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분들께,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알바니아도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어 그저께부터 집안에 선풍기를 돌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살고 있는 팔커가 시골이라서 그런지 티라나 시내보다는 훨씬 시원한 것 같습니다. 이곳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도시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배우고 누릴 수 있어 참 감사합니다. 봄에 저희 집 처마 밑에 이사와 둥지를 틀었던 제비 부부에게 얼마 전 세 마리의 새끼가 태어났는데, 부지런히 모이를 물어다 노랗게 벌리고 있는 새끼들의 주둥이에 넣어주는 것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밤이 되면 마당 여기저기서 깜빡이는 반딧불을 보며 신기해하기도 합니다. 이 마을 여느 집처럼 매일 열심히 밀가루 반죽을 해서 빵을 구워 먹고, 밭에서 자란 싱싱한 상추를 뜯어 식탁에 올리고, 자두, 복숭아 등 일찍 익은 열매를 따서 쉴 틈 없이 찾아오는 동네 꼬마 손님들을 대접하기도 합니다. 이곳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조금이라도 비슷해지고 싶어 배우고 애쓰던 일들 속에서 오히려 저희들이 더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됨을 깨닫습니다. 이번 기도편지에는 그동안 팔커 마을에서 만나고 교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자나’ 이야기
자나는 이웃집 핫산 할아버지의 맏며느리입니다. 울타리가 가축들이 넘어오지 않을 만큼 얕은 철조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쉽게 이웃집 마당이 보이고 집안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희가 이사 온 후로 늘 아침 일찍 나와 밭일과 집안일을 하는 자나를 보며 왠지 힘이 없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결혼한 지 12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함께 지내는 동서는 봄에 둘째를 낳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우울해 보였습니다.
가끔씩 울타리에 서서 이야기를 하다가 커피 마시러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했더니, 자신은 ‘쿠커스’ 지방(알바니아 북쪽에 있는 지방으로, 무슬림이 강하고 보수적임) 출신인데, 며느리는 다른 집에 놀러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시장 보는 일도 남자들이 하고, 자신의 옷을 살 때만 시장에 갈 수 있는데, 외출을 할 때면 꼭 남편과(혹은 남자 형제와) 함께 동행해야 한다고 합니다. 남편이 외국에서 7년간 일을 하다가 지금은 돌아와 가게를 하고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관습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많이 안쓰럽게 느껴졌고,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 보내셨구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차로 20분만 가면 티라나 시내에서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많은 여성들을 볼 수 있는데, 아직도 이곳엔 스무 살 이전에 약혼하거나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고 종교적인, 관습적인 틀 안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참 놀라왔습니다. 자나에게 속히 자녀가 생기고, 복음 안에서 자유한 날이 오길 기도합니다.
로칼(lokal)에서 만나는 남자들
주로 집에서만 일하고 생활하는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의 활동 영역은 넓고 자유롭습니다. 알바니아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대게 고등학교 정도만 졸업하면 친척들이 이미 터전을 잡고 있는 외국으로 나가 일을 합니다. 그렇게 벌어서 모은 돈을 고향으로 보내 가족이 생활하기도 하고, 여유가 생기면 집을 짓습니다. 돈이 모일 때마다 벽돌 몇 장씩 사서 집을 올리기 때문에 알바니아에는 늘 ‘공사중’인 상태의 집이 많습니다.
이 선교사가 오후나 주말 저녁에 남자들이 모여 교제하는 ‘로칼’(커피를 마시며 교제하는 찻집)에 나가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마을에 여러 개 로칼이 있지만 각 출신 지역별로 모이는 곳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출신지역이 크게 쿠커스, 디브라, 티라나 혹은 팔커로 나뉘는데 같은 지역 출신 사람들끼리만 모여 교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로칼 별로 쓰는 사투리가 조금씩 다르고, 분위기도 다르고, 주로 일하러 가는 나라가 다릅니다. 쿠커스 사람들은 주로 독일, 디브라 사람들은 주로 영국으로 많이 일하러 가는데, 그 중에도 디브라 사람들의 경제력이 좀 더 낫습니다. 팔커에 최근에 새로 높이 올린 집들은 디브라 사람들이 영국에서 돈을 모아 와서 지은 집들이 많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로칼에 모이면 주로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위성 TV를 통해 유럽 축구 매치를 보고, 또 어떤 로칼에서는 로또(lotto)를 하기도합니다. 이 선교사도 빅 매치가 있는 날이면 밤늦게까지 어울려 축구 경기를 보러 갑니다. 또, 저희도 팔커 주민의 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시켜주기 위해 마을 대항 축구 시합이 있을 때마다 나가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가정의 책임을 지고 오랫동안 타지에 나가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이곳의 남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또 외국에 나가지 못하고 일이 없거나 적은 월급을 받으며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며 생활하는 남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어떻게 이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해야 할 지 막막한 마음이 들 때가 많이 있는데, 우리의 모든 짐을 지어주신 주님의 위로와 은혜가 이 땅의 남자들에게도 부어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 집 단골손님 ‘야신’ 이야기
‘야신’이는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입니다. 작년에 토요일마다 학교 앞 운동장에 모일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나왔던 아이입니다. 야신이를 따라서 누나와 사촌들도 나와 함께 놀았습니다. 저희가 이사 온 집이 야신이 집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동네 아이들 중에 제일 많이 대문을 두드리는 아이입니다. 아이들이 찾아와 집안에 들어오게 해 달라고 조르면 보통은 잘 타일러서 돌려보내는데, 야신이는 비교적 쉽게 들어오도록 허용이 됩니다. 아빠가 그리스에 일하러 가셨는데, 두 달 전에 엄마도 막내를 데리고 그리스에 가셨기 때문입니다. 야신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누나들, 그리고 작은 아버지 가족들과 살며 학교에 가지 않는 시간에는 사촌들과 돌아가며 소를 모는 일도 돕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셔서 안쓰러운 마음에 집에 들어와 저희 아이들과 같이 만화도 보고 책도 읽고 장난감을 갖고 놀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하루는 개인 사정상 마당에서만 놀라고 했는데, 계속 방에 들어와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길래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말을 듣지 않길래 1주 동안 저희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벌을 주었습니다. 우울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너무했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주 내내 야신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결국, 1주일 뒤에 다시 찾아 온 야신이를 반갑게 맞이하며 어린이 성경을 펴서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함께 읽었습니다. 불순종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던 아담과 하와처럼 저와 그 아이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야신이를 제 아들처럼 생각하고 사랑하는데, 저희 자녀들이 제 말에 순종하는 것처럼, 야신이도 순종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 일 후로 야신이가 저를 더 신뢰하고 함께 정한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집에 올 때마다 쉬운 영어책을 한 권씩 읽으면 스티커를 붙여주고, 20장을 모으면 선물을 주겠다고 했더니 열심히 책도 읽고 있습니다. 언젠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이어주신 예수님에 대한 얘기도 들려줄 수 있길 기도하고,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에게 저희 부부가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는 통로로 잘 쓰임 받을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영어교실에 온 아이들
저희와 함께 동역하던 키다 자매가 지난 2월부터 토요일마다 베드리의 딸 리사의 영어공부를 도아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수업을 힘들어 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더 많은 아이들이 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키다와 저희 부부가 수준별, 성별로 반을 나누어 영어교실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생각대로 아이들이 잘 모이지 않았고, 9개월 동안 함께 동역해 온 키다 자매가 개인 사정으로 쉬게 됨에 따라 계획했던 것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한편으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한 두 명의 아이들이라도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원했는데, 결국 한 명의 여학생(예따)과 세 명의 남학생(띠띠, 제지, 알띤)이 영어를 배우러 오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ABCD 알파벳 읽는 것부터 가르쳐 줘야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5-6주간의 수업을 마칠 즈음엔 공부에 조금씩 흥미를 갖고 작은 진보를 보여 감사했습니다. 여름 방학 동안에도 계속 영어를 가르치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길 바라고 있는데, 이 아이들이 공부에 대한 흥미를 얻고, 장래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여름나기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그저께는 저희 집 마당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는 포도나무 넝쿨들을 손질해 주었습니다. 열매가 없는 가지나 넝쿨들을 잘라주어야 더 열매가 충실하게 영근다고 이웃사람이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잘라낸 가지들이 마당에 수북이 쌓인 것을 보며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요15:2)는 성경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해 내가 잘라 내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첫 텀을 마치고 돌아가는 12월까지 이곳에서 남은 6개월의 시간동안 불필요한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온 마음과 힘을 집중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 여름을 보내면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선하신 일들을 잘 깨닫고, 순종하여 섬기는 저희 가족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더운 날씨에 건강하시길 빌며,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 6. 20
팔커에서, 나무가족(이동윤/정인혜/형석/형민/형범) 드림
* 기도 제목
1.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우선순위를 놓치지 않도록
2. 주변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 꾸준히 가정들을 방문할 계기를 허락하여 주시고, 가정들의 필요를 지혜롭게 도울 수 있도록
- 복음에 열려 있는 예비된 사람들을 만나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도록
- 특별히 베드리 가정을 축복해 주시고 지혜와 사랑으로 그들을 섬길 수 있도록
- 이웃집 자나에게 자녀를 허락해 주시도록
- 마을 보건소에서 일하는 여의사 루키아와 좋은 관계를 맺고 계속 교제할 수 있도록
3. 여름방학 동안 이곳 아이들과 가정들을 섬길 수 있는 적절한 계획을 잘 세울 수 있게 하 시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도록 / 저희 자녀들도 여름을 건강하고 의미있게 잘 보낼 수 있도록
4. 6월(25-29) 말에 헝가리에서 있는 GMP 유럽-아프리카 선교사 수련회에 참가하는데, 은혜로운 교제와 재충전의 시간이 되게 하시고, 가족들의 건강과 안전한 여행(운전)을 할 수 있도록
5. 팔커에서의 예배를 통해 저희 가정이 예배자와 중보자로 잘 세워질 수 있도록
특히 자녀들이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6. 지속적인 언어의 진보가 있도록(사역언어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7. 알바니아 무슬림들을 위한 지속적인 연구와 선교를 위한 동역들이 이루어지도록
* E-메일: edongyoon@gmail.com (이동윤) / shpresaina@gmail.com (정인혜) * 현지주소: AEP #11 K.P.119 Tirana, Albania / * 현지 연락처: 001-355-69-401-9662(핸드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