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안티폴로소식 4
지난 한달 가량 필리핀은 몇 십 년 만에 온 무더위로 나라 전체가 몸살을 앓는 듯합니다. 밤에도 말 그대로 열대야가 펼쳐져서 자다가 몇 번을 깨어서 선풍기를 틀기도 하다가 모기 때문에 모기향을 새로 갈기도 하다가......하루 밤을 또 하루 낮을 지내는 것이 무슨 극기 훈련 코스 같기도 해서 정말 훈련의 때인 것이 실감납니다. 저는 지금껏 선풍기를 틀고 자본 적이 없어서 타이머가 없는 필리핀 선풍기 때문에, 첫 밤은 감기에 걸려서 한 나절은 물도 못 소화시키는 고충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여기서는 이런저런 유형으로 제가 아프고 한 나절 후 일어나는 것으로 끝이 나는 데, 세 아이와 남편은 어디가 그들의 모국인지 헛갈릴 만큼.....건강하게 잘 지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의민이와 남편은 규칙적으로 하루 천 번 이상의 줄넘기로 체력을 단련시키고 있고, 우리 의현이는 이 강렬한 필리핀의 태양빛 아래서 현지인 피부와 별 차이가 없을 만큼 까맣고도 튼튼하게 뛰놀며 자라서 틈틈이 누나들의 우려를 삽니다. 잘 구워진, 웰던이라나요??
오늘은 주일이라 예배 마치고 집에 와서 교회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니 더욱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이곳에서는 마닐라에 있는 한인교회를 다닙니다. 저희가 처음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부터 많은 도움을 주셨던 목사님이 남편의 초등부 시절 동부교회의 전도사님이셨고, 20년 전에 필리핀으로 선교사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간 현지인 교회를 개척하셔서 사역하셨는데 점차 현지인 목사님이 주축이 되어서 교회가 잘 자라가고 있어서, 현재는 한인교회를 중점적으로 사역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사모님은 누구신지 알지를 못하고 왔는데 첫 날 만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서부교회 초등부 4학년 때 주일학교를 담임하셨던 분이 바로 그 사모님이셨습니다. 성탄절에 제가 사모님의 하얀 잠옷을 개조한 드레스를 입고 천사역할을 한 그 사진까지 간직하고 계셔서 하나님의 손 안에서 펼쳐지는 재밌는 재회에 모두들 놀라워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은 지금 이 길을 출발한 저희에게 다시 선배님이며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30년 전처럼 감당해주시고 계십니다, 20년 넘는 선교사 여정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난과 은혜의 때를 전 삶으로 살아내시며 주님과 동행하는 비밀을 깨달으신 것 같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를 교회 주제가로 부르시며 늘 기도에 매달리시고..... 성령님의 임재를 매순간 갈망하며 지친 영혼들을 사랑으로 살피시는 모습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를 묵상하게 합니다.
저희는 여기에서 주일학교와 청년부를 섬기고 있습니다. 두레교회에서부터 주님의 보배교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귀한 믿음의 선배님들과 지체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얼마나 교회의 본질이 주는 기쁨(고민조차도)을 맛보게 하셨는지......,또한 이제는 그것을 나눠주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를 깨달으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희와 함께하는 청년들은 한국에서 잘 적응을 못하고 가정의 문제와 어려움 가운데서 도피처처럼 이곳으로 오게 된 경우가 많은데 주일 오후에 함께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으로 공부하며, 인간의 한계를 공감하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매일 일정한 시각을 정해놓고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하고 말씀보고 있는데 이들의 깨어진 마음 가운데 주님이 주인으로 임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저희도 저녁 식사 후 바로 가정예배를 드립니다. 영어로 찬송 한 곡하고 마가복음을 한 장씩 영어로 돌아가며 읽고 있습니다. 주기도문과 사도신경도 영어로 하는데 아이들이 즐겁게 예배를 드립니다. 의현이가 단어가 길 때는 약간 씩 틀려가며 웃음도 제공해줘서 참 감사한 시간입니다. 지난 5월엔 두 초등학생이 모범상을 포함해 몇 개의 상을 학교에서 받아왔습니다. 누나들은 상을 그동안 많이 받았는데 의현이는 학교에서 받는 상이 처음이라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며 어디에 붙여줄까를 함께 고민했습니다. 아이들의 이런 적응이나, 일상 가운데 때로 약간 힘들 때가 있다가도 한나절을 안 넘기고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는 은혜는 모두 뒤에서 드려주시는 중보기도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늘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도 이제는 그늘이 반갑다고 제자의 메일로 들었습니다. 그래도 줄 장미는 싱그럽겠죠?
여기는 선거가 끝나서 거리의 벽보가 사라져가고 있는데, 그곳엔 벽보가 붙기 시작 했겠네요? 어디서든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정직히 행하는 리더가 선택되는 것이 공동의 기도제목인 것 같습니다.
저희는 계절학기 수업 청강은 끝이 났고, 6월말에 있는 새 학기를 위한 토플 시험을 앞두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등에서 흐르는 땀을 느끼면서도 공부하는 것은 즐겁습니다. 영어책만 챙겨오고, 겨우 두 권 가져온 한국 책 중에서 OMF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의 생애와 사역 기념 화보집』인 <오직 그리스도>라는 책을 틈틈이 읽는데 읽을 때마다 남은 길의 목표를 분명히 해줍니다. 1865년 경 내지 선교의 길을 열기 시작하기 전에 그는 매달 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모른 채 죽고 있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워 한 시간도 제대로 잠을 청하지도 못하고 두 달 간 일기조차 쓸 수 없는 아픔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런 글을 읽으면 필리핀의 무더위도 낯선 생활의 그 어떤 어려움도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함을 느낍니다. 이런 영혼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해도 해도 다함이 없는 기도의 제목입니다.
그 책의 한 구절로 편지를 마감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묵상할 때 우리는 숙연함과 경외감을 금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 그리고 무소부재하심은 우리가 즐겨 묵상하는 주제들이다.
왜인가?
그러할 때 우리는 짧은 순간이나마
그분의 영광의 밝음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의 밝음으로
일상 가운데 침범하는 모든 약함과 어둠을 물리치는 나날이시길
저희도 기도하겠습니다.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샬롬~~
* 저희의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올립니다.
1. 매순간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고 그 뜻에 순종하도록
2. 6월말에 있을 토플시험을 전략적이고도 성실히 준비할 수 있는 지혜와 건강을 주시도록
3. 세 아이가 이 시대를 본받지 않고 일찍이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도록
4. 교회 청년부 학생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주님 안에서 발견하고 참된 비전을 발견하도록
5. 두 분 어머니와 형제들이 영육 간에 강건하고, 구원의 기쁨을 날마다 경험하도록
6. 새로 선출된 필리핀 정치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국가를 바르게 통치하도록
7. 한국아카데미 선교사 자녀들이 그리스도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을 잘 돕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