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사랑
비키의 골수암이 발견된 것은 그녀가 21살이던 대학 새내기 시절이었다. 다리 한 쪽을 잘라내고 의족에 의지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일년이상 지속된 항암치료를 통해 머리가 모두 빠지고 얼굴이 퉁퉁 붓는 것은 젊은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시련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불평 한마디 없이 의연하게 버텨주었다. 골수암 증상이 어느 정도 잡히는 것을 확인한 그녀의 오빠 톰은 아내와 함께 태국 선교사로 떠났다. 그러나 일년 후에 비키의 암이 폐로 번져 폐의 대부분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건강을 회복하는 듯했다. 톰이 선교지에 간지 3년째 되던 해, 이번에는 비키의 온 몸에 암세포가 번져 살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이 날라왔다. 아내와 함께 급히 고향으로 돌아온 톰은 비키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께 치유의 은혜를 간절히 구했다. 온 가족과 교회, 그리고 주변의 수많은 이들이 중보기도에 동참했다. 그러나 비키는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속절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토록 주님을 사랑했던 비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하나님은 왜 그녀를 젊은 나이에 불러가신 것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비키를 사랑하지 않든지, 아니면 사랑하지만 구해줄 능력이 없든지 둘 중 하나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비키는 죽기 직전 톰에게 로마서 8장28절을 읽어주며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뤄지고, 결과와 무관하게 그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비키의 장례식에서 톰은 비로소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조지아 주의 작은 시골마을에 무려 천 명이 넘는 문상객이 찾아왔고, 수많은 사람이 투병기간에 보여준 비키의 살아있는 믿음 때문에 자신도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어느덧 장례식은 기쁨과 감동이 넘치는 축제로 변하고 있었다. 비키의 항암치료를 맡았던 종합병원의 의사는 평생 수많은 환자들을 대했지만 비키처럼 자신을 감동시킨 환자가 없었다며 멀리 떨어진 아틀란타에서 일부러 찾아주었다. 그가 환자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선교동원 전략모임이 감동적인 간증은 지난 주간 영국에서 열린 세계복음주의연맹 선교분과 전략회의에서 톰 멀리스 목사가 나눈 내용입니다. 아홉 나라에서 모인 열 명의 선교동원가들이 머리를 맞댄 이 모임은 선교전략뿐 아니라 영적인 상승효과도 매우 컸습니다.
톰 목사의 간증에 감격한 우리는 회의를 잠시 미뤄두고 각자의 생애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에 대해 자발적으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하나같이 주옥 같은 간증들이었지만, 트레버 선교사 이야기 하나만 간단히 나누고자 합니다.
트레버의 아내 드니스는 수년 전부터 두뇌의 화학적 불균형으로 심한 우울증을 앓아왔고 조만간 뇌수술을 받게 됩니다. 아내이자 엄마가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을 때 가정이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래도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온 가정이 믿음으로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우울증의 고통은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는데, 드니스는 극심한 고통 중에도 틈틈이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뢰를 그림으로 표현하곤 했답니다. 여기 소개한 그림의 의미를 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자신과 남편과 세 아이를 십자가와 유기적으로 연결한 모습은 그림을 잘 모르는 제가 보기에도 경이롭고 감동적인 신앙고백입니다. 지면이 허락한다면 다른 그림들도 보여드리고 싶군요. 이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 함께 중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원을 향한 기쁨의 까치발”
지난 3개월은 끊임없는 여행의 연속이었습니다. 북미주와 한국과 필리핀, 터키를 거쳐 다시 미국과 유럽으로 이어지는 출장으로 집을 떠난 지가 언제였나 싶지만, 그만큼 보람과 열매도 풍성한 기간이었습니다. 특히 유럽의 한인학생수련회(KOSTA)를 통해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세계선교에 헌신하게 되었고, 덕분에 요즘 후속관리에 여념이 없습니다. 유럽으로 건너오기 직전 저는 미시간에서 달라스까지 꼬박 이틀을 운전하게 되었습니다. 갈 길이 멀고 마음이 다급했지만, 이번에 기필코 방문하리라 다짐한 곳이 있었습니다. 에즈베리 신학교 선교학 교수였던 씨맨즈 선교사님의 묘소입니다. 1978년 여름, 한국을 찾아와 저와 몇몇 사람을 세계선교의 영광스러운 사역으로 이끌었던 그분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찾아 뵈었어야 하는데, 뒤늦게 회한에 젖어 그분의 묘소를 방문한 것입니다.
“영원을 향한 기쁨의 까치발”(On tiptoe with joy for eternity).
그분의 자세와 모습을 너무 잘 표현한 비문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삶과 사역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즐거운 일을 향해 까치발을 딛는 어린 아이처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학수고대하며 기쁨으로 선교의 한평생을 걸었던 그분의 소년 같은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여러분도 그런 특권을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여름에 다시 소식 드리겠습니다. 샬롬!
주 안에서, 정민영/이재진 (규영, 하영, 다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