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벨을 내려던지라]
왕하 9:30~37
사람은 무언가를 새롭게 얻는 기쁨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는 고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이것을 손실 회피 성향(loss aversion)이라고 합니다. 요람은 자기 고집을 버리기 싫어하다가 말씀대로 갚음을 받았고, 아하시야는 가족 우상 버리지 못해 남김없이 갚음을 받았습니다. 거룩함을 위해서 우리 안의 죄악들을 다 내려던져야 합니다. 오늘은 내 안의 이세벨을 내려던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화려하게 꾸민 포장을 분별해야 합니다.
이세벨은 그동안 최고의 선지자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많은 회개의 기회를 주셨음에도 말씀이 안 들렸습니다. 또한 남편, 큰아들, 작은아들, 외손자까지 죽었는데도 회개가 안 됩니다. 고난이 왔다고 회개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이세벨이 예후를 기다리며 한 일이 화려한 치장입니다. 우리가 다 100% 죄인이기 때문에 사망의 골짜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죽이러 오는 상황에서 보통 사람 같으면 무서워 숨거나 살려달라 하는데, 이세벨은 오히려 예후를 향해 먼저 말을 걸며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라고 묻습니다. 반역으로 왕이 되었다가 7일 만에 죽은 시므리를 빗대어 '네가 지금 반역에 성공해서 평안한 것 같지만 이레 만에 끝날 거야, 좋아하지 마!'라고 비꼬며 저주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악한 날에 예후를 피의 숙청자로 쓰셔서 악한 자를 심판하십니다. 예후가 문을 열고 이세벨에게 들어왔을 때가 회개할 마지막 기회였는데, 끝까지 돌이키지 않고 치장하고 있다가 예후가 '내려던지라!' 하니 말씀대로 떨어져 심판받았습니다. 인간 타락의 최종 증거는 죽음 앞에서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도 모르는 이세벨은 끝까지 겉치장에 치성을 드립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꾸밈과 포장에 잘 속아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포장해 줄 화려한 것들로 꾸미기를 좋아하는 것은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 정점은 언제인가요? 그리스도인에게 정점은 죽음입니다. 이 땅에서의 수고를 그치고 내 사랑하는 영생의 주님을 맞게 되니 정점이 맞습니다. 우리가 화려하게 꾸민 것들이 다 벗겨져 수치가 드러나는 사건은 저주가 아니고 내 안의 이세벨을 분별하도록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둘째, 말씀 편이 되어야 합니다.
이세벨은 불신, 우상숭배, 살인, 강탈 등 온갖 악행의 주인공으로 철저하게 세상에 속한 사탄의 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온갖 이세벨들이 가득해서 무엇이든지 내 욕심을 채워줄 것 같으면 따라가 섬기는 우상숭배의 이세벨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악인 줄 알면서도 이세벨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예후는 왕후행세를 하며 도발하는 이세벨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녀가 있는 창을 향해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며 내시들을 겨냥해 두 번이나 반복하며 소리칩니다. 이 외침을 들은 내시가 예후를 쳐다보니 예후는 '그를 내려 던지라'고 합니다. 내시들에게 이세벨은 자기들이 모시고 있는 주인이지만, 예후 편이 되어서 이세벨을 내려던집니다. 우리는 이세벨을 내려던지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편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 편이 된다는 것은 그날 말씀으로 큐티하며 내 안의 이세벨을 찾아 큐티 책에 쓰며 화려하게 꾸미고 창문 뒤에 숨어있는 나의 악함을 말씀으로 불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안의 이세벨을 던져 버리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다시는 찾지 못하게 해주십니다.
아합이 불신 결혼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것은 그의 아내 이세벨이 남편과 아들들까지 불신앙을 충동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저주받은 여자로 불리며 삼대에 이르도록 통치하다 마침내 종말을 맞게 되었는데, 이렇게 악은 끝이 있습니다. 이세벨의 파멸은 우상숭배자, 박해자들의 전형적인 말로입니다. 예후는 이세벨이 그래도 왕의 딸이니까 장사를 해주라고 말은 하지만, 창밖으로 내려던져진 이세벨의 최후가 저주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인생 전체가 죄악의 저주로 매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사할 수 없도록 시체의 두골과 발과 손 외에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세벨의 시체가 남지 않은 일은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세벨의 시체는 거름같이 밭에 있을 거라고 하는데, 거름은 점잖은 번역이고 본래 뜻은 똥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며 닮고 싶은 인생인 줄 알았는데 포장지를 뜯어보니 그 실상은 똥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울며불며 가지려고 하는 것들이 다 똥 같은 가치인데, 우리는 밑동 잘린 짧은 인생으로 주님과 말씀 외에는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내려던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작은 습관 하나 내려 던지는 것도 힘든데 자극과 기호에 사로잡히는 내 중독을 어떻게 내려 던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날마다 큐티하며 사소한 적용을 하나씩 할 때 큰 것도 내려던질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내 안의 이세벨들을 내려던지는 순종을 할 때 주님이 그 이세벨들을 우리가 다시는 찾을 수 없도록 만들어 주실 줄 믿습니다.
공동체 고백은 남편이 젊어서부터 요양원에 있어 홀로 가정을 책임져야 했던 한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저는 매너가 좋은 남편이 좋아서 결혼했는데, 어느 날 일을 하던 남편이 낙상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치료 시기를 놓쳤고, 전두엽이 90% 이상 손상이 되어서 뇌 병변 6급 장애 환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남편은 17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사고 후 충동적 행동과 돌발 행동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는데, 이제 구속사로 남편이 나의 구원을 위해 수고해 주고 있다는 말에 은혜가 됩니다. 몇 년 전, 공동체의 처방으로 남편에게 영접 심방을 갔는데 순한 양처럼 주님을 영접했고, 최근 남편의 생일날에는 화를 내던 모습이 아니라 저를 보며 '너무 수고가 많아, 힘든 남편 만나서 젊은 시절 다 보내고 고생하네.'라고 하였습니다. 마치 주님께서 방문하셔서 마리아야 불러주시고 제 눈물을 닦아주시는 것같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기적입니까? 남편 한 사람의 회개로 말미암아 인생이 달라지고 모두가 달라지는 기적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이세벨을 내려던지려면, 화려하게 꾸민 포장을 분별하고, 내 편 네 편이 아니고 말씀 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던져버린 그 소소한 적용들로 그것을 다시는 찾지 못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입니다. 날마다 말씀 보고 기도하고 찬송하며 내 속의 이세벨을 내려던져 버리는 성도님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