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께,
모두들 평안하신지요? 고국에서는 117년 만의 폭설로 인해 떠들썩한 가운데 이곳의 11월은 한 달이 또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빠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올 한 해를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무엇을 했는지는 정작 가물가물 합니다. 그저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며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는 가운데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과 함께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헤브론병원의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수많은 일들과 행사 등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지내다 보면 정작 한 영혼을 더 깊이 생각하고 섬기는 일이 쉽지가 않음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뭔가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와중에 성경 통독 중에 만난 누가복음 10장의 마르다와 마리아에 관한 말씀이 거울이 되어 저의 모습을 비추어주었습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그런 마르다를 향해 예수님께서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 만으로도 족하니라'라고 하십니다. 위 말씀을 통해서 쉽게 염려에 사로잡히는 어리석은 저의 모습도 보게 되었지만, '몇 가지만, 아니 한 가지 만으로도 족하다'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큰 위로로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그 한가지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면 족하다는 마음과, 그것에 더불어 병원 걱정을 내려놓기를 매일매일 의지적으로 선택해야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 시편 기자의 고백과 같이, 제가 하나님 안에 거함으로 평안을 누리며 근심과 걱정을 버리고 하루하루 기쁨과 감사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헤브론병원에 방문해서 의료 봉사를 하고 돌아가는 팀들 중에는 매년 비슷한 시기에 꾸준히 오시는 팀들이 있습니다. 현지 의료인들과 라포를 형성하고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섬김의 효과를 극대화 하는 방법 중 하나가 꾸준한 방문과 섬김입니다. 그 중 한 팀이 인공관절 수술로 섬겨주시는 중앙보훈병원 L선생님 팀입니다. 첫 해에는 소수의 인원이 방문했었고 둘째 해에는 수술에 필요한 인공관절을 후원해주시는 업체의 C대표님과 직원분들까지 함께 오셨었습니다. 세 번째인 올해는 작년 멤버를 주축으로 사직 전공의들과 척추 수술을 하시는 K선생님까지 함께 오셨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섬김을 하고 돌아간 분들이 주위 직장 동료분들에게 귀하고 의미 있는 봉사 내용을 나누면서 봉사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간호사분들 중에서는 오고 싶었지만 인원의 제한 때문에 오지 못한 분도 계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공동체적인 존재로 지으셨기에 서로를 섬기고 또 섬김을 받는 삶은 어떤 특별한 일이 아닌 우리 존재의 본질에 속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팀원 중에 C대표님을 비롯해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분들도 여럿 계셨지만 이 섬기는 삶의 기쁨을 맛보고 또 오시거나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오셔서 섬기게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특별히 이번에는 C대표님께서 신경 차단술 등의 시술에 사용되는 C-arm 이라는 고가의 의료 장비도 기증해주셔서 참 감사한 시간이었는데, 마취통증의학과 P의사가 이 장비를 이용해 작년 한국 연수를 통해 배운 술기들을 잘 활용해서 통증 치료를 성공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와 현지 의사들의 신앙을 위해서도 계속해서 기도 부탁드립니다. 아침마다 소그룹별로 모여서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말씀을 보고 나누는 큐티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현지 의사들의 나눔을 듣다보면 때로는 선교사로 나와있는 저보다 믿음이 좋구나라고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이번에 결혼한 S의사의 경우도, 헤브론병원 레지던트 생활을 시작하면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였는데 남편에게도 복음을 전한 적이 있다고 하고 자주 예수님을 믿으라고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또한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일이 생겼을 때에도 우리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뜻을 믿고 인내하자고 말한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믿음입니다. 우리는 씨를 뿌리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우리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저와 현지 의사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알고자 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질 수 있도록, 그리고 이 생명의 복음이 저와 현지 의사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복음으로 계속해서 경험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특히 수요 점심 기도회와 신앙서적을 함께 읽어가는 시간에 주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위해서도 기도 부탁드립니다.
영찬이는 엄지발가락 성장판 골절로 4주간 splint를 한 채로 목발을 짚고 다니다가 좀 회복이 되어 최근에는 둘째 발가락과 엄지 발가락을 함께 묶는 테이핑만 한 채로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목발 없이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영찬이 발가락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수아는 숙제를 한다고 밤 늦은 시간에 자는 날이 잦아졌는데 수아가 시간 활용을 잘 하고, 수면부족으로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아내는 낮에도 각종 대소사 처리로 바쁘고, 영찬이를 재우고 나서도 집안 일을 하며 여전히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아내가 틈틈히 아이들 등하교용 차량 구입을 알아보고 있는데 예산 부족으로 일이 잘 진행이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비염이 있다 보니 최근 들어 부쩍 심해진 도로 매연 문제도 크지만, 무엇보다 저희가 캄보디아에 처음 온 약 6년전에 비해 이제 아이들이 많이 컸기 때문에 뚝뚝에는 짐과 아이들이 다 함께 다 타기가 힘들어져서 이제는 등하교용 차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현재 갖고 있는 재정으로는 무척 오래된 차량만 구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내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 등하교용 차량 구입을 위한 재정이 잘 채워지고, 차량 구입 과정도 순적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간 가정에 큰 탈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이 분명 주님의 큰 은혜와 돌보심 때문이지만, 아내의 표현대로 아내 자신을 갈아 넣어 그나마 이렇게 우리 가정이 버티고 있는 거라는 말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못난 남편 때문에 저러다 우울증과 불안증까지 생기는 게 아닌가 싶은 모습을 보게 될 때도 있어서 좀더 아내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그 마음과 생각을 잘 헤아리는 노력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병원 눈치와 아내 눈치를 보며 사이에 껴서 힘겨워하는 저의 모습도 이제는 저 스스로가 지칠 정도라, 병들어가는 아내를 방치하며 살지 않고 때로는 누군가의 미움을 받을 각오도 하며 좀더 아내와 가정에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늘 시간이 한참 지난 이후에서야 뭔가를 깨닫게 되는 너무 둔한 저라서, 늘 상황 판단이 빠르고 똑부러지는 아내가 많이도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이 불완전한 가정에 치유와 회복의 은혜가 있도록 위해서 기도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구원과 건강을 위해서도 계속 기도 부탁드립니다.
사랑을 담아,
치훈/주영/수아/영찬 드림
<기도제목>
1. 제가 처한 환경 속에서 여러가지 일들로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며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2. 마취통증의학과 P의사가 기증받은 C-arm을 잘 활용해서 질병과 통증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현지인들의 아픔이 위로받고 치유될 수 있도록
3. 저와 현지 의사들의 지속적인 신앙 성장을 위해 (특히 수요 점심 기도회 및 함께 신앙서적을 읽는 시간 가운데 풍성한 주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4. 영찬이 엄지 발가락 성장판 골절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
5. 수아와 영찬이의 등하교용 차량 구입을 위해
6. 저희 가정의 치유와 회복 그리고 한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구원과 건강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