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그동안 기도해 주심으로 총 4500킬로를 달리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가는 곳곳 마다 복음에 갈급한 영혼들을 만날 수 있었고
각 교회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의 부르심을 다시금 확인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비니짜 교회, 가이신 교회, 오뎃사 가나안 수련회, 자슈킵 교회, 자슈킵 시골 교회 2곳, 키에브 교회 2곳, 르보브 교회 5곳, 볼로베츠 집시가정교회, 베레고보 지역 등 정말 주님께서 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오는 12월 24일까지 가족 모두가 한 몸이 되어 돌아가며 금식을 하며 영적 전쟁을 선포하는 가운데
사단의 역사는 더욱 현저하게 드러나는 양상을 띠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그 어떠한 노력에도 기도는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어떤 것을 구하기 보다 주님의 뜻과 그 나라를 구하는데 전심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기에 생명으로 순종하렵니다.
저희는 이번 금식 기간 동안 여호수아와 시편을 묵상하며 나아갑니다.
아래에 묵상한 내용을 함께 나눕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함께 동역하게 됨이 큰 기쁨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주님이 일하심을 믿기에
오늘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수 5:3 - 10...이스라엘 자손들에 할례를 행하니라....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요단을 건넌 사건은 믿음이 없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이스라엘이 맥추 시기에 요단을 건넌 것은 막연한 소문 즉 이집트를 무너트리고 홍해를 건너고, 아모리와 헤스본과 바산의 왕들이 당했다는 말이 소설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전능하신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소망이 없음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그들을 멸망으로 이끌고 갈 것들인 자기 통밥과 상식과 지식과 경험과 느낌에 인생을 맡기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이스라엘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의 대조적인 모습을 봅니다.
할례를 행한 그들은 요단을 건너기까지 할례가 없었다는 것이고 이 말은 곧 요단을 건넌 것은 오직 믿음으로 건넜음을 말함을 봅니다.
주님은 믿음에의 온전한 순종을 보인 이스라엘에게 이제는 더한 것을 요구하시는 것 같습니다.
적진 앞에서 할례는 자살 행위처럼 보이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모습은 자기부인이라는 엄청난 사건임을 봅니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존재가 요단을 통해 죽음을 경험하였지만 더 깊은 데로 가길 원하시는 주님.
그들은 온전한 순종으로 주님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유월절 제사는 완전한 죽음, 십자가에서의 죽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만을 따르기로 작정한 주님께 완전히 생명을 드리는 고백이었음을 봅니다.
누가복음 9:23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전쟁은 주께 속하였나니...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주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종됨을 선언하는 삶은 하늘에 속한 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못 박혀 이젠 나는 없고 오직 내 안에 예수님 사신 사건.
오늘도 내 십자가 지고 주님의 길 따라갑니다.
주님이면 충분합니다.
마라나타.
전만규, 김미정, 성진, 하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