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땅 이야기 20-1
비자로 인한 급한 기도제목을 드린 지 한 참이 지났네요.
저희도 그 날 이후로 비자 번호 받기를 줄곧 기다리고 있다가 지난 목요일(8월30일) 오전 10시경에 저희가 언어를 배우고자하는 사범대학으로부터 메일을 받은 후, 그 날 밤에 바로 출국하여 저희회사 방콕 Home에 도착한 다음날까지 많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공항에서는비자 만료일이 불가피하게 3일이 지났지만, 약 1시간을 공안에 불려가 벌금을 지불하고 나오기 까지 저희 동료들, 사범대학의 담당자까지 비자 연장일 초과자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공안과 직접 전화로 통화하며 모두가 걱정하며 염려하는 시간을 갖게되었습니다.
우리가 대학 측에서 비자 번호를 받으면 출국을 하게되는 것으로 알고 기다리고 있는 중에 소식이 안 와서 3일이 초과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민국에서는 그 반대로 우리가 나가면 비자 번호를 발급하려고 했다는 것을 3일이나 지나서 대학 담당자가 알려주었고, 그 소식을 받고는 당일에 급히 출발한 것이라는 것 등의 정황을 설명하는 통화를 나누었지만, 그들은 계속 강압적이고 화가 난 표정과 말로 다섯명에 해당하는 몫의 막대한 벌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베트남으로 다시 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어줍잖은 베트남말로 우리가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없고 또한 그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지만, 믿지 않고 우리를 밖으로 나가라고 계속 말을 했습니다. 이 일은 대학 담당자의 전달 상의 오류에서 발생된 일이라는 것과 우리는 그들의 규칙을 따르기를 원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지만, 담당자의 태도는 그것과는 무관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기도하며 참고 기다리는데…… 한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밖에서 계속 이 일을 주시하며 속으로 기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한 공안이 와서 우리 두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금액 50만동과 미화 100불로 일 처리를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영수증에는 1,250,000동이라고 두사람의 값이 쓰여있었습니다. 손을 모아주신 힘이 생각 났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이미 10시 50분이 지나갔고, 출국 절차를 밟으면서 보니 11시 10분이 넘었는데, 비행기 출발 시간은 11시 35분이었습니다. 거의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대어서 밤하늘을 가르는 방콕행 비행기에오를 수 있었습니다.
방콕에서는 그동안 저희 회사 동료와 대화를 나눈 크리스천 게스트 하우스를 머리 속에 생각해 두고 있었는데 도착해 보니 그곳이 아니라, 우리 회사 소속의 게스트 하우스에 예약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3시 30분 무렵에 다시 크리스천 게스트 하우스에서 택시를 타고 완전히 다른 곳인 방콕 회사 본부가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니 새벽 4시 30분 이었습니다. 씻지도 못하고 잠자리에 눕는데 의현이가 "정말 대단한 하루였어요" 해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날은 아침을 건너뛰고 모두 10시까지 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열어 둔 메일로 비자 번호는 오전이 끝날 때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점심 식사후엔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습니다. 금요일의 이곳 대사관 업무가 종료되었기에, 하노이에서 당일의 급한 티켓팅과 이곳 숙박에 대한 예약을 다 담당하며, 호안끼엠 여행사까지 남편을 오트바이 뒤에 태워 도와 준 미국 출신의 동료가, 교통비를 자신이 지불하고는 베트남의 휴일인 월요일까지는 편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있으라고 방콕에서 4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저희 회사 게스트 하우스인 파인 하우스로 예약을 새 땅 이야기 20-1
비자로 인한 급한 기도제목을 드린 지 한 참이 지났네요.
저희도 그 날 이후로 비자 번호 받기를 줄곧 기다리고 있다가 지난 목요일(8월30일) 오전 10시경에 저희가 언어를 배우고자하는 사범대학으로부터 메일을 받은 후, 그 날 밤에 바로 출국하여 저희회사 방콕 Home에 도착한 다음날까지 많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공항에서는비자 만료일이 불가피하게 3일이 지났지만, 약 1시간을 공안에 불려가 벌금을 지불하고 나오기 까지 저희 동료들, 사범대학의 담당자까지 비자 연장일 초과자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공안과 직접 전화로 통화하며 모두가 걱정하며 염려하는 시간을 갖게되었습니다.
우리가 대학 측에서 비자 번호를 받으면 출국을 하게되는 것으로 알고 기다리고 있는 중에 소식이 안 와서 3일이 초과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민국에서는 그 반대로 우리가 나가면 비자 번호를 발급하려고 했다는 것을 3일이나 지나서 대학 담당자가 알려주었고, 그 소식을 받고는 당일에 급히 출발한 것이라는 것 등의 정황을 설명하는 통화를 나누었지만, 그들은 계속 강압적이고 화가 난 표정과 말로 다섯명에 해당하는 몫의 막대한 벌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베트남으로 다시 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어줍잖은 베트남말로 우리가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없고 또한 그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지만, 믿지 않고 우리를 밖으로 나가라고 계속 말을 했습니다. 이 일은 대학 담당자의 전달 상의 오류에서 발생된 일이라는 것과 우리는 그들의 규칙을 따르기를 원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지만, 담당자의 태도는 그것과는 무관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기도하며 참고 기다리는데…… 한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밖에서 계속 이 일을 주시하며 속으로 기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한 공안이 와서 우리 두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금액 50만동과 미화 100불로 일 처리를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영수증에는 1,250,000동이라고 두사람의 값이 쓰여있었습니다. 손을 모아주신 힘이 생각 났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이미 10시 50분이 지나갔고, 출국 절차를 밟으면서 보니 11시 10분이 넘었는데, 비행기 출발 시간은 11시 35분이었습니다. 거의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대어서 밤하늘을 가르는 방콕행 비행기에오를 수 있었습니다.
방콕에서는 그동안 저희 회사 동료와 대화를 나눈 크리스천 게스트 하우스를 머리 속에 생각해 두고 있었는데 도착해 보니 그곳이 아니라, 우리 회사 소속의 게스트 하우스에 예약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3시 30분 무렵에 다시 크리스천 게스트 하우스에서 택시를 타고 완전히 다른 곳인 방콕 회사 본부가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니 새벽 4시 30분 이었습니다. 씻지도 못하고 잠자리에 눕는데 의현이가 "정말 대단한 하루였어요" 해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날은 아침을 건너뛰고 모두 10시까지 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열어 둔 메일로 비자 번호는 오전이 끝날 때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점심 식사후엔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습니다. 금요일의 이곳 대사관 업무가 종료되었기에, 하노이에서 당일의 급한 티켓팅과 이곳 숙박에 대한 예약을 다 담당하며, 호안끼엠 여행사까지 남편을 오트바이 뒤에 태워 도와 준 미국 출신의 동료가, 교통비를 자신이 지불하고는 베트남의 휴일인 월요일까지는 편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있으라고 방콕에서 4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저희 회사 게스트 하우스인 파인 하우스로 예약을 새 땅 이야기 20-1
비자로 인한 급한 기도제목을 드린 지 한 참이 지났네요.
저희도 그 날 이후로 비자 번호 받기를 줄곧 기다리고 있다가 지난 목요일(8월30일) 오전 10시경에 저희가 언어를 배우고자하는 사범대학으로부터 메일을 받은 후, 그 날 밤에 바로 출국하여 저희회사 방콕 Home에 도착한 다음날까지 많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공항에서는비자 만료일이 불가피하게 3일이 지났지만, 약 1시간을 공안에 불려가 벌금을 지불하고 나오기 까지 저희 동료들, 사범대학의 담당자까지 비자 연장일 초과자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공안과 직접 전화로 통화하며 모두가 걱정하며 염려하는 시간을 갖게되었습니다.
우리가 대학 측에서 비자 번호를 받으면 출국을 하게되는 것으로 알고 기다리고 있는 중에 소식이 안 와서 3일이 초과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민국에서는 그 반대로 우리가 나가면 비자 번호를 발급하려고 했다는 것을 3일이나 지나서 대학 담당자가 알려주었고, 그 소식을 받고는 당일에 급히 출발한 것이라는 것 등의 정황을 설명하는 통화를 나누었지만, 그들은 계속 강압적이고 화가 난 표정과 말로 다섯명에 해당하는 몫의 막대한 벌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베트남으로 다시 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어줍잖은 베트남말로 우리가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할 수 없고 또한 그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지만, 믿지 않고 우리를 밖으로 나가라고 계속 말을 했습니다. 이 일은 대학 담당자의 전달 상의 오류에서 발생된 일이라는 것과 우리는 그들의 규칙을 따르기를 원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지만, 담당자의 태도는 그것과는 무관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기도하며 참고 기다리는데…… 한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밖에서 계속 이 일을 주시하며 속으로 기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한 공안이 와서 우리 두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금액 50만동과 미화 100불로 일 처리를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영수증에는 1,250,000동이라고 두사람의 값이 쓰여있었습니다. 손을 모아주신 힘이 생각 났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이미 10시 50분이 지나갔고, 출국 절차를 밟으면서 보니 11시 10분이 넘었는데, 비행기 출발 시간은 11시 35분이었습니다. 거의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대어서 밤하늘을 가르는 방콕행 비행기에오를 수 있었습니다.
방콕에서는 그동안 저희 회사 동료와 대화를 나눈 크리스천 게스트 하우스를 머리 속에 생각해 두고 있었는데 도착해 보니 그곳이 아니라, 우리 회사 소속의 게스트 하우스에 예약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3시 30분 무렵에 다시 크리스천 게스트 하우스에서 택시를 타고 완전히 다른 곳인 방콕 회사 본부가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하니 새벽 4시 30분 이었습니다. 씻지도 못하고 잠자리에 눕는데 의현이가 "정말 대단한 하루였어요" 해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날은 아침을 건너뛰고 모두 10시까지 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열어 둔 메일로 비자 번호는 오전이 끝날 때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점심 식사후엔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습니다. 금요일의 이곳 대사관 업무가 종료되었기에, 하노이에서 당일의 급한 티켓팅과 이곳 숙박에 대한 예약을 다 담당하며, 호안끼엠 여행사까지 남편을 오트바이 뒤에 태워 도와 준 미국 출신의 동료가, 교통비를 자신이 지불하고는 베트남의 휴일인 월요일까지는 편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있으라고 방콕에서 4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저희 회사 게스트 하우스인 파인 하우스로 예약을 해주어서 여기서 머물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이곳 프라#52533; 킨칸(PrachuapKhin khan)숙소에서 첫날은 내내 남편과 저 두 사람 다 심한 두통을 앓았습니다. 몸이 그동안의 상황을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출국한 다음 날인 31일에 사범대학 담당자로부터 메일이 왔는데, 이민국에서 저희 비자번호를 받기 위해 금요일에 본인이 이민국에 직접 가서 많은 시간을 소모하며 기다렸는데 비자 번호를 아직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오늘(9월 3일)이 베트남 휴일이니 내일 오전 중에 비자 번호를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계속 마음을 모아 주십시오.
이곳에 도착해 보니 올 2월 싱가폴 OC에서 함께 훈련받은 스위스 출신의 중국 꽝저우로 파송 받은 가정이 우리와 동일한 상황으로 이곳에 먼저 와 있어서 우리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숙소 옆에 바로 바다가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걸으며 우리의 삶을 이끄시는 살아계신 아버지께 마음을 전해 드리고있습니다. 여기에서 30분만 가면 미얀마 국경이라 동료들은 차로 그곳을 다녀오곤 합니다. 비자 번호를 받으면 업무가 시작되는 내일 다시 방콕으로 돌아가 베트남 대사관에서, 1년 간의 언어 과정 학생 비자를 무사히 받고, 늦어도 수요일 밤까지는 하노이로 돌아가는 것이 저희의 바램인데… 계속 손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머지않아 업데이트된 소식을 전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는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찌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시46:1-3)
2012.09.03.
태국 피난처에서 신반석, 샤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