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동안 베트남 신부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신부들은 무척 저를 좋아했습니다. 신랑들에게서 전화가 오면 전화기를 들고 쏜살같이 저에게로 달려와서는 제 귀에다가 전화기를 대주고는 숨을 죽이며 신랑의 말을 기다렸습니다. 신부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여보, 오빠, 보고 싶어요, 등의 짧은 단어와 짧은 인사말뿐이었습니다. “네, 전화바꾸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요? 제가 통역해드리겠습니다.” 신랑들은 그동안 말이 안통해서 답답했던 절절한 심정을 제3자인 저를 통해서 막 쏟아냅니다. 1시간을 말한 신랑도 있습니다. 다른 신부들이 전화기를 들고 줄을 서서 빨리 끊으라고 재촉을 합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내 나이 60이 다 되어서 사랑의 언어 통역자가 되다니. 내 심장이 제명대로 못 가겄네.” 어떤 신랑의 사랑고백은 제 눈물을 쏙 뽑아냈습니다. 60대의 심장이 20대의 뜨거운 사랑을 전달하자니 갑자기 박동이 빨라지면서 숨을 고를 수가 없습니다.
한국어와 한국음식, 한국역사, 한국문화, 한국교육, 한국예절 등을 아침 8:30부터 저녁6시 까지 2주 동안 힘을 다해 가르쳤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낮선 땅에 가서 어떻게 살까, 상상이 안가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베트남 땅에 첫 발을 디딜 때, 한마디의 베트남어도 몰랐습니다. 손짓 발짓을 하며 바보같이 몇 달을 살아야 했던 그 악몽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족들과는 말이 통했지 않습니까. 이 신부들은 사랑하는 남편과도 말이 안 통하는 채로 몇 달을 살아야합니다. 몇 년이 될 수도 있고, 지적 수준이 낮은 신부는 영원히 ‘가다, 오다, 먹다, 자다’ 등의 몇 개의 짧은 동사로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답답할까, 얼마나 엄마가 그리울까, 얼마나 수다를 떨고 싶을까, 얼마나 눈물을 흘리게 될까.
그래서 복음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낮선 땅에서 앞이 캄캄할 때, 하나님을 만나면 그래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생명의 신비 동영상을 보여주고, 이들이 믿는 조상신과 하나님의 차이를 알려주었습니다. “엉뚱한 이름 불러보았자 소용이 없어, 올바른 이름을 불러야 해, 우주와 자연과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너희들의 아픔과 고통과 억울함을 해결해 주실 수 있단다.” 하나님 이 중에서 룻이 나오게 해주십시오.
수료식 날, 신부들은 한국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연합뉴스에서 취재를 왔다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애국가의 가사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연습을 시켰습니다. 우리 애국가에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했습니다. 신부들은 엉엉 울었습니다. 저도 울었습니다. 부디 이 신부들이 한국에 가서 매 맞지 않고, 노예취급 당하지 않고, 인격적인 대우 받으며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울었습니다.
2011년 6월 1일 밤에 김보라 올림
기도제목:
*6월13일에 제8기 베트남신부 교실이 시작되는데 ‘김보라’와 ‘응옥마이’가 기쁨으로 이 일을 감당하도록.
*김보라 허리 수술 받은 것(요추 1번 뼈가 부스러졌음) 잘 회복되도록.
*응옥마이는 이 신부교실을 하면서 몸에 이상이 많이 왔습니다. 8기까지 끝내고 종합검진을 받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응옥마이를 통해 베트남에 새생명이 많이 태어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