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 송명희 선교사님으로부터 긴급한 기도요청 연락을 받아 여기에 글을 올립니다.
" 아버진 날로 안 좋으셔서 거동만 겨우 하시는데 이제 저를 들어 안으시지 못합니다.
방 필요한 여성이나 주변에 그런 여성 아시는 분은 연락 주세요.
나를 어머니와 화장실 출입을 밤에 2-3회 정도 도와 주시면 됩니다.
생활환경은 3평 이상의 독방에 침대와 책상 있고, 그 앞에 편리한 욕실 있으며,
방,식사,세탁,청소,모두 무료입니다.
좋은 사람 오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
From 송명희
이번주 내로 결정 되어야 한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가능하신 분 있는지 알아봐 주시고 합당한 분 있으면 꼭 연락주세요.
조건이 되시는 분은 아래로 연락해 주세요. 전화 주시면 어머니가 받습니다.
송명희 선교사님 집 전화 : 02)451-0039
장소 : 수서역 근처 한아름 아파트
다음은 퍼온 글 입니다. 혹시 송명희 선교사님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하여 올립니다.
(전략..)
하나님에 대한 불만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왜 나를 이렇게 만드셨나요?
휠체어도 없어서 교회도 못 가고 봉사도 전도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도대체 무엇에 쓸 수 있나요?”
그때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다면 네가 나를 믿었겠느냐? 너는 지금 기도로 나를 기쁘게 하고 있다.
내가 너를 반드시 들어 쓰리라! 내가 너에게 많은 사람을 주리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고 안수하심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씀을 늘 들었지만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안타까움과 서글픔에 잠길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연희동 집 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해서
서초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연희동 교회에서 가장 친하던 친구
최인자 언니와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너무 슬퍼서 방바닥에 엎드려서
부르짖으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없어요! 친구도 집도 휠체어도 아무 것도 없어요!”
바로 그때 주님이 그에게 시를 불러 주셨습니다.
"내가 말하는 대로 써라!
왼 손에 토막 연필을 쥐고
울먹이면서 알아볼수 없는 글씨로 시를 썼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너무나 엉뚱하신 말씀에
기가 꽉 막혀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습니다.
폭발하는 울음을 발산하며 소리쳤습니다.
"아니요! 못 쓰겠어요!
하나님 공평해 보이지가 않아요!
내겐 아무 것도 없잖어요!”
그러나 주님은 화를 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시키는 대로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써라!”
송명희자매는 하나님의 고집을
자신이 꺾을수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송명희 시인은
하나님이 시키는대로 그 유명한
“나” 라는 시를 썼습니다.
(.. 중략..)
그러던 어느날
극동방송의 임경섭 부사장이
송명희 시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송명희 시인을
극동방송에 맡겨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습니다.
미국에 데려가서
치료를 받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뜻 밖의 제안에
송명희씨와 어머니는 당황했고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침착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인이 결정할 문제이지요.”
송명희씨는 놀란 토끼처럼
가슴이 뛰고 혀가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긴장감이 돌고 침묵이 흘렀습니다.
송명희씨는 순간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입술이 떨렸습니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난 이대로 가 좋아요.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이대로 그냥 살겠어요!”
"난 이대로 가 좋아요.
주님이 만들어 놓으신 이대로 그냥 살겠어요!”
임경섭 장로는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부들부들 떨더니 갑자기 목 놓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송명희씨를 덥석 껴 안았습니다.
후에 임경섭 장로는 극동방송에서
송명희 시인에 대한 말을
다음과 같이 하면서 흐느꼈습니다.
"명희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대로가 좋아요.
주님이 만드신 이대로 살겠어요.’
여러분! 부끄럽지 않습니까?
우리 이거 사지 육체 멀쩡해서
누릴 것 다 누리면서도 원망 불평하는데,
나는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웠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1985년 5월부터
국내외 곳곳을 다니며 1천 6백여회
집회를 인도하며 주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내,내가 이,이런 몸이 아,아니었다면
여,여기 오지 않았을 거,것입니다.
그,그 이름의 비,비밀은
그,그 이름 안에 들어가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이름 안에 내가 있고
내가 그,그 이름 안에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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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하신 주님.
절대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주님.
혹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이 보이더라도.
힘든 일이 나에게 생기는 것 같아 보일지라도.
우리,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믿고 신뢰하자.. :)
우리를 차별하지 않으시는 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