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아침에 태양이 뜨면 달빛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기불이 없었던 시절 촛불을 켜 겨우 책을 읽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전기가 들어오고 백열등이 들어오고 난 후 촛불을 의지 할일은 전기가 나갈 때와 특별 교회 행사 때
말고는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렇다면 진리의 빛 앞에, 하나님의 의의 빛 앞에 어느 누가 자기 의를 나타낼 수 있을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기의 의를 나타내기 위해 너무나도 열정적으로 헌신적으로
불사르는 모습입니다. 제가 그랬답니다.
경배와 찬양이라는 명목으로, 선교라는 명목으로, 기독교인이라는 명목으로
내 안에 있는 허접한 것들로 자기의 '의'로 삼고 뛰어 다녔던 일들을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 모습은 존재적으로 죄인의 모습이기에 그랬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에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태어나 죄 친화적 존재인 나의 모습은 그 어떤 선한 행동을 하더라도
죄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며 내 죄를 가려 보려고 (마치 아담과 하와가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려보려고
무화가 나무잎을 찾아 헤메었던 것 처럼... )하였지만
나란 존재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기에 절망 뿐이었습니다.
영원히 망가졌던 관계, 나로서는 결코 해결 할 수 없었던 관계가 하나님과의 무너졌던 관계인데
나는 나의 죄에 대해 너무나 쉽게 여겼고 어릴적부터 다닌 교회에서의 교육으로 구원 받았다고
착각속에 살아왔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자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전달되었고 여전히 죄악의 감염 속도는 눈깜짝할 사이에
많은 이들에게 전염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모습은 마치 사단의 오른팔 역할을 한 모습이었지요.
이러한 나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가 다시 복음 앞에 서기를 인내하시며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런 주님 앞에 나가서 내가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선처를 바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구할 것이 없었답니다.
마치 세리가 성전 문에서서 고개도 못들고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처럼... 복음을 이렇게 만났기에
복음이 아닌 다른 것으로 만족과 기쁨과 삶의 이유로 삼을 수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원한 복음 앞에서 영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에게
언젠가는 반드시 썩어지고 사라질 세상 것을 구한다면
하나님의 수준을 썩어질 세속 것으로 바꾸는 죄이기에
오늘도 더욱 영원을 사모하며 진리 앞에 서렵니다
함께 기도 해 주심에 늘 감사 드립니다.
전만규 선교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