인도움을주기위해서였다.이것은코메니우스가영국의퓨리턴과의관계가어떠했는지를보여주는중요한증거인셈이다. 이뿐만아니다.코메니우스는역시독일에서일어나는경건주의운동과도깊이연관되어있었음을확인할수있는데,그것은독일의신비주의신학자인야콥뵈메(JakobBoehme,1575-1624)와의관계에서이다.특히코메니우스는뵈메가제시했던'그리스도와회개와제자로서의삶으로인도하는방법'과천년왕국에관한영향을받기도했다.그러나후에뵈메의생각과는궁극적으로거리를두게되었는데,그것은뵈메가신지혜(Theosophia)를강조하는반면,코메니우스는범지혜(Pansophia)를내세웠고,뵈메의거대한세계의신비에관한해석보다는코메니우스는성경에충실한새롭고실천적인학문체계와그학문의극복을병행시키는일들에서뵈메와의현저한차이와그를뛰어넘는모습을확인하게된다. 코메니우스는역시독일루터파의경건주의운동의주도자였던스페너(PhilipJacobSpe-ner,1635-1705)에게도영향을미치게되었다.스페너는코메니우스의마지막작품(unumnecessarium,꼭필요한한가지,1668)을잘알고있었고,그의친구에게그책을구해서읽었다.코메니우스는그책에서인간이세상의미로를헤쳐나가기위한꼭필요한한가지를제시하였는데,그것이그리스도의규칙(말씀)이었다.그것이불필요한것과악한것,거짓이가득한미로와같은세상에서꼭필요한것,선한것을잘선택하며미로를탈출할수있게하는유일한길임을분명히하였다.그리고눅10:38-42절의말씀에서마리아와마르다를가리키면서,자신의삶이마르다처럼세상의일들에분주했음을고백하며,이제는꼭필요한한가지,주님의무릎앞에앉아서말씀에경청하는마리아의삶의태도를따를것을결단한다.스페너는코메니우스의꼭필요한한가지의도움으로그의작품'경건한소원'(PiaDesideria)이란책을만들게되었다.그러나스페너는코메니우스가루터파에속한사람이아니라는것에대해서깊이경계하였으며,또한코메니우스의전우주적인창조세계의관점과교파를뛰어넘는교회연합적인정신과정치와교육을포함한삶(사회)의개혁은그에게서전적으로외면되었다.그리고할례(Halle)에서루터파경건주의운동을주도했던헤르만프랑케(H.Franke,1663-1727)역시코메니우스의경건과사상에큰영향을받았던것은잘알려진일이다.그이유는특히1935년취체브스키(D.Tschizewskij)에의하여독일할례에,프랑케가설립하여운영하던고아들을위한도서관에서,코메니우스의'인간사개선에대한포괄적인제언'이란미완성유작의원고더미가발견되었기때문이다.그것은코메니우스의작품이프랑케에게전해졌고,프랑케는역시코메니우스의작품을읽고출판하려했으나뜻을이루지못했으며,그대신경건주의운동의사상과방법에서코메니우스의것을그대로모방했다는사실이다.그러나프랑케는부분적으로코메니우스의교육사상을수용하면서도,다만그의교회연합정신은역시거절했는데,그이유는프랑케는루터파안에서의경건주의운동을원했기때문이었다.물론스페너보다프랑케는코메니우스의교육적인의도대로세계의개혁과삶의개혁에더접근하고있는모습이라할것이다.그리고이러한일련의코메니우스와경건주의운동과의관계에대하여,독일뮌스터대학의역사신학교수,마틴브레히트(M.Brecht)는그의논문에서코메니우스가유럽의경건주의운동의전단계의중심에서있었을뿐아니라,오히려그것이경건주의운동의시작이었다는사실을강조하였는데,그이유는자신을비롯한여러독일의역사학자들이동의하고있는사실이기때문임을밝혀주었다. 2)형제연합교회가유럽경건주의운동에미친영향 형제연합교회가유럽의경건주의운동에영향을미친영향은특히루터파경건주의운동의3번째지도자인진젠도르프(NikolausLudwigvonZinzendorf,1700-1760)와의만남에서였다.코메니우스가이끌었던보헤미아의형제연합교회는30년종교전쟁이끝난후,종교의자유를보장받지못해,흩어지는교회(디아스포라)가되고말았지만,이들은복음의숨겨진씨앗으로,신앙의명맥을잇고있었다.우연찮게이들은크리스천다비드(ChristianDavid)라는인물에의하여1722년진젠도르프에게소개되었고,이들을헤른후트(Herrnhut)로이주하여살도록다비드의요청을진젠도르프가기꺼이받아들여,그다음해에모라비아의형제들이대거헤른후트로이주하게된다.이들대부분은이전에코메니우스가풀넥(Fulneck)에서목회할때,함께했던그형제연합교회의후손들이었다.그때문에옛형제연합교회의전통은그들가운데여전히살아있었고,헤른후트(Hernnhut)는새로운형제교회로의발전에크게기여하는거룩한땅이되었다.그러한분위기에서그들은특히모라비아동편지역의라이토미슐(Leitomischl)이란곳에서계속이주해왔으며,헤른후트의신앙공동체는점점더큰연합의공동체로발전하게되었다.이러한숨겨진복음의씨앗들은헤른후트의경건운동에큰영향을미치게된다.그것은이들형제연합교회의이전의신앙방식때문이었다.이들은주일예배외에도주간에빈번한작은성경공부모임이이루어졌으며,그들은가정기도회를강조할뿐만아니라,신앙교리에대한사색은멀리하고,일상의삶에서하나님의말씀대로행동하는신앙실천운동의모범을보여주었던것이다.거기서세상에대한금욕적인형태의폐쇄적인모습이나타나기도하였다.헤른후트에서오늘날도매일성경읽기책자(Losungen)가발간되고있는데,그것은바로형제연합교회(모라비아인)의오래전부터가지고있었던성경읽기에서기인되었다.그리고이웃에대한살아있는신앙적인책임의식이자라게되었는데,그것은모든믿는자들의복음선교에대한의무감이실천적으로발전하게된다. 역시진젠도르프는선교적이며교회연합의목표를가지고,형제교회(모라비아인)가그지역루터파교회(Landeskirche)의지체로동화되기를권유하였지만,다른이주자들과합세하여그들이전의모라비아형제연합교회와같은모습을유지하기를원했고,그들자체의교회법과감독을가진자립적인교회조직체로남게되었다.거기서옛형제연합교회의모범에따라교회와지체들의삶을보호하는평신도장로의직무가세워지며,교회훈육도도입되고,형제연합교회가수년동안지켜온간단한형식의예배가만들어졌다.그리고헤른후트신앙공동체에새로운경건의형태로영향을미치게되었다.그리고1735년에는차우크텔러(Zauchteler)에서이주해온,뉘츠만(DavidNitschmann)은헤른후트의형제연합교회감독이되었으며,그후에진젠도르프도2년간형제교회(모라비아인)의감독직을이어받기도하였다.이제새로워진형제교회는이웃사랑과어린이교육을어려운조건에서도잘감당하였으며,용감한신앙증언자로서의봉사활동을지속하였다. 그이래로헤른후트의형제교회는수십년간전세계를향한해외선교에열중하게되었는데,이것은코메니우스가그시대에이미그의글들에서,해외선교에대한길을잘보여주었기때문이었다.그러한복음선교의정신은진젠도르프에게도영향을미쳐,가난한이방인들을돕는복음적인선교가헤른후트에서시작되었고,처음으로프로테스탄트교회가해외선교사파송의역사를만들게되었다.벌써1733년에크리스천다비드는그뢴란드(Groen-land)선교사로파송되었으며,같은시기에감독이되었던다비드니취만도덴마크의서인도에있는성토마스섬으로선교사로파송되어갔다.그후에진젠도르프의신앙공동체인형제교회는선교지역을점점더확대하여,아프리카지역의자마이카,수리남등,여러나라에선교사를파송하였다.1734년에는북아메리카지역인조지아주와펜실바니아등에선교과제실현과결부된식민정책에관여하기도하였다.특히다비드니취만(D.Nitschmann)은풀넥의차크텔에서이주해형제로써선교열정을그자녀들이이어받아,북미지역의인디안선교에크게헌신하게되었다.그리고선교역사에서칼파칼트(KarlPacalt)는체코인으로,남아프리카에서오늘날까지도그가선교사로활동했던지역에다파칼도르프(Pacal-dorp)란마을이름을남기게되었다. 1735년다비드니취만이그의형제와가족으로구성된선교단체를이끌고북미지역으로항해할때,감리교회의창설자인요한웨슬레이(JohnWesley)가그배에함께타고있었으며그들모라비아형제들의신앙의영향을받게된다.웨슬레이는모라비안형제들이항해동안에바다폭풍이몰아치는가운데서도믿음의용기와겸손함을견지하는그들신앙태도에큰감동을받게되었고,그일로웨슬레이는이들모리비안형제들과교제하였으며,영국으로돌아온후에도형제교회와연결하여그들에게서많은것을배우게되었으며,역시독일의헤른후트에있는형제교회를방문하였으며진젠도르프와도교제하였다.1738년그의회심은이러한영향과밀접한관계가있으며,웨슬레이가영국에서일으켰던신앙부흥운동은처음부터모리비아인들에게서받은영향이크게미쳤던것으로추정된다.그리고웨슬레이는이러한모리비아형제들에게받은영향을잊지않았고,감리교도들은여러가지점에서헤른후터(Herrnhutter)의경건방식에영향을받고있는모습이라할수있다. [결론] 지금까지필자는죄고백과관련하여건강한신앙공동체로서코메니우스와형제연합교회가가진신학과신앙,특히유럽의경건주의운동에미친영향등의역사적인것들을상세히밝혀보았다.이제죄고백과관련하여코메니우스와그의신앙공동체의신학과신앙이보여주는한국교회와우리들교회를향한의의(교훈)가무엇인지를6가지로제시해본다. 1.한국교회에새로운경건운동과삶의개혁운동의필요성을보여준다. 유럽의교회역사는기존교회(가톨릭)가성경의본질을떠나,지나치게제도화되고,정치화되어교권남용들이만연할때,그리고경건의참된본질을상실할때,필연적으로교회개혁운동이일어났던것을보여준다.형제연합교회는15세기에보헤미아에서얀후스가낳은교회개혁운동의열매였다.16세기에루터의종교개혁도같은맥락에있었다.17세기후반18세기에유럽에서일어난경건주의운동은역시프로테스탄트교회자체가경건(신앙)의본질을외면하고,교리를구원진리의객관성으로만고집할때,스페너와프랑케와진젠도르프의경건주의운동이일어나,신앙의체험적인주관성(죄고백과중생)에근거한신앙실천으로교회의개혁과삶의개혁에기여하였다.특히코메니우스는17세기중엽에일어난영국의청교도적인경건운동의배후에서주된역할을하였고,18세기에형제연합교회(모라비아형제)는헤른후트의신앙공동체에서경건운동의주인공들이되었다.특히코메니우스는교회개혁뿐아니라,교육의개혁,정치의개혁으로완전한삶의개혁을추구하였다. 여기서필자는지금21세기,한국교회는새로운경건운동과사회적인삶의개혁운동이일어나야할필요성을직시하게된다.지나친개교회주의와교파주의,교회의세속화와사유화에빠져,교회의공동체성과공공성을상실하고있는지금의한국교회를생각하면,새로운경건운동과신앙실천의개혁운동은반드시일어나야한다고본다. 그런점에서필자는이러한새로운경건운동의몸부림들이우리들교회를비롯하여,한국교회저변에서지금죄고백운동으로나타나고있으며,중생(구원)의확신과그리스도를본받는예수따름의운동이확산되고있음을느끼게된다.물론이러한경건운동들이기존교회로부터이단시비의대상으로오해될수도있을것이다.그러나새로운경건운동과삶의개혁운동이코메니우스와형제연합교회처럼,오직성경말씀에근거하여,그말씀대로실천하려는운동이며,이웃과사회를그리스도의사랑으로섬기려는신앙실천에목표를분명히한운동이라면,이러한죄고백운동은한국교회를새롭게하는성령하나님의역사가분명하다할것이다. 2.코메니우스와형제연합교회의영성은이시대에경쟁과소유욕에사로잡힌잠자는한국교회의영성을일깨우는새로운영적도전이분명하다. 코메니우스와형제연합교회는로마가톨릭교회의정치세력으로부터박해를받고,조국에서쫓겨나,30년종교전쟁은끝났지만,종교자유가보장되지않아망명생활(폴란드리사,사로스파탁,암스테르담)에처하였다.그리고그들후손들은17세기중엽부터19세기초엽까지'복음의숨겨진씨앗들'로전세계에흩어져디아스포라로살았던비극적인인물들이었다.그러나하나님은18세기에헤른후트(Herrnhut)의진젠도르프를통하여다시그들을역사가운데로불러내어,유럽경건주의운동의주된역할자들이되게하였고,마침내세계복음전도를위한선교사파송에프로테스탄트최초의주인공들이되게하였다.무엇을말하는가?진리에근거한올바른영성을준비한자들을하나님은결코외면하지않고,그들을그의나라의일꾼으로사용하신다는점이다.중요한것은그들모두,하나님을향한건강한기독교영성을소유한자들이었고어떠한고난과박해가운데서도그영성을포기하거나잃어버리지않았던고난의승리자들이었다.코메니우스역시마찬가지였다.그는그시대에모든것을빼앗기고잃어버린인물이었다.11세에고아가되어학교교육도제대로받지못했지만,후에신학을공부하고,형제연합교회를이끄는지도자가되었다.개인적으로는아내와자녀를두번이나잃어버린비극적인운명자이기도하였다.30년종교전쟁은자신과형제연합교회를더욱파멸로내몰았다.그는모든것을내려놓아야만했는데,형제연합교회의해산과감독직분을스스로포기하는일이었다.그가가진모든책들의원고도불타버렸다.그시대에코메니우스는그야말로그가가진모든것(기득권)을다잃어버렸다.역사에서그의존재도사라졌다.생각하면,코메니우스의생애는참으로비참하고저주받은욥과같은인생이었음을생각해본다.그러나하나님을향한불타는그의확고한영성은그시대의모든고난을이기는하나님의축복이었다.코메니우스는그시대에모든것을잃었으나,하나님은350년이지난오늘날유럽에서,잃어버린그의모든것을회복시켰다.거기서우리는욥과같은영성을경험한다.오늘날세속화의물결에빠져,영원하지않는수단에만목숨을걸고,하나님을향한경건에서흔들리고있는한국교회의지도자들과우리자신들에게욥의영성을소유한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는연약한한국교회의영성을되돌아보게하는도전이분명하다. 3.기독교영성의근본토대는믿음,사랑,소망의신학이며,그것은경건의참된목표이면서,항상자신을되돌아보게하는죄고백운동의신학적인표준이며,근본토대라는사실을분명히보여준다. 한국교회는그간오직믿음으로만구원받는루터의칭의복음을전하는일(믿음으로구원받음)에충실하였다.그러나한국교회는말씀(믿음)대로순종하는신앙실천이따르지않아많은문제를안고있다.즉믿음대로행하지않음이문제이다.이문제의해답으로최근의한신학은율법을행해야만구원받는다는바울의새관점이란혼란스런구원론을제시한다.그러나역시율법의행위가지나치게강조되면,믿음에회의가일어나며,선행의보상에대한질문이제기된다.여기에소망이필요하다.벌써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의구원신학은루터의칭의구원론이안고있는믿음과행함의이원적갈등과지나친행위구원의강조가초래할선행보상의문제를간파하고,그문제들의극복에합당한구원신학의대답으로성경적인구원론인믿음,사랑,소망의신학을제시하였다.이러한신학은개인의경건(하나님과의관계)의확고부동한근거이며,동시에항상자신을되돌아보게하여,하나님앞에바로서게하는죄고백의근거와토대였다는사실이다.그리고언제나하나님말씀에순종하는신앙실천의삶을가능하게하는실천지향의신학이었다.그런점에서한국교회의목회자들은성경을이해하는새로운관점으로믿음,사랑,소망의구원신학을주목하기바라며,이러한시각에서성경을읽고해석하며설교하는,그리고성경공부의목표도믿음,사랑,소망에두고,성도들이복음의진리에눈뜨게하며,참된경건의목표일뿐아니라,죄고백운동의신학적인토대임을인식하고,목회방법으로적용한다면,큰유익이되리라확신한다. 4.형제연합교회의신앙특성4가지는이상적인신앙공동체의모범이분명하다. 형제연합교회가보여준신앙의특성4가지는이상적인신앙공동체가지향해야할방향이었다.그것은성경을하나님의말씀으로굳게믿는신앙과그말씀대로행동하는믿음의순종과사랑의훈육과교회의자유에관한것들이다.그가운데서특히교회의훈육(訓育)은신앙공동체가하나님의말씀을배우며,성경말씀대로살도록사랑으로돌보고삶의책임을일깨우는신앙훈련법이었다.그것은성령의은혜아래서,그리스도의사랑으로형제를돌보며,교제하며,진리안에서자유하는자의삶이가능하도록돕는목회방법이었다.이것은죄고백과중생의확신과그리스도의따름인경건의실천구도에따라,반응하며사는성도들만들어가는방법이며,경건한신앙공동체를이루게하는경건훈련방법이다.그리고형제연합교회는교회구성자체가로마가톨릭교회의엄격한상하수직관계(성직자와평신도)를극복하고,그리스도안에서동등한수평관계의형제공동체로서,만인사제적인원리가실현된공동체였다.그러나공동체의운영과지도를위하여감독직,목사직과장로직,집사직분들은그대로수용하였다.다만그직분은형제들위에서군림하고지배하는것이아니라,성숙한인격적인신앙리더십으로서로를존중하고하나님의백성을돌보며섬기는직분이었다.이러한신앙의특성들을한국교회는깊이주목하고,따라야할이상적인신앙공동체의모델이분명하다고. 5.코메니우스와형제연합교회가보여준교회연합정신은한국교회에만연된개교회주의와교파주의를극복하고,서로연합하여하나님나라실현에크게기여하리라기대한다. 형제연합교회(Unitasfratrum)란이름은그리스도안에있는형제자매의모임으로서,언제든지신앙의동질성이확인되면하나가될수있는개방성을전제한지(支)교회를뜻하였다.그리고코메니우스의신학에서역시중요한주제는교회연합정신에있었다.지금한국교회는그것을본받아야한다.그이유는교회연합이야말로지금한국교회가처한대내.외적인위기를극복하는하나님의방법이기때문이다.한국교회가직면한위기의원인이무엇인가?우리들교회는예외일지모르지만,...복음전도가이전처럼쉽지않고,교인이줄어가며,가나안성도가늘어나고,서로경쟁하며,교회의세속화와사유화로비난받으며,한국교회에대한사회적신뢰성(공공성)은땅에떨어진모습이다.그야말로한국교회는공동체성의위기와공공성의위기에처한모습이다.그이유는경쟁하는세속적인환경에서,그간한국교회가자기몸집불리는경쟁에몰두하여개교회주의적이며교파주의로흘러왔기때문이다.이러한위기를극복하려면어떻게해야할까?필자는한국교회가그리스도안에서하나됨을기억하고,서로연합해야한다고본다.물론그연합은한교파에로통합을말하는것이아니라,상대성을인정하고이시대에감당해야할중요한더큰주님의일들에연대하여힘을합해서대처해야한다는뜻이다.지금은한국교회전체를바라보고,서로협력하며돕는교회연합정신이필요한시대이다.한국교회는연합하여현재20%의자립교회가80%의미자립교회를책임지는노력을기울여야한다.교회를개척하는일도,기존대형교회들은똑똑한부교역자들을내세워,분리개척하는모범도보여야한다.왜개교회가이렇게대형(大型)이어야하며성령의인격적인은혜가아니라,막강한조직력으로대기업체처럼교회를운영해야하는지?되묻고,되돌아보아야한다.교회내적으로는한국교회의공동체성이회복되며(복음의동역자의식회복),밖으로는사회와의관계에서그간상실된한국교회의공공(신뢰)성이회복되도록힘써야한다.그리고대외적으로도교회에모여진막강한능력은이제이웃과사회를섬기는일(의와평화)에사용해야한다.그것이복음의선한영향력을사회에미쳤던초대교회의모습이다.그것이교회의복음전도와함께감당해야할복음의사회적역할(빛과소금)이다.또한지금국가(정부)가요구하는종교인과세문제나,성소수자의인권보호란미명하에동성애를합법화하는일들에한국교회는한목소리로대응해야한다.북한인권문제는침묵하면서,동성애를옹호하는대한민국정부나,동성애를지지하고있는진보적인교회연합체인KNCC의자유주의신학사상에대응하고분노해야한다.물론남북화해와평화통일의문제를하나님나라와복음선교적관점에서바라보며,국가(정부)정책에도무조건반대하는시각은고쳐야할것이다.지금이야말로한국교회가서로연합하여대응해야사회도,정부도,지방의공공기관도교회를무시하지않을것이다.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는그시대에그일에가장모범을보여준역사적인증인들이다.한국교회지도자들은지금교회연합정신을본받고그것을적극적으로실천하기를바란다. 6.코메니우스와형제연합교회는우리들교회의죄고백운동이더욱성숙해지기를교훈한다.필자의견해로는현재우리들교회가실천하고있는죄고백운동은오늘날대부분기존교회들이죄에대하여침묵하고,죄로고민하는많은성도들을그대로방치해두고있는한,그리고목회사역이값싼구원의은혜전달에만목을매고,여전히목회자들이죄에대하여무감각하며,오히려세속에물들어교회본래의사명과과제를망각하고있는한,우리들교회의죄고백운동은많은평신도와목회자들에게경건의새로운도전이분명하다.특히한국교회가가정파탄의문제,성적타락의문제,마약중독문제,동성애문제,경제적파탄등,실존적인인간의죄들에대한양심적인고통을외면하고있는한,우리들교회의죄고백운동은한국교회의새로운경건운동에크게기여하리라기대한다. 그러나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가보여준죄고백의신학적인이해를깊이성찰할때,그렇다는말이다.성찰해야할것이무엇인가?그것은믿음,사랑,소망의구원신학이경건의참된목표요,죄고백의근본토대라는점을깊이헤아려야한다.그리고특히개인의사적인죄고백의성경적근거로삼아왔던성경본문들을다시한번성찰해야할것이다.예를들면느혜미아9:1-4,레16:21이하,삼상7:3-12,약5:16절등의본문들은새롭게주목하기를바란다(칼빈의기독교강요,3권1-6장은큰도움이될것이다).그리고개인의사적인죄가이웃에미치는사회적인영향과관련하여,또하나의죄고백은죄책고백으로이해되어야할필요성이요구된다.그래서사적인죄고백과공적인죄책고백을잘구별하여사용할때,우리들교회의죄고백운동은더욱성숙한방향으로발전하리라확신한다. 여기서또하나숙고해야할점은우리들교회가행하는공중예배에서회심자의간증행위이다.이것은아마도아직믿음(구원의확신)에확고히서있지않는새신자들에게도움을주려는복음전도에목표를둔,일명구도자의예배모습으로여겨지며,목회자의소신에의하여시도되는독창적인예배모습으로판단된다.그러나유의해야할점은간증인이갖게될심적부담이다(기우이기를바라지만).그것은분명히죄용서(회심과중생)의은혜를체험한자도,언제든지다시죄에빠질수있다는점이다.그래서루터는기독인의실재를'의인임과동시에죄인'(simuljustusetpeccator)이란사실을인정하고,하루에3번이상,하나님께드려야할회개기도의필요성을역설하였던것이다.그럼으로중생후에도인간은죄의유혹을받으며,넘어질수있는연약성과가능성때문에,유혹을피하도록진지하게죄와투쟁해야하며,죄를하나님께항상고백할뿐아니라,말씀에순종하며,경건한삶을힘쓰는노력이따라야한다.생각하면바로그것때문에형제연합교회와코메니우스는구원신학의근본토대를믿음.사랑,소망에다두고,그것들로반응하며순종의삶을살도록성경말씀의설교를힘쓰며,성례(세례와성찬)를통한성령의인침의확신을심어주며,그리스도형상닮기를훈련시켰으며,역시사랑으로돌보는교회훈육의목표도거기에두었던것이다. 바라기로는현재우리들교회가추구하는죄고백의경건운동은개인의사적인죄고백의간증차원을뛰어넘어,여전히사회적차원에서이웃사랑의책임을다하지못한죄책고백을적용하여,빛과소금의사회적인책임과역할을일깨우는회개운동을적용해야하리라고생각한다.그리고중생한신자들은진리의통찰에근거하여사회적으로유혹받는불의를거절하며(정의),불화와다툼과대립과분열을극복(평화)하는사회적인영역(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등)에서더큰선한복음(진리)의영향력을행사하는코람데오의삶을구현해야할것이다.그러한방향에서평신도들에게기독교신앙의진리를성실하게일깨운다면,우리들교회의죄고백운동은성숙한회개운동과교회개혁과사회개혁운동으로연결되어,마침내한국교회를새롭게하는이시대의하나님의일에크게쓰임받는등불이되리라확신한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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